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끼. -(1)>
김윤환과 만나기로 한 것은 일요일.
서진이 손목을 틀어 시간을 확인했다.
‘오늘은 수요일.’
완벽한 미끼와 함정을 파기에 충분한 시간은 아니다.
바삐 움직여야 한다.
서진이 손을 툭툭 털며 다시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수사관님, 허정일의 고등학교 졸업 앨범을 구할 수 있을까요?”
***
음악 소리가 꿍꽝! 꿍꽝! 시끄럽게 들려오는 춘천 시내의 한 술집.
남자 세 명이 소주를 기울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재수한다는 새끼가 나보다 술을 더 마시고 있어.”
“취권 몰라? 취하면 답이 보이거든.”
“그래서 3번으로 찍었냐?”
“3번으로 찍어도 너보다 좋은 대학 간다. 새꺄.”
“어? 재수생 새끼가 우리 학교 무시하네?”
소주가 한 병, 한 병 쌓이더니 어느새 일곱 병이 뒹굴었다.
얼굴이 붉어졌고 혀가 꼬였다.
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여전히 시답잖다.
그때, 갈색 머리를 한 놈이 소주잔을 만지작거리며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들었어? 정일이 그 새끼 재판 날짜 잡혔대.”
그 말에 모두 움찔거렸다.
하지만 잠시다.
눈이 쭉 찢어진 놈이 소주잔을 탁 내려두며 인상을 구겼다.
“새끼가 재수 없는 소리 하고 있어. 그 새끼 얘기를 왜 하냐?”
“뭐, 그냥.”
“과거야. 과거. 다 끝난 일 가지고 지랄하지 말자. 내가 장례식 가서 얼마나 울어줬는지 알지?”
갈색 머리가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눈 찢어진 놈이 계속 말했다.
“조의금도 30만원 꽂았어!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 다 털어 넣은 거야. 그러니까 난 이제 미안하지 않아.”
“......”
“그리고 난 정일이 그 새끼도 모른 척 안 해. 성공해서 영치금 두둑이 넣어줄 거야. 두고 봐. 씨발.”
눈 찢어진 놈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아무리 음악 소리가 큰 술집이라 해도 옆 테이블에서 들릴 정도였다.
조용히 있던 덩치 큰 놈이 고개를 저었다.
“그만하자. 우리 죽을 때까지 입 다물기로 했잖아.”
그 말에 두 사람의 입이 닫혔다.
머릿속에서 그날의 맹세가 떠올라서다.
지금은 서울의 좋은 대학을 다니고 있는 조준태, 그놈이 이들을 한곳에 모았다.
그리고 어둠속에 살벌한 눈빛을 보이며 말했었다.
-잊어. 오늘 일은 없던 거야. 우리만 입 다물고 있으면 아무도 몰라. 만약 밝혀지면 모두 죽는 거야. 그리고 좋게 생각해. 박세광이나 허정일이나 이 세상에 필요 없는 놈들이야. 우린 오늘 벌레를 죽인 거야.
덩치 큰 놈이 소주잔을 손에 쥐며 말했다.
“벌레를 죽인 거야.”
*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이들의 술자리가 끝났다.
갈색 머리를 한 놈이 손을 흔들며 비틀비틀 집을 향했다.
그리고 골목, 골목을 지나던 갈색 머리가 전봇대 앞에 섰다.
가로등이 흔들리는 곳에서 담배를 입에 물고 주섬주섬 벨트를 푸는데.
“김용우?”
김용우, 갈색 머리의 이름이다.
그는 자신을 부르는 낯선 목소리를 들었고 고개를 틀었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낯선 그림자를 게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누구?”
“검사.”
메마른 목소리의 주인공은 서진이었다.
서진이 품에서 신분증을 꺼내 김용우를 향해 보였다.
동시에 김용우의 눈이 번쩍 떠졌다.
심장이 쿵쾅거렸고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술이 확 깨는 기분.
김용우가 억지로 웃기 시작했다.
“...검사요?”
“어.”
“그런데 왜요?”
김용우가 내렸던 바지를 끌어 올리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서진은 김용우를 향해 뚜벅 뚜벅 걸어가며 건조하게 입을 열었다.
“알잖아?”
단 한 마디였다.
김용우의 얼굴이 무너져 내렸다.
죄지은 놈이 발 저리는 것처럼 놈은 ‘살인’이란 단어를 떠올렸고 교도소로 끌려가는 최악의 상황까지 상상하고 있었다.
“아...아...”
놈이 이상한 신음을 흘리며 느릿하니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여, 영장 있어요?”
“......”
“있냐고!”
김용우는 서진을 향해 라이터를 집어 던졌다.
그 라이터가 서진의 가슴에 맞고 툭 떨어진다.
서진은 땅에 떨어진 라이터를 물끄러미 보다가 고개를 들어 김용우를 향했다.
놈은 나름대로 다급히 도망치고 있다.
하지만 술을 많이 마셨다.
다리의 근육은 풀려있고 균형 감각을 잃은 지 오래다.
금방이라도 잡을 수 있다.
서진이 한숨을 내뱉은 후 땅에 떨어진 라이터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김용우를 향해 달렸다.
단 몇 걸음이었다.
거친 손으로 김용우의 어깨를 콱 잡았다.
당황한 김용우가 외쳤다.
“놔!”
하지만 서진은 그 목소리를 무시하고 가볍게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쾅!
한순간이었다.
김용우는 땅에 엎어진 채 서진을 바라봤다.
“헉, 헉.”
거친 숨을 내뱉는 김용우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서진이 저승사자처럼 보여서다.
그리고 김용우의 귓가에 서진의 목소리가 무섭게 들려왔다.
“15층에서 떨어지는 게 무서울까? 벌 받는 게 무서울까?”
“......!”
“살인은 웃으면서 했는데 막상 잡힐 것 같으니까 무서워?”
“......”
“이기적이네.”
서진의 목소리는 톤이 없었다.
하지만 김용우의 호흡은 더 거칠어졌다.
눈이 붉어졌고 바들바들 떨고 있다.
술에 취했고 나이도 어리지만 확실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도망칠 곳은 없다.
-인생은 끝났다.
김용우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고 그 입에서는 서러운 목소리가 토해졌다.
“저는 아니에요. 병원에 가자고 했어요. 진짜예요. 정말이에요. 믿어 주세요. 난 119에 신고하려고 했어요.”
“그래?”
“네!”
서진이 천천히 몸을 굽혔다.
그리고 김용우의 품을 뒤적였다.
이어서 담배를 찾아 꺼내 김용우의 입에 물린 후 들고 온 라이터로 불을 붙여줬다.
“앉아.”
김용우가 빠르게 상체를 일으켰다.
서진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피워.”
김용우는 인생의 마지막 담배를 피우듯 최선을 다했다.
연기를 빨아들였고 내뱉는다.
그러더니 간절한 눈동자로 서진을 바라봤다.
그 눈빛이 전하는 목소리는 하나다.
-살려 주세요.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서진이 김용우의 어깨를 다정하게 잡았다.
그리고 선한 목소리로 악마의 음성을 전했다.
“살고 싶어?”
김용우가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진심으로.
서진이 김용우의 어깨를 쥔 손에 힘을 주며 말을 이었다.
“방법이 하나 있어.”
***
금요일 저녁이었다.
서진은 노트북을 덮으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시죠.”
“정말요?”
실무관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 다시 물었다.
“갑자기 ‘거짓말!’이라거나 ‘몰래카메라였습니다!’ 이런 유치한 말하는 거 아니죠?”
실무관은 20대 후반의 여성.
서진과 만난 후로 매일같이 야근이었다.
일찍 퇴근하면 9시, 10시.
저녁 있는 삶이란 사라졌고 그래서 동료들을 만나면 이런 대화가 오갔다.
-잘생긴 검사 왔다고 좋아했잖아? 그런데, 아니야?
-좋았지, 처음에는 좋았어. 그런데 얼굴 뜯어 먹고살 거 아니잖아? 워커홀릭이야. 하루에 2시간 잔다는 소문이 있어. 나머지는 일만 한다고. 아니, 자면서도 일할걸?
그런데 뜬금없이 정시 퇴근이라니.
게다가 오늘은 금요일 밤.
“아싸!”
실무관이 작은 주먹을 꽉 쥐었다.
서진이 슬쩍 웃으며 이동영 수사관을 향했다.
“수사관님도 퇴근하세요.”
“할 일이 남아서요. 정리하고 들어가겠습니다.”
이동영 수사관은 말을 끝낸 후 고개를 틀어 업무에 집중했다.
서진은 어서 이동영 수사관과 친해져서 딸 성아도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이동영 수사관은 철저히 업무적으로 서진을 대한다.
그것도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천천히...’
서진은 조급한 마음을 버렸다.
서준경 검사였을 때와 달리 지금은 이동영 수사관과 나이 차이도 꽤 난다.
그래서 데면데면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진심을 다한다면 예전처럼 다시 가까워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럼,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서진은 이동영 수사관에게 고개를 숙인 후 사무실을 떠났다.
*
서진은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일요일에 김윤환과 만나기로 약속된 만큼 준비할 게 꽤 많았다.
서진은 아파트 추락 사망 사건을 김윤환에게 넘길 생각이다.
조용준 검사장의 이름은 싹 뺀 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들의 잔인한 계획으로 포장할 거다.
-아파트 옥상에서 동창을 떨어뜨린 후 완벽 범죄를 계획한 충격적인 사건.
-세상의 관심을 끌기 딱 좋다.
-게다가 지금 잡혀 있는 허정일 역시 피해자라는 반전마저 존재한다.
‘그리고...’
-김윤환은 김영준 검사장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평범한 재능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
-그 와중에 비리를 저지른 친구와 어울렸던 것마저 걸렸다.
-김영준 검사장에게 단단히 혼이 난 상황.
-뭔가를 보여주고 싶어 할 거다.
‘문제는...’
-어떻게 미끼를 물게 할 것인가.
서진이 대놓고 사건을 넘길 수는 없다.
그것은 스스로 ‘내가 범인이요!’ 하고 외치는 것이나 마찬가지.
그래서 서진은 김윤환이 몰래 사건을 훔쳐 가는 상황을 만들고 싶어 한다.
-내가 김서진 그 새끼 뒤통수쳤잖아! 이 사건 원래 김서진이 만지려고 했던 것인데, 내가 몰래 들고 온 거야. 푸하하하.
모두 김윤환 스스로의 선택이었다고 착각해야 한다.
그래야 일이 터졌을 때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럼, 어떻게?’
서진은 턱을 매만졌다.
아무래도 그물을 치는 장소가 서울이며 김윤환과 만나는 장소의 공간은 한정적이다.
그곳에서 김윤환의 시선이 자연스레 사건으로 향하게 하려면.
‘자동차 뒷좌석에 기록물을 던져 놓고 자연스레 빠질까? 아니면...’
생각을 이어가고 있는데 서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 번호가 김윤환이다.
서진이 통화 버튼을 누르며 정말 정다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 형.”
그런데 들려온 목소리가 불길했다.
-야, 미안하다.
서진의 미간이 콱 일그러졌다.
“미안하다니?”
-일요일에 친구 결혼식이 있었어. 그래서 일요일은 어려울 것 같아.
시간을 더 미루기는 어렵다.
곧 허정일의 공판이 시작된다.
서진이 일정을 촉박하게 잡은 이유다.
하지만 여기서 김윤환에게 꼭 만나자고 애원하는 것은 속을 드러내는 멍청한 짓.
지금은 적당히 아쉬워하는 것으로 끝내야 한다.
“아, 그래? 오랜만에 얼굴 한번 보고 싶었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아쉽네.”
-그런데, 무슨 조언이 필요하다는 거야? 강원도는 서울하고 달라서 내가 해 줄 말이 없을 것 같은데.
“뭐... 있어. 나중에 만나면 이야기할게.”
-혹시, 서울 올라오고 싶어서 그러냐?
김윤환의 목소리는 한껏 격양되어 있었다.
놈은 서진을 깔보며 몇 수는 아래로 생각한다.
지금 말투에는 ‘이제야 네가 고개를 숙이는구나.’라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새끼, 맞네. 서울 올라오고 싶네.
“......”
-그런데, 내가 개 키우는 거 알지? 뽀롱이. 그래서 요즘 텔레비전으로 강아지 관리하는 프로그램을 보거든? 거기서 사람을 무는 미친개가 나왔어.
김윤환이 낄낄 웃으며 갑자기 강아지 이야기를 시작했다.
서진은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조용히 있었고 김윤환은 계속 입을 열었다.
-훈련사가 뭐라는 줄 알아? 성격 더러운 개는 고쳐서 키울 수 있지만 미친개는 어쩔 수 없다며 안락사해야 한다네? 그래서 나도 고민해봤어, 미친개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하나더라. 죽여야지.
“......”
-그런데, 난 아직 개를 많이 못 키워봐서 그런가? 미친개인지 성격 더러운 개인지 한 눈에 구별하기가 힘들어. 그래서 천천히 지켜보면서 키우려고 한다.
그 개는 서진을 가리키는 거다.
자신에게 이빨을 드러내지 말라는 경고.
또는 서울로 올라오고 싶으면 잘 보이라는 충고.
서진의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김윤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래서. 오늘은 어때?
“오늘?”
-일요일은 힘들지만 오늘이면 괜찮을 것 같은데. 혹시 약속 있어? 시간 괜찮으면 내가 그쪽으로 갈게. 2시간이면 도착하지 않겠냐?
“온다고?”
-그래, 거지 같은 곳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왜 그렇게 서울, 서울 하는지 알고 싶기도 하고. 하하하!
놈의 큰 웃음소리를 들으며 서진은 소리 없이 웃었다.
지금껏 재수 없는 말을 지껄여서 어떻게 엿을 먹여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먹이가 알아서 다가오고 있다.
자신이 갑이 되었다고 착각하며 어떤 의심도 없이 달려오는 중이다.
이런 놈에게는 잘해줘야 한다.
서진이 정말 반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늘 괜찮지. 형이 온다는데 시간이 없어도 내야지.”
-그래, 그럼 형이 갈게. 죽을 때까지 한번 마셔보자. 옛날처럼.
“어, 죽어 보자.”
너 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