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48화 (48/250)

<누구냐 넌. -(1)>

하지만 이동영 수사관은 서진을 모른다.

그는 서진이 ‘...이동영 수사관님?’ 이라고 말한 게 이름을 잘못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네, 이동영입니다.”

다시 한번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이동영 수사관은 어떤 말도 꺼내지 않고 제 할 일에 열중했다.

서진이 먼저 말을 걸어도 마찬가지였다.

“날씨가 좋죠?”

“네.”

단답형으로 대답할 뿐이다.

서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동영 수사관을 바라봤다.

원래는 이런 성격이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서글서글하고 친절했다.

특히 가족 없이 자란 서진에게는 친형 같은 사람이었다.

서진이 장가를 가면 아기 이름은 자기가 지어주겠다며 설레발도 쳤었는데.

그랬던 사람의 표정이 어둡다.

*

휴게실.

서진은 한정아 검사와 마주 서 있었다.

이동영 수사관에 대해 물어봤는데 한정아 검사는 단호히 말했다.

“유배 온 거지.”

“...유배요?”

지휘를 받아 움직이는 수사관이 유배라니.

서진의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한정아 검사가 커피를 마신 후 말을 이었다.

“중앙지검에서 실무관 성폭행했던 검사 알지?”

“...아, 네.”

알 수밖에 없다.

그 주인공은 서진이었다.

그러니까 서준경 검사.

서준경의 마지막은 비참했다.

실무관을 성폭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조리돌림을 당했었다.

모든 것이 음모.

뚜렷한 증거는 없었고 모든 것이 정황.

게다가 그 정황조차 허술했다.

하지만 여성의 눈물은 법적 증거보다 상위 개념이었다.

아니라고 말했지만 믿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서진은 궁지에 몰렸고 결국 자살로 위장되어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져야 했다.

검찰은 서준경이란 이름을 ‘성폭행 검사’라는 치욕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서진의 목표 중 하나가 ‘서준경 검사’의 명예를 찾아 주는 거다.

한정아 검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동영 수사관은 끝까지 그 검사가 성폭행할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했어.”

“......”

“마지막 자살도 의문이 많다고 절대 자살할 사람이 아니라며 조사해 달라 애원했어. 하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자 결국 스스로 나섰지.”

“......”

“그리고 그 결과는 유배였어.”

지휘를 따르지 않은 수사관.

업무와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사건을 풀어가려던 수사관.

이곳이 그 끝이었다.

한정아 검사가 살짝 웃었다.

“진실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좀 멋지지 않아? 같이 일하던 검사 명예를 지켜주고 싶다고 하신 거잖아. 게다가 일도 정말 잘한다고 들었어.”

*

서진은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다.

여전히 실무관은 보이지 않는다.

이동영 수사관만 홀로 업무를 보고 있다.

서진은 문 앞에 서서 물끄러미 이동영 수사관을 바라봤다.

몇 달 안 봤는데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나 보다.

주름이 가득하고 언뜻 피곤해 보인다.

안쓰러워 보이는 모습.

그런데 서진은 이동영 수사관의 이마에 더해진 주름을 보자 짜증이 확 솟구쳤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왜 나서서 여기까지 오고 있어? 성아는 어떻게 하고. 하...’

성아는 이동영 수사관의 딸이다.

지금 고3.

한창 공부해야 하는데 아빠가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 집중이 안 되는 게 당연한 거다.

‘애 생각부터 해야지.’

서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뚜벅, 뚜벅 이동영 수사관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책상 위에 툭 꿀물 음료를 내려둔 후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드시고 하세요.”

“아, 감사합니다.”

꿀물 음료는 이동영 수사관이 가장 좋아하는 거다.

*

잠시 후, 서진은 회의를 위해 부장검사실로 떠났다.

홀로 앉아 있던 이동영 수사관이 고개를 들어 음료를 향했다.

그런데 이동영 수사관의 눈빛이 서서히 변해간다.

서진이 가져온 음료를 끔찍한 벌레 보듯 바라본다.

이동영 수사관의 입에서 건조한 목소리가 흘렀다.

“...김영준의 조카라고?”

김영준 검사장은 서준경이 상대하던 핵심 인물 중 하나.

서준경의 죽음 뒤에 김영준 검사장이 있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그 조카가 눈앞에 나타났다.

게다가 음료를 사 오며 서준경이 했던 행동을 따라 하고 있다.

이동영 수사관의 손이 음료를 향해 천천히 뻗어졌다.

콱 쥐더니 화를 참는 것처럼 바르르 떨었다.

곧 집어 던질 것처럼 눈빛이 살벌했다.

하지만.

“하...”

이동영 수사관은 고개를 저으며 서진이 준 음료를 쓰레기통에 툭 버렸다.

*

“딸! 치킨 사 왔다!”

그날 밤.

현관에 들어선 이동영 수사관이 치킨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러자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은 딸이 ‘와!’ 소리와 함께 뛰쳐나왔다.

이동영 수사관은 10년 전 아내와 사별하고 홀로 딸을 키우고 있다.

딸의 이름은 이성아. 이제 고3.

엄마 없이 자랐지만 잘 자랐다.

사춘기도 무리 없이 지나갔고 지금은 열심히 공부하며 아빠의 서포터까지 확실하다.

빨래도 하고 음식도 하고.

“공부하고 있었어?”

“네, 그런데 아빠는?”

이성아가 이동영 수사관의 옷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그러더니 미간을 찌푸린다.

“...술 냄새.”

“딱 한잔 마셨어. 한잔.”

이성아가 팔짱을 끼더니 고개를 저었다.

“한잔이 아닌데요? 또 혼자 마셨죠?”

“아냐, 회사 사람들이랑 같이 마셨어.”

“회사 사람 누구? 마실 사람도 없으면서 매일 거짓말하고 있어.”

이동영 수사관은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고 다행히 이성아는 더 바가지를 긁지 않았다.

‘흥, 흥’ 콧노래를 부르며 상을 펴더니 치킨을 올려뒀다.

이동영 수사관이 옆에 앉아 양말을 벗으며 입을 열었다.

“학교는?”

“재밌어요.”

“친구들은 잘해주고?”

고3이 전학을 왔다.

친구들과 살뜰하게 지내기가 어려울 게 분명하다.

하지만 성아는 오히려 이동영 수사관을 걱정했다.

“난 괜찮다니까요. 공부 잘한다고 선생님들이 예뻐해요. 그러니까 내 걱정 말고 아빠나 친구를 사귀세요. 그래야 혼자 술 안 드시지.”

또 잔소리가 시작될 것 같았다.

이동영 수사관은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상으로 가져갔다.

“또 드시게요?”

“딱 한잔만.”

“에휴, 준경이 아저씨 있을 때는 그래도 같이 술 마셔 줄 사람이 있었는...”

말을 하던 이성아는 빠르게 입을 닫았다.

그리고 실수했다는 표정으로 이동영 수사관의 눈치를 살피다가 조용히 말했다.

“죄송해요.”

서준경의 이름은 이동영 수사관의 앞에서 금물이기 때문이다.

딸의 걱정스러운 얼굴에 이동영 수사관이 씁쓸하게 웃었다.

“괜찮아.”

그 말을 끝으로 이동영 수사관은 소주잔을 입에 댔다.

그런데 서준경의 이름을 듣자 김서진의 얼굴이 떠오른다.

김영준의 조카 김서진.

함께 있는 것도 싫었다.

잠시 굳은 표정으로 앉아 한숨을 내뱉던 이동영 수사관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됐다. 어린 게 무슨 죄가 있다고.’

친하게 지낼 생각은 없다.

하지만 훼방 놓을 생각도 없다.

딱 법에서 규정한 검사와 수사관의 관계.

적당한 선.

이동영 수사관은 서진과의 거리를 정했다.

***

며칠 후.

“공판 하나 들어갈 수 있겠어?”

부장검사가 서진을 불러 대뜸 말했다.

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건인지 묻지도 않고?”

“손이 바쁘면 도와야죠.”

수사 검사도 공판에 선다.

흔치는 않지만 애착이 있는 사건.

또는 직접 수사한 사람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할 때 법정으로 향한다.

하지만 강원 지검에서는 수사 검사가 공판에 서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니다.

사람은 없는데 사건은 많아서다.

공판 검사가 지정되어 있지만 처리할 사건의 한계는 분명했다.

그리고 서진도 공판 검사가 모자란 상황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이해해줘서 고맙다.”

부장검사가 서진의 앞에 기록물을 내려뒀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입학을 앞둔 남학생이 아파트에서 떨어진 사건.

아파트 순찰을 하던 경비가 피해자를 발견 후 경찰에 신고했다.

그 시간이 새벽 2시 30분경.

경찰은 곧장 피해자를 수습했고 품에서 유서를 발견했다.

자살로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는데 피해자의 손에 여러 차례 흉기에 베인 상처가 남아 있었다.]

“오래된 아파트라 CCTV는 사각지대가 존재했고 피해자의 동선은 잡히지 않았어. 피해자의 부모는 아들이 12시에 친구의 전화를 받고 나간 것으로 증언했지.”

경찰은 전화한 친구를 용의자로 선정하고 급히 체포했다.

이어서 아파트 곳곳에 용의자의 발과 똑같은 사이즈의 피 묻은 발자국이 발견되었고.

“현장으로부터 500m 뒤의 야산에서 용의자의 점퍼를 찾아냈어. 그 점퍼에 피해자의 혈흔이 있었고.”

서진이 턱을 매만졌다.

“발자국이 보였다고요?”

“어.”

“그럼 신발은요?”

“신발은 없어. 어디에 버렸는지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서진의 시선이 계속 기록물로 향했다.

[피고인의 주장.

전화를 한 것은 맞다.

밤에 만나 PC방에 가려 했다.

하지만 피해자는 오지 않았고 1시간 정도 기다리다 집으로 갔다.

피 묻은 점퍼는 왜 거기 있는지 모르겠다.

사건 발생 며칠 전에 술을 마시고 잃어버렸다.]

피고인의 주장에 증거도 존재한다.

PC방 앞에서 피해자를 기다리는 모습이 편의점 CCTV에 잡혀 있다.

게다가 그 영상을 보면 피고인은 다른 점퍼를 입고 있었다.

“피해자에게 연이어 전화한 기록이 부재중 통화로 남아 있고.”

부장검사는 말을 마친 후 한동안 턱을 매만졌다.

그러다가.

“할 수 있겠어? 알겠지만 부담스러운 사건이야. 피고인이 죄인이 아니라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는 상황이 될지도 몰라.”

그래서 부장검사는 서진을 등판시켰다.

서진은 이제 막 이곳에 왔고 이 사건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다.

즉, 다른 사람보다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사건을 볼 수 있는 거다.

게다가 소문으로만 떠도는 서진의 실력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서진이 고개를 들어 부장검사를 향했다.

“죄송하지만 수사를 다시 해도 되겠습니까?”

“말했잖아. 동남에서 하던 대로 자유롭게 해. 그리고 필요한 것 있으면 말해. 최대한 도와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

사무실로 돌아간 서진이 재킷을 걸치며 이동영 수사관에게 입을 열었다.

“기록 받으셨죠?”

“아, 네.”

“경찰의 수사 기록을 바탕으로 현장부터 확인해 볼 생각입니다.”

“현장이요?”

“네, 피고인이 확실하지 않아요. 잘못하면 애먼 사람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확인해야죠.”

서진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리고 그 대답에 이동영 수사관은 눈을 깜빡였다.

검사가 현장을 도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엄청난 사건에 파묻혀 기록물만 봐도 업무가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장까지 간다는 것은 퇴근을 포기하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

‘뭐야?’

그런데 그 순간이다.

서진의 행동을 지켜보던 이동영 수사관의 눈이 일그러졌다.

재킷을 대충 걸친 서진이 이동영 수사관을 기다리며 한 행동.

생각에 빠진 서진이 기록물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고 있다.

이따금 기록물을 펄럭이며 창밖을 본다.

저 버릇, 저 행동, 마지막으로 저 눈빛.

이동영 수사관은 알고 있었다.

서준경 검사와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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