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통수를 친다는 것. -(3)>
***
“이게 뭡니까!”
강남의 고급 룸살롱, 아가씨는 없었다.
‘대한민국 25시’라는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진택용 PD와 조우재 부장검사만 있을 뿐이다.
진택용 PD가 눈을 부릅뜨며 말을 이었다.
“제보받는다고 팝업까지 띄웠어요! 그런데, 사건을 마무리 지으면 어쩌자는 거예요! 부장검사님 말 듣고 2주나 편성을 잡았다고요! 그런데, 하... 이걸 보세요!”
진택용 PD가 테이블 위에 휴대폰을 쾅! 내려뒀다.
곧바로 동영상이 재생된다.
익명의 제보자에게 받은 것.
살인범 김태경이 김윤환의 손에 끌려오고 있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손을 저었다.
“나도 이렇게 빨리 잡힐 줄은 몰랐어.”
김윤환의 말을 듣고 PD를 섭외했다.
그런데, 약속이 잡히자마자 범인을 잡아 버렸다.
방송이 방영되고 국민의 관심이 집중됐을 때 딱 잡아야 드라마틱한 상황을 연출할 수 있는데, 김윤환은 마음이 급했다.
‘답답한 놈.’
그 덕에 방송을 편성했던 진택용 PD는 닭 쫓던 개가 되었다.
단독으로 편성했던 방송인데 범인이 잡혀 버리며 모든 시선이 이곳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개나 소나 검찰 드나들며 이 사건에 집중할 거다.
단독은 의미가 없어졌고 누가 새로운 정보를 빨리 얻느냐의 싸움이 되었다.
진택용 PD가 넥타이를 풀어 헤치며 입을 열었다.
“부장검사님, 이렇게 하죠. 방송 계속 가겠습니다.”
“......”
“일단 과거를 집중 조명하면서 범인을 못 잡은 이유가 경찰의 태만한 초동수사였다는 것으로 몰고 갈게요.”
“......”
“1부를 그렇게 끝내고 2부에서는 김윤환 검사의 다큐 형식으로 조명하는 거죠. 잊힌 사건을 끝까지 파헤치는 열정적인 검사.”
조우재 부장검사가 잔을 입에 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그런데, 약속 하나만 해주십시오.”
조우재 부장검사가 눈동자만 움직여 진택용 PD를 향했다.
진택용 PD가 웃는다.
“우리에게 정보 좀 넘겨주세요. 다른 애들 모르게.”
“......”
“사실 방송 어그러진 게 검찰 탓이잖아요?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양념 치냐에 따라 김윤환 검사가 영웅이 될 수도 있고 악당이 될 수도 있어요.”
조우재 부장검사가 픽 웃었다.
“협박이네?”
“아이고, 제가 어떻게 부장검사님께 협박을 하나요? 협상이지.”
그 순간, 조우재 부장검사가 진택용 PD를 향해 잔을 확 집어 던졌다.
쾅!
술잔이 진택용 PD를 스쳐 벽에 맞고 부서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진택용 PD가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잠시다.
얼굴이 일그러진다.
“뭐 하시는 겁니까!”
언론도 권력이다.
놈들의 손에 정치인이 박살 나고 검찰의 이름 앞에 섹검이니 떡검이니 추잡한 수식어가 붙는다.
검사 앞이라고 겁먹을 필요가 없다.
“검찰 한번 들었다 놔줘요?”
조우재 부장검사는 대답 없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진택용 PD는 그 모습을 보고 끌끌끌 웃었다.
자신의 말이 먹혔다고 생각한 거다.
“부장검사님, 좋게 갑시다.”
그런데, 사람 좋은 척 웃고 있던 조우재 부장검사의 눈이 살벌하게 변했다.
“진 PD, 중앙지검 부장검사가 병신으로 보여?”
무서운 목소리에 진택용 PD가 움찔거릴 때, 조우재 부장검사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웃지 마. 입 다물어. 그리고 들어. 협박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네?”
“내가 너를 왜 컨택했을까? 뭐가 예쁘다고. 대가리가 있으면 생각 좀 해.”
진택용 PD의 얼굴이 떨떠름하게 바뀌었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담배를 입에 물며 말한다.
“무명 여배우 성 접대. 이름이 뭐였더라? 한두 명이 아니라 기억도 안 나네. 어쨌든, 그 애들이 미성년자였지? 그 애들 명단이 내 책상에 있어. 그런데, 딸이 고3이라고 하지 않았어? 딸 친구들이랑 뭘 한 거야? 쎄쎄쎄?”
진택용 PD의 얼굴이 썩어들어갔고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부, 부장검사님?”
조우재 부장검사는 무심한 눈으로 얼음 통을 들고 그 안에 술을 부었다.
한 병, 두 병.
그리고 술이 가득 든 얼음 통을 진택용 PD의 앞으로 밀어두며 입을 열었다.
“알아들었으면 닥치고 마셔. 그리고 내가 원하는 그림을 뽑아와.”
얼음 통에는 술이 찰랑거렸고 보기만 해도 취할 정도다.
하지만 진택용 PD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다.
“마, 마시겠습니다.”
진택용 PD가 얼음 통을 들고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했다.
와이셔츠가 술에 적셔졌고 헛구역질까지 한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그 모습을 지켜보며 다리를 외로 꼬았다.
그리고 담배에 불을 붙이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진 PD, 우리 얼굴 붉히지 말고 좋게 가자.”
*
그 시각.
서진과 이은하 기자는 다시 춘천으로 향하고 있었다.
멍하니 있던 이은하 기자가 시선을 옮겨 서진을 향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예요?”
이은하 기자는 친구를 통해 진택용 PD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찍었던 사진과 영상 전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거다.
“고마워요.”
“네?”
“믿어줘서 고맙다고요. 저도 기자님을 믿을게요.”
뜬금없는 말에 이은하 기자가 어색하게 웃었다.
믿는다는 말이 이렇게 와닿기는 또 처음이다.
“왜 갑자기 직구를 던지시나요. 참나...”
이은하 기자는 빨개진 얼굴을 숨기기 위해 다시 창밖을 바라봤다.
서진이 이은하 기자를 보며 슬쩍 웃었다.
권력자들은 언론을 통제하고 싶어 한다.
국민을 선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상 언론을 손에 넣은 권력자는 몇 되지 않는다.
그들은 배신과 탐욕으로 가득한 정치 바닥의 최종 생존자.
권력자도 언론도 서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언제 버림받을까.
-언제 뒤통수를 칠까.
그들의 관계는 그렇게 협박과 이득으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서진은 이은하 기자와 신뢰를 쌓을 생각이다.
정말 믿을 수 있는 관계.
서진에게는 그런 언론인이 필요했다.
“이번 일 놓쳤다고 아쉬워하지 마세요. 조만간 제대로 된 특종을 드릴게요.”
“약속이요.”
***
오늘도 서진은 손에 바리바리 음식을 싸 들고 사무실에 들어왔다.
티라미수 케이크에 커피.
실무관은 경악에 가까운 눈빛을 보였다.
먹을 것을 사 오면 좋아해야 하는데.
“...설마 오늘도 야근이요?”
“제가 나쁜 놈인 것 같잖아요. 그냥 간식이에요. 편히 드세요.”
“독이 아닌 거죠?”
“깨끗합니다.”
실무관이 의심 가득한 눈으로 커피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이동영 수사관이 서진의 앞으로 다가왔다.
“며칠 전에 말씀하신 것 나왔습니다.”
서진은 이동영 수사관에게 김태경의 차량 보험 가입 내역을 알아 달라고 부탁했다.
가져온 것은 그 서류다.
“감사합니다.”
서진은 곧바로 서류를 펼쳤다.
그리고 빠르게 내용을 훑었다.
‘있어.’
예상대로 단기 가입 이력이 보였다.
모두 윤민우의 이름이다.
서진은 서류를 들고 책상으로 이동했다.
사건 날짜와 대조해 본다.
역시 동일하다.
‘하...’
서진은 긴장된 한숨을 내뱉었다.
어떤 증거도 없는, 그것도 3년 전 사건.
비와 눈이 몇 번이나 내렸고 현장은 훼손됐다.
범인이 누군지는 알지만 체포할 방법이 없어 답답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드디어 실마리를 찾았다.
그리고 이 실마리를 통해 윤민우의 목을 조여 버릴 거다.
손으로 툭툭 서류를 두들기며 생각에 빠졌던 서진이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잠깐 보자.”
*
지검 앞 커피숍.
프렌차이즈는 아니지만 쿠키가 맛있기로 소문난 곳.
서진은 그곳에서 이소희를 만났다.
“케이크 시킨다.”
“마음대로.”
“쿠키도.”
“어.”
이소희는 딸기 케이크와 쿠키 그리고 커피가 놓인 쟁반을 들고 테이블에 앉았다.
달달한 게 많아 그런지 정말 기분이 좋아 보인다.
이소희가 케이크를 포크로 쿡 찍어 물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무슨 일?”
“동남에서 여중생 연쇄 살인 사건 잡힌 것 봤지?”
실검에서도 난리가 난 일을 검사가 모를 리 없다.
이소희가 고개를 끄덕였고 서진은 곧바로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그거 범인 아니야. 김윤환이 애꿎은 사람 잡는 중이야.”
“그게 무슨...”
“이해는 나중에 시켜줄게. 그전에 부탁 하나만 하자.”
이소희는 조용히 서진의 표정을 바라봤다.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해서 황당했지만 서진은 헛소리를 하는 게 아니다.
한없이 진지하다.
“어떤?”
“스타 한번 돼라. 카메라 앞에 잠깐만 서면 되는 거야.”
“어?”
이소희는 망설였다.
조용히 있어야 했고 눈에 띄지 말아야 한다.
엄마의 부탁이었다.
그리고 그 부탁은 백기호 의원의 압박으로 시작됐다.
이소희가 입을 열었다.
“난...”
그때, 드르륵 테이블에 놓인 이소희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 번호는 엄마였고 엄마가 할 말은 뻔하다.
이소희가 아랫입술을 꾹 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
“할게. 잠깐이면 되는 거지?”
***
-검찰은 여중생 살인범의 용의자로 김 모 씨를 체포하고.
어두운 방에 텔레비전의 화면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그 방에서 과자 씹는 소리가 들렸다.
김태경의 친구 윤민우였다.
시선은 텔레비전에 집중한 채 과자를 먹는 중이다.
멍한 눈빛으로.
“태경아...”
힘없는 목소리가 흐를 때였다.
화면이 바뀌며 단상에 서는 김윤환의 모습이 나타났다.
김윤환이 마이크에 입을 대고 힘차게 말한다.
-검찰은 잔혹한 살인범과 타협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끝까지 추적하겠다는 생각으로 이번 사건을 조사했고.
김윤환의 목소리는 당당했다.
사건을 조작한 놈이 세상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서진이 그 뒤를 쫓는 것도 모른 채.
그리고 윤민우가 김윤환을 보며 중얼거렸다.
“저러니까 대한민국이 개판인 거야. 범인은 여기 있는데... 아주 스타 나셨지?”
인터넷 기사를 확인하면 온통 김윤환의 칭찬으로 도배되어 있다.
-저런 검사가 있어야지.
-얼굴도 괜찮음.
-그런데, 이번에는 제대로 했으면 좋겠네요.
-성폭행 전과 있다며? 그런 놈은 그냥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하는 거 아냐?
-풀어주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잖아.
-쓰레기는 쓰레기.
-우리나라 법이 너무 약해.
-김윤환 검사가 제대로 한다고 하잖아요. 이번엔 믿어보죠.
윤민우가 과자를 한 주먹 들어 입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태경아... 끄윽... 미안해.”
평생의 호구가 또 감옥에 들어갔다.
이전에도 이번에도.
“미안... 정말 미안.”
윤민우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뚝 떨어졌다.
그런데, 우는 게 아니다.
웃고 있다.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나오는 중이다.
“푸핫핫핫핫!”
착한 척하는 김태경이 싫었다.
이래도 좋아.
저래도 좋아.
“그러니까 호구지.”
윤민우가 과자를 씹으며 채널을 돌렸다.
보던 뉴스가 다른 사건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지금은 여중생 살인 사건의 용의자 김태경을 보고 싶었고 채널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여기도 저기도 다 김태경이다.
그때였다.
초인종이 울렸다.
‘올 사람이 없는데...’
현관으로 이동한 윤민우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누구세요?”
“김서진 검사입니다.”
서진의 목소리에 윤민우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귀찮은 새끼, 왜 또 온 거야? 꼭 이런 놈들이 있어요. 위로해 주겠다고 위선 떠는 놈들.’
하지만 윤민우의 표정은 곧 죽을 것 같은 슬픈 사람으로 싹 바뀌었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며 울먹였다.
“검사님...”
윤민우가 서진의 팔을 잡고 흐느꼈다.
서진이 윤민우의 어깨를 가볍게 쥐며 다정히 토닥였다.
“걱정이 많으시죠?”
“태경이 어떻게 해요. 도와주세요.”
윤민우는 눈물을 훔치느라 서진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목소리는 다정했지만 서진의 눈은 윤민우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여섯 명의 여중생을 죽이고 친구의 뒤통수를 치고. 그 외에 또 다른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큰 놈. 넌 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