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냐 넌. -(2)>
***
‘다르네.’
사망 사건의 현장이었다.
이동영 수사관은 이곳으로 올 때까지 계속해서 서진의 행동을 관찰했다.
사무실에서 봤던 서진의 행동이 착각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지켜보면 지켜볼수록 외모와 목소리를 제외하면 모든 것이 숨 막힐 정도로 똑같았다.
멀리서부터 브레이크를 잡는 운전 버릇.
신호 정차 시 기어를 중립에 놓는 행동.
앞차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으면.
“이런 개새...”
서진은 ‘끼’까지 말하지 않았다.
그것조차 서준경 검사와 똑같았다.
‘하...’
이동영 수사관은 한숨을 내뱉었다.
흔한 행동, 흔한 버릇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합치면 서준경 검사다.
언뜻언뜻 진짜 서준경처럼 보일 때도 있다.
서진을 관찰할수록 이동영 수사관의 표정은 점점 더 딱딱하게 굳어 갔다.
‘내가 미쳤나.’
이동영 수사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냥 서 검사의 버릇이 겹쳐 보이는 거야.’
그리고 사건 현장에 왔을 때 확신했다.
서진은 벽을 만지고 계단에 손을 대는 등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서준경 검사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이다.
서준경 검사는 포인트를 짚고 상황을 단순화할 줄 아는 사람.
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주워 살피는 등의 쓸데없는 탐정 놀이를 한심하게 생각했다.
물끄러미 서진을 살피던 이동영 수사관은 끌끌 웃었다.
‘다행이야. 다르네. 달라.’
급기야 서진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15층에 올라가더니 아파트 담벼락을 손으로 훑으며 다닌다.
손에 먼지를 다 묻히면서.
보다 못한 이동영 수사관이 물었다.
“검사님, 뭐 하시는 겁니까?”
“아, 별것 아닙니다. 그냥 제 스타일이에요.”
그리고 다시 벽을 만지고 다닌다.
그 모습을 보던 이동영 수사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이 이상해진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확신했다.
‘저놈이 이상한 거였어.’
*
서진은 주의 깊게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게 벌써 몇 개월 전이다.
주변에 남은 흔적이 없는 게 당연하다.
아파트 관리인이 몇 번이나 치웠을 테고 의심스러운 물건은 경찰이 모두 수거했을 거다.
하지만 모르는 일이다.
서진은 사이코 메트리의 능력을 갖고 있다.
통제할 수는 없지만 짠하고 발현되면 아파트 벽에 남은 기억을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5층에 내렸다.
이곳은 복도식 아파트, 서진은 난간에 손을 대고 스치며 계속해서 정신을 집중했다.
뭔가 세상이 흑백으로 물들기를 간절히 기도했지만 그런 현상은 없다.
“...뭐 하시는 겁니까?”
이동영 수사관이 물었다.
베테랑 수사관이 보기에는 당연히 이상한 일이다.
경찰의 과학 수사대도 하지 않는 행동이니까.
서진이 고개를 틀어 이동영 수사관을 향했다.
“아, 별것 아닙니다. 그냥 제 스타일이에요.”
서진이 슬쩍 웃으며 다시 벽에 손을 댔다.
그리고 몇 걸음 더 걸었다.
그 순간, 서진은 눈에 힘을 줬다.
세상이 흑백으로 물들고 있었다.
*
“씨발, 괜찮은 거 맞지?”
“조용히 해 새끼야!”
소곤거리지만 다급한 목소리였다.
남자가 셋? 넷?
어둡기 때문에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 장난친 건데. 왜 거기서 뛰어들어서!”
“닥치라고!”
그때, 헉헉거리는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15층 개 높네.”
“가져왔어?”
“어, 어.”
“여기 주머니에 집어넣어!”
“담에 닿게 하지 마. 피 묻으면 걸려. 그럼, 하나, 둘, 셋! 들어!”
곧 쿵! 소리가 작게 들렸다.
그런데 남자들의 숨소리가 이상했다.
살인을 저질렀다는 죄책감은 존재하지 않고 묘하게 흥분되어 있다.
마치 귀찮은 모기 한 마리를 잡은 것처럼.
그러던 중 지금껏 상황을 주도하던 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일이 잠바 챙겼지?”
“어.”
“그거 잘 챙겨둬. 산에 버릴 거니까. 이걸 이렇게 쓸 줄은 몰랐네.”
“...그런데 괜찮을까?”
“걱정하지 마. 우리만 입 닫으면 아무도 몰라.”
*
그게 끝이었다.
어둠속에서 조용히 낄낄대는 웃음소리와 함께 세상을 색을 찾았다.
서진은 소름 끼치는 놈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며 이동영 수사관에게 조용히 물었다.
“수사관님, 피고인 이름이 정일이 맞죠?”
피고인의 이름이 정일이다.
그런데 사이코 메트리를 본 세상에서 그 이름이 나왔다.
-정일이 잠바 챙겼지?
서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피고인은 사건 발생 며칠 전에 점퍼를 잃어버렸다고 했어.’
그런데 놈들은 말했다.
-이걸 이렇게 쓸 줄은 몰랐네.
서진이 턱을 매만지다가 몸을 틀었다.
“가시죠.”
“...끝났습니까?”
“네.”
이동영 수사관이 서진의 뒷모습을 이상하게 바라봤다.
그러다가 고개를 틀어 아파트 난간을 향했다.
이동영 수사관이 손을 뻗어 난간을 툭툭 만졌다.
‘그러고 보니...’
이 사건은 대학 입학을 기다리던 학생이 떨어져 사망하며 시작됐다.
CCTV는 어떤 흔적도 잡지 못했다.
품에 담긴 유서는 자필이 아닌 프린트로 인쇄된 것.
마지막으로 진실을 찾기 위한 부검조차 하지 않았다.
‘비슷하네.’
서준경 검사의 마지막도 비슷했다.
CCTV 그리고 프린트로 인쇄된 유서 사고 후 장례부터 화장까지 일사천리로 이어졌다.
다른 점은 하나.
서준경 검사는 자살로 마무리되었고 이 사건에는 피고인이 존재한다.
먼 곳을 응시하며 생각에 빠졌던 이동영 수사관이 주먹을 콱 쥐었다.
이 사건은 반드시 해결하고 싶었다.
‘비슷한 사건을 만나니까... 새끼, 진짜 보고 싶네.’
이동영 수사관은 오늘도 술 한잔하고 잠을 청하기로 했다.
***
“허정일? 반갑다.”
취조실이었다.
서진은 피고인 허정일과 마주 앉았다.
허정일의 표정은 처참했다.
눈동자에 영혼은 사라진지 오래, 허옇게 마른 입술로 중얼거릴 뿐이다.
“...저는 아니에요. 진짜 아니에요. 내가 왜 세광이를 죽이겠어요. 내 친구인데.”
그런데 서진의 입에서 뜬금없는 말이 전해졌다.
“알아.”
허정일은 서진의 말을 듣지 못했다.
계속해서 중얼중얼.
“아니라고요. 점퍼는 정말 잃어버렸고 그 발자국은 정말 모르겠어요.”
“안다니까?”
허정일은 이제야 서진의 목소리를 들었다.
멈칫거린 후 눈동자를 움직여 천천히 서진을 향했다.
잘 못 들었나 싶은 표정이다.
허정일이 더듬더듬 물었다.
“아, 안다고요?”
“어. 네가 안 죽였어. 믿어.”
서진의 목소리는 사무적이었다.
그런데 허정일은 자신도 모르게 후드득 눈물을 떨어뜨렸다.
“...믿는다고요?”
“어.”
이렇게 말해주는 검사는 처음이었다.
모두 윽박질렀고 허정일을 벼랑 끝으로 몰았었다.
-네가 범인이야.
-그 새벽에 왜 불러냈어!
-계획된 범죄였나?
-그럼, 점퍼는?
-거짓말하지 마!
하지만 서진은 허정일을 향해 ‘믿어.’라는 두 글자를 말해줬다.
그 간단한 말에 허정일은 테이블에 엎어져 엉엉 울었다.
*
같은 시각, 취조실 유리 벽의 반대편.
부장검사와 한정아 검사 그리고 세 명의 검사가 서진을 지켜보고 있었다.
모두 서진의 실체가 궁금했다.
소문이 무성한 운 좋은 실력자.
깡치를 연이어 해결하고 미제까지 씹어 먹은 신입.
그 모든 게 거짓인지 아니면 진실인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런데 서진의 말과 행동을 한참 동안 지켜보던 부장검사가 껄껄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법이네.”
그 말에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부장검사에게 향했다.
부장검사가 서진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보통 초짜는 사건 쫙 펼쳐 놓고 정공법으로 가지. 증거를 나열하며 상대를 압박하는 게 가장 편하니까. 그런데 김서진 저놈은 아니야.”
서진은 기록물조차 펴지 않았다.
그저 허정일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부장검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허정일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김 검사를 자기편이라고 착각할 거야.”
극한의 상황에 몰린 피고인을 향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묻는 것.
때때로 검사들이 사용하는 스킬이다.
-난 너를 믿는다.
-넌 그럴 아이가 아니야.
-우발적이었지?
-왜? 무슨 일이 있었어?
벼랑 끝으로 몰린 피고인은 누구에게라도 의지하고 싶어 한다.
그 착각이 앞에 앉은 검사가 자기편이라고 믿게 만드는 거다.
그게 악마의 유혹인지도 모르고.
부장검사의 말에 검사들이 낄낄 웃었다.
“벌써부터 꼼수를 쓰고 있네요.”
“그래도 해결만 하면 대박이지. 저 새끼가 끝까지 범행을 부인하는 놈이잖아. 자백 못 받고 집어넣으면 찝찝해.”
“하긴, 꼼수든 뭐든 해결만 하면 되는 거지.”
검사들의 말을 들으며 한정아 검사의 시선은 다시 취조실을 향했다.
‘스킬? 꼼수?’
한정아 검사가 느끼기엔 아니다.
피고인 허정일을 바라보는 서진의 눈빛은 진지하다.
진정으로 피고인을 믿는 것 같다.
그 마음이 느껴진다.
한정아 검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닌 것 같은데.’
그때였다.
서진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너희 혹시 괴롭힘 당했어?
-네?
-너하고 네 친구. 괴롭힘 당한 적 있어?
지켜보던 검사들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과거까지 건드나? 제대로 기술 들어가는데요?”
그들은 서진이 계속 잡 기술에 의지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취조실 내에서 하는 말이 이곳에 들리지 않았다.
서진과 허정일은 입만 뻥긋거리고 있다.
검사들의 시선이 취조실의 직원에게 틀어졌다.
“뭐야? 마이크 고장이야?”
“빨리 안 고쳐?”
이것저것을 만져보던 취조실의 직원이 고개를 저었다.
“안에서 꺼버린 것 같습니다.”
검사들의 눈이 찌푸려졌다.
“...꺼버렸다고?”
검사들이 이유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서진을 지켜봤다.
*
취조실.
서진은 건조한 눈빛과 사무적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괴롭힘 당한 적 있어, 없어?”
“......”
“난 그놈들이 네 친구 김세광을 죽이고 너에게 누명을 씌웠다고 생각하는데.”
허정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괴롭힘을 당했던 게 창피한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녀석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잠시 허정일을 바라보던 서진은 테이블 아래로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딸칵.
마이크 스위치를 꺼버렸다.
지금부터 나올 이야기는 사이코 메트리를 통해 본 것이다.
다른 사람이 들어 좋을 것은 없었다.
“네 점퍼를 훔쳐 갔을 놈이 누굴까?”
“...훔쳐갔다니요?”
“그래 잊어 버렸겠지. 그런데 생각해 봐. 그 잃어버린 점퍼를 들고 갔을 놈이 누굴 것 같아?”
허정일의 눈동자가 사방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대상을 떠올리는 거다.
그리고 그 대상이 좁혀지는 것과 동시에 허정일의 귓가에 서진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칼을 들고 다니는 놈, 자신의 차가 있는 놈, 김세광을 장난감 취급한 놈.”
서진의 목소리가 이어질수록 허정일은 마른 침을 삼켰다.
그 모든 대상을 합치자 한 녀석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허정일이 불안한 눈빛으로 서진을 향했다.
“걔, 걔 가요?”
“어, 걔.”
“그런데... 걔를 잡을 수 있어요?”
허정일은 서진이 아니라 검찰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도 완벽히.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그런지 권력과 손잡은 검찰을 떠올리고 있다.
심지어 ‘걔’라는 놈이 어떤 말을 떠벌렸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을 사실이라 믿고 있다.
하지만 서진은 단호히 말했다.
“난 그런 놈 잡으라고 월급 받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