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편? -(1)>
***
“형사 2부 소년 가장 오셨다.”
서진이 들어오자 지세헌 부장검사가 기분 좋게 입을 열었다.
그러자 다른 검사들이 낄낄거린다.
“인정합니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던데 우리는 김 검사가 볕이었어요. 푸하하하!”
“그동안 밥값 못한다고 욕 처먹던 거 생각하면 눈물이 나네...”
“넌 지금도 밥값 못하잖아?”
“야, 팩트 폭력은 구속이야. 몰라?”
그동안 형사 2부의 위치는 쭉정이였다.
주로 맡은 사건이 신원 파악도 어려운 산에서 발견된 시신.
살해당한 것은 분명하지만 나오는 게 없으니 수사 종료를 외쳐야 했다.
범인을 못 잡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잡으면 그놈이 꼭 거물이었다.
놈들은 서울에서 수십 명의 변호사를 끌고 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놓치고 또 놓치고.
판사 입에서 떨어지는 말은 무혐의에 집행 유예.
오죽하면 ‘돈 받고 풀어주는 거야?’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서진이 경찰 서장의 머리채를 잡았다.
경찰이 놓쳤던 용의자를 짓밟으며 끌고 왔다.
게다가 피해자부터 범죄자, 얽혀 있는 모두가 쓰레기였다.
언론은 이번 사건을 집중 조명했고 심지어 특집으로 편성한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그 덕에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
-이건 운으로 볼 게 아니잖아?
-운도 계속되면 실력이지. 인정.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 보통 저때는 의욕만 있지 혼날까 봐 몸 사리는 경우가 많잖아?
-뭐겠냐? 그냥 미친 거지.
-하... 나도 좀 미쳤어야 했는데.
-넌 미쳐도 안 돼. 인정해. 실력이 다른 거야.
그리고 지세헌 부장검사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거야? 영장까지 들고 간 거 보면 확신이 있던 거잖아?”
“아, 그거요?”
‘사이코 메트리라는 능력이 있습니다.’라고 정직하게 말할 수는 없다.
그런 말을 했다가는 놀리냐며 욕이나 처먹을 거다.
그래서 준비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철물점 주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덩치가 좋았고... 아, 머리가 가발을 쓴 것처럼 이상했어요.
“그래서 춘천 시내에 있는 가발 가게를 전부 확인했죠. 그랬더니 어떤 군인이 작년 9월에 가발을 사 갔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요.”
서진이 테이블 아래 지도에 손가락을 대며 계속 말했다.
“그리고 범인이 완벽 범죄, 완벽한 알리바이를 계획한 것에 집중했죠.”
“......”
“당시 부대가 훈련하던 곳이 여기. 현장까지 자동차를 이용한다면 20분도 채 안 걸립니다.”
서진의 목소리는 한참 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났을 때.
지세헌 부장검사가 눈을 찌푸리며 다른 검사들을 향했다.
“들었어? 휴일 반납하고, 퇴근 후에 현장 돌고. 그러니까 범인 잡은 거야. 배워 새끼들아.”
선배들을 대상으로 이런 칭찬을 듣는 것은 정말 민망했다.
그리고 곧 타박이 돌아온다.
“앞으로 김서진 검사님이라고 부를게요.”
“범인 못 잡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나...”
물론 장난으로 하는 말이다.
***
그 시각, 동남 지청.
동남군 형사 1부 부장검사 이재승이 앞을 바라봤다.
뺀질거리게 생긴 놈이 서 있다.
“김윤환이라고?”
“네.”
이재승 부장검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한 표정으로 서류를 들춰 본다.
그 모습을 보고 김윤환은 생각했다.
‘이제 아버지를 물어보겠지?’
검사가 된 후 어딜 가든 따라오는 질문이 있다.
-아버지가 김영준 검사장님이지?
그다음은 보직도 생활도 모든 게 수월했다.
김영준이라는 이름이 가진 묵직함은 김윤환의 무기 중 하나였다.
김윤환은 이재승 부장검사의 뻔한 질문을 기다리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멀리 바다가 보인다.
날씨까지 좋아 반짝거리기까지 한다.
‘좋네. 휴가라고 생각하자.’
아버지가 계속해서 버려둘 리 없다.
적당히 있다가 정신 차린 척 코스프레하면 다시 서울로 올려줄 거다.
꽤 괜찮은 자리와 함께.
‘아버지는 언제나 그랬어.’
화를 내면서도 끌어줬다.
몇 대 맞는 게 아프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고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거다.
‘바다... 여름이면 예쁜 애들도 많이 오겠어.’
동남군은 규모보다 검사가 많다.
그래서 일이 많지 않기로 유명하다.
아버지의 귀에 들어가지만 않으면 이곳이 낙원이다.
김윤환은 이곳에서 즐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김서진이가 친척이라고?”
뜬금없는 이름이 튀어나왔다.
아버지를 묻는 게 아니라 서진이라니...
김윤환은 자신도 모르게 되물었다.
“...서진이요?”
“그래, 김서진이랑 사촌 아니야?”
김윤환은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멍하게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김서진 검사가 제 사촌 동생입니다.”
“그렇다는 거지?”
분위기가 예상과 다르게 돌아간다.
아버지의 이름을 대며 굽실거려야 하는데.
‘왜 갑자기 김서진이야?’
이재승 부장검사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그럼, 기대해도 되나?”
이곳은 동남군이며 유배자들의 지청이다.
김영준 검사장은 이 지청에 있는 사람들과 가까이하지 않는다.
괜히 붙어 있다가 오해만 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재승 부장검사 역시 김영준 검사장에게 관심 없다.
생각하는 것은 오직 하나.
-이명수 그 새끼가 김서진 때문에 탈출했지?
이재승 부장검사도 로또 같은 부하 직원을 만나 이곳을 탈출하고 싶었다.
그런데, 김윤환이 온 거다.
‘아버지가 김영준이고 친척이 김서진이야.’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썩어도 준치이며 호랑이가 고양이를 날 리 없다.
이재승 부장검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신문을 펼치며 말을 이었다.
“김서진이 춘천으로 가자마자 한 건 올렸어. 경찰 서장, 강력반 팀장, 성매매 업체, 살인범까지 한 번에 쓸어버린 거지.”
김윤환이 눈동자를 움직여 신문을 향했다.
고개 숙인 경찰 서장의 얼굴이 보인다.
기사 내용에 ‘김서진 검사’라는 이름도 적혀 있다.
‘젠장.’
김윤환은 부장검사가 신문을 펼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너도 해봐.
그리고 그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이재승 부장검사가 신문 위에 서류를 올리며 말했다.
“우리 미제 목록이야. 넌 이것만 쑤셔.”
“......!”
“김서진도 여기서부터 시작했어.”
김윤환이 마른 침을 삼키며 서류를 손에 들었다.
떨리는 손으로 한 장, 한 장 넘겨본다.
절로 욕이 나온다.
‘씨발...’
미제가 왜 미제일까.
경찰 수백 명이 동원되어 샅샅이 뒤져도 답은 보이지 않고 의문만 남기 때문이다.
‘이걸 어떻게 해!’
그때, 이재승 부장검사가 김윤환의 어깨를 가볍게 쥐며 부드럽게 말했다.
“할 수 있겠지? 형보다 나은 아우 없잖아?”
이재승 부장검사의 눈빛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사람은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않으면 끔찍할 정도로 괴롭힌다.
김서진보다 못하다며 무시할 거다.
‘젠장, 휴가라고 생각했는데 똥 밟았어.’
모두 김서진 때문이다.
김윤환이 이를 빠득 씹었다.
‘김서진!’
*
김윤환은 인상을 구기며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문을 쾅! 열고 들어가자 수사관과 실무관이 김윤환을 반긴다.
“안녕하세요? 임정택이라고 합니다.”
서진과 함께했던 임정택이 이번엔 김윤환의 수사관이 되었다.
서진이 지검으로 가며 담당 검사가 빠졌기 때문에 자연스레 배정된 거다.
실무관 역시 마찬가지.
두 사람이 친절하게 인사했지만 김윤환은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으로 끝이었다.
싸늘한 분위기를 풍기며 책상에 앉는다.
지금은 웃으며 인사를 나눌 시간이 없다.
‘미제...’
이 바닥은 좁고 소문도 빠르다.
그런데, 실패하면...
-형보다 나은 아우가 있더라.
이재승 부장검사는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닐 사람이다.
그런데, 그 소식이 아버지에게까지 들어가면...
‘안 돼.’
아버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김서진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듣게 할 수 없었다.
‘일단 보자.’
김윤환이 서류를 착착 넘기기 시작했다.
살인, 살인, 살인...
검거율이 100%에 육박하는데도 뭔 놈의 살인 사건이 이리 많은지 갖가지 미제가 가득하다.
아무리 봐도 답이 없다.
‘김서진도 했는데...’
수천, 수만 가지 사건에 바동거려야 할 검사가 미제에 집중할 수 있을 시간이 또 어디 있을까?
‘할 수 있어.’
해내기만 하면 서진만큼 인정받을 수 있다.
‘따지고 보면 닥치고 열심히 하다가 뒷걸음질로 쥐를 잡아낸 게 전부잖아?’
김윤환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범인이 없으면 만들어내면 되는 거지.’
해서는 안 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놈 교도소에 쑤셔 박는다고 뭐라 할 사람 없다.
걸린다 해도 수사 과정의 오판 또는 경찰을 탓하며 빠져나갈 수 있다.
‘처음부터 그렇게 한다는 게 아니야. 만약에, 정말 만약에 해결을 못 하면...’
그렇게 삐뚤어진 생각이 한없이 치솟고 있을 때, 김윤환의 시선이 서류 하나에서 멎었다.
‘어? 이거... 괜찮겠는데?’
***
서진은 부장검사실에서 나와 사무실로 향하고 있었다.
민망할 정도로 많은 칭찬을 받는 것도 힘든 일이다.
마주칠 때 마다 엄지를 내미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인사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때,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 번호는 임정택 수사관이다.
“네, 수사관님.”
-춘천 생활은 즐거우십니까?
“아뇨. 수사관님이 없어서 외로워요. 하하하.”
서진은 정말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함께한 것은 잠시였지만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하...
수화기 너머에서 한숨이 흘렀다.
“...왜 그러세요?”
-김윤환 검사님이 검사님 사촌 맞죠?
김윤환이 동남군으로 갔다.
거기까지는 알고 있었는데 수사관이 임정택이라니.
이거, 재밌는 일이다.
“네, 그런데요?”
-아이고, 오자마자 미제 잡겠다며 난리에요.
서진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재승 부장검사와 김윤환이 만났다.
똥과 똥의 만남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빤히 보였다.
그런데.
-그거 기억하시나요? 3년 전에 여중생만 집중적으로 연쇄 살해한 사건.
기억하고 있다.
동남군에서 시작되어 강원도 전역을 휩쓸었던 끔찍한 사건.
여섯 명이 죽었고 나중에는 범인이 한 명인지 아니면 모방 범죄를 일으킨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거 잡겠다고 기록물 가져오라네요. 자기가 검사님인 줄 아는 것 같아요. 아, 진짜. 검사님이 범인 잡으려고 얼마나 뛰어다닌 줄도 모르고.
임정택 수사관의 푸념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통화가 종료되었을 때 서진은 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빠졌다.
‘김윤환이?’
김윤환은 능력이 없다.
하지만 소시오패스에 가까운 성공 욕구는 김영준 검사장을 빼다 박았다.
실력은 없고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성공만 하고 싶어 하는 놈.
‘그런데, 미제에 열중한다고?’
뭔가 불길하다.
‘애꿎은 사람 잡는 거 아니야?’
그럴 리는 없겠지만 설마라고 무시하기는 어렵다.
억눌려진 감정이 비정상적이기 때문이다.
서진은 가던 길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사건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잠시 후, 보관실에 들어온 서진은 기록물을 꺼내 펼쳤다.
-목을 졸려 살해당함.
-모두 놀이터에서 발견.
-발견 당시 교복을 입고 있었으며 정액 검사는 음성.
증거는 없다.
중학생인 만큼 특정될 원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걸 지목해서 수사하겠다고?’
어쩐지 설마 했던 우려가 사실이 되는 것만 같다.
‘아무리 미친 새끼라 해도...’
하지만 만약, 정말 만약에 우려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옷을 벗길 수 있어.’
그때였다.
지이이잉.
서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 번호는 김영준 검사장의 오른팔 조우재 부장검사다.
휴대폰을 귀에 대며 서진의 눈빛이 냉랭하게 변했다.
“네, 김서진입니다.”
휴대폰 너머에서 낮은 음성이 흘렀다.
-술 한잔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