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곽. -(7)>
메시지를 보던 이소희가 휴대폰을 내려두며 서진을 향했다.
“...요즘에 소문 돌더라? 지청장님 따라 서울 갈지 모른다고.”
“누구? 나?”
“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너도 그런 소문 있잖아?”
서울 행 티켓이 거론되는 사람은 서진만이 아니다.
이소희도 그런 소문이 돌고 있다.
젊고 유능한 사람은 써먹을 곳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소희는 삼각 김밥을 먹으며 단호히 말했다.
“난 못 갈걸. 난 지방이나 돌다가 옷 벗을 거야. 그게 내 미래야.”
이소희는 자신의 미래를 암담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그 이유라는 것이.
“넌 모르겠지만 내 성적이 메롱이거든.”
거짓말이다.
이소희의 성적은 최상이다.
대학 간판도 끝내 준다.
그뿐만 아니라 서진을 쫓아다니며 실적도 착착 쌓고 있다.
엘리트 코스를 밟아도 모자란 데 자신의 앞길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서진은 이소희를 바라보며 서준경 검사였을 때 들었던 소문을 떠올렸다.
백기호 의원에게 숨겨둔 딸이 있다는 것.
‘그게 사실이라면...’
이소희가 그 딸일 가능성도 있다.
백기호 의원은 문제가 많은 사람.
선량한 얼굴과 강직한 판사라는 이미지 뒤에 소름 끼치는 칼을 숨기고 있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세력과도 손잡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김영준 검사장과 한 패거리.
서진의 목적 중 하나는 그들의 세력을 부수는 거다.
그리고 서진의 추측대로 이소희가 백기호의 딸이라면.
‘어이가 없네.’
어쨌든 자식이다.
그런데 자신의 성공을 위해 자식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
이소희가 크면 클수록 세상에 드러날 테고 그러면 잘 나가던 정치 인생에 치명타를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것은 서진의 가설이다.
밝혀진 것은 어떤 것도 없다.
지금은 조용히 지켜볼 생각이다.
“일단 가자.”
서진이 노트북을 덮으며 일어섰다.
지청장실로 갈 시간이다.
*
지청장실.
전동국 지청장과 김관용 부장검사 그리고 형사3부 허성택 부장검사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김관용 부장검사가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어서 와. 앉아.”
최근 동남 지청이 승승장구하고 있어 그런지 지청장실의 분위기는 밝았다.
하지만 신입 검사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다.
평범한 신입이라면 지청장이라는 위치가 주는 위압감에 긴장하는 게 당연하다.
지금 평소보다 더 바른 자세로 앉아있는 이소희처럼.
하지만 서진은 주눅 들지 않았다.
예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절절매는 신입 검사의 태도는 아니었다.
여유롭고 분위기를 읽고 있다.
뭐, 서준경 검사일 때는 더 한 사람들과 마주했었으니 이런 곳에서 발발 떠는 게 더 웃긴 일이다.
그 모습을 본 김관용 부장검사가 가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맞죠? 강심장입니다. 신입 검사가 기자들을 끌고 다니면서 여유 부리는 것은 처음 봤어요.”
형사 3부 허성택 부장검사가 끌끌 웃으며 말을 받았다.
“간이 큰 거야? 아니면 능글맞은 거야?”
“죄송합니다. 그럼 이렇게 앉을까요?”
서진이 슬쩍 이등병처럼 각을 잡자 김관용, 허성택 부장검사가 배를 잡고 웃었다.
“능글맞은 거였네.”
“그게 아니잖아. 팔은 무릎 위에 놓고 허리에 힘주고 있어야지. 너 군대 안 갔다 왔지?”
분위기를 풀어주기 위한 가벼운 농담이 조금 더 이어졌다.
우명순 변호사가 좀 예의 있는 사람으로 담당 검사를 바꿔 달라고 애원했다나 뭐라나.
그리고.
“뭐가 됐던 나쁜 놈만 잘 때려잡으면 되는 거지. 그러라고 월급 받는 거니까.”
조용히 있던 전동국 지청장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모두 입을 다물었고 사무실의 분위기가 적막해졌다.
중요한 이야기가 나올 타이밍이란 거다.
전동국 지청장이 소파에 등을 기대며 입을 열었다.
“소문 들었지?”
전동국 지청장이 서울에 갈 거라는 소문.
그 대상에 서진과 이소희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란 예상.
그리고 그 소문이 사실이 되었다.
“난 동부지검장으로 가게 될 거야. 두 사람, 같이 가는 게 어떤가?”
“......!”
이 지청의 왕이 서진과 이소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서진과 이소희 같은 검사가 시골에 박혀 있는 게 안타까워서다.
“시골에 박혀 있는 것보다는 더 신나게 활개 칠 수 있을 거야.”
함께 가자고 하는 곳이 서울이다.
김관용, 허성택 부장검사는 서진과 이소희가 당연히 지청장의 손을 잡으리라 생각했다.
김관용 부장검사가 입을 열었다.
“왜? 지청장님께 직접 이런 말을 들을 줄 몰랐어? 당황한 거 보니까 아직 어리긴 하네. 두 사람 다 부모님이 서울에 계시지? 가면 효도도 하고...”
그런데 서진은 서울에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단지 서울이 목표라면 김영중 검사장이라는 빽을 쓰면 된다.
하지만 서진의 꿈은 서울이 아니다.
이 세상을 씹어 먹는 게 목표다.
그 꿈을 위해 조용히 권력과 돈을 집어 삼키며 힘을 키우는 중이다.
그 첫 씨앗이 서울 송파구의 국회의원.
그리고 지방에 처박혀 있는 칼잡이들.
그 씨앗을 모아 발아시키고 나무가 되어 숲을 이루는 날을 기다린다.
그래서 서진이 서울로 가는 날은 그곳을 손아귀에 넣는 첫발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아니다.
“저는 아직 강원도에 있고 싶습니다.”
“그래, 강원도 좋지. 그런데... 뭐? 여기 있겠다고?”
서진의 대답에 김관용 부장검사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야... 서울이야. 전국 2천 명의 검사들이 다 원하는 곳이라고!”
동시에 허성택 부장검사가 어이없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내가 지금 돈 주고도 못 사는 서울행 티켓이 좍좍 찢어지는 현장을 목격하는 중인 것 맞지?”
허성택 부장검사의 시선이 이소희에게 틀어졌다.
“이소희 검사, 너는?”
이소희는 가뜩이나 큰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서진을 보고 있었다.
‘얘 미쳤어.’라는 눈빛으로.
그런 눈빛을 보이는 만큼 당연히 ‘오케이’할 줄 알았는데.
“아, 저도 동남에 있고 싶습니다.”
“뭐?”
이소희의 표정도 완강했다.
허성택 부장검사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서울행 티켓이 두 장이나 찢어지는 중이지? 얘들아, 이거 진짜 비싼 거야.”
서진이 전동국 지청장을 보며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서진은 최대한 예의 있게 거절의 표현을 이어갔다.
-아직은 이곳에서 실무를 더 익히고 싶다.
-서울에 가면 자율성이 없어질 것 같다.
-등등등.
지청장과 부장검사들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애를 썼고 이소희는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라고 대답했다.
전동국 지청장이 묘한 눈빛으로 서진과 이소희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고개를 끄덕.
“두 사람의 마음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천천히 생각해봐.”
*
잠시 후, 서진과 이소희가 자리를 떠났다.
김관용 부장검사가 헛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이고... 미친놈들.”
허성택 부장검사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바다가 안 질렸나? 아니면 위기를 극복하고 성공하는 낭만을 기대하는 거야?”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아직 어리니까.”
두 부장검사가 연신 혀를 차고 있을 때 전동국 지청장이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저 둘. 지난 인사발령 때 이상하다고 했었지?”
두 부장검사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리고 잠시 깊은 생각에 빠졌던 허성택 부장검사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니까 이소희는 춘천 본청으로 발령이 확실시되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명령이 틀어지면서 남게 된 거고.”
김관용 부장검사도 기억을 떠올렸다.
“...김서진도 비슷합니다. 저놈 작은아버지가 김영준 검사장이잖아요? 그때, 이명수 검사가 빽이라도 써서 도망치라며 욕을 했던 게 기억납니다. 그런데 여기에 남겠다고 했었습니다.”
한 번이면 납득한다.
그런데 두 번이나 거부하고 있다.
전동국 지청장이 눈을 가늘게 뜨며 생각에 빠졌다.
“뭔가 이상해...”
***
치이익.
고기 구워지는 소리가 맛있게 들렸다.
동남군 시내에 있는 정육식당이다.
서진은 이정우와 마주 앉아 있었다.
“배부를 때까지 산다고 했지?”
엄일섭 의원을 잡을 때 이정우가 흥신소 역할을 하며 증거 인멸의 상황을 톡톡히 잡아냈다.
그때 약속한 게 소고기.
“새꺄, 그런데 소고기라며?”
테이블에는 삼겹살이 가득했다.
서진이 쌈에 고기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고기는 삼겹살이지.”
“참나... 이래서 검은 머리 동물을 믿으면 안 돼요. 월급도 많이 받는 놈이. 아니, 아빠 카드는?”
“이 나이에 용돈 받고 사는 것도 좀 그렇잖아?”
“언제부터 철들었다고.”
구시렁대면서도 이정우는 삼겹살을 잘 먹었다.
그러다가.
“그런데 말 좀 해주지 그랬어?”
“뭘?”
“중앙 병원에 우리 전임 서장님도 연루되어 있다며?”
동남 중앙 병원의 사건에는 검찰만 끼어 있는 게 아니었다.
광범위하게 얽힌 시골 마을의 카르텔이었다.
검사와 경찰서장 그리고 돈에 눈먼 유지들.
홍주대 사장이 그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이것만 눈감아 줘요.
-은퇴하면 쥐 똥 같은 연금으로 지금처럼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치킨 장사 하게?
-미리 사업한다는 생각으로. 응?
이정우가 잘 구워진 삼겹살을 앞 접시에 옮기며 계속 말했다.
“그 서장님이 그렇게 소고기를 많이 사줬는데, 내가 수갑을 채웠네.”
“......”
“뭐, 그렇다고 미안하지는 않아. 경찰이란 놈이 그런 짓을 했으면 죽어야지. 그런데, 맞다. 너 우리 서에서 이름 날리고 있는 거 알아?”
“내가?”
“가는 곳이 범죄 현장이라면서 코난이네, 김전일이네 말이 많아. 잘 나간다는 증거야. 흐흐흐.”
이정우가 기분 좋게 웃었다.
기억까지 잃을 정도로 아팠던 서진이 다시 폼을 찾는 것 같아 좋은 거다.
그 웃음에 서진도 픽 웃고 말았다.
“먹기나 해.”
그때였다.
드르륵.
테이블 위에 놓았던 서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 번호가 이소희다.
화면을 본 이정우가 눈을 반짝였다.
“이소희? 그 청순 섹시 맞지? 식사 안 했으면 어서 오시라고 해!”
“청순 섹시는 뭐야?”
“그런 거 있어. 공존하는 미인.”
이정우는 낄낄거렸고 서진이 고개를 저으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어.”
-우리 이사 갈 것 같은데.
발령이 날 것 같다는 말이다.
분명 서울로 가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서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게 무슨 말이야?”
-어디야?
*
잠시 후, 이소희가 들어왔다.
이정우가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맞이했다.
“또 뵙네요. 이정우입니다. 하하하하.”
하지만 이소희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끝냈다.
“이소희입니다.”
가만히 보면 이소희는 서진 외 다른 사람에게는 정말 사무적으로 대한다.
어떻게 보면 냉랭할 정도로.
“지금 퇴근했어?”
“어.”
서진이 이소희의 앞에 접시와 수저, 소주잔을 세팅해줬다.
그리고 고기 하나를 앞 접시에 탁 놓아주자 이소희가 젓가락으로 집어 먹으며 입을 열었다.
“강원 지검으로 갈 것 같아. 우리가 서울로 안 가는 게 이상해 보였나 봐. 나름 확인을 해보신 것 같고 시험해 보는 것 같아.”
전동국 지청장은 확인하고 있다.
누가 내 새끼들의 길을 막고 있는지.
본청으로 이동하는 과정에 나타날 추한 음모 세력을 기다리고 있는 거다.
사실 서진은 상관없는 일이다.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남아 있는 것이니까 나타날 음모 따위는 없다.
서진은 소주잔을 입에 대며 생각에 빠졌다.
‘본청?’
한동안은 동남군에 있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서울이 아니라 강원 지검 본청이라면 또 말이 달라진다.
‘훨씬 괜찮잖아?’
손에 넣을 수 있는 게 많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