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칫국부터 마시면. -(1)>
방으로 들어온 서진은 주변을 둘러봤다.
작은 주방이 따로 존재하는 원룸.
치우지 않아 그런지 압수수색을 하며 들쑤셔 놓은 흔적이 그대로다.
“이 집, 김태경 씨 이름으로 계약했다고 그랬죠?”
“네.”
“만약에... 김태경 씨가 또 오랫동안 집을 비우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계약 기간도 많이 남아 있는데.”
서진이 윤민우를 급히 찾은 이유다.
윤민우의 직업은 여행 작가이며 여행 유튜버.
훌쩍 떠나버릴 가능성이 있다.
겨우 실마리를 하나 찾았는데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리면 낭패다.
그리고 다행히.
“당분간은 제가 쓰려고요. 그리고 태경이 곧 나올 거예요. 잘못 한 게 없잖아요. 제가 알아요. 그럴 애 아니에요. 학원에서 일할 때 애들을 얼마나 예뻐했는데요. 그런데, 걔가 살인을 한다고요? 그것도 애들을 대상으로?”
서진이 놈의 목소리를 들으며 방으로 향했다.
널브러진 과자 봉지와 여중생 살인 사건을 방송하는 텔레비전이 보인다.
“차는요? 차도 윤민우 씨가 쓰시나요?”
“...당분간은 그래야겠죠.”
윤민우는 서진의 뒷모습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 새끼, 왜 이러지?’
이어지는 대화가 예상과 달랐다.
위로를 해주러 온 게 아니다.
뭔가를 알아내려는 검사의 질문이다.
순간 윤민우의 머릿속에 스친 생각.
‘죽여?’
꺼림칙한 것은 없애야 한다.
별일 있겠어?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지나갔다가 낭패를 볼 수 있다.
하지만 꾹 참는다.
서진이 이곳에 온 것을 다른 검사에게 알렸을 가능성.
주택 출입문에 존재하는 CCTV.
이곳은 여러모로 증거가 많이 남는다.
그사이 서진은 눈동자를 움직이며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을 눈에 담았다.
바닥에 쌓인 책.
주로 여행 전문 서적이다.
그리고 슬쩍슬쩍 보이는 게 범죄심리학, 프로파일러에 대한 책이다.
‘연구하고 있었구나?’
범죄자들은 이런 책을 관심 있게 읽는다.
수사기관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연구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틈을 비집고 범죄를 저지른다.
서진은 한 가지 추론에 또 확신했다.
놈은 중학생 살인 사건을 끝으로 범죄를 멈춘 게 아니다.
또 다른 형태로 발전했을 게 분명하다.
서진이 책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이쪽에 관심 있으세요?”
프로파일러 책을 손에 들며 윤민우를 향했다.
놈의 표정을 관찰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놈은 두꺼운 가면을 쓰고 있다.
씁쓸하게 웃으며 입을 연다.
“태경이 잡혀가고 주문했어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제가 범인을 잡으면 태경이의 무죄가 밝혀질 수 있잖아요.”
모르고 들으면 진정한 친구의 간절한 마음.
하지만 서진은 놈의 본 모습을 알고 있다.
‘미친놈.’
서진이 이번엔 과자 봉투를 손에 들었다.
“식사도 안 하셨나 보네요. 좀 드시지.”
“친구가 힘들어하는데, 어떻게 밥을 먹어요. 그걸 먹는 것도 미안한데.”
주변에 과자 부스러기가 가득 보이는 게 신나서 먹은 것 같은데 가식적인 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이런 놈 조금이라도 더 세상에 놔두면 암에 걸릴 것 같다.
조금이라도 빨리 감옥에 처박아 넣고 싶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마음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네.’
서진은 궁금했다.
윤민우의 모든 죄가 드러났을 때, 판사의 입에서 사형이란 말이 떨어졌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까?
지금처럼 웃을까?
아니면...
‘울게 해줄게.’
서진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시 안쓰러운 표정,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식사는 하셔야죠.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제가 시켜드릴게요.”
마음껏 먹어라.
마지막 만찬이다.
***
“일 끝났는데, 밥이나 먹자.”
서진은 오랜만에 동남 지청에 들렀다.
김윤환을 만나기 위해서 그리고 또 다른 볼일이 있어서.
이곳에 있을 때 자주 가던 콩나물 국밥집에 들리려 했는데.
“그걸 왜 먹어? 추잡스럽게.”
김윤환은 거지 같은 음식이라며 거절했다.
그리고 기본 반찬이 한가득 나오는 고급 횟집으로 향했다.
“술?”
“난 됐어. 운전해야 해서.”
“그럼, 나 혼자 마신다.”
김윤환이 술을 시켰고 서진이 놈의 잔에 술을 채우며 물었다.
“어떻게 잡은 거야?”
“왜? 궁금해?”
“어.”
“기록물 보고 성범죄자 훑었지. 그런데, 첫 번째 피해자 있지? 피해자가 다녔던 학원이 그놈이 강사로 있던 곳이네? 느낌 오지 않아?”
김태경은 범죄 현장 주변에 살던 사람.
심지어 피해자가 다녔던 학원에 종사하며 성폭행까지 저질렀다.
게다가 무직이며 취약계층.
범인으로 지목되기 딱 좋다.
그는 약자이고 누구 하나 반론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김윤환의 눈에 좋은 먹잇감이었다.
“자백만 받으면 돼.”
증거도 이미 만들어졌다.
현장에서 발견된 피해자의 가방.
“안쪽에 정말 작게 찢어진 부분이 있거든.”
그곳에서 김태경의 머리카락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물론 조작이다.
“곧 자백할 거야.”
김윤환은 확신처럼 말했다.
눈만 봐도 알 수 있다.
자백을 받기 위해 강압적인 취조를 망설이지 않는 중이다.
흉터가 남지 않게 때리고 또 때리고.
“먹자.”
김윤환이 끌끌끌 웃으며 젓가락으로 회를 집었다.
그 모습이 가증스러웠지만 서진은 표정을 관리하며 입을 열었다.
“대단해.”
“뭐가?”
“검찰에서 형 이름이 오르락내리락하잖아? 기사 봐도 다 칭찬하고. 국민 검사 되셨네.”
김윤환의 이름이 화제다.
특히 검찰 내부에서 이 사건을 주시하고 있다.
연일 미제를 해결하며 검찰의 주가가 오르던 중인데 쐐기를 박은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서진의 칭찬에 김윤환이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씰룩이며 되지도 않는 말을 지껄였다.
“야, 미안하다. 내가 네 이름 묻으려고 그런 것은 아니야.”
“내 이름?”
그러고 보니, 이 사건 이 전에는 서진의 이름이 곧잘 튀어나왔었다.
물론 검찰 내부에 한정된 일이었지만.
“그래, 네 이름. 이 바닥이 그렇잖아? 큰 사건 해결해도 며칠 지나면 잊히고.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내 이름 사라지면 다시 네 이름 나올 거니까 이해해줘.”
“아이고, 관심 없으니까 형 이름으로 도배해도 돼.”
칭찬은 끝났다.
이제 슬슬 자존심을 긁을 시간이다.
“그런데 형, 잘 알아본 거 맞아?”
“뭔 소리야?”
김윤환의 얼굴이 삐뚤어졌다.
서진이 심각한 표정으로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우리 지검에도 이거 추적하던 분들이 꽤 많아. 그래서 살펴봤는데, 김태경과는 매칭이 잘 안 돼.”
서진이 브레이크를 걸었다.
일부러 그러는 거다.
놈은 자존심이 강하다.
제동을 걸수록 더 집요해질 게 분명하다.
그리고 예상대로 놈이 발끈한다.
“너희 지검? 강원도 처박혀서 감자 먹던 새끼들이랑 나랑 같다고 생각해?”
“걱정돼서 그러는 거야. 다시 살펴본다 해서 문제 생기는 것도 아니고 이럴 때일수록 차분히 가야지.”
“가르치냐?”
“그렇게 들렸으면 미안한데...”
“야, 내가 먹은 짬밥이 네가 흘린 밥풀보다 많아. 그런데, 돌다리 안 두들겨 봤겠어? 깜빡이도 켜고 주변도 다 살펴봤어. 그러니까...”
“형! 그게 아니잖아? 화를 낼 게 아니라 차분히 생각하라고.”
김윤환이 젓가락을 탁! 내려뒀다.
그리고 술을 한잔 마신 뒤 서진을 노려봤다.
“너 지금 질투하지?”
“뭐?”
뜬금없이 질투라니.
이건 서진도 예상 못 했던 반응이다.
“그렇잖아? 내가 잘 나가면 네 이름이 묻힐까 봐 걱정되지?”
정말 유치한 놈이다.
그런데 그 멍청한 말이 검사라는 놈의 입에서 나온다는 게 더 충격적이었다.
“형!”
“질투하는 것 아니면 조용히 회나 먹어.”
김윤환이 회를 들고 입에 쑤셔 넣었다.
서진은 내친김에 한 마디를 더 던졌다.
김윤환이 더 발끈해서 달려들 수 있도록.
“방송은 출연하지 마.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새끼, 질투하는 것 맞네.”
김윤환은 아버지 김영준 검사장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리고 서진을 이기고 싶어 한다.
왜곡된 성향은 김윤환을 지옥으로 이끄는 중이다.
*
김윤환과 헤어진 서진은 차에 올랐다.
그리고 김태경이 성폭행을 했다는 그 모텔로 향했다.
증거가 없는 사건, 모든 것을 확인할 생각이다.
사건이 해결되면 김윤환의 얼굴에 빅 똥을 집어던질 수 있다.
***
“305호였습니다.”
서진은 모텔의 주인을 만났다.
당시 몇 번이나 경찰이 찾아왔기에 당시 상황을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CCTV가 일주일 정도 보관되거든요.”
신고가 접수된 것은 몇 달 뒤.
그래서 CCTV의 영상은 없었다.
“각 층의 복도마다 CCTV는 있나요?”
“아뇨. 로비하고 엘리베이터만 있습니다.”
“뒷문으로 들어와서 계단으로 올라가면 모르겠네요?”
모텔 주인이 입을 다물었다.
-종종 불륜하는 분들이 그렇게 들어와요.
-그분들이 우리 집의 매상을 올려주죠.
라는 검사 앞에서 할 수는 없었다.
서진도 그 부분은 충분히 이해했고 넘어갔다.
“한번 확인하고 싶은데 열쇠 좀 주실 수 있을까요?”
짤그랑 소리와 함께 열쇠가 건네졌다.
‘카드 키가 아니라 열쇠.’
김태경은 여자를 눕혀두고 곧바로 나왔다고 했다.
‘문은 못 잠갔겠지.’
잠갔어도 열쇠는 카운터에 뒀을 거다.
직원이 자고 있었다면 열쇠는 그대로 위에 놓여 있었을 테고.
서진은 열쇠를 들고 305호로 향했다.
계단을 통해 천천히.
그리고 305호에 도착했다.
딱 봐도 오래된 곳이다.
낡은 창틀, 방문 그리고 색이 변한 욕조.
그 외에 특이한 점은 없었다.
서진은 텔레비전을 틀어 음량을 높인 후 복도로 나갔다.
그리고 문을 닫아 본다.
‘소리는 들려오지 않아.’
낡은 모텔인데 방음은 잘 되어 있다.
비명 소리가 들렸어도 새어 나오지 않았을 거다.
혹시 들렸어도 무시하고 갈 만큼이다.
서진은 다시 방으로 들어갔고 텔레비전의 음량을 줄인 후 주변을 살폈다.
‘여자가 이곳에 누워 있었을 테고 김태경은 나갔어. 그 후, 만약에 윤민우가 들어왔다면...’
생각을 이어가며 화장대에 몸을 기댄 순간이었다.
세상이 흑백으로 물들며.
*
불 꺼진 방에 거친 소리가 들려왔다.
“꺼어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오직 여성의 목을 조른 손.
라텍스 장갑을 끼고 있다.
그리고 들리는 것은 괴로워하는 여성의 목소리다.
그런데.
“더... 더 꺽꺽 대봐! 어? 더!”
어두웠지만 알 수 있었다.
윤민우의 목소리다.
놈은 여성의 숨넘어가는 소리에 변태처럼 헉헉대며 흥분하고 있었다.
손을 여성의 허벅지 안으로 집어넣고 있다.
그리고 여성의 눈동자에 흰자가 보였다.
“아직이야! 아직! 견뎌!”
하지만 여성은 견디지 못하고 축 늘어졌다.
어둠 속에 있던 놈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잠시 그렇게 있었다.
“하아아아...”
긴 숨을 내뱉은 놈이 침대에서 내려와 여성의 가방을 뒤진다.
“같이 술을 마셨는데 왜 태경이한테만 눈을 주는 거야. 그 새끼보다는 내가 낫다는 거 몰라? 그러니까 내가 화가 나잖아? 어?”
윤민우가 지갑을 꺼내 신분증을 챙기며 말을 이었다.
“내가 원래 17세 이상이랑은 안 놀아주거든? 그런데, 이것도 재밌네?”
그 말을 끝으로 볼일을 다 봤다는 듯 복도로 나갔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 망설임 없이.
그리고 복도의 불에 놈의 모습이 비쳤다.
모자를 쓰고 있고 옷을 입고 있다.
문이 쾅! 닫혔을 때 여성이 콜록! 기침을 하며 깨어났다.
*
그렇게 사이코 메트리의 세상이 끝나며 세상이 색을 찾았다.
서진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있다.
동시에 서진의 머릿속은 성폭행을 당했다고 신고한 여성의 기록물을 떠올렸다.
-성폭행을 하면서 정말 죽이려 했다고요!
-그리고 신분증이 사라졌어요.
-저 사람이 가져간 거예요!
-우리 집 주소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무서워서 신고할 수도 없었어요!
김태경은 신분증을 훔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법원의 판단도 단순 분실로 여겼고.
서진이 머리를 쓸어 넘겼다.
‘저 여자가 살 수 있던 이유는 윤민우도 취해 있었으니까?’
여성에게는 천운이었다.
서진이 천천히 고개를 틀었다.
기대고 있던 곳이 여성의 가방이 있던 화장대다.
‘놈은 신분증을 가져갔어. 혹시 컬렉터?’
사람을 죽이고 그 흔적을 가져가는 변태적인 새끼들이 있다.
윤민우도 비슷한 부류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렇게 서진의 머릿속에서 여러 생각이 혼돈하고 있을 때, 텔레비전에서 김윤환의 얼굴이 나타났다.
시사 프로그램 ‘대한민국 25시’의 예고편이다.
김윤환이 정의로운 눈빛으로 말한다.
-범죄를 저지르고도 고작 1년, 2년. 반성의 눈물과 심신미약으로 감형되는 경우, 이번에는 없을 겁니다. 이 사회의 정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반드시 엄중한 처벌을 받아내겠습니다.
6명의 여중생을 죽이고 성폭행으로 감옥에 들어간 남자.
그 남자를 오랜 시간 추격한 검사 김윤환.
예고편에 대한 반응도 뜨겁다.
SNS를 확인하면.
-존나 대단하다.
-다른 검사들 반성해라.
-정의 보여주겠다는 말에 감탄했다. 믿는다. 김윤환.
-사이다 부탁합니다.
그리고 화면을 보던 서진이 조용히 웃었다.
‘너도 울게 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