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40화 (40/250)

<외곽. -(2)>

강치하 변호사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며 주먹을 꽉 쥐었다.

심줄이 튀어나왔고 눈동자를 굴린다.

그때였다.

이재승 부장검사가 잠시 멈춰있는 강치하 변호사를 향해 고개를 틀었다.

“안 와?”

“아, 아뇨. 갑니다.”

강치하 변호사가 표정을 수습하며 시선을 틀었다.

그리고 주춤주춤 이재승 부장검사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곧 걸음을 멈추더니 억지로 능글맞게 웃었다.

“부장검사님. 죄송합니다. 제가 갑자기 일이 생겨서.”

이재승 부장 검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차를 마시겠다고 먼저 연락한 게 강치하 변호사다.

그런데 갑자기 일이 있다니.

“뭐야?”

그렇다고 바쁘다는데 잡아 두기는 힘든 일이다.

이재승 부장검사가 손을 저었다.

“그래, 바쁘지 않을 때 보자고.”

“정말 죄송합니다. 하하.”

강치승 변호사가 이재승 부장검사를 향해 몇 번이나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다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여자 수사관에게 잡혀 건물로 끌려가는 채성아를 힐끗힐끗 보면서...

하지만 강치승 변호사는 몰랐다.

서진의 시선이 자신의 뒷모습을 쫓고 있다는 것을.

***

“있어요, 없어요?”

“없다고!”

남동 토건이란 간판이 붙은 건물, 그곳은 홍주대 사장의 사무실이었다.

강치하 변호사가 홍주대 사장의 책상 앞을 서성이며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메시지 같은 것 보낸 적 없죠?”

“몇 번을 말해? 없어. 없다고! 강 변호사, 난 카톡 그런 거 할 줄 몰라!”

홍주대 사장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고 강치하 변호사가 한숨을 푹 내뱉었다.

“다 현금으로 준 거죠?”

“당연하지!”

“하... 씨발, 왜 쓸데없는 게 터져서.”

강치하 변호사가 넥타이를 풀며 짜증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강치하 변호사와 홍주대 사장은 지금껏 사무장 병원만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원조교제라니.

홍주대 사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강 변호사. 이거 문제 될 수 있는 거야?”

“보통 사람이라면 상관없죠. 모른 척하고 버티면 되니까요. 그런데 사장님과 저는 얼굴이 팔릴 수도 있어요.”

“...얼굴이 팔려?”

“거지새끼들은 우리가 망가지는 것을 좋아하고 그걸로 먹고사는 기자들이 가만있을 리 없잖아요.”

홍주대 사장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알려지면 개망신이다.

그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막을 수 있는 거지?”

“막아야죠. 무조건. 방법은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강치하 변호사가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연기를 내뱉는다.

***

“서울에서 가출한 여섯 명이 동남군 고시텔에 모였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모인 가출팸이죠.”

-가출팸 : 가출한 청소년들이 원룸이나 모텔 등을 빌려 함께 생활하는 집단이다.

서진의 시선이 앞을 향했다.

작은 회의실에 이명수 검사와 이소희 그리고 수사관들이 보였다.

조용한 가운데 서진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이들은 ‘포주’라 불리는 채성아의 지시를 받고 군인 또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했습니다. 이건 채성아의 휴대폰에 저장된 사람들의 이름입니다.”

스크린의 화면이 바뀌며 이름과 연락처를 정리한 파일이 떠올랐다.

10명씩 19페이지, 190여 명.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현금만 거래했기 때문에 증거가 없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채성아의 증언과 연락처.

그들은 당연히 인정하지 않을 거다.

-내 연락처가 왜 있는지 나도 모르겠다고요!

-나도 모르는 번호 저장된 것 많아요!

-정황 증거잖아요! 정황 몰라요?

스크린에 뜬 주소록이 한 페이지씩 넘어가며 회의실이 적막해졌다.

많은 숫자의 연락처만 봐도 알 수 있어서다.

채성아는 가출팸으로 끌고 온 학생들을 노예처럼 다뤘다.

껍데기는 스무 살도 안 됐지만 그 속은 악마 같았다.

“잠깐만.”

이명수 검사가 손을 들었다.

“다시 앞으로 가봐.”

서진이 페이지를 앞으로 넘겼다.

이명수 검사의 시선이 어떤 연락처에서 멎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보다가 자신의 휴대폰을 들고 저장된 전화번호와 비교한다.

그러다 낄낄낄 웃었다.

-포르쉐 : 010-XXXX-XXXX.

강치하 변호사의 연락처였다.

이명수 검사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그만둔 놈이 왜 이리 자주 오나 했더니 이유가 저거였어? 변호사라는 게... 한심한 새끼.”

이명수 검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더 볼 필요가 없다고 느낀 거다.

이명수 검사가 서진을 보며 지시했다.

“바닷가로 도망친 가출 청소년들, 또래를 성매매 현장으로 밀어낸 포주, 소스 괜찮네.”

“......”

“해봐. 부장검사님께는 내가 말씀드릴 테니까 따로 보고할 필요는 없을 거야.”

“......”

“그리고 지역 신문 인터뷰 잡아 줄게. 감성팔이도 좀 집어.”

서진이 이명수 검사를 향해 허리를 굽혔다.

이명수 검사가 서진의 팔을 툭툭 친 후 이소희를 향해 고개를 틀었다.

“그런데, 이소희 검사. 형사 3부 바쁜 데, 김 검사를 도와줄 수 있어?”

이소희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김서진 검사가 제가 아니면 지시 내릴 사람이 없다고 해서요.”

막내라 그렇다.

팀을 꾸려도 다 선배.

커피나 안 타면 다행이다.

이명수 검사가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3부 부장검사님께는 내가 부탁드릴게. 필요한 일 있으면 이야기해.”

“감사합니다.”

이명수 검사가 손을 흔들며 ‘잘 해봐.’라는 말과 함께 회의실을 벗어났다.

그렇게 회의실 안에는 서진과 이소희만 남았다.

그런데 스크린을 향한 이소희의 표정이 좋지 않다.

“왜?”

“난 저런 새끼들이 정말 싫어. 여자를 장난감으로 생각하는 새끼들.”

이소희가 사연 있는 눈빛으로 아랫입술을 꾹 깨물 때 서진이 그녀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사건에 감정을 집어넣으면 안 돼.”

이성적으로 맞붙어도 깨질 수 있다.

그런데 감정이 들어 있으면 100% 박살 난다.

업무는 건조하게 하는 거다.

이소희가 화를 참으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오케이. 그래야지. 냉정해야지.”

“......”

“그런데 질문 있어. 이 사건으로 사무장 병원까지 어떻게 타고 올라간다는 거야?”

질문을 받은 서진이 테이블에 엉덩이를 걸치며 다리를 외로 꼬았다.

“올라갈 수 있어.”

사무장 병원은 3년 전 이미 찔러봤던 사건이다.

포르쉐 강치하, 서초동 우명순 변호사를 비롯해 많은 인력이 투입됐었다.

“그런데 우리가 다시 들춰내면?”

지난번에도 이야기했지만 지나간 사건을 끄집어내서 탈탈 터는 것은 선배를 무시하는 처사다.

신분증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검사가 선배를 무시하는 것은 미운털이 박히고 싶어서 애를 쓰는 것.

“하지만 ‘우연’을 통해 증거를 잡아내면 상관없지.”

서진은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려 한다.

“일단 홍주대 사장을 병원하고 떼어 놓는 거야. 성매매에 신경을 쓰며 일시적으로 병원에 신경을 못 쓰게 하는 거지. 다음으로 장용민 이사장을 만나 볼 거야.”

장용민은 동남 중앙 병원의 이사장, 즉 병원의 바지사장이다.

서진이 슬쩍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좋은 말로 설득해야지.”

이소희가 억지로 웃었다.

서진은 분명 좋은 말로 설득한다고 말했지만 절대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그 목소리가 악랄하게 느껴졌다.

서진이 책상에서 내려오며 입을 열었다.

“그럼, 시작하자.”

*

취조실의 문이 끼익 열리고 이소희가 들어왔다.

자리에 앉아 있던 채성아가 고개를 들어 이소희를 향했다.

이소희가 테이블 위에 서류를 내두며 입을 열었다.

“안녕?”

그런데 채성아의 눈빛이 고분고분하지 않다.

보통 취조실에 앉으면 어른들도 발발발 떨기 마련인데 고작 열여덟 살의 채성아는 담담하다.

이소희가 채성아의 맞은편에 앉으며 물었다.

“당당하네?”

“청소년이잖아요.”

“그래서?”

“알아봤어요. 때리고 협박하고 그런 게 아니면... 고작 2년? 남자애들도 군대 가는데 가는 셈 치죠. 재밌겠다. 그쵸?”

그 순간, 이소희가 들고 있던 서류로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채성아가 움찔거렸다.

이소희가 서늘한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차갑게 웃었다.

“미안한데, 누가 2년이래?”

“...네?”

“네 휴대폰에 있는 190여 명의 연락처. 그중에는 지역 깡패도 있어.”

채성아의 눈이 당혹으로 물들었고 이소희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난 널 조직폭력배와 연계해 또래에게 빨대를 꽂아 먹고 사는 기생충으로 기소할 거야.”

“...깡패요?”

“그래, 그런데 2년? 깡패한테 붙어서 동년배를 유인했는데 청소년이란 이유로 고작 그만큼만 살고 나온다고? 미쳤니?”

채성아가 고개를 저었다.

포주 노릇을 하며 받는 징역은 알아봤다.

그런데 조직폭력배와 연관되었을 때 형량은 알아보지 못했다.

2년이 아니라 4년, 5년이라면...

청소년이 느끼는 5년은 길다.

“아, 아니에요.”

“맞아.”

“진짜 아니에요.”

“그럼 이 사람은 누구야?”

이소희가 홍주대 사장과 강치하 변호사의 사진을 채성아의 앞에 내밀었다.

채성아가 다급히 입을 연다.

“이, 이 삼촌들은 깡패 아니에요!”

“그럼?”

“그냥 변태 새끼들이에요!”

밖에서 이소희의 취조를 지켜보던 이명수 검사가 자신도 모르게 ‘풉’ 웃음을 터뜨렸다.

그냥 변태 새끼라는 말이 강치하 변호사와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서다.

낄낄거리며 웃던 이명수 검사가 휴대폰을 귀에 댔다.

통화 연결음이 이어지고 강치하 변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이 검사.

“돈도 잘 벌고 능력도 좋은 강치하 변호사님!”

한껏 비웃는 목소리에 강치하 변호사의 목소리에 날이 서 있다.

-왜, 무슨 일이야?

하지만 이명수 검사의 목소리는 여전히 능글거린다.

“돈이 많아서 그런가, 돈 밝히는 변호사에서 그냥 변태 새끼가 됐네요? 아직 동남이죠? 소환장 보내고 이런 거 귀찮으니까 잠깐 들렀다 가세요.”

-...뭐?

“반말 그만하고 존댓말 써줄 때 오라고 새끼야.”

*

그 시각, 홍주대 사장의 사무실.

강치하 변호사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씨, 씨발...”

예상보다 빨랐다.

아는 검사를 통해 채성아의 입을 틀어막고 서초동 우명순 변호사에게 부탁해 힘으로 압박하려 했는데.

‘이제 그럴 시간도 없잖아.’

강치하 변호사의 눈동자가 데구루루 굴러갔다.

‘어쩌지? 어쩌지?’

강치하 변호사의 불안함은 고스란히 홍주대 사장에게 옮겨졌다.

식은땀을 흘리는 강치하 변호사를 보며 홍주대 사장이 벌떡 일어섰다.

“왜? 무슨 일이야? 뭐냐고!”

“빠져나가야죠. 잠시만, 잠시만요. 생각을 좀 하겠습니다.”

강치하 변호사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생각에 빠졌다.

***

그 시각, 서진은 동남 중앙 병원에 도착했다.

차를 주차한 후 병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 올라 최상층을 누른다.

이사장 장용민이 있는 곳이다.

-문이 열립니다.

서진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조용한 복도에 뚜벅, 뚜벅 서진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어떻게 오셨어요?”

이사장실의 앞을 지키고 선 비서가 물었다.

서진이 신분증을 꺼내 비서의 앞에 내밀었다.

“검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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