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77화 (77/250)

<너의 얼굴은 -(2)>

***

“들었어? 대한민국 25시 PD가 성 상납 받았대.”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딨냐?”

“서윤혜도 있다던데?”

남자 둘이 담배를 피우며 떠들고 있었다.

그런데, 서윤혜라는 이름이 나오자 분위기가 뜨거워진다.

“서윤혜? 진짜?”

“이거 봐봐. ‘청순한 이미지의 영화배우 A 씨, 출세를 위해 동영상도 찍었다.’ 이게 서윤혜래.”

진택용 PD가 성 상납을 받았다는 의혹이 세상을 때렸다.

그런데 그 대상이 청순가련의 대명사로 떠오르는 서윤혜다.

그녀가 미성년자 시절 동영상까지 찍었다는 소식은 대한민국을 시끄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조우재 부장검사는 자신이 살기 위해 함께 했던 진택용 PD를 버렸다.

그리고 그 효과는 컸다.

텔레비전은 물론이고 포털사이트의 실검도 모두 서윤혜와 진택용 PD가 장악했다.

여중생 살인 사건에 대한 소식은 토막처럼 올라올 뿐이다.

댓글을 봐도.

-갑자기 서윤혜 동영상이 검색어에 떠오르는 이유가 뭐겠냐?

-검찰이 삽질했잖아. 그거 덮으려는 거지.

-개검들.

-음모론자 나오셨네.

-정상 생활 가능?

-됐고. 동영상 있으신 분?

몇몇 사람이 의혹을 제기했지만 음모론으로 치부되며 묻혀 버렸다.

사람들의 관심은 이미 서윤혜에게 틀어진 뒤다.

그 시각.

서진은 차를 몰고 지검으로 향하고 있었다.

라디오에서도 연예인 성 상납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중이었다.

-진택용 PD가 연예 기획사를 조사하지 않는 조건으로 성 상납을 받았다고 해요. 하지만 이게 일부일 뿐이지, 전체는 아니거든요. 이 일로 연예 산업이...

어제 조우재 부장검사에게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될 것은 예상했다.

그리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사람들의 반응은 뜨겁지만 터질 게 터졌다는 분위기.

활활 타오를 땔감을 계속해서 던져주지 않으면 금세 식어버릴 이슈다.

‘길어야 한 달이지.’

하지만 여중생 살인 사건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윤민우가 법정에 서면 세상은 다시 그를 주목할 거다.

동시에 인생을 망친 김태경의 삶도 재조명될 게 분명하다.

그리고 김윤환 대신 동남 경찰서 형사과장이 욕받이 재물로 결정되었지만 서진은 그것조차 막을 생각이다.

김윤환의 지옥은 시작도 안 됐다.

그리고 서진의 차량이 지검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내린 서진이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로비를 향해 걸었다.

*

“김윤환 검사가 사건 조작했다며?”

“그거 김서진 검사가 잡아 온 애가 진범이었잖아.”

엘리베이터에 오른 직원들이 입을 열었다.

검찰답게 이곳의 화제는 연예인이 아니라 김윤환의 삽질이었다.

“둘이 친척이지? 와, 이건 운이 좋은 거야? 아닌 거야?”

그런데 스르륵 닫히던 엘리베이터의 문이 다시 열리더니 서진이 나타났다.

지금껏 떠들던 직원이 아차 하는 표정으로 다급히 입을 다물었다.

뒷말을 하다 들켰다고 생각했는지 얼굴까지 붉어진다.

서진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운이 좋은 거예요.”

“...죄송합니다.”

“아뇨, 정말 괜찮아요.”

서진은 슬쩍 웃으며 3층을 꾹 눌렀다.

그리고 잠시 후, 서진은 이소희의 사무실 앞에 섰다.

노크를 하고 들어가자 기록물에 파묻힌 이소희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왔어?”

서진이 손에 들고 있던 테이크아웃 커피를 흔들며 말했다.

“커피 한잔할까?”

지금껏 윤민우를 담당했던 게 이소희다.

아무리 서진이 잡았다 해도 이소희의 의견을 들어야 했다.

그리고 휴게실로 이동해서 상황을 들은 이소희는.

“당장 가져가.”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정말 기쁜 표정을 지으며 흔쾌히 허락했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전화를 몇 통이나 받았는지 알아? 내 연락처를 어떻게 알았는지 기자들이 쉬지 않고 전화하고 있어.”

지금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는 중이다.

“그리고 윤민우, 내가 감당하기 어려워.”

윤민우는 검찰에 와서도 겁을 먹지 않았다.

어차피 판결은 판사가 하는 것이라며.

-검사와 대화해 봤자 내 치부만 드러나잖아요?

이런 말을 내뱉을 정도였다.

이소희가 커피를 마신 후 계속 말했다.

“여중생 사건과 홍천의 주민아만 자백했고 나머지는 대답도 안 해.”

윤민우는 시신을 찾은 사건에 대해서만 인정했다.

그 외에는 전면 부인하는 중이다.

이소희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사이코패스라고 하지? 처음 만나봤거든. 계속 대화를 하니까 나까지 미쳐 버릴 것 같아.”

이소희는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아, 변호사도 선임했어.”

“국선?”

윤민우는 꽃다운 나이의 학생들을 죽였다.

범행 수법은 과감했고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악랄했다.

게다가 윤민우 대신 범인으로 낙인찍힌 것이 그 친구다.

이미지를 생각해야 할 변호사들이 그를 변호한다는 것은 어렵다.

그런데, 이소희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과 달랐다.

“아니, 김종재.”

“뭐? 내가 아는 김종재?”

김종재는 판사 그리고 국회의원 출신의 변호사.

인맥이 넓고 승률이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니까 의문이 든다.

‘뭐지?’

김종재 변호사는 비싼 몸값을 자랑한다.

헐값에 움직일 사람이 아니다.

게다가 이번 사건은 리스크도 크다.

변호를 했다는 이유로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있는데...

“왜?”

“모르겠어. 그런 놈... 사형이라도 시키고 싶은데, 내 힘으로는 어려울 것 같아.”

이소희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렀다.

그리고.

“부탁할게.”

윤민우는 여자를 장난감 취급했다.

여중생 사건 이후에는 유흥업소를 다니며 죽일 대상을 쇼핑하듯 골랐다.

이소희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다.

서진이 이소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맡겨. 울게 해줄게.”

***

“담당이 바뀌었네요?”

취조실이었다.

서진과 마주 앉은 윤민우는 웃고 있었다.

“그 여자 검사님은 말랑말랑해서 재미가 없었어요. 폭력적인 검사님이 앉아야 긴장도 되고 하는데.”

윤민우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는 시늉을 하며 웃었다.

느긋하다 못해 여유롭기까지 하다.

그리고 놈이 다리를 외로 꼬며 말을 이었다.

“변호사 구했습니다. 조금 있으면 올 거니까 질문은 그때 하시고.”

“아, 들었어. 김종재 변호사님이라고?”

윤민우가 낄낄댔다.

“아이고, 그분이 유명하기는 한가 봐요?”

“하나 물어보자. 어떻게 선임한 거야?”

“전 재산 다 쏟았죠. 어차피 쓸 일도 없을 텐데.”

윤민우는 꽤 많은 구독자를 가진 유튜버였다.

게다가 돈과 상관없는 삶을 살았다.

차는 김태경의 것을 사용했고 집도 여기저기 옮겨 다녔다.

그동안 모은 돈이 꽤 많은 모양이다.

“돈이면 안 되는 게 없잖아요?”

재벌들도 저런 유치한 말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은 돈을 들고 까부는 게 정말 같잖았다.

그리고 잠시 후, 취조실의 문이 열리고 김종재 변호사가 들어왔다.

잘 빗어 넘긴 머리가 인상적이다.

그런데 김종재 변호사가 처음으로 보인 행동은 인사가 아니었다.

권위적인 눈으로 서진을 바라보며.

“검사장하고 차를 마시느라 조금 늦었네요. 검사장과 예전부터 알던 사이라.”

검사장의 이름을 대며 서진을 압박하는 유치한 수작을 부렸다.

그리고 놈은 천천히 서진의 얼굴을 살폈다.

‘어리다고 무시하면 당할 수도 있다고?’

서진이 공판을 뛴 적이 딱 한 번 있다.

동남지청에서 해결했던 자매 살인 사건.

당시 서진에게 당했던 변호사가 이런 말을 전했다.

-김서진 그놈 뱃속에 이무기가 들어 있어요. 조심해야 합니다.

그 목소리를 기억하며 김종재 변호사가 픽 웃었다.

‘개소리.’

김종재 변호사는 서진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었다.

공판은 검사가 중요한 게 아니라 판사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관상을 한번 훑어보는데...

‘딱 봐도 순해 보이네.’

멀뚱멀뚱 눈을 뜨고 있는 게 어리바리한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공판 경험이 한 번이라고?’

어떤 변수가 튀어나올지 모를 공판에서 경험은 필수적이다.

‘이무기라 해도 새끼는 새끼지.’

게다가 그는 정치인이기 전에 판사였다.

전관예우를 기대하며 담당 판사와 밥 한번 먹는 것은 어렵지도 않았다.

‘이 사건 끝내고 기업의 법률 고문으로 가야지.’

이 사건을 맡은 근본적인 이유였다.

그는 기업의 법률 고문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몇억씩 손에 쥘 수 있는 마법의 지갑.

그런데, 그 지갑을 얻으려면 스펙이 필요했다.

이런 최악의 사건도 승리로 만들어내는 실력.

‘기업은 변호사의 이미지를 보지 않아.’

이 사건은 자신의 인맥과 실력을 과시할 수단이었다.

‘목표는 징역 15년 이하.’

연쇄 살인범이 15년 이하를 받으면 세상은 온갖 논란으로 가득할 거다.

그리고 그는 자연스레 기업의 부름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

김종재 변호사가 윤민우의 옆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젊은 검사님, 윤민우 씨가 홍천에서 살인을 저질렀을 때, 유흥업소에 들른 것은 알고 계시죠?”

“네, 그래서요?”

“술값이 100만 원이 넘게 나왔습니다. 만취 상태였죠.”

서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김종재 변호사가 무엇을 노리는지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심신미약이니 뭐니, 솜방망이 처벌.

정말 제일 싫어하는 거다.

그리고 놈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여중생 살인도 그래요. 취해 있었어요. 술을 먹은 상태, 즉 심신 미약이 참작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김종재 변호사가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착착 올렸다.

그리고 서류를 툭툭 두들기며 자신 있게 말을 이었다.

“윤민우 씨는 정신병이 있어요. 조현병이죠. 57차례나 치료한 병력이 있습니다.”

조현병은 환각을 보거나 행동 이상이 나타나는 정신병이다.

“저도 여중생 여섯 명 그리고 주민아 씨의 생명은 정말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윤민우 씨는 환각과 망상을 봤어요. 자신도 모르게 살인을 저지른 겁니다. 환자예요. 저는 공판 전에 정신감정을 신청할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김종재 변호사의 시선이 윤민우에게 향했다.

눈빛을 마주한 윤민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가끔 계시를 들어요. 제게 명령을 내리죠. 뭘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

되도 않는 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서진이 손을 휘휘 저었다.

“심신미약이니, 조현병이니 그딴소리는 판사 앞에서 하시고.”

김종재 변호사가 눈을 가늘게 떴다.

서진의 말이 짧기 때문이다.

‘하시고?’

짧은 게 전부가 아니었다.

서진의 목소리 톤마저 건방졌다.

‘이 새끼가?’

김종재 변호사의 눈에 서진이 천둥벌거숭이로 보였고 어떻게 박살 내야 할지 고민됐다.

그사이 서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윤민우 씨, 중학생 여섯과 주민아 씨, 이렇게 일곱 번의 살인만 인정한다고요?”

“네.”

“그럼, 증거로 나온 신분증이 총 22장. 나머지 여성은 안 죽였어요?”

서진의 눈빛이 살벌했다.

윤민우가 순간적으로 움찔거리자 김종재 변호사가 테이블을 쾅! 내리치며 벌떡 일어섰다.

“그 여자들은 실종입니다!”

“신분증은?”

“훔친 거죠!”

“시신이 없으니 실종이다?”

“그럼, 죽였다는 증거를 가져오세요!”

김종재 변호사의 얼굴이 사나워졌다.

재판에 들어가기 전 기세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한 거다.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면 알려줘야 한다.

가만히 놔두면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모른다.

김종재 변호사의 입에서 무거운 목소리가 흘렀다.

“김서진 검사님, 윽박지르지 마세요. 검찰은 이런 식으로 일합니까? 그러니까 조작이나 하고 있지!”

“......”

“이 사건도 그래요. 나머지 실종자를 윤민우 씨의 어깨에 올리려는 게 아닙니까?”

“......”

“그리고 말 짧게 하지 마. 여기 검사장이 부장검사일 때부터 나를 졸졸 쫓아다녔어.”

김종재 변호사의 목소리가 끝났다.

그러자 서진이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툭툭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김종재 변호사가 조용히 웃었다.

‘불안하지?’

불안한 심리를 대변하는 동작이 몇 가지 있다.

손이 불안하게 흔들리거나 마른 입술을 핥거나.

지금 서진의 행동이 그렇다고 김종재 변호사는 생각했다.

‘검사장까지 거론했는데 겁을 안 먹으면 그게 이상한 거지.’

그런데, 그 순간.

서진이 느릿하니 고개를 들어 김종재 변호사와 눈을 마주했다.

서진의 눈동자에 불안한 감정은 전혀 없다.

오히려 김종재 변호사를 죽일 듯 노려본다.

그리고.

“거참, 개소리를 거창하게 늘어놓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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