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50화 (50/250)

<누구냐 넌. -(3)>

허정일은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다.

망설이는 중인 거다.

섣불리 입을 열었다가 벌어질 피해, 허정일은 그게 두려웠다.

도대체 누구인지 그놈의 부모가 무섭기 때문이다.

서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정일의 옆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리고 허정일의 어깨를 가볍게 쥐며 처음으로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정일아. 말해주지 않으면 바뀌는 것은 없어.”

“......”

“네가 살인자가 되는 거야. 친구를 죽인 놈으로 낙인찍힌 채 살고 싶어?”

허정일은 눈을 질끈 감았다.

피해자의 부모가 울며 소리치던 게 떠올랐다.

-네가 왜! 왜 그런 거야! 아니지? 아니잖아!

허정일이 한 맺힌 목소리를 기억하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아니에요.”

허정일의 감정은 흔들렸다.

이제 그 감정을 잡고 진실을 드러내면 된다.

서진이 허정일의 어깨를 토닥이며 계속 말했다.

“알아. 하지만 증거는 너를 가리키고 있어. 네가 말해주지 않으면 난 어쩔 수 없이 널 법정에 세울 테고 판사는 말할 거야. 징역 10년...”

허정일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고등학교 3년, 놈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런데 앞으로 10년을 또.

허정일이 움찔거릴 때 서진의 목소리가 그의 심장을 꿰뚫었다.

“...놈들 대신 네가 감옥에 가는 거야. 그건 아니잖아?”

서진이 허정일을 향해 천천히 몸을 기울이며 계속 말했다.

“정일아. 별것도 아닌 놈들이야. 감옥에서 울게 해줄게. 그 부모가 어떤 해도 끼치지 못하게 해줄게. 진짜 권력이 어떤 것인지 보여줄게.”

“......”

“난 너를 믿는다. 그러니까 너도 나를 믿어라.”

허정일이 고개를 틀어 서진과 시선을 마주했다.

허정일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다.

억울함으로 가득한 입술이 바르르 떨리는 중이다.

그리고 그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정말요?”

“어.”

“...그럼, 말할게요. 조준태 같아요. 그런데요. 걔 아빠가...”

강원지검 검사장 조용준이다.

서진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하지만 곧 조용히 웃는다.

유리 벽 너머, 이곳의 검사들이 서진의 표정을 관찰하고 있어서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그들은 서진의 표정을 보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예상할 수 있다.

지금은 숨겨야 한다.

서진은 표정을 관리하며 입을 열었다.

“기다려. 박살 내 줄게.”

*

잠시 후, 서진이 신문을 마치고 복도로 나왔다.

동시에 서진을 지켜보던 검사들도 우르르 몰려나왔다.

“마이크는 왜 끈 거야?”

서진은 취조 중에 갑자기 마이크를 꺼버렸다.

검사들은 그 이유가 궁금했고 서진이 빙긋이 웃으며 답했다.

“아, 그거요? 회유하는 과정이었어요. 조금 더 믿어줬으면 해서요. ‘우리 둘의 비밀’이야 그런 거요.”

검사들이 낄낄 웃으며 한 마디씩 던졌다.

“벌써 요령이야?”

“야, 신임은 정공으로 가야지.”

“그래서 나온 것은?”

그들이 기대하는 것은 하나다.

운 좋기로 소문 난 신입 검사가 첫 등판에서 무엇을 알아냈는지.

하지만 서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없습니다.”

“없어?”

“네.”

서진은 깔끔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검사들에게 꾸벅 허리를 굽힌 후 복도를 걸어 자리를 떠났다.

검사들은 입을 연다.

“아무리 운이 좋아도 이미 수사가 완결된 일이잖아? 처음부터 뭘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하긴...”

조금은 아쉬워하는 표정.

하지만 한정아 검사는 달랐다.

그녀는 멀리 사라지는 서진의 뒷모습을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봤다.

그러다가 중얼거린다.

‘없다고?’

서진은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조용준 검사장은 이곳의 왕이다.

즉, 이곳의 검사들은 조용준 검사장의 눈과 귀나 마찬가지.

조용준 검사장의 아들이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면, 그리고 그 소식을 누군가 알게 된다면.

그 누군가는 쪼르르 달려가 다급히 말할 거다.

-검사장님 큰일입니다. 지금 허정일 그놈이 검사장님의 아들, 준태를 물고 늘어집니다!

그럼, 조용준 검사장은 이렇게 말할 거다.

-벌레 같은 새끼가 감히 내 아들을 엿 먹이려고 해?

검사장의 눈에는 허정일의 말이 모두 거짓으로 보일 게 분명하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머리채를 잡고 물에 뛰어드는 물귀신.

-권력자는 모두 썩었다는 프레임을 통한 심리전.

-약점을 쥔 것처럼 행세하며 감형을 받으려는 쓰레기.

검사장은 속전속결로 사건을 마무리 지으라며 지시할 테고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을 게 분명하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증거가 없다.

그래서 서진은 지금 침묵한다.

확실한 증거를 찾기 위해.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

서진은 이 사건을 강원 지검에서 해결할 생각이 없다.

다름 아닌 지검장이 연관된 일이다.

누가 해도, 그리고 성공한다 해도 쌍욕을 처먹을 게 분명하다.

‘우리는 하나’라는 이름으로 형성된 검찰 조직에서 모시는 검사장을 향해 칼을 들이미는 것은 미친 짓.

배신자라는 꼬리표가 영원히 따라다닐지도 모른다.

그래서 서진은 ‘이이제이’, 적을 이용해 다른 적을 베려 한다.

사무실에 들어온 서진은 곧장 이동영 수사관을 향했다.

“블랙박스 영상이요. 경찰이 보관하고 있겠죠?”

현장에 CCTV는 없었지만 자동차의 블랙박스는 존재했고 사건 발생 후 경찰은 곧장 주변의 블랙박스를 수거했다.

“있겠죠. 하지만 고작 7개입니다.”

이 아파트는 블랙박스를 상시 운용하는 사람이 적었다.

배터리가 방전될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차주는 운전할 때만 블랙박스를 사용하고 있다.

이도영 수사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저도 영상을 봤는데 특별한 것은 없었습니다.”

“알고 있어요. 그런데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그러니까 경찰에 연락해 주세요. 지금 확인하러 간다고.”

“지금이요?”

“네, 지금.”

서진은 다급히 재킷을 걸쳤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동영 수사관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런데, 검사님? 이런 말씀 드리면 외람되지만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왜 그렇게까지 하십니까?”

“네?”

“그러니까, 보통 검사님들은 이렇게 못 하잖아요? 다른 사건에 치여 숨쉬기도 어려운데...”

하지만 서진은 달랐다.

퇴근 후 현장을 돌며 작은 흔적이라도 찾을까 애를 쓰고 있다.

처음에는 첫 사건이라 보여주기 식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서진은 소름끼칠 정도로 집요하다.

“왜 열심히 하냐고요?”

서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가지 목적이 있다.

이 사건을 통해 적과 적을 싸우게 하는 것,

그것을 통해 위치를 공고히 하는 것.

아무리 이동영 수사관이라 해도 그런 이야기를 전할 수 없다.

그래서 다른 목적을 전했다.

“이런 사건은 꼭 해결하고 싶어요.”

“...이런 사건이요?”

“자살로 위장한다 뭐다 떠드는 게 마음에 안 들잖아요?”

서진도 서준경도 비슷하게 세상을 떠났다.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린 증거와 죄인들.

이 사건은 놈들을 잡는 예행연습이다.

“그게 전부입니다.”

서진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다시 거울을 향했다.

옷매무새를 만지는 서진의 모습을 이동영 수사관이 지켜보며 눈을 찌푸렸다.

‘...이런 사건?’

이동영 수사관의 시선이 기록물을 향했다.

아파트 옥상, 추락사건.

‘이런 사건...’

그는 또 서준경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 사건에 어떤 그림자가 있을지 몰라도 서진이 꼭 해결해 줬으면 한다.

잠시 후, 서진이 사무실을 다시 떠났다.

멍하니 앉아 있던 이동영 수사관이 서랍을 열었다.

구석에 놓인 빛바랜 수첩이 보인다.

그걸 꺼내 펼치자 어지럽게 적힌 낙서, 이동영 수사관만 알아볼 수 있는 글씨가 나타났다.

-실무관 진윤희. 서준경 검사를 성폭행으로 고소.

-서준경 검사 사망 후 커피숍 오픈.

-마이너스 통장을 쓰던 애가 어떻게?

수첩을 바라보던 이동영 수사관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했다.

때로는 일그러졌다가 체념했다가, 마지막으로 그는 고개를 저었다.

‘됐다.’

수첩은 다시 던져졌고 서랍은 스르륵 닫혔다.

*

서진은 경찰서에 있었다.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이 앞에 앉으며 태블릿PC를 건넸다.

“용의자 잡았잖아요? 그 친구인가 뭔가 하는 놈.”

“네, 확인해 볼 게 있어서요.”

“별것 없을 텐데요.”

경찰은 귀찮아 보였다.

이미 수백 번이나 돌려본 영상이다.

검사가 와서 들여다본다고 없던 게 나타나면 그게 이상한 일.

게다가 경찰이 놓친 것을 검사가 찾아내면?

경찰은 태블릿PC를 건넨 후 그 자리에 서서 서진을 지켜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서진은 태블릿PC의 화면에 집중했다.

화면 속, 오가는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오직 들어오는 차량에 집중했다.

차량 번호.

‘이건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서진은 사이코 메트리를 통해 본 세상을 떠올렸다.

당시 놈들은 말했었다.

-왜 거기서 뛰어들어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말은 아니다.

어떤 특수한 상황에 적용된다.

-왜 바다에 뛰어들어.

-왜 불난 집에 뛰어들어.

-왜 차에 뛰어들어.

조준태는 차가 있다.

면허를 딴 선물로 아버지에게 받은 중고 SUV.

‘피해자는 놈들의 차와 사고가 났을 거야. 그리고 놈들은 차를 이용해 피해자를 옮겼겠지.’

CCTV로 놈들의 얼굴을 확인하려 한 게 미련한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미제로 바뀌는 중이고.

‘다음 블랙박스.’

옆에서 지켜보던 경찰도 하품하며 떠났을 때, 서진은 4번째 블랙박스를 확인했다.

그리고 10분 후, 서진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찾았다.’

조준태의 자동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영상에서는 곧 사라졌지만 그 번호는 명확히 블랙박스에 찍혀 있다.

***

“저도 굵직한 것을 하고 싶은데요.”

중앙지검 부장검사실.

김영준 검사의 오른팔 조우재 부장검사였다.

김윤환의 말에 조우재 부장검사가 고개를 저었다.

“야, 나 죽는 꼴 보고 싶어?”

“그래도...”

부장검사가 서류를 탁 내려두며 타박했다.

“그러게 왜 그딴 놈을 만나서 이 사단을 만들었어. 어? 가만히 있었으면 고속도로에 하이패스 깔렸을 놈이!”

일전에 동남군에서 벌어진 해양 공원 사업 비리.

김윤환은 그 중심에 있던 박상영 부장과 붙어먹었고 그 일을 김영준 검사장이 알게 되었다.

서진이 집에 찾아가 정중히 일렀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지금과 같다.

예전의 김윤환은 이력을 관리할 수 있는 업무에 열중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티 나지 않는 일만 만지작거린다.

악플러와 싸우기 같은 거.

“근신한다 생각하고 꾹 참고 있어. 내가 검사장님한테 잘 말해 줄게. 열심히 반성하고 있다고. 어?”

“하...”

김윤환이 한숨을 내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지금 김윤환이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다.

“감사합니다.”

김윤환은 고개를 숙인 후 부장검사실에서 나왔다.

복도를 걷고 있는데 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휴대폰을 꺼내 발신 번호를 확인하니 김서진이다.

김윤환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이 미친 새끼.’

김윤환이 아랫입술을 꾹 물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형, 나야.

“그래, 너다. 그런데, 이 새끼가 이제 반말을 하네?”

김윤환은 서진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 없다.

당연히 목소리는 사나웠다.

-기억 잃기 전에 반말했었다며? 기억 찾았다고 생각하고 빡빡하게 굴지 말자.

“됐고. 할 말 있으면 용건만 간단히 끝내자. 용건 없으면 끊고.”

-잠깐만, 그래도 우리가 사촌이잖아. 조언받고 싶은 게 있어서 전화했어.

“조언?”

-그래도 내가 이 바닥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형밖에 없잖아?

김윤환의 입술이 삐뚤어졌다.

“조미료 깔지 말고 뭔데?”

*

“그래, 주말에 봐.”

서진이 빙긋이 웃으며 휴대폰을 품에 넣었다.

주말, 김윤환은 한껏 거만을 떨며 올라오라 전했다.

놈은 서진이 어떤 조언을 얻으려는지도 모른 채 조언을 빙자한 잘난 척을 하고 싶어 한다.

어쩌면 그 모습을 김영준 검사장에게 어필하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윤환의 계획은 모두 수포가 될 거다.

‘폭탄을 선물해 주지.’

서진은 김윤환에게 달콤한 독을 전해줄 계획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