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42화 (42/250)

<외곽. -(4)>

***

“한동안 기자들이랑 술 먹지 말고 직원들 입단속 철저히 해.”

지청장실이었다.

지청장의 부리부리한 눈이 앞에 앉은 부장검사들을 훑었다.

적막한 가운데 지청장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기자들한테 어떤 소스도 용납하지 마. 토막 기사도 마찬가지야.”

의료 문제다.

자칫 역으로 얻어맞을 수 있기에 최대한 발톱을 숨기고 조심스레 다가가야 했다.

“가족들에게도 비밀로 해.”

지청장의 서슬 퍼런 지시에 부장검사들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잠깐의 회의가 끝날 무렵.

“그런데 지청장님, 이거 신입한테 계속 맡길 겁니까?”

형사1부 이재승 부장검사였다.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해 틀어졌다.

이재승 부장검사가 볼펜을 빙글 돌리며 말을 이었다.

“강치하 변호사가 끼어 있습니다. 아무리 옷 벗었다고 해도 우리 식구였습니다. 그런데 새파란 신입한테 조리돌림 당하는 것은 모욕이 아닐까 생각...”

그런데 이재승 부장검사의 목소리가 갑자기 줄어들었다.

그 앞으로 지청장이 저벅저벅 다가서고 있어서다.

이재승 부장검사의 앞에 멈춰선 지청장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무서운 눈으로 이재승 부장검사를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

“재승아.”

달라진 목소리에 이재승 부장검사가 각을 잡았다.

“네, 지청장님.”

“강치하라는 놈이 모욕당하는 게 안쓰러워?”

“그, 그게...”

“우리가 강치하라는 새끼한테 모욕당했다는 생각은 안 해?”

지청장의 살벌한 눈동자가 이재승 부장검사를 씹어 먹을 것 같았다.

이재승 부장검사가 눈을 내리까는 동시에 지청장이 벼락같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 놈 때문에 우리 지청 전부가 비리 검사가 됐어! 미성년자 성매매? 돈 받고 사건을 덮어? 사람들이 뭐라 생각할까? 떡검? 섹검? 그런데 정말 개 같은 것은 내가 그놈이 있던 동남지청의 지청장이야!”

“......”

“재승아, 네 딸 앞에서 당당히 말할 수 있어? 네가 동남 지청 부장검사라고? 미성년자를 성매매한 강치하라는 놈과 친하다고!”

이재승 부장검사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지청장이 이재승 부장검사의 앞으로 몸을 숙이며 낮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놈 모욕당하는 것을 생각해야 해?”

“아닙니다.”

“알면 잡아 와. 지금 당장.”

굶주린 육식동물의 목소리 같았다.

이재승 부장검사가 떨리는 눈동자로 고개를 끄덕였다.

*

지청의 분위기는 폭풍전야와 같았다.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홍주대 사장을 잡아 왔고 강치하 변호사를 끌고 왔다.

병원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어졌다.

“이러다가 유배지라는 별칭이 사라지는 거 아냐?”

종합민원실 여자 직원이 커피를 손에 쥐며 입을 열었다.

창밖은 깜깜한데 퇴근을 못 했다는 아쉬움은 없어 보였다.

오히려 생기가 넘쳤다.

지금껏 멈춰있던 시간이 흐르는 느낌을 받아서다.

“그럼 좋지. 친구들한테 세금 루팡이라고 놀림 받고 있었는데 이제 할 말이 생기는 거잖아?”

남자 직원의 대답에 여자 직원이 조용히 웃었다.

그러다가 멈칫하더니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지청장님 서울 노린다는 게 사실일까?”

“총선 끝나면 정치권이랑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데, 유배지 생활도 오래 하셨고 지금 정권이랑은 문제 된 게 없잖아?”

“누구 데려갈까?”

라인이라는 게 있다.

서울에 올라가서도 자신의 손발이 되어 줄 사람은 필요한 법이다.

반드시 누군가를 데려갈 거다.

“김관용 부장검사님은 확실할 테고 그리고...”

“김서진 검사님?”

“어?”

여자 직원의 말에 남자 직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고개를 끄덕, 끄덕.

“그렇지. 요즘 제일 핫하지. 가능성은 있는데...”

남자 직원이 눈을 가늘게 뜨며 커피를 입에 댔다.

***

취조실, 홍주대 사장이 다리를 외로 꼬고 앉아 있었다.

긴장감은 전혀 없다.

멀끔한 얼굴로 거만하고 당당하게 이명수 검사를 쏘아보고 있다.

“검사님, 내가 왜 여기에 있어야 합니까?”

“잘 아시면서.”

“내가 누군지 모릅니까?”

“알고 있어요. 범죄자.”

“이봐요!”

험한 목소리가 들려올 때, 취조실의 문이 삐걱 열리고 한 여성이 들어왔다.

나이는 사십 대 중반, 짧은 커트 머리가 커리어우먼처럼 보인다.

서초구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는 우명순이다.

그녀가 이명수 검사를 보며 반갑게 웃었다.

“어마, 자기가 담당이야?”

이명수 검사와 우명순 변호사는 동남 지청에서 동고동락했던 사이.

이름 중간에 ‘명’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명 남매’라고 불렸다.

그만큼 친했고 서로 의지도 많이 했지만 이명수 검사는 웃지 않는다.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공적인 자리니까 반말은 하지 마세요.”

“사람이 살가운 맛이 없어.”

우명순 변호사가 씁쓸하게 웃으며 홍주대 사장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사무적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럼, 시작할까요?”

우명순 변호사도 알고 있다.

예전에는 친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서로에게 실망했고 배신했으며 다른 길을 선택했다.

즉, 지금은 물어뜯어야 할 사이다.

*

그 모습을 취조실의 유리를 통해 서진과 이소희가 지켜보고 있었다.

서진이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우명순 역시 병원 비리에 연루되어 있어.”

그녀는 병원의 죄를 눈감아 주는 대가로 돈을 받았다.

서초동의 아파트를 구입했고 지금은 부자.

“강치하 변호사와 홍주대 사장에 대한 구원투수로 동남군에 돌아왔지만 사실은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서야.”

수사가 깊어지면 우명순 변호사 역시 구속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소희가 시선을 틀어 서진을 바라봤다.

“언제 출발할 거야?”

서진이 손목을 틀어 시간을 확인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

“지금.”

서진이 재킷을 걸치며 밖으로 향했다.

*

다시 취조실.

이명수 검사가 들고 있던 서류를 테이블 위에 툭 내려두며 입을 열었다.

“미성년자 성매매...”

곧바로 우명순 변호사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적 없습니다.”

“번호 적혀 있던데요.”

“어디서 명함을 주웠나 보죠.”

“호텔 CCTV에 찍힌 것은?”

우명순 변호사의 시선이 홍주대 사장에게 틀어졌다.

“저 호텔 간 거 기억에 있어요?”

“기억합니다.”

“어떻게?”

“불쌍한 애들이 있어요. 집 나와서 바다를 본다고 여기 오는 애들. 나도 집에 딸이 있어서 그런 애들을 보면 안쓰러워요. 그래서 내 지분이 있는 호텔에서 쉬다 가라고 하죠. 그런데 내가 불우이웃을 한 둘 돕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저 애는 수많은 애들 중에 하나. 기억에 없다는 거죠?”

“네.”

우명순 변호사의 시선이 이명수 검사에게 틀어졌다.

“성매매의 증거를 가져오세요. 불우이웃 도운 사람 죄인 취급하지 말고.”

이명수 검사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저 애가 증언했습니다. 홍주대 사장과 성매매...”

“하!”

우명순 변호사가 크게 웃었다.

그리고.

“이명수 검사? 아니, 검사님. 가출한 애새끼 말에 신빙성이 어디 있어요? 걔들은 그냥 아무나 잡고 물귀신처럼 늘어지는 거 잘 알잖아요? 그리고 홍주대 사장님이 1년에 얼마를 기부하는 줄 알아요?”

“기부요?”

“네, 기부.”

이명수 검사가 끌끌끌 웃었다.

한참을 웃다가 테이블 아래로 손을 넣어 툭 버튼을 눌렀다.

녹화, 녹음을 정지한 것.

이제 이들의 목소리는 취조실에서만 이어지는 거다.

그리고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녹음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우명순 변호사도 고개를 끄덕인 후 자신의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이어서 이명수 검사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기부? 서초동에 아파트를 매입만큼 기부하나? 20억이라고? 그건 좀 부럽네.”

“부러워?”

“그럼, 20억을 깔고 사는 사람인데 안 부럽겠어?”

동시에 우명순 변호사도 이빨을 드러냈다.

“너도 살 수 있어. 그리고 명수야, 너 부모님 건강 안 좋잖아? 나 이해 못 해?”

“......”

“이 사건, 지청장 힘으로 뚫고 못 가. 다칠 거야. 그러니까 모른 척해. 널 위해 하는 말이야.”

이명수 검사에게 우명순 변호사는 선배였고 누나였다.

그녀가 이명수 검사를 걱정하는 눈빛으로 계속 말했다.

“세상에는 눈 감고 지나가야 할 일이 많아.”

이명수 검사는 입을 닫고 있었다.

그러자 홍주대 사장이 삐뚤어진 입술을 움직였다.

“내가 아는 사람이 좀 있어요. 성매매고 병원이고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흐지부지 넘어갈 겁니다. 우리 서로 귀찮게 하지 말고 깔끔하게 끝냅시다. 내가 검사님도 서초동 살게 해줄게요.”

우명순 변호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알잖아? 우리 뒤에 누가 있는지.”

“......”

“싸워봤잖아? 그래서 여기에 있는 거고.”

“......”

“그런데 또 싸울 거야? 그 괴물들하고? 알아주지도 않는 싸움 그만해. 할 만큼 했어.”

그때, 드르륵.

이명수 검사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 번호가 김서진이다.

이명수 검사가 휴대폰을 손에 쥐고 스피커폰 버튼을 꾹 눌렀다.

서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포 통장 거래 내역 확보했습니다. 은행 CCTV에 홍주대 사장의 얼굴이 잘 찍혀 있네요. 그리고 엄일섭 의원 얼굴 보고 가겠습니다.

“모셔올 수 있으면 모셔오고.”

-네.

이명수 검사가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우명순 변호사와 홍주대 사장의 얼굴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하는데요.”

홍주대 사장은 당황했다.

대포 통장이 걸렸다는 말에 뻣뻣해진 얼굴을 몇 번이나 쓸어내렸다.

마른 침을 삼키고 멍한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가.

“잠깐만... 엄일섭 의원을 모셔 온다고?”

이명수 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우명순 변호사와 홍주대 사장이 동시에 웃기 시작했다.

비웃는 목소리.

너희는 절대 할 수 없을 거란 웃음.

우명순 변호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여전히 걱정하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자기, 미쳤어? 죽고 싶은 거야? 여기서 망가지면 갈 곳도 없어!”

이명수 검사가 슬쩍 웃었다.

“아까 물었지? 이러고 싸우면 누가 알아주냐고? 그런데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고 검사하는 게 아니잖아? 난 그냥 너희 같은 새끼를 조지는 게 좋아. 그 상대가 국회의원이면 더 좋고.”

우명순 변호사와 홍주대 사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명수 검사가 테이블 아래 버튼을 툭 누르며 입을 열었다.

“기대해 지금부터 조져줄게.”

우명순 변호사가 입술을 잘근 씹었다.

***

서진은 차를 몰고 엄일섭 국회의원의 사무실로 향하고 있었다.

라디오가 시끄럽게 울린다.

-민국당 서울 송파 정 후보가 결정되었습니다. 터줏대감이던 조선봉 의원이 출마 포기를 선언한 가운데 민국당은 송파 정에 우진욱 후보를...

서진은 차를 주차하고 차에서 내렸다.

국회의원 엄일섭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서진은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저벅, 저벅 발소리가 음산하게 들리며 서진이 차갑게 웃었다.

‘엄일섭...’

동남군 군 의원 위준상에게 돈을 먹었던 사람.

애초에 서진은 엄일섭 의원을 송파 정의 국회의원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바뀌었고 이제 엄일섭 의원은 부숴버릴 대상이 되었다.

그렇게 이 사건이 끝나면 서진에게는 우진욱 국회의원이라는 새로운 무기가 생길 거다.

딸랑.

종소리와 함께 서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랜만에 지역구에 들른 엄일섭 의원이 서진을 본다.

엄일섭 의원은 아직 서진이 자기편인 줄 알고 있다.

지금부터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 줄도 모르고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이고, 김 검사. 오랜만이야.”

능글거리는 목소리에 서진이 허리를 천천히 굽혔다.

“오랜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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