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곽. -(6)>
***
-검찰은 강원도 동남군 동남 중앙 병원의 이사장 장용민과 홍주대 그리고...
서진은 차를 끌고 동남 지청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라디오에서는 계속해서 동남군에 대한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채널을 돌려도 마찬가지다.
-엄일섭 국회의원이 수십억 원의 뇌물을 받고 동남 중앙 병원의 비리를 눈감아 준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이세문 강원 도지사는 철저한 조사로 진실을 밝혀야 한다며...
어느새 지청에 들어온 서진이 시동을 껐다.
그제야 라디오에서 들려오던 시끄러운 소식이 사라진다.
하지만 그뿐이다.
차 문을 열고 내리자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이 ‘와’하는 소리와 함께 몰려들었다.
그 숫자가 수십이다.
“김서진 검사님이죠? 중앙 병원의 비리 조사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들었는데요! 3년 전, 수사에 참여했던 검찰과 경찰에 대한 조사도 계획되어 있습니까?”
기자들의 목소리가 빠르게 이어졌다.
하지만 서진은 말없이 지청 건물을 향했다.
그래도 기자들은 포기할 줄 모른다.
계속해서 마이크를 들이밀며 질문을 이어갔다.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검사님!”
서진이 입을 연 것은 지청 로비로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지금껏 묵묵히 있던 서진이 기자들을 향해 천천히 몸을 틀었다.
그 순간 기자들의 시끄러운 목소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적막이다.
모두 마른침을 삼키며 서진을 바라봤다.
단 한마디를 듣기 위해.
그리고 서진의 입이 열렸다.
“약속드립니다.”
“......”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는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무리한 기소도 없을 겁니다.”
“.....!”
“법대로 하겠습니다.”
서진의 말은 특별하지 않았다.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당연한 것이 이상하게 보이는 세상에 살고 있다.
기자들은 잠시 멈칫거렸다.
그리고 그들이 중얼거린다.
“...법대로?”
곱씹어 봤지만 서진의 목소리와 눈빛은 진심이었다.
수많은 사건 현장을 뛰어다닌 기자들은 거짓과 진실을 판단할 능력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껏 ‘법대로’라는 말이 이렇게 살벌하게 들린 것은 처음이다.
마치 사건에 연루된 모두를 죽여 버리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잠시 멍하니 있던 기자들의 시선이 다시 서진을 향했다.
그 순간 서진이 기자들을 향해 천천히 허리를 굽혔다.
그게 끝이었다.
할 말은 다 했다는 듯 몸을 틀어 지청을 향해 들어갔다.
그때였다.
한 기자의 목소리가 다급히 현장을 울렸다.
“찌, 찍어. 어서 찍어!”
서진의 뒷모습을 카메라가 담았고 셔터가 다급히 눌러졌다.
*
“새끼, 쇼맨십이 있어. 스타는 괜히 되는 게 아니야.”
창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던 김관용 부장검사가 픽 웃으며 몸을 틀었다.
그 앞으로 이명수 검사가 보였다.
이명수 검사가 찻잔을 내려두며 입을 열었다.
“기사 제목은 ‘검사의 뒷모습’ 이런 게 될까요?”
“아무리 기레기라해도 그런 간지러운 제목을 쓸까?”
“부장검사님 서울에 있을 때, 장관 잡으면서 나왔던 기사 제목이 ‘내가 칼잡이다.’였던 것 기억 안 나세요? 그 기사 나오고 이틀 뒤에 동남군에 왔잖아요?”
“그러네.”
두 사람이 낄낄낄 웃었다.
승리 후에 치고 박는 농담은 즐거운 법이다.
그렇게 한참 웃던 김관용 부장검사가 창가에 몸을 기대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김서진 저놈이 도지사를 만나고 왔다고?”
“네, 도둑놈은 도둑놈이 잡아야 한다면서요.”
“도둑놈?”
“네.”
“그래, 도둑놈은 도둑놈이 잡아야지. 푸하하하!”
김관용 부장검사가 다시 빵 터졌다.
*
그리고 같은 시각, 지청의 야외 흡연장.
수사관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한 수사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임정택 수사관 말이 맞았어.”
“뭐가?”
“김서진 검사를 보며 항상 하던 말이 있잖아?”
-타고난 사람.
-미래의 검찰총장.
“그거 뻥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내가 엄일섭 잡는 현장에 있었거든?”
“......”
“멋있더라. 국회의원을 상대로 ‘불체포특권은 사라졌고. 엄일섭 씨, 당신을 뇌물 수수 혐의로 체포합니다.’라고 말하는데. 캬!”
상대가 국회의원이었다.
거물을 잡기까지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런데 서진이 그 거물을 농락했다.
그 과정은 함께 했던 수사관들도 짜릿할 정도였다.
“솔직히 젊은 검사가 뭘 할 수 있을까 의심했어. 막말로 짬밥이 안 되는데 잘하는 게 이상하잖아? 그런데, 아니더라. 임 수사관 말처럼 타고난 사람이 있더라.”
서진을 겪어본 몇몇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겪어보지 않은 몇몇은 말도 안 된다는 듯 픽 웃어넘겼다.
그때, 임정택 수사관이 목에 힘을 주고 그들의 앞에 섰다.
그리고 거만한 눈빛으로 다른 수사관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 우리 검사님이 누구를 취조하는 줄 압니까?”
“누구?”
“우명순.”
이름 석 자에 수사관들은 마른 침을 삼켰다.
“우명순?”
“우명순을 김서진 검사가?”
“그거야 말로 짬이 안 되지 않아?”
우명순 변호사, 3년 전에는 이 지청 소속의 검사였다.
참 좋은 사람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악랄해졌다.
나이가 한참 많은 수사관에게 반말을 찍찍했고 나중에는 동네 깡패와 어울린다는 소문도 있었다.
돈을 받고 눈을 감고.
말 그대로 타락한 검사였다.
한 수사관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김서진 검사와 비교하면 하늘같은 선배잖아? 이 지청에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 그런데 제대로 취조할 수 있을까?”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은 인맥이며 아는 사람 많으면 장땡이기 때문이다.
“무리야. 아무리 생각해도 봐주기 수사야.”
하지만 임정택 수사관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우리 검사님은 전관예우 같은 거 모르는 사람입니다.”
“진짜 그랬으면 좋겠다.”
수사관들이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취조실을 바라봤다.
*
취조실.
서진의 목소리가 건조하게 흘렀다.
“통장 거래 확인했습니다. 현금 오간 장부와 증언, 범행 장소였던 한정식집의 영수증도 확보했고요. 그동안의 문자 메시지와 음성 녹음 파일도 증거로 제출될 겁니다.”
임정택 수사관의 예상대로 봐주기 수사는 없었다.
서진이 테이블 위에 증거를 툭툭 던져뒀고 우명순 변호사는 입을 꾹 닫고 눈동자를 움직였다.
아무리 살펴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이제 감형을 고민해야 할 때다.
“하...”
우명순 변호사의 입에서 한숨이 흘렀다.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이명수 검사는?”
“이명수 검사님이요? 죄송하지만 급이 있어서요. 엄일섭 의원 담당하느라 여기까지 오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서진은 우명순 변호사를 피라미로 표현했다.
하지만 그녀는 다르게 받아들였다.
‘나를 봐주고 있구나.’
패기와 열정이 가득하지만 아직은 일처리에 미숙한 초보 검사.
능구렁이 같은 고참들에 비하면 요리하기 참 편하다.
살살 가지고 놀며 이득을 취하기에 딱 좋다.
우명순 변호사가 느긋한 시선으로 서진을 바라봤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 마음 잊지 마.”
뜬금없는 말에 서진이 고개를 갸웃거렸고 우명순 변호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나도 예전에는 정의를 생각했어. 하지만 언젠가 내가 뭘 하고 있나 생각 들더라. 열심히 범죄자를 잡았을 뿐인데, 난 무능한 검사로 낙인찍혔어. 그런데 나쁜 놈들은 계속 떵떵거리며...”
말을 이어가던 우명순 변호사의 목소리가 멎었다.
앞에 앉은 서진의 태도가 이상해서다.
서진이 끌끌끌 웃고 있었다.
우명순 변호사가 눈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웃지?”
하지만 서진의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급기야 녹화 버튼을 꺼버리고 배를 잡고 웃는다.
그러다가 그 웃음소리가 뚝 그쳤다.
그리고 서진이 스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의? 까고 있네.”
“뭐?”
“사연 없는 범죄자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핑계 대는 게 범죄자 탓? 나쁜 놈들 떵떵 거리는 게 배 아팠어요? 그게 검사였다는 사람이 할 말입니까?”
“야!”
쾅!
서진이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찍었다.
우명순 변호사가 움찔거리며 입을 닫았고 서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배가 아팠으면 잡았어야지.”
“......”
“더 듣고 싶지 않으니까 반성은 판사 앞에서 하시고.”
우명순 변호사의 얼굴이 굳어졌다.
서른도 넘지 않은 얼굴, 서진은 그저 어린 검사였고 아직 말랑말랑할 것 같았다.
게다가 그녀는 이 지청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어느 정도는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서진의 눈빛에 전관예우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를 먹잇감으로만 보고 있다.
‘이게 초짜라고?’
뜬금없지만 서진의 눈빛을 보며 문득 ‘악귀’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얘, 얘는 뭐야?’
우명순 변호사의 눈빛이 사정없이 떨려올 때, 서진이 다리를 외로 꼬며 음산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내 앞에서는 자백이나 합시다. 우명순 씨.”
지금껏 여유롭던 우명순 변호사의 표정에 긴장이 서렸다.
*
잠시 후, 서진은 우명순 변호사에 대한 1차 신문을 끝낸 후 복도를 걷고 있었다.
서진의 옆으로 이소희가 섰다.
“끝났어?”
“두 번 정도만 더 하면 끝날 것 같은데.”
우명순 변호사는 모든 것을 포기한 눈치였다.
순순히 인정하며 감형을 요구하는 중이다.
이소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어제 술 많이 마셨다며?”
“어, 그 아저씨 술 잘 마시더라.”
어젯밤, 서진은 이세문 강원도지사와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셨다.
와인으로 시작해서 맥주를 거쳤고 마지막은 소주였다.
그 과정에서 몇 병이 나뒹굴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출근하자마자 엄일섭 의원을 체포했고 돌아와서는 우명순 변호사를 신문했다.
“속은?”
“견딜 만 해.”
“먹어.”
이소희가 검은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내용물을 확인하자 도시락이랑 삼각 김밥, 햄버거와 샌드위치 그리고.
“사리 곰탕 면?”
“해장거리.”
사리 곰탕 면이 해장에 좋은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바리바리 싸 온 게 고마웠다.
“땡큐.”
“아, 햄버거는 내 거야. 건들지 마.”
“밥 안 먹었어?”
“먹을 시간이 있겠어?”
“하긴.”
국회의원이 잡혔고 병원이 연관된 사건이다.
다들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서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비닐봉지 안을 살폈다.
그리고.
“햄버거 빼고는 다 먹어도 되는 거지?”
“어.”
“오케이. 삼각 김밥!”
서진은 이소희와 함께 사무실로 들어갔다.
수사관과 실무관은 보이지 않는다.
서진이 샌드위치를 입에 물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먹고 쉴 시간은 없다.
일하는 시간이 밥 먹는 시간이다.
서진이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할 때, 이소희가 책상에 비스듬히 기대고 입을 열었다.
“한민당에서 항의 전화 왔대. 엄일섭 의원을 표적 수사하냐고.”
“신경 안 써도 돼. 이미 엄일섭은 버려졌어. 브리핑할 때 한민당이랑 엮지 말라고 압박하는 거야.”
“...버려졌다고?”
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엄일섭이 대한당일 때 벌어진 사건이야. 한민당은 ‘우리는 몰랐던 일이다. 우리도 피해자다.’ 선언하면 끝인 거지.”
“......”
“그런데 우리가 브리핑하면서 계속 한민당을 물고 늘어져 봐. 선거를 코앞에 두고 짜증 날 걸.”
다른 사람들은 한민당에서 전화가 온 것만으로 긴장했다.
수군대고 난리가 났다.
-우리 또 찍히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하필이면 왜 엄일섭인 거야?
아무래도 집권당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진은 그런 외적인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
오직 본질을 꿰뚫어 본다.
이소희는 이런 서진이 신기하게 느껴졌고.
‘이것도 부럽네.’
이소희는 부러운 눈으로 서진을 바라보며 비닐봉지에서 삼각 김밥을 꺼내 뜯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입으로 가져갔다.
이어서 맛있게 먹는다.
그 모습을 서진이 보며 눈을 깜빡였다.
“삼각 김밥, 햄버거 빼고 나 먹으라고 하지 않았어?”
“어?”
“...아껴뒀던 건데.”
이소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사무실에 들어오며 삼각 김밥을 외치던 서진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녀가 반쯤 남은 삼각 김밥을 내밀며 미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미안, 나도 모르게 그만... 이거라도 먹을래?”
서진이 고개를 저으며 휴지를 꺼내 건넸다.
“입이나 닦아. 김 가루 묻었어.”
“미안! 정말 미안!”
장난삼아 말한 것인데 이소희는 정말 미안해하고 있다.
삼각 김밥이 뭐라고.
“됐어. 편히 먹어.”
그 순간, 서진과 이소희의 휴대폰이 동시에 진동했다.
똑같은 메시지다.
-지청장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