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곽. -(5)>
*
“그래, 어쩐 일이지?”
서진과 엄일섭 의원이 마주 앉았다.
엄일섭 의원이 찻잔을 손에 들며 물었고 서진은 대답 없이 그를 바라봤다.
엄일섭, 대한당을 등에 업은 동남군 국회의원이다.
하지만 지금은 대한당이 아니라 한민당.
동남군을 버리고 송파 정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 도전은 성공적이라는 평가.
송파 정의 터줏대감이던 조선봉 의원의 저격수로 나서며 단숨에 인지도를 높였고 지지율이 50%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별문제가 없다면 당선은 물론이고 정치의 중심에 들어가게 될 거다.
그리고 서진과 이상적인 파트너로 지낼 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은 서진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서진의 생각이 바뀌었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범죄자는 교도소에.
서진이 속마음을 숨긴 채 빙긋이 미소를 그렸다.
“거기로 가시면 뵙기가 어려울 것 같아 인사나 드리려고 왔습니다.”
“자주 볼 수 있을 거야.”
“네?”
“걱정하지 마. 내가 김 검사를 홀대하겠나? 조만간 서울로 부르지.”
“빈말이라도 감사합니다.”
“빈말 아니야. 생각해봐. 법무부 장관이 우리 한민당이야.”
엄일섭 의원은 오랜 시간 대한당에 있었다.
그런데 ‘우리 한민당’이라는 말이 정말 자연스러웠다.
박쥐도 이 정도면 텃새로 불려야 할 것 같았다.
엄일섭 의원이 담배를 입에 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김 검사 하나 옮기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야. 기다려.”
엄일섭 의원은 서진을 사냥개로 사용하고 싶었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잘만 길들이면 죽는시늉도 할 것 같아서다.
김칫국부터 마시는 거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런데?”
“하...”
서진은 한숨만 내뱉었다.
그리고 정말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
엄일섭 의원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총선 전의 여의도는 말 그대로 전쟁터고 지옥이다.
오늘의 지지율 50%가 돌부리에 걸려 5% 이하로 처박히기도 한다.
이름도 없던 인간이 뜬금없이 대선 주자 급의 인기를 얻을 수도 있다.
그게 선거다.
즉, 지금은 작은 문제 하나 쉽게 넘어가서는 안 된다.
엄일섭 의원이 마른 입술을 핥으며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문제?”
그때였다.
드르륵, 엄일섭 의원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 번호가 우명순 변호사다.
엄일섭 의원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아, 우 변호사. 왜?”
-문제가 있습니다.
우명순 변호사의 말이 이어졌고 엄일섭 의원의 표정이 언짢아졌다.
좋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우명순 변호사에게 어떤 말을 듣고 있는지 눈알을 부라리며 서진을 훑는다.
“알았어. 또 연락하지.”
엄일섭 의원이 휴대폰을 천천히 내려두며 무서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를 잡겠다고?”
“......”
“감히?”
엄일섭 의원이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핏줄이 도드라지며 부르르 떨리고 있다.
그가 느릿하게 협박을 내뱉었다.
“나 엄일섭이야.”
“......”
“나를 건드는 것은 한민당을 상대로 시비를 거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선거철이다.
각 당은 검찰과 경찰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정치인, 그것도 서울 송파구의 유력한 후보를 박살 내는 것은.
“검찰의 선거 개입이야. 어떻게 될지 몰라? 너 같은 것은 말 한마디에 부숴버릴 수 있어.”
“...의원님. 제가 왜 혼자 왔겠습니까? 저 지금 혼자 왔습니다.”
“뭐?”
서진이 아무것도 없다는 듯 양팔을 벌렸고 엄일섭 의원이 눈을 가늘게 떴다.
서진이 엄일섭 의원을 향해 몸을 굽히며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서울 가셔야죠. 그리고 저도 꺼내 주셔야죠. 여기서.”
서진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툭툭 두들기자 엄일섭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엄일섭 의원의 눈에 경계는 풀려 있었다.
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방법이 있나?”
“저 같은 신입이 방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시간은 끌 수 있습니다.”
“시간?”
“증거... 없애야죠.”
*
삐빅.
자동차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서진이 차에 올라 시동을 걸자 그 옆으로 또 다른 승용차가 와서 멈춰 섰다.
다른 승용차의 창문이 스르륵 열린다.
이정우였다.
이정우가 담배를 입에 물며 말했다.
“아, 새끼... 나 비싼 사람이야. 가뜩이나 검찰에 일 뺏긴다고 욕 처먹고 있는데 흥신소처럼 쓰고 있냐?”
“소고기 사줄게.”
“하, 씨. 소고기? 마음 약해지네.”
“배부를 때까지.”
“콜.”
“그럼, 부탁 좀 할게.”
이정우의 낄낄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서진은 차를 후진했다.
그리고 이명수 검사와 통화했다.
“곧 움직임이 있을 겁니다. 경찰에 협조받았고...”
양몰이였다.
엄일섭 의원은 서진이 확보한 짧은 시간 동안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다.
서진은 이정우를 통해 그 순간을 포착할 계획이다.
“그럼, 계속 움직이겠습니다.”
-고생해.
서진은 핸들을 틀고 춘천으로 향했다.
***
이소희는 사무실에 서서 창밖을 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날이 짓궂더니 주르륵 비가 내리는 중이다.
그녀의 시선이 휴대폰으로 향했다.
화면에 기사가 보인다.
-대한당 백기호 서울 동작구 출마. 지지율 43%. 4선 직행?
부스스한 머리로 환하게 웃는 백기호 의원을 보던 이소희의 눈빛이 불편했다.
‘싸우고 싶어서 검사가 됐는데...’
이소희는 백기호 의원과 싸우고 싶었다.
그래서 그만큼의 노력을 쏟아부었다.
완벽한 성적을 얻기 위해 공부를 했고 또 했으며 고등학교 때부터 제대로 잠을 잔 적이 없다.
그런데 동남군으로 떨어졌다.
백기호 의원의 입김이 들어간 거다.
춘천 본청으로 발령 났을 때도 엄마를 통해 계속해서 압박이 들어왔다.
“하...”
싸우고 싶어도 거리가 멀다.
서울과 동남군, 그 거리가 백 킬로가 넘는다.
아니, 가까이 있다 해도 체급이 다르다.
4선 의원이 확실시되는 사람과 평검사.
칼을 뽑는 순간 목이 베일 것은 그녀일 거다.
검사가 되기 전에는 국회의원의 힘을 잘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의 힘을 잘 알고 있다.
4년 계약직이라 하지만 그들은 괴물이며 가진 권한은 상상을 넘어선다.
말 그대로 무소불위.
그래서 포기했다.
아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김서진...’
이소희의 생각이 서진에게 넘어갔다.
처음에는 금수저 물고 태어난 양아치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재정 건설 대표.
작은아버지는 검사장.
음서제를 통해 로스쿨에 들어와 검사가 된 놈.
딱 거기까지로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꽤 괜찮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망설이지 않고 직진하는 모습이 언뜻 멋있어 보인다.
자신은 할 수 없지만 서진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한 자신과 계속해서 도전하는 서진을 보며.
‘부럽네.’
이소희는 서진을 도우며 응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조만간이다.
서진이 동남군을 떠날지 모른다는 소문이 가득하다.
이소희가 씁쓸한 표정으로 찻잔을 입에 댔다.
***
그 시각, 서진은 강원도청이라는 푯말이 보며 천천히 핸들을 틀었다.
멀지 않은 곳에 도지사 사택이 있다.
‘거의 다 왔고.’
백여 킬로를 달려왔더니 허리가 쑤셨지만 도착까지 5분 남았다는 표시에 힘을 낼 수 있었다.
*
“연락도 없이 찾아와 죄송합니다.”
서진의 앞에 앉은 남자는 이세문 강원도지사.
강원도의 맹주라 불리는 사람이며 대한당의 원로 중 하나.
대한당에 꽤 많은 지분을 갖고 있다.
이세문 도지사는 갑자기 찾아온 서진을 탐탁지 않게 바라봤다.
밤늦게 검사나 경찰이 찾아오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니다.
“엄일섭 의원에 대한 일입니다.”
이세문 도지사의 눈이 꿈틀거렸다.
“...엄일섭?”
엄일섭은 이세문 도지사의 개였다.
그런데 그 개가 주인을 버리고 한민당으로 옮겨갔다.
지금 당장이라도 죽여 버리고 싶었다.
서진은 그 마음을 잘 알고 있었고.
“엄일섭 의원이 동남 중앙 병원이라는 곳의 비리를 묻어줬습니다.”
서진이 휴대폰을 들어 테이블에 내려뒀다.
이정우에게 온 사진 메시지가 보였다.
엄일섭 의원의 보좌관이 다급히 지역 은행장을 만나는 장면.
대포 통장으로 들어온 돈을 인출했던 것이 CCTV에 찍혀 있을 테고 그것을 지워 달라 부탁하는 거다.
“증거를 없애는 중입니다. 물론...”
서진이 다음 메시지를 가리켰다.
이정우가 보낸 것.
-CCTV 확보 끝.
이정우는 보좌관의 뒤를 밟으며 그들의 죄를 빠르게 모으고 있었다.
서진이 계속 말했다.
“저희가 수사를 해봤자 엄일섭 의원은 모른다고 잡아뗄 겁니다. 모두 보좌관이 했다고 하겠죠. 거기에 한민당의 힘이 더해지면 애꿎은 보좌관만 잡혀갈 겁니다.”
서진이 휴대폰을 만졌다.
화면에 기사가 떠오른다.
-동남군 출신 엄일섭. 민국당의 텃밭이었던 송파 정에 출마. 지지율 50%를 넘을 것인가!
“한민당은 엄일섭 의원을 놓치려 하지 않을 겁니다.”
“이름이 뭐라고?”
뜬금없는 질문에 잠시 이세문 도지사를 바라보던 서진이 입을 열었다.
“김서진입니다.”
“와인 좋아하나?”
이세문 도지사가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
“하, 씨발.”
오전 9시 20분.
엄일섭 의원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밤새 잠을 잘 수 없었다.
이것도 없애고 저것도 없애고.
넥타이를 풀어 헤치며 긴장을 토해냈다.
“이제야 끝났네.”
세상일이란 게 항상 고비가 있다.
모든 게 잘 되다가도 한 번씩 삐걱댄다.
하지만.
“김서진이라고? 개새끼 하나 키우는 것도 괜찮지.”
엄일섭 의원이 끌끌끌 웃으며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그 순간 ‘딸랑’ 종소리와 함께 서진이 들어왔다.
엄일섭 의원의 눈동자가 서진에게 향했다.
그가 반갑게 웃으며 서진을 맞았다.
“아이고, 고생 많았네. 앉아.”
그런데 서진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어제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고 몸에서 알콜 냄새가 작게 맡아졌다.
“자네, 술 마셨나?”
서진이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의원님...”
“왜?”
문제 가득한 목소리에 엄일섭 의원의 표정이 다시 불편해졌다.
“하...”
서진은 말을 잇지 못하고 머리를 북북 쥐어뜯었다.
엄일섭 의원이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외쳤다.
“왜!”
“틀렸습니다.”
“어?”
서진이 테이블에 놓인 리모컨을 들어 전원 버튼을 눌렀다.
화면에 강원도의 맹주 이세문 도지사가 보인다.
그가 분노한 목소리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동남군에 병원 비리가 있어요! 그런데 그걸 덮어주고 문제 삼지 않도록 도와준 사람이 국민의 표를 받은 국회의원이라는 게 치가 떨립니다!
엄일섭 의원의 표정이 창백하게 바래졌다.
바짝 마른 입술이 움직인다.
“그, 그만...”
하지만 이세문 도지사는 멈추지 않았다.
-지난밤,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움직인 정황을 찾았습니다. 그 빌어먹을 국회의원은 송파 정 후보로 나선 엄일섭입니다.
엄일섭 의원은 입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아...”
엄일섭 의원은 한민당을 믿고 검찰을 상대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권력의 중심 이세문 도지사가 움직이면 말이 달라진다.
한민당은 이제 막 입당한 엄일섭 의원을 지키려고 무리하지 않을 거다.
도마뱀 꼬리처럼 끊어 버릴 게 분명하다.
엄일섭 의원은 혼자서 검찰을 상대해야 했다.
그건 무리다.
-민국당 조선봉 의원의 자식 문제를 저격했던 사람이 똥 묻은 개였어요! 자기 몸에 묻은 허물은 보지 못하고 남의 허물만 물어뜯고 있어요! 이런 사람의 지지율이 50%? 하!
서진의 시선이 엄일섭 의원에게 향했다.
표정을 수습하지 못하는 그를 보며 서진이 입을 열었다.
“어제 말씀드렸잖아요? 거기로 가시면 뵙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뭐?”
“거기요. 거기, 교도소.”
“이, 이 새끼가!”
속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어떤 것도 할 수 없이 휘둘려야 한다.
어린놈이기 때문에 개처럼 기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부터 잘못된 생각이었다.
어제만 해도 애송이처럼 보였던 서진의 눈빛이 바뀌어 있다.
“너, 너 뭐야!”
“검사입니다. 김서진.”
무심한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수사관들이 들어왔다.
당황한 엄일섭 의원을 보며 서진이 말을 이었다.
“현역 국회의원은 회기 중 국회 동의 없이 체포 및 구속되지 않는 불체포특권이 있죠.”
하지만 선거를 앞두고 임시국회 회기가 종료된 지 오래다.
“불체포특권은 사라졌고.”
서진의 낮은 목소리에 엄일섭 의원의 표정이 쩍쩍 갈라졌다.
“엄일섭 씨, 당신을 뇌물 수수 혐의로 체포합니다.”
엄일섭 의원이 간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니야...”
하지만 끝났다.
수사관들이 저벅, 저벅 엄일섭을 향해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