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75화 (75/250)

<김칫국부터 마시면. -(5)>

하지만 계속 웃을 수는 없었다.

누군가 서진의 어깨를 콱 잡았기 때문이다.

고개를 들어보니 조우재 부장검사다.

“나와 봐.”

서진은 조우재 부장검사와 함께 강당을 벗어났다.

그 사이에도 기자들은 김윤환을 몰아세우고 있었다.

“한 말씀 해주십시오!”

“검사님!”

김윤환은 어떤 대답도 못 한 채 멍하니 서 있을 뿐이다.

혼자 선 무대에는 도와줄 아빠가 없었다.

*

“뭐야? 무슨 일이야!”

로비로 나오자마자 조우재 부장검사가 다급히 물었다.

조우재 부장검사의 얼굴은 뻣뻣하게 굳어가는 중이었다.

“뭐냐고!”

조우재 부장검사의 거친 목소리를 들으며 서진은 머리를 헝클었다.

그리고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뱉었다.

“하...”

서진의 행동에 조우재 부장검사는 아찔함을 느꼈다.

기자들의 질문이 사실이란 것을 파악한 거다.

“너, 너도 힘든 것 알아.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말해봐.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얼마 전에...”

-홍천에서 실종된 유흥가 여성을 추적했다.

-용의자를 잡았고 여성은 변사체로 발견됐다.

“추가 혐의가 있는지 조사하던 중에 자백을 했나 봐요. 자기가 여중생 살인 사건의 진범이라고.”

“네가 그 여성을 추적했다고? 취조는 다른 검사가 했고?”

“...네. 단순 살인 사건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이럴 줄 알았다면 제가 끝까지 팠어야 했는데, 그래야 윤환이 형이...”

100%의 거짓은 쉽게 간파할 수 있다.

하지만 진실과 섞이면 추적하기 어렵다.

‘이소희만 입을 닫는다면...’

이 사건의 전말은 김영준 검사장이라 해도 드러낼 수 없을 거다.

게다가 강원 지검은 검사장이 새로 온 상태.

업적을 놓치고 싶지 않아 한다.

어떻게든 이 일을 폭죽으로 만들어 쏘아 올릴 게 분명하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꼬이고 꼬인 실타래가 자신의 목을 휘감고 있다는 것을 느낀 거다.

서진이 조우재 부장검사의 표정을 살피며 울먹였다.

그리고 준비했던 말을 집어 던졌다.

“그런데, 윤환이 형이 정말 범인을 만든 것이면 어떻게 하죠?”

순간 조우재 부장검사는 뒤통수를 쾅! 맞은 것처럼 휘청였다.

설마라고 생각하며 지나치기는 어렵다.

더러운 감각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정말 사실이라면...

‘안 돼.’

서진은 조우재 부장검사의 박살 난 표정을 지켜보며 고개를 숙였다.

‘됐어.’

세상의 모든 관심이 김윤환의 사건 조작으로 옮겨 갈 거다.

이제는 느긋하게 놈들이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된다.

그때였다.

급하게 강당을 빠져나온 김윤환이 서진의 팔을 콱 잡았다.

“와봐!”

그 뒤로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왔지만 김윤환이 서진을 끌고 가는 게 더 빨랐다.

“검사님!”

“알고 계셨습니까!”

“말씀 좀 해주십시오!”

그렇게 태풍이 스쳐 갔다.

시끄러웠던 로비는 방금 전의 상황이 거짓이었던 것처럼 적막했다.

혼자가 된 조우재 부장검사는 지독한 두통을 느꼈다.

짧은 시간에 감당 못 할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지?’

조우재 부장검사는 탈출구를 찾으며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런데,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재야.”

조우재 부장검사에게 익숙한 그 목소리는 세상 무너지는 소리보다 더 두려웠다.

동시에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고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거, 검사장님...”

김영준 검사장이 서 있었다.

김윤환이 부담 가질 거라며 오지 않겠다 했었는데, 몰래 지켜보고 있던 거다.

“나 좀 보자.”

김영준 검사장이 몸을 틀었고 조우재 부장검사는 도살장에 끌려 들어가는 표정으로 그 뒤를 쫓았다.

*

쾅!

서진과 김윤환이 기자들을 따돌리고 들어온 곳은 구석에 있는 작은 회의실이었다.

김윤환이 문을 걸어 잠그더니 곧바로 서진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떻게 된 거야!”

김윤환의 표정은 난리가 났다.

핏기가 빠진 얼굴은 창백했고 눈동자는 지푸라기를 잡기 위해 허우적대는 중이다.

“말해!”

단상에서 겁을 잔뜩 집어먹었던 놈이 서진은 만만하게 보고 있다.

급기야 멱살까지 잡는다.

“말하라고!”

놈과 달리 서진은 여유로웠다.

CCTV가 있는지 없는지 주변을 확인할 정도였다.

‘없네.’

CCTV는 없다.

그러니까, 이곳에서 일어난 일은 서진과 김윤환만의 비밀이다.

서진의 시선이 다시 김윤환을 향했다.

“도대체 뭐냐고!”

서진이 자신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놈의 손을 보며 입을 열었다.

“놓고 이야기해도 되잖아?”

김윤환이 입술을 꽉 깨물더니 잡은 멱살을 천천히 푼다.

“미안하다. 내가 지금 하... 왜 이렇게 된 건지.”

놈은 초조하다.

여유라는 이름의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저 마른 침을 삼키며 서진의 대답을 기다릴 뿐이다.

“얘기 좀 해봐. 어떻게 된 거야?”

놈은 덫에 걸린 사냥감, 더 깊은 수렁에 빠질수록 서진은 느긋해졌다.

서진이 회의실의 책상에 걸터앉으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거냐 하면...”

서진은 조우재 부장검사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말을 전했다.

홍천에서 실종된 여성을 쫓았고 그 범인을 잡았다.

그런데, 그 범인이 진범이었다.

서진의 목소리가 계속될수록 김윤환의 표정은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너였어?”

“어?”

“네가 망친 거냐고!”

예상과 다른 반응에 서진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맞는 말이기는 하다.

서진이 놈을 구렁텅이로 몰아세웠으니까.

하지만 이럴 때는 스스로가 뭘 잘 못 했는지 생각하는 게 우선인데, 놈은 끝까지 남 탓을 하고 있다.

“새끼야! 넌 예전부터 그랬어! 내가 뭘 하든 이겨 먹으려 하고! 그래, 지금도 그렇지? 강원지검 새끼들이랑 짜고 지랄하는 거지? 나 엿 먹이려고!”

서진은 김윤환이 어디까지 갈지 정말 궁금했다.

그래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예전부터 그랬다고?’

서진은 잠시 과거를 떠올렸다.

동남 지청에서 강원지검으로 이사를 올 때, 벽에 적혀 있던 낙서.

그러니까 이전의 서진이 적어뒀던 글귀.

-김윤환 : 차분한 척 보이지만 기분파. 어릴 때부터 그렇게 자라왔기 때문에 참을성이 떨어진다. 남에게 지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 이것을 이용하면?

그 글귀를 읽으며 서진은 사이코 메트리 현상을 겪었었다.

그리고 흑백의 세상에서 예전의 서진은 이런 말을 내뱉었다.

-김윤환을 끌어내리면 김영준의 관심은 나에게 온다.

그리고 김윤환의 이름 앞에 체크 표시를 그으며 말했다.

-이놈부터.

잠시 과거를 떠올리던 서진의 눈동자가 짙어졌다.

‘혹시...’

예전의 서진은 김윤환의 뒤를 캤을 거다.

그러다가 주택가에서 떨어지는 의문의 사고를 당했다.

그 범인이 김윤환이 아닐까 생각됐다.

서진의 눈동자가 다시 김윤환을 향했다.

놈은 여전히 악을 쓰고 있다.

“그래서, 담당 검사가 누구야? 연락해. 그리고 놈의 자백이 허위였다고 발표하라고 해! 그래야 나도 살고 너도 성공할 수 있어! 약속할게. 정치 같은 거 안 하고 내가 서울에 가서 끌어 줄 테니까! 어?”

끝까지 헛소리.

더 듣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저기... 윤환아?”

“10억? 20억?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까 발표하라... 뭐? 윤환아?”

김윤환의 얼굴이 굳었다.

놈의 번뜩한 눈동자가 서진을 향했다.

상황을 파악하려는지 눈동자가 기울어졌다가 다시 서진을 노려본다.

그리고 사나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금 뭐라고 그랬어?”

서진이 책상에서 엉덩이를 떼며 물었다.

“하나 물어보자. 네가 나 밀었냐?”

“뭐?”

서진이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기억 상실. 네가 밀었냐고.”

김윤환의 이마에 핏대가 쫙 솟아올랐다.

“너 지금 내가 밀었다고 생각해서, 이 지랄을 했냐?”

“아니, 네가 밀었잖아?”

서진이 성큼 다가서서 놈의 얼굴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김윤환은 그제야 서진의 표정을 확인했다.

평소 착해빠진 얼굴이 아니다.

살인을 저지를 것 같은 살벌한 눈으로 쏘아보고 있다.

“왜 그랬어?”

“새, 새끼야, 번지수 잘 못 잡았어. 너 죽이고 싶어 하는 인간이 한둘인 줄 알아?”

“한둘?”

“그래 새끼야!”

서진이 스산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놈을 향해 더 가까이 몸을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누구지? 대답 여하에 따라 지검에 연락해서 허위로 발표해 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어. 10억이든 20억이든 돈이 있으면 해결할 수 있잖아?”

김윤환이 침을 꼴깍 삼켰다.

이 상황에서도 고민하는 거다.

서진의 말을 믿을 수 있을지.

서진이 놈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며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윤환아, 지금 네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지.”

“약속해라.”

“믿어. 내가 거짓말하는 것 봤어?”

“하... 사채업자.”

“뭐?”

“그냥 사채업자 말고 큰 손들.”

예상 밖의 이야기였다.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이름들에게 미안할 만큼.

서진의 당황스러움을 느낀 김윤환이 킥 웃었다.

“기억이 없으니 혼란스럽지? 그때, 네가 사채 시장을 훑는다는 소문이 있었어. 꽤 깊숙이 파고들었다고 들었는데, 그 인간들 무서운 것 몰랐냐? 그 인간들은 돈이 걸려 있으면 검사든 뭐든 상관 안 해.”

김윤환의 표정에 거짓은 보이지 않는다.

‘사채업자?’

김윤환의 뒤를 캐던 놈이 갑자기 사채업자라니.

뭔가 연결될 듯 되지 않고 있다.

서진이 혼란에 빠져 있을 때, 김윤환이 입을 열었다.

“알려줬으니까 지검에 연락해. 그리고 거짓 자백이었다고 발표하라고 해. 당장!”

“아... 그거? 뻥이야. 정말 믿은 것은 아니지?”

“뭐 이 새끼야!”

김윤환이 서진에게 달려들었다.

다시 멱살을 꽉 쥔다.

“죽고 싶어! 지금 여기서 있던 일 얘기하면 너도 뒈지는 거야. 우리 아버지나 조우재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누가 믿을까?”

“뭐?”

서진의 건조한 눈빛에 놈이 움찔거렸다.

놈은 범인을 거짓으로 만든 사기꾼.

거기서 멈추지 않고 강원 지검에서 근무한다는 이유로 서진을 끌고 와 횡포를 부리고 있다.

“그런데, 네 말을 작은아버지가 믿어 준다고? 그 성격에?”

김윤환도 알고 있다.

절대 안 믿어 줄 거다.

서진이 놈을 향해 한 마디를 더 내뱉었다.

“끝났어.”

김윤환의 얼굴이 쩌어억 갈라졌다.

앞으로 벌어질 지옥을 엿봤는지 초점을 잃은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리고 서진의 멱살을 잡았던 손이 흐느적 떨어지더니 입에서 신음을 흘렸다.

“아....”

그때, 서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이은하 기자에게 온 메시지.

-김영준 검사장이 그쪽으로 가고 있어요.

서진이 픽 웃었다.

김영준 검사장도 오는 김에 드라마 하나 연출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진이 느긋하게 옷매무새를 만지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정직하게 살았어야지. 실력이 없으면 노력을 하던가. 작은아버지가 없으면 넌 아무것도 아니야.”

“개새끼가!”

김윤환이 화를 못 참고 서진에게 달려들었다.

와당탕탕! 소리와 함께 회의실의 책상이 엎어지고 의자가 밀려났다.

김윤환이 서진의 몸에 올라타더니 주먹을 날렸다.

퍽!

공부만 한 놈이라 아프지는 않다.

퍽! 퍽!

놈이 계속해서 서진의 얼굴을 때렸다.

입술도 터졌고 코에서 피도 흐른다.

‘충분히 맞아 준 것 같고.’

이 정도면 됐다.

더 맞아 줄 생각은 없었다.

서진이 놈을 확 밀쳤다.

그러자 놈의 가벼운 몸뚱이가 훅 날아간다.

멀리 자빠진 놈이 욕을 내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새끼가!”

서진도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놈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입을 열었다.

“딱 한 대만 맞자. 너 같은 새끼가 나하고 똑같은 검사라는 게 정말 치욕이었거든.”

“닥쳐!”

김윤환이 또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서진은 놈의 공격을 가볍게 피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쩍!

놈의 배를 가격했다.

“컥!”

놈이 배를 잡고 주춤주춤 물러섰다.

얼굴이 일그러진 게 많이 아파 보였다.

“뭐야? 약하네? 그거 한 대 맞았다고 그래?”

“씨발!”

놈이 달려와 서진을 밀쳤다.

넘어진 서진의 몸 위로 올라타더니 비명처럼 악을 질렀다.

“죽어! 새끼야!”

놈이 주먹을 꽉 쥐는데...

콰직! 콰직! 쾅!

김윤환은 뒤에서 들려오는 이질적인 소리를 들었다.

눈을 부릅뜨고 고개를 튼다.

그리고 곧 놈의 눈동자가 절망으로 물들었다.

“아, 아버지...”

조우재 부장검사가 문을 부수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 뒤에 김영준 검사장이 서 있었다.

“문 닫아.”

김영준 검사장의 낮은 목소리에 조우재 부장검사가 서둘러 움직였다.

아무도 들어올 수 없도록 서둘러 문을 막더니 무거운 한숨을 뱉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김영준 검사장의 무심한 눈빛이 서진과 김윤환을 향해 틀어졌다.

쓰러진 테이블, 서진의 위에 올라탄 김윤환.

그 냉랭한 시선은 김윤환을 쓰레기처럼 바라보고 있다.

김윤환이 고개를 숙이며 시선을 피하자 김영준 검사장의 눈동자가 서진에게 옮겨졌다.

말해 보라는 눈빛이다.

서진이 피 흘리는 입술을 닦으며 몸을 일으켰다.

“유, 윤환이 형이 지검에 연락해달라고 했어요. 돈을 줄 테니까 거짓 자백으로 만들어 달라고. 그런데, 그럴 수 없다고 하니까...”

“때렸어?”

“...네.”

서진은 힘없는 목소리를 내뱉으며 비틀거렸다.

내일이면 죽을 사람처럼.

서진의 행동에 김윤환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서진을 쏘아보며.

“야...”

“미안해... 형.”

서진의 간절한 눈빛에 김윤환은 주먹을 스르륵 풀며 고개를 숙였다.

더 입을 열어봤자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느낀 거다.

그리고.

“윤환이 빼고 나가.”

김영준 검사장의 무시무시한 목소리가 회의실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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