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얼굴은 -(1)>
서진과 조우재 부장검사가 서둘러 회의실을 벗어났다.
문이 닫히자 김영준 검사장이 시계를 풀어낸다.
그리고 테이블에 가볍게 올려놓더니.
쩍! 쩍! 쩍!
어떤 말도 없이 김윤환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김윤환의 얼굴에 시커멓게 멍이 올랐지만 김영준 검사장의 눈은 무심했다.
쩍! 쩍!
급기야 김윤환이 콰당탕! 넘어졌다.
몸을 발발발 떨며 넘어진 상태로 뒤로 물러섰다.
“아, 아버지.”
간절히 말했지만 김영준 검사장은 그 목소리를 외면했다.
조용히 의자를 손에 들더니 그대로 집어 던졌다.
꽝!
김윤환이 엉엉 울면서 손바닥을 비볐다.
“아버지,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죄송? 뭐가?”
김윤환, 김태경을 살인범으로 몰아넣고 고문에 가까운 취조를 할 때는 당당했다.
하지만 몇 대 맞았다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비는 중이다.
김윤환은 그만 맞고 싶었다.
“잘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어요! 죄송해요. 다 죄송해요.”
비명과 같은 고해성사를 들으며 김영준 검사장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이며 말한다.
“조작했나?”
“네?”
“조작했냐고 물었어.”
김윤환은 마른침을 삼켰다.
사실대로 대답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다가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굳게 입을 다물고 있는데 김영준 검사장이 다른 의자를 손에 쥐었다.
김윤환의 눈동자가 덜컥거리며 급하게 입을 열었다.
“해, 했어요. 조작.”
순간, 김윤환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김영준 검사장의 무심했던 눈동자에 분노가 차오르고 있어서다.
덜덜덜 떨고 있는데 김영준 검사장이 성큼성큼 다가섰다.
그리고 김윤환의 검게 변한 뺨을 어루만지며 다정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우리 아들, 도대체 언제 인간 될까?”
눈빛과 다른 목소리.
김윤환은 그 다정한 목소리가 더 무서웠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말하는지도 모르고 생각나는 대로 내뱉기 시작했다.
“아, 앞으로 잘할게요. 정말이에요. 이제 조작 같은 거 절대 안 하고...”
“누구랑 같이했어?”
“네?”
“대답해!”
김영준 검사장의 목소리가 벼락처럼 울렸다.
“아, 아버지...”
김영준 검사장은 알고 있었다.
김윤환은 혼자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대담하게 행동할 그릇이 못 된다.
분명 달고 다닌 똘마니가 있을 거다.
그리고 김윤환의 입이 열렸다.
“도, 동남 경찰서 형사과장이요.”
“하...”
김영준 검사장이 머리를 쓸어 넘겼다.
동시에 김윤환도 한숨을 내뱉었다.
이제 폭력의 시간이 끝났다고 생각한 거다.
김영준 검사장이 몸을 일으키자 김윤환도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주춤주춤 일어섰다.
“아버지, 다시는 실망시키지 않을게요. 죄송합니다.”
김영준 검사장은 차기 또는 그다음 총장으로 확실시되는 사람.
즉, 법을 쥐락펴락 할 수 있다.
아프기는 하지만 몇 대 맞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
김윤환은 그렇게 살아왔고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믿었다.
“제가 최대한 정리할 테니까...”
그 순간, 김영준 검사장이 손을 뻗어 김윤환의 재킷 안주머니를 뒤졌다.
김윤환은 이게 뭔가 싶었지만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김영준 검사장이 꺼낸 것은 김윤환의 검사 신분증.
“아, 아버지?”
김영준 검사장이 신분증을 툭 떨어뜨렸다.
그리고.
“너에게 검찰은 어울리지 않아.”
옷을 벗으라는 뜻이다.
김윤환이 자신도 모르게 눈을 부릅떴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검사가 되었다.
노력했고 또 노력했다.
그런데, 옷을 벗으라니.
“아버지!”
“구속되는 것은 막아주지. 내 아들이 조리돌림 당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으니까.”
김영준 검사장의 목소리는 냉랭했다.
김윤환은 더 말해봤자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비틀거렸다.
그리고 김영준 검사장은 가차 없이 몸을 돌려 회의실을 벗어났다.
김윤환은 멍한 눈동자로 김영준 검사장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문이 쾅! 닫혔을 때, 울 것처럼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이어서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툭 쓰러져 울기 시작했다.
*
그 시각.
서진은 조우재 부장검사와 함께 복도에 서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회의실로 가지 못하게 길을 막는 중이었다.
서진과 조우재 부장검사는 어떤 말도 없었다.
침묵이 무겁게 깔린 곳에서 조우재 부장검사의 한숨 소리만 들릴 뿐이다.
“닦아.”
조우재 부장검사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였다.
시선을 틀어보니 조우재 부장검사가 손수건을 건네고 있다.
“감사합니다.”
서진이 흐르는 피를 닦아 내자 조우재 부장검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네?”
갑자기 미안하다니.
뜬금없는 말에 서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씁쓸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 네가 그랬잖아.”
-윤환이 형이 지금 잡은 사건이요. 뭔가 이상해서요. 뭐라고 딱 말씀드릴 수는 없는데요. 정황상...
조우재 부장검사가 그 목소리를 기억하며 말을 이었다.
“하... 네 말 듣고 조금만 신중했으면...”
지금 상황에 굳이 이런 말을 꺼낸 이유는 하나다.
-그때 했던 말, 김영준 검사장님께 전하지 말아줘.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전조가 있는 법.
서진은 그 전조를 알렸고 조우재 부장검사는 숨겼다.
이 일이 김영준 검사장의 귀에 들어가면 조우재 부장검사의 앞날은 정말 끔찍할 거다.
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우재 부장검사가 안심할 수 있도록 확실하게 대답했다.
“지나간 일이에요. 입 다물고 있겠습니다.”
조우재 부장검사에게 빚을 준 거다.
언젠가 곱절로 갚아야 할 빚.
조우재 부장검사도 그것을 알고 있었고 씁쓸하게 웃었다.
“고맙다.”
“그런데, 하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어떤?”
“...윤환이 형은 어떻게 되는 거죠?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돕고 싶어서요.”
김윤환이 순순히 법정에 설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서진은 이들의 계획을 듣고 다음 전략을 세울 생각이다.
그런데, 조우재 부장검사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김윤환에게 두들겨 놈이 망설임 없이 돕겠다고 하다니.
“서진아... 이런 말 하는 것은 웃긴데, 너무 착해도 안 좋은 거야.”
“가족이잖아요. 그리고 주먹질 한 것은 이해해요. 형도 제정신이 아니었을 거예요.”
“허참.”
조우재 부장검사가 혀를 끌끌 차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먼저 욕받이가 될 제물을 찾아야지.”
수사 기관의 무리한 수사로 한 사람의 인생이 망가졌다.
그런데 그 모든 게 거짓이었다면...
“대중은 분노할 거야.”
그리고 그 분노가 김윤환에게 향할 것은 분명하다.
“그전에 윤환이도 희생자로 만들어야지. 따지고 보면 경찰의 잘못이잖아?”
-초동 수사 실패.
-자백을 받기 위한 무리한 수사.
-프로 파일러들의 짜 맞추기.
“여기에 윤환이의 흔적이 있을 것 같아?”
조우재 부장검사가 양손을 펼쳤다.
어떤 것도 없다는 제스쳐다.
“법을 다루는 것은 우리야.”
참신한 억지에 서진은 대답 대신 조용한 미소만 보였다.
‘김윤환이 시작한 일이잖아?’
하지만 놈은 희생자가 되어 법망을 빠져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검사장이나 되는 아버지가 있기 때문이다.
서진이 힐끗 조우재 부장검사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놈에게 양심이 있는지 없는지 궁금해서다.
“그래도 이번 일은 같이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네, 경찰에게 모든 일을 떠넘기면 나중에 관계도 그렇고...”
조우재 부장검사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우리가 사과하는 것 봤어?”
정말 뻔뻔한 얼굴이었다.
그때, 발소리가 들렸다.
김영준 검사장이 서진과 조우재 부장검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김영준 검사장이 두 사람을 스치며 입을 열었다.
“서진이는 나중에 얘기하고. 우재는 따라와.”
조우재 부장검사가 그 뒤를 쫓는다.
서진은 멀리 사라지는 두 사람을 보며 참고 있던 한숨을 내뱉었다.
“하...”
그리고 휴대폰을 손에 들어 이은하 기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김영준 검사장, 그쪽으로 가고 있어요.
*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을 때, 김영준 검사장이 조우재 부장검사에게 입을 열었다.
“연예인, 터뜨릴 것 있나?”
대중의 시선을 돌리기에 연예인 신변잡기만큼 좋은 게 없다.
청순한 얼굴로 방송에 나오지만 그들의 진짜 모습은 난잡하고 추하다는 반전 아닌 반전.
포털 사이트의 모든 기사는 그들의 이름으로 도배가 될 거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대한민국 25시의 진 PD를 좀 만져 보겠습니다. 연습생 데리고 좀 놀았던 것 같은데, 그중에 성공한 애들이 있습니다. 그게 터지면 윤환이 이름은 금방 묻힐 겁니다.”
조우재 부장검사는 마른 입술을 핥았다.
지금은 김영준 검사장이 어떤 지시를 내려도 곧바로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김영준 검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게 하고. 동남 경찰서 형사과장, 그놈이 윤환이를 물들게 한 것 같아. 손에 뭘 들고 있는지 확인해 봐.”
이번 일에 책임져야 할 사람으로 동남 경찰서 형사과장이 결정됐다.
물론 김윤환을 물들게 한 것은 그가 아니다.
하지만 김영준 검사장의 한 마디에 그는 욕받이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우재야, 네 문제는 이 일이 끝나고 생각해 보자.”
“알겠습니다.”
조우재 부장검사는 이번 사건을 어떻게든 깔끔하게 끝내겠다고 다짐했다.
*
잠시 후.
서진은 컨벤션 센터의 빈 사무실에서 이은하 기자를 만나고 있었다.
이은하 기자가 서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싸움도 못 하면서 왜 그랬어요.”
입술이 부어올랐고 광대와 콧잔등에 살짝 멍이 들었다.
이은하 기자가 가방에서 연고를 꺼내며 계속 말했다.
“제가 잘 넘어져서 항상 가지고 다니거든요. 에휴, 아까 보니까 김윤환 검사는 멀쩡하던데. 그래도 눈은 괜찮네. 여기까지 부었으면 잘생긴 얼굴에 정말...”
자존심에 욱해서 일부러 맞았다고 말하는 것도 웃기고.
이럴 때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낫다.
서진이 그녀의 손에서 연고를 건네받으며 물었다.
“그래서, 들었어요?”
“맞다.”
이은하 기자가 손뼉을 짝 쳤다.
김영준 검사장과 헤어진 직후, 서진은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그녀는 그들이 지나치는 복도의 한 사무실에 숨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매미처럼 문에 딱 붙어 있었거든요? 그런데도 워낙 작게 이야기해서 자세히는 못 들었어요. 뭐라더라? 동남 경찰서 형사과장? 그 사람이 원흉인 것처럼 말했어요.”
그 정도 들었으면 충분하다.
서진의 머릿속에는 이미 놈들이 벌일 일이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있었다.
“고생하셨어요.”
“그런데, 시간 언제 되세요? 영화 하나 찍었다고 회사에서 난리거든요. 이러다가 초고속 승진하는 거 아닌가 몰라요. 그래서 보답을 해드리고 싶은데, 뭐가 좋을까요? 비싼 술도 괜찮아요. 법카 가지고 올게요.”
이은하 기자의 목소리를 듣고 있을 때였다.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꺼내 봤더니 김영준 검사장의 메시지다.
-집으로 와.
서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집으로 오라고?’
그런데 김영준 검사장의 집에는 김윤환도 있을 거다.
‘뭐지? 혹시?’
그럴 리는 없겠지만 김영준 검사장이 김윤환의 말에 귀를 기울였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아무래도 두 사람은 부자지간.
아들이 극한까지 몰려 있으면 한 번쯤은 들어줄 수도...
‘그럴 성격은 절대 아닌데.’
김영준 검사장이 아무리 권력과 결탁한 비리의 온상이라 해도 그 자리까지 올라간 것은 이유가 있다.
검찰에 대한 자부심과 신념이 있는 사람이다.
사기를 친 김윤환이 서진을 앞에 두고 이리저리 씹는 것을 들어줄 사람이 아니다.
‘그럼, 뭐지?’
***
김영준 검사장은 서재에 앉아 있었다.
김윤환은 방에 처박혔는지 아니면 들어오지 않았는지 기척도 없었다.
김영준 검사장이 담배를 입에 물며 말했다.
“윤환이는 검찰을 그만둘 거야.”
“아, 네.”
예상하던 일이다.
아무리 김영준 검사장이라 해도 놈을 온전히 품고 있기는 힘들다.
구속을 안 당하는 대신 적절한 책임은 져야 했다.
그게 고작 옷 벗는 일이라 문제지만.
“앞으로는 네가 잘해야 해.”
테이블 아래 서진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드디어 김영준 검사장의 관심이 서진에게 쏠리기 시작했다.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더 잘해야 해. 윤환이 몫까지.”
“알겠습니다.”
서진이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딱할 정도로.
서진이 한숨을 내뱉으며 손을 테이블 위로 올렸다.
그렇게 테이블을 손으로 짚는데, 그 순간이었다.
사이코 메트리의 능력이 뜬금없이 시작됐다.
세상이 흑백으로 물들며.
*
테이블에 김영준 검사장이 앉아 있었다.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수북했고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그렇게 담배 연기만 내뱉던 김영준 검사장이 천천히 휴대폰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나야. 진범을 잡았다고?”
강원지검에 새로 발령받은 검사장에게 전화를 건 거다.
김영준 검사장이 담배를 비벼 끄며 말을 이었다.
“그거 우리 식구가 끝까지 해결했으면 좋겠는데. 아니, 사건을 달라는 게 아니야. 서진이에게 공판까지 맡겨 달라는 거야. 처음 잡은 것도 서진이라며? 서진이의 어깨에 공을 올려줬으면 좋겠어.”
*
세상이 다시 색을 찾았다.
서진은 천천히 김영준 검사장을 향했다.
이제 어떤 이야기를 할지 뻔히 보인다.
김윤환의 멍청한 짓에 실추된 명예를 서진을 통해 다시 세우려 한다.
자신의 장기짝을 찾은 얼굴.
김윤환이 무너지자마자 곧바로 서진의 손을 잡는 게 무섭기까지 하다.
하지만 기회.
서진이 먼저 선수를 쳤다.
“작은아버지.”
“말해.”
“이번 사건 제가 해결하고 싶습니다. 우리 가족의 명예를 되살리고 싶습니다.”
김영준 검사장의 얼굴이 묘해졌다.
하지만 잠시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어려울 거야.”
“괜찮습니다.”
“모두가 납득하는 사형을 받아내야 해. 할 수 있겠어?”
대상은 윤민우.
애초에 목표했던 게 사형.
그 재수 없는 얼굴에 죽음의 그림자를 선물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김영준 검사장은 모든 언론을 서진에게 집중시킬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