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65화 (65/250)

<풀지 못할 숙제. -(7)>

서진이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뛰어내릴 거면 어서 뛰어내려. 시간 아까우니까.”

손까지 흔드는 모습에 남택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새끼가...”

느긋하게 웃고 있는 저 얼굴에 주먹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곳은 2층.

뛰어내렸다가 발을 삐끗하면 오히려 먹잇감이 된다.

‘그럼...’

남택현의 시선이 다시 현관으로 향했다.

“님택현 씨! 남택현 씨!”

밖에서는 계속 문을 두들기고 있다.

남택현이 마른 입술을 핥았다.

‘몇 놈이나 왔을까?’

적어도 셋, 남택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현관으로 이동했다.

방범 렌즈를 통해 밖을 살피는데 머리가 반쯤 벗겨진 중년의 남성, 이동영 수사관만 보였다.

‘혼자?’

보이는 것은 한 명이지만 속지 않는다.

‘혼자 오지는 않았을 거야.’

하지만 귀를 대봐도 그 이상의 소리는 나지 않는다.

‘역시... 좌우해서 세 명?’

남택현은 자신의 예상이 맞는다고 생각하며 칼을 손에 쥐었다.

‘아직 잡힐 수 없어.’

죽일 놈이 있다.

그때까지는 사회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아직은 아니야!’

남택현이 현관문을 거칠게 열었다.

바로 앞에 이동영 수사관이 보인다.

“비켜!”

남택현이 거칠게 칼을 휘둘렀다.

칼을 보면 사람은 일단 피하는 법!

몇 명이 왔던 균형이 무너지면 그다음은 쉽게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군인이기 때문에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다.

주변 지형 역시 눈감고도 갈 수 있을 만큼 훤했다.

‘도망칠 수 있...’

그런데, 남택현의 생각이 틀렸다.

중년의 아저씨는 도망치지 않는다.

칼을 피하며 남택현의 팔을 콱 잡았다.

그리고 ‘어?’하는 순간 곧바로 엎어 쳤다.

콰아아앙!

복도에 대자로 누운 남택현은 척추가 부서질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며 데굴데굴 굴렀다.

“끄으으읍.”

그때, 느긋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냥 뛰어내리라니까. 그게 덜 아팠을 텐데.”

남택현이 실눈을 뜨고 상대를 살폈다.

1층에서 손을 흔들던 그놈이다.

놈이 방긋방긋 웃으며 다가오다가 바닥에 나뒹구는 칼을 봤다.

표정이 싹 바뀐다.

죽일 듯이 노려보며 뚜벅뚜벅 걸어온다.

이어서 구둣발로 남택현의 손을 꽉 밟았다.

남택현은 손가락이 짓이겨지는 느낌을 받으며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악! 손, 손!”

“이 새끼가 어디라고 칼을 휘둘러!”

서진의 목소리가 벼락같이 복도를 울렸다.

“아아아악!”

“검사님!”

이동영 수사관이 다급히 서진을 말렸다.

이대로두면 남택현의 손가락을 으깨버릴 것만 같았다.

“그만 하세요! 괜찮아요! 저는 안 다쳤어요!”

이동영 수사관은 서진을 떼어내며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혹시 CCTV가 있는지 보는 거다.

다행히 그런 것은 없었다.

“하...”

한숨을 내뱉는데, 서진의 입에서 타박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아, 진짜! 그냥 도망가게 놔두라고 했잖습니까! 제가 1층에서 기다린다고요. 위험한 짓을 왜 하세요! 그러다 찔리면! 다치면!”

서진이 인상까지 쓰며 화를 냈다.

그런데 이동영 수사관이 슬쩍 웃는다.

진심 어린 걱정, 서준경 검사 이후로 처음이었다.

“알겠습니다. 앞으로는 놔둘게요. 지금은 저도 모르게 갑자기 문이 열려서 그랬어요.”

“약속하세요.”

서진의 단호한 목소리에 이동영 수사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니까요.”

서진은 몇 번의 다짐을 받은 후 수갑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다시 남택현을 향했다.

“왜, 왜 그런 거예요. 갑자기 왜 이러세요? 아니, 누구세요!”

남택현이 갑자기 발뺌했다.

피를 토하는 목소리로 오리발을 내민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요!”

남택현의 얼굴에 죄책감은 없다.

오히려 이 상황에 짜증을 내고 있다.

서진이 건조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네가 더 잘 알잖아?”

“몰라요! 왜요? 무슨 일인데!”

“됐고. 너를 신지민 살해 용의자로 체포한다.”

“살인? 씨발,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내가 사람을 왜 죽여!”

남택현이 사나운 이빨을 드러냈다.

‘증거는 없어.’

남택현은 검찰이 갑자기 들이닥치는 바람에 자신도 모르게 도망쳤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알리바이마저 완벽하다.

-훈련 중이었고 밖을 나갈 상황이 아니었다.

어떤 증거를 갖고 찾아왔는지 모르지만 자백만 하지 않으면 된다.

남택현이 긴장된 숨을 토해냈다.

“무고한 시민한테 왜 이래? 이게 누명 씌워서 범인 만드는 건가? 신고할 거야. 인터넷에도 올리고!”

하지만 서진은 관심 없다는 표정이다.

남택현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며 말했다.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는데, 네 생각대로는 되지 않을 거야.”

“......!”

남택현은 서진의 감정 없는 눈빛에 오싹함을 느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눈빛.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손길.

‘뭐야?’

남택현은 순간 움찔했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다.

‘쫄지 마. 증거는 없어. 그냥 윽박지르는 거야!’

그 순간, 서진이 신발장을 확 열어젖혔다.

공구함이 보인다.

서진이 공구함을 꺼내 앞에 내려두자 남택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어... 어! 하지 마!”

서진은 남택현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공구함을 열고 그 안에 루미놀 시약을 뿌렸다.

이동영 수사관이 현관문을 닫고 커튼을 친다.

그런데...

주변이 어두워졌지만 공구함에는 어떤 반응도 없다.

남택현이 악을 질렀다.

“남의 물건에 뭘 뿌리는 거야!”

놈은 의기양양했다.

눈은 충혈되었고 흥분한 목소리를 내뱉는다.

위기를 넘겼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서진은 달랐다.

흥분하지 않고 오히려 재밌다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법이네?”

“......!”

“가지고 있을 줄 알았는데, 다 버렸어?”

남택현의 눈이 흔들렸다.

이번에는 확신할 수 있다.

‘이 새끼, 알고 있어.’

방금만 해도 쓸데없이 겁먹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다.

이 젊은 검사는 알고 이러는 거다.

‘도대체 어떻게?’

궁금했지만 생각할 시간은 없다.

어차피 증거는 없고 지금은 범죄 사실을 부정해야 한다.

“뭐라는 거야! 내가 뭘 버려!”

“기다려봐. 안 버린 게 있을 것 같으니까.”

서진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놈의 집으로 들어갔다.

남택현이 다시 발악했다.

“영장 있어? 검사면 다야? 남의 집에서 뭐 하는 거냐고!”

동시에 이동영 수사관이 남택현의 앞에 종이를 펼쳤다.

“있어요. 영장.”

조용준 검사장이 힘을 썼다.

그는 지금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애를 쓰는 중이다.

경찰과 연관된 살인 사건이 터졌다는 말에 앞뒤 가리지 않고 법원에 직접 전화까지 넣어줬다.

서진은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방과 거실이 하나씩 있는 15평 아파트.

거실은 침실로 사용하는지 컴퓨터와 침대만 존재한다.

서진은 거실을 뒤로하고 곧장 방으로 향했다.

현관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택현은 침을 꼴깍 삼켰다.

‘입고 있던 옷도 다 버렸잖아? 없을 거야. 아니야, 없어!’

그런데, 서진이 가발을 손에 들고나왔다.

‘저... 저거.’

남택현의 얼굴이 박살 났다.

공구를 사러 갔을 때 썼던 가발이다.

혹시 누가 볼까 살인을 저지를 때도 쓰고 있었다.

버리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

짧은 시간에 또 사러 가면 괜히 의심받을 것 같아서.

마주치는 사람이 적을수록 범죄가 완벽해질 것 같아서.

‘피가 튀었나? 설마, 아닐 거야. 아닐 거야!’

남택현이 불안함을 이기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었다.

그리고 서진이 놈의 앞에서 루미놀 시약을 뿌렸다.

곧 푸른 형광이 나타났다.

죄의 흔적이다.

서진이 남택현의 앞에 가발을 툭 떨어뜨리며 입을 열었다.

“변명해봐.”

***

“그,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김영준 검사장의 사무실.

김윤환이 김영준 검사장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내일이면 김윤환은 동남군으로 떠난다.

서울을 벗어나 오랜 시간 그곳에 있어야 할 거다.

하지만 김영준 검사장은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냉랭한 눈으로 앞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흔한 ‘다녀와.’라는 말조차 없다.

김윤환은 작은 한숨을 남긴 채 사무실을 떠났다.

얼음이 쏟아진 것 같은 심각한 분위기.

김영준 검사장과 마주 앉은 조우재 부장검사만 죽을 맛이었다.

그때.

“우재야.”

“네.”

조우재 부장검사가 기다렸다는 듯 재빨리 대답했다.

어떤 이야기를 할지 몰라도 빨리 끝내고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가족 문제에 끼고 싶은 생각은 정말 추호도 없었다.

그리고 김영준 검사장의 차가운 시선이 조우재 부장검사에게 향했다.

“말했지? 내년에 서진이를 데리고 올 거라고.”

“아, 네.”

“윤환이 보좌역으로 잘 키워봐.”

조우재 부장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전, 김영준 검사장에게 들은 적이 있다.

서진에게 숙제를 줬다고.

‘유골만 있는 사건이라고 했지?’

강원도는 서울과 다르다.

정치인이나 재벌 등의 대형 사건은 터지지 않지만 산에 묻힌 시체가 많이 발견된다.

그런데 그 중에도 유골만 존재하는 사건이란.

‘해결할 수 없는 난제지. 풀지 못하기를 바라는 거야. 그래야 옭아맬 수 있으니까.’

김영준 검사장이 사람을 두는 방법이다.

약점 또는 빚으로 개목걸이를 걸어 질질 끌고 다닌다.

김영준 검사장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재빨리 불을 붙이자 김영준 검사장이 말을 이었다.

“서진이는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발발 뛰어다닐 거야. 하지만 곧 느끼겠지.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거라고.”

“......”

“서진이가 사건을 포기하고 좌절했을 때, 잠시 춘천 내려가서 술이나 한잔 사주고 와.”

어르고 달랜다.

짐승을 대하듯 채찍과 당근을 준다.

마음을 흔들고 자신의 사람으로 만든다.

김영준 검사장은 그런 식으로 인간을 다룬다.

사람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그리고 조우재 부장검사는 김영준 검사장의 의도를 알았다.

서진에게 술을 사주고 ‘성공하고 싶으면 검사장님의 말을 잘 따라야 해.’ 라는 말과 함께 예쁜 강아지로 키워주기를 바라고 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때였다.

김영준 검사장의 휴대폰이 드르륵 진동했다.

서진에게 온 메시지다.

-뉴스 확인 부탁드립니다.

김영준 검사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뉴스? 뭘까...’

김영준 검사장이 무심한 눈으로 메시지를 보다가 리모컨을 들었다.

텔레비전 화면에 아나운서의 얼굴이 나타났고.

-성매매 업체의 실장으로 일하던 여성이 유골로 발견된 끔찍한 사건이 있습니다. 폐가의 아궁이었는데요.

김영준 검사장실의 눈이 부릅떠졌다.

저 사건, 서진에게 건넨 숙제다.

“저, 저게 왜...”

조우재 부장검사가 말을 더듬으며 김영준 검사장의 눈치를 봤다.

표정이 좋지 않다.

여기서 쓸데없는 말을 하면 안 된다.

조우재 부장검사는 입을 다물고 조용히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사이 화면이 바뀌었다.

이하은 기자가 강원지검 앞에서 마이크를 쥐고 빠르게 입을 연다.

-경찰 서장과 강력반 팀장이 성매매 업주에게 단속 정보를 넘기며 뇌물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한 여성의 죽음입니다.

김영준 검사장이 물고 있던 담배가 타들어 갔다.

담뱃재가 길게 이어졌지만 상관 않는다.

마지막으로 이하은 기자의 목소리가 김영준 검사장의 귓가를 쾅! 때렸다.

-강원 지검 형사2부 김서진 검사는...

김영준 검사장의 주먹을 꽉 쥐었다.

경찰에 군인, 공무원 게다가 성매매와 원조교제까지.

이건... 대박이다.

개목걸이를 준 게 아니라 날개를 달아준 거다.

주먹을 쥐었다 피던 김영준 검사장의 표정이 심각할 정도로 일그러졌다.

‘네놈은 왜 내 손에 잡히지 않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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