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곽. -(3)>
“...검사요?”
비서의 눈동자가 기울어졌다.
서진이 내민 신분증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
그러다가.
“자, 잠깐만요.”
비서가 다급히 이사장실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힐끗 서진의 표정을 살핀 후 안으로 들어갔다.
이사장실로 들어온 비서의 행동이 평소와 달랐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참고 있던 숨을 내뱉고 있다.
업무를 보던 장용민 이사장이 심각한 표정의 비서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왜?”
“거, 검사가 왔어요.”
“검사?”
“네, 검사요.”
비서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오랜 시간 장용민 이사장의 밑에서 비서 생활을 이어왔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 병원에 불법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불안함에 떨고 있는데 장용민 이사장은 눈을 찌푸렸다.
“검사가 왔다고?”
잠시 생각을 하더니 허겁지겁 책상에 놓인 서류를 서랍으로 쑤셔 넣었다.
그리고 휴대폰을 손에 든 후 주소록에서 홍주대 사장의 번호를 찾았다.
통화 버튼을 누르려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머릿속에 홍주대 사장의 목소리가 스쳤기 때문이다.
-사람이 왜 이렇게 겁이 많아! 솥뚜껑 보면 자라 같이 보이고 그래?
장용민 이사장은 주소록을 슥슥 내렸다.
마지막으로 찾은 게 동남군 국회의원 엄일섭이다.
엄일섭 의원의 힘을 통해 검사를 막고 싶었다.
그래서 통화 버튼에 손을 가져가는데.
“바쁘신가 봅니다.”
딸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서진이 들어온 거다.
장용민 이사장은 휴대폰을 내려뒀고 비서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서진이 슬쩍 웃으며 말을 이었다.
“기다렸는데 안 나오시기에 들어왔습니다. 예의에 어긋난 것을 알지만 커피 한 잔은 주실 거죠?”
뻔뻔한 목소리였지만 장용민 이사장은 꾹 참으며 소파를 가리켰다.
“앉으시죠. 성 비서, 커피 좀 내와요.”
“아, 네.”
비서가 고개를 숙일 때, 장용민 이사장이 그녀를 향해 한발 다가섰다.
그리고 서진이 들을 수 없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사무장한테 연락해. 나가 있으라고.”
비서가 비장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순간이다.
서진이 다리를 꼬며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혹시... 지금 귓속말로 하시는 말씀이 ‘사무장 나가 있으라고 해.’ 이런 것인가요?”
“네?”
“죄송한데 그 사무장 지금 우리 직원이랑 면담 중입니다. 나가 있을 필요 없으니까 굳이 연락하실 필요 없어요.”
장용민 이사장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서진이 찾아온 목적이 명백해졌다.
사무장 병원을 의심하는 거다.
서진이 장용민 이사장을 보며 느릿하게 입술을 움직였다.
“앉으세요.”
장용민 이사장이 비틀비틀 서진의 앞으로 다가와 마주 앉았다.
“나가시고요.”
서진이 문을 가리키자 비서가 와들와들 떨리는 다리를 끌고 이사장실을 벗어났다.
그제야 서진의 시선이 장용민 이사장에게 향했다.
“여기, 사무장 병원 맞죠?”
“어디서 어떤 소리를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모함입니다. 사무장 병원이라니요. 엄연히 제 이름을 걸고 제가 운영하는 병원이에요.”
장용민 이사장이 식은땀을 흘리며 변명했지만 서진은 의심의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10년 전, 동남군으로 오셨죠?”
“......”
“부도 직전의 정형외과를 인수했지만 매출은 신통치 않았고요?”
“......”
“그런데 2년 후 이 병원의 매출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네요.”
서진이 들고 온 서류를 테이블 위에 툭툭 던졌다.
병원의 매출에 대한 것.
장용민 이사장의 시선이 서류로 향했다.
매출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인수 후 2년이 되던 해였다.
폐업을 준비하던 장용민 이사장의 앞으로 홍주대 사장이 찾아왔다.
-사무장 병원이라는 게 있다고 들었어.
-내가 투자할게.
-나쁜 생각은 없어. 이런 시골에 좋은 병원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래.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장용민 이사장은 돈이 필요했다.
휴대폰 요금이 연체되었고 공과금마저 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집에 있는 아내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애들 학원비가 밀렸는데...
장용민 이사장은 결심했다.
동남군까지 와서 거지가 되고 싶지 않았다.
결국은 투자를 받았고 그것은 불법의 시작이었다.
-밭일하려고 온 애들 중에 겨울에 알바 자리 찾는 애들 있어.
-걔들 입원 시키면 안 돼?
-알콜 중독이나 정신질환 좋네!
-공보의 애들한테 용돈 좀 주고 환자 넘기라고 할까?
-노인네들이 뭘 알아? 적당히 웃어주면 알아서 누워 있을 거야.
장용민 이사장이 고개를 숙였다.
‘하...’
얼굴은 뻣뻣하게 굳어졌고 심장은 쿵쾅쿵쾅 뛰었다.
그런데.
‘잠깐만 걸릴 이유가 없잖아?’
홍주대 사장은 투자만 했다.
그것도 현금으로.
병원에 출근하지 않는다.
자신의 직원을 병원의 사무장으로 취직 시켜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
‘입 다물고 있으면 절대 안 걸려.’
장용민 이사장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은 당당하고 담담했다.
그리고 건조한 눈빛으로 서진을 보며 또박또박 입을 열었다.
“그래서요? 매출은 열심히 해서 늘었습니다. 단골이 하나둘 생겼고 지역 분들이 저를 믿어 주셨죠. 매출의 상승 요인은 그뿐입니다. 굳이 다른 이유를 찾자면 친절하다는 거죠. 시골 병원 중에는 아직도 권위적으로 반말을 하고 그러는 곳이 있기도 한데 저희는 안 그렇거든요.”
장용민 이사장이 소파에 등을 파묻었다.
극단적일 정도로 여유로운 태도.
할 수 있으면 해보라는 태도다.
그런데 서진이 빙긋이 미소를 그렸다.
뻔뻔한 얼굴이 일그러지는 그 순간을 좋아해서다.
서진이 장용민 이사장을 향해 몸을 기울이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뭐, 그건 천천히 알아보면 되는 일이고요. 어쨌든 오늘 찾아온 이유는 다른 게 아니고요. 가출 청소년들이 여럿 잡혀 왔어요.”
“네?”
사무장 병원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이야기가 딴 길로 빠졌다.
가출 청소년으로.
장용민 이사장이 고개를 갸웃거렸고 서진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 애들이 성매매를 했어요. 주소록에 잡힌 것만 190여 개나 되고요.”
“그런데요?”
“거기 홍주대 사장의 이름이 있네요?”
“네?”
“홍주대 사장이 누군지 잘 아시죠?”
장용민 이사장의 표정이 굳어졌고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다.
서진의 목소리가 더 작게 이어졌다.
“홍주대 사장이 바지 사무장을 앉혀두고 장용민 이사장님과 거래한다는 증거를 잡았습니다.”
“즈, 증거요?”
그 순간이었다.
서진의 눈앞이 흑백으로 물들며 사이코 메트리가 펼쳐졌다.
*
조금 전의 일이다.
서진이 나타나자 다급히 이사장실로 들어온 비서.
“거, 검사가 왔어요.”
그녀의 목소리에 장용민 이사장은 눈을 찌푸렸다.
“검사가 왔다고?”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리더니 손을 다급히 움직였다.
책상에 놓인 서류를 서랍으로 쑤셔 넣고 쓰레기통에 처박고.
그 행동이 매우 다급하고 간절해 보였다.
*
세상이 다시 색을 찾았다.
앞에는 당황한 장용민 이사장이 보인다.
“증거라뇨!”
궁지에 몰린 쥐는 이빨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장용민 이사장은 오히려 화를 냈고 서진을 끌끌끌 웃었다.
원래 오늘의 목적은 장용민 이사장을 궁지에 몰아넣는 것이 끝이었다.
그런데 이런 찬스가 오다니.
“증거가 있으면 말해 봐요!”
무심한 눈으로 짖어대는 장용민 이사장을 보던 서진이 벌떡 일어섰다.
장용민 이사장이 움찔거리며 서진의 움직임을 쫓았다.
그런데 저벅, 저벅 쓰레기통을 향해 걸어가더니 구겨진 종이를 들어 펼쳤다.
“가짜 진단서 발급 장부네요?”
“쓰, 쓰레기에요! 쓰레기! 쓰레기라고!”
“쓰레기는 너고.”
장용민 이사장의 눈이 부릅떠졌다.
입술을 꿈틀거리는데 말은 하지 못한다.
곧 몸을 바르르 떨고 있다.
서진이 손에 든 종이를 툭 떨어뜨린 후 장용민 이사장을 향해 저벅저벅 다가갔다.
서진의 입에서 건조한 음성이 내뱉어졌다.
“장용민 씨, 국민건강 보호법과 의료급여법 위반 혐의로 체포합니다.”
그런데 장용민 이사장이 웃기 시작했다.
킥킥킥, 미친 사람처럼.
그러다가 서진을 보며 비뚤어진 입술을 움직였다.
“저기 검사님? 모른 척하는 것도 사람 사는 방법인데요.”
“......”
“내 뒤에 누가 있을 것 같아요?”
서진이 픽 웃었다.
“대통령이 있어도 구속이야 새끼야.”
이사장실의 문이 열리고 수사관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장용민 이사장의 몸을 짓눌렀다.
그 상황에서 장용민 이사장이 고개를 틀어 서진을 쏘아봤다.
“검사님! 우리나라가 그렇게 아름다워 보입니까? 정말 그렇게 될지 궁금하네요! 3년 전에는 왜 멈췄을까요?”
“몰라서 물어? 3년 전에는 내가 없었잖아. 그러니까 기대해. 네가 어떻게 될지.”
서진의 목소리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음산했고 그 눈빛은 이십 대 청년의 것이 아니었다.
장용민 이사장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며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서진이 장용민 이사장의 어깨를 툭툭 친 후 냉랭한 표정으로 그 옆을 스쳤다.
*
“김서진 검사 대박인데?”
동남 지청의 야외 흡연실이었다.
장용민 이사장을 취조실에 던져둔 후 출동했던 수사관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경험이 없어서 어설플 줄 알았는데 마약 담당해도 되겠더라. 눈동자 살벌한 게 뱀인 줄 알았어.”
출동하지 않은 수사관들이 한심한 눈으로 바라봤다.
“어쩌다 영화 한번 찍었나 보네. 그거 하나 보고 무슨 마약 담당이냐? 거기 또라이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아니,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 병원 이사장이 질질 짜는 거 보고 확신했어. 눈에서 레이저 나온다고.”
“이사장이 쫄보였나 보지. 공부만 하던 양반들이 범죄자 마주하려면 5년은 뒹굴어야 해. 아직 멀었어.”
그때, 조용히 담배만 피우고 있던 임정택 수사관이 입을 열었다.
“5년? 난 10년은 뒹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세상에는 타고 난 사람이 있더라.”
“어?”
“괴물 같은 사람들. 내가 검사님이랑 같이 밥 먹으며 느낀 것인데, 사주보면 딱 나올 거야. 깡패 아니면.”
“아니면?”
“검찰총장.”
“지랄.”
***
그리고 그 시각.
서진은 장용민 이사장이 있는 취조실로 이동하며 한숨을 내뱉고 있었다.
‘어쩌지?’
사고 쳤다.
수사에도 순서라는 게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은 더 그랬다.
전문가 영역인 병원과의 싸움이기에 더욱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다.
그래서 오늘의 목표는 협박, 장용민 이사장을 벼랑 끝으로 몰아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수사 첫날 장용민 이사장의 비리를 잡아냈다.
쓰레기통과 서랍에서 찾아낸 가짜 환자의 명단.
‘이건 진짜 럭키가이지.’
서진은 한숨을 내뱉었다.
일단 잡아는 왔는데...
‘어쩌지?’
문제는 또 있었다.
3년 전 선배들이 진행했던 사건이다.
무혐의로 덮였고 지금껏 잠들어 있었다.
깨웠다는 것은 선배들을 무시하는 것.
또는 선배들을 죄인 취급하는 것.
거기에 동네 유지에 국회의원까지 끼어 있다.
사실 그것은 별 상관없었지만 앞으로 수사 과정에 어떤 난관이 있을지 모른다.
그때였다.
“김서진!”
이름을 부르는 큰 목소리에 서진이 고개를 틀었다.
지청장과 김관용 부장검사가 반대편에서 걸어오고 있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온 지청장이 서진의 어깨를 툭툭 치며 입을 열었다.
“병원?”
“운이 좋았습니다. 문서를 숨기려는 것을 확인했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있는데 지청장이 고개를 저었다.
서진이 말을 멈추고 지청장을 바라봤다.
지청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죽여.”
그 한 마디에 걱정했던 것이 싹 사라졌다.
지청장은 이 지청의 왕이다.
그런 빽이 있는데 망설일 이유는 없다.
서진이 고개를 숙였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