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곽. -(1)>
*
“저희는 홍주대 사장이라고 불러요. 이런저런 사업을 많이 한다고 들었어요.”
“어떤?”
“그건 잘 몰라요. 정말이에요!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여자의 표정과 목소리는 간절했다.
툭 치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서진을 바라봤다.
“...거짓말 아니에요.”
서진의 시선이 틀어졌고 조신하게 앉아 있던 덩치들과 눈을 마주쳤다.
놈들이 움찔거리더니 다급히 입을 열었다.
“저, 저희도 잘 모릅니다. 돈 많고 팁 많이 주는 손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진의 시선이 다시 여자를 향했다.
“안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지?”
“주로 야한 이야기를 했고요. 맞다. 조심하자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했어요.”
“조심? 뭘?”
“그러니까, 뭐였더라. 어...”
여자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안에서 들었던 말을 기억하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기억나지 않나 보다.
한숨을 내뱉으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손뼉을 짝 쳤다.
“운전기사가 있어요!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기사?”
“네! 운전기사면 잘 알지 않을까요? 어디든 다 쫓아다니잖아요!”
룸살롱에서 알아낼 것은 더 없어 보였다.
서진이 느릿하니 일어서며 입을 열었다.
“내가 왔다 갔다는 것 비밀로 해. 그런 이야기가 들려오면 무조건 너희라고 생각할 거야. 이 가게는 사라질 거고 너희의 잠자리는 불편하겠지.”
그 목소리가 살벌했다.
세 명의 덩치와 여자는 자신들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서진이 테이블에 놓인 돈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들기며 말을 이었다.
“맛있는 거 사 먹어.”
그 말을 끝으로 서진은 룸을 벗어났다.
문이 탁 닫히자 서릿발 같던 분위기가 조금은 풀어졌다.
그리고 겁먹은 개처럼 꼬리를 말고 있던 덩치들이 갑자기 센 척하기 시작했다.
“형님, 저 새끼 혼자 온 것 같은데 가서 손 좀 봐줄까요?”
“혼자 왔겠냐? 가게 밖에 주렁주렁 달고 왔겠지.”
“모자 쓰고 골목 같은 데서 패면 괜찮을 것 같은데요. 좆도 아닌 새끼가 검사라고 으스대기는... 씨발.”
그들의 중얼거림을 듣던 여자가 비웃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자신 있으면 해봐.”
“어?”
“해보라고. 못 하겠으면 허세 떨지 말고 닥쳐. 쫑알쫑알 시끄러우니까.”
남자들이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여자는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서진의 눈빛을 떠올렸다.
서른도 안 된 놈의 눈빛에 담긴 살기.
이곳에 있는 모두를 죽일 것 같은 눈빛이었다.
여자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노파심에서 말하는데 조용히 해. 아까 눈 봤지? 검사라는 새끼가 가게에 불 지를 것 같은 눈을 하고 있잖아. 또라이는 피해야 해.”
여자가 담뱃재를 툭툭 털었고 덩치들도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벤츠S 클래스의 운전석.
홍주대 사장의 운전기사가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낄낄거리며 웃고 있는데.
톡톡.
운전석의 창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낯선 남자가 서 있다.
서진이었다.
운전기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창문을 내렸다.
“왜요?”
“홍주대 씨의 운전 기사님 맞죠?”
“그런데요?”
“검찰입니다.”
“네?”
서진이 신분증을 내밀었다.
느닷없는 검사의 등장에 운전사의 눈동자가 긴장으로 물들었다.
“...검사요?”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저, 전 아는 게 없어요.”
검사를 마주한 운전기사는 지나치게 긴장하고 있었다.
서진이 최대한 사람 좋은 미소를 그리며 자동차 지붕에 한 손을 올렸다.
“긴장하실 필요 없고요. 몇 가지...”
그때였다.
세상이 흑백으로 물들며 사이코메트리의 능력이 발동되었다.
*
“방지턱! 방지턱! 내가 방지턱 조심하라고 몇 번을 말했어! 이래서 대가리 멍청한 새끼들과는 일하지 않으려고 한 거야!”
홍주대 사장이 운전석을 콱! 콱! 콱! 차고 있었다.
운전기사가 억지로 웃었다.
“죄송합니다. 신경 쓰겠습니다.”
자동차에는 운전기사와 홍주대 사장만 있는 게 아니었다.
홍주대 사장의 옆에는 마치 딸처럼 보일 정도로 어린 여자 애가 앉아 있었다.
그러니까 아직 미성년자로 보이는 아이.
그 여자 애가 깔깔깔 웃는다.
“이 아저씨 웃기다. 욕먹는데 웃고 있어. 자존심도 없나?”
운전기사의 나이는 40대 후반.
여자의 말에 기분이 상했지만 인상 쓰지 않았다.
이번에도 억지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사장님 호텔로 모실까요?”
“알면서 왜 물어봐! 그냥 묻지 말고 가! 새끼야!”
홍주대 사장이 다시 의자를 콱콱 가격했고 여자는 또 까르르 웃었다.
“아, 웃겨. 운전사 아저씨 표정 진짜 웃겨.”
홍주대 사장의 휴대폰이 벨을 울렸다.
홍주대 사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휴대폰을 꺼내 귀에 댔다.
“어, 장용민 이사.”
장용민은 동남 중앙 병원의 이사장이다.
“아, 나도 동남 지청 요즘 시끄러운 것은 들었어. 그런데 걱정하지 마. 내일 강 변호사 오면 상의하기로 했으니까. 그리고 알잖아? 사무장 병원이라는 증거가 어디 있어? 내가 출근이라도 하나? 내 이름으로 된 통장에 돈이라도 꽂혀?”
사무장 병원이란 일반인이 의사를 바지사장으로 고용하고 병원을 설립, 운영하는 형태다.
현행법상 법인을 제외하면 일반인이 병원을 설립할 수 없기 때문에 당연히 불법.
게다가 가장 큰 문제는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과잉 진료,
-병실당 병상 수가 많음.
-나일론 및 허위환자 양산.
-하지 않은 수술비를 한 것처럼 속여 청구.
등등.
2009년부터 2018년까지 부당하게 지급된 요양 급여비용은 2조 7천억에 달한다.
하지만 범죄자들이 재산 은닉 등의 수법을 사용하며 환수율은 고작 6%.
세금이 줄줄 새서 홍주대 사장 같은 놈의 주머니에 들어가는 거다.
장용민 이사와 통화를 종료한 홍주대 사장이 입술을 뒤틀었다.
“사내새끼가 뭐 이렇게 겁이 많아? 그러니까 그러고 사는 거지. 등신 새끼.”
홍주대 사장의 목소리가 험악해지자 여자애가 그 품으로 파고들며 간지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삼촌, 뭐예요? 뭔 일인데?”
“아, 삼촌이 병원 일을 좀 도와주고 있는데.”
“에이... 일 그만하고 놀아줘요. 네?”
*
세상이 다시 색을 찾았다.
서진의 눈이 찌푸려졌다.
‘사무장 병원이었어?’
놈들은 악질이다.
폐쇄적이며 전문적인 영역이라 증거를 잡아내기 어렵다.
게다가 수사를 시작하면 폐업 후 도망가 버린다.
그리고 사이코메트리에서 본 홍주대 사장은 분명히 말했다.
-증거가 어디 있어? 내가 출근이라도 하나? 내 이름으로 된 통장에 돈이라도 꽂혀?
자신감이 넘치며 완벽 범죄를 꿈꾸고 있다.
어설프게 덤비면 깨지는 것은 서진이 될 거다.
폐쇄된 병원을 보며 입맛만 다실 수도 있다.
‘이럴 때는...’
병원에 대한 수사는 잠시 보류하고 상관없는 외곽을 흔들며 천천히 중심으로 다가가야 한다.
그러다가 상대의 목덜미가 드러났을 때 씹어 먹는 거다.
서진은 생각을 끝냈다.
그리고 운전석에 앉아 어쩔 줄 몰라 하는 운전 기사에게 시선을 옮겼다.
“...어린 여자애. 원조교제.”
운전기사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고 당혹스러운 감정이 눈동자에 담겼다.
뭔가를 숨기려 하는 거다.
서진이 운전기사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호텔에 가면 CCTV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럼 확률은 높지 않겠지만 기사님이 공범이 될 수 있어요.”
“공범이요?”
“홍주대 사장이 이렇게 주장할 수도 있거든요.”
-운전기사가 데려왔다.
-난 미성년자인지 몰랐다.
운전기사가 고개를 저었다.
“무, 무슨 말씀이세요? 사장님이 왜...”
“홍주대 사장이 기사님을 어떻게 취급했죠?”
도구였고 가축이었으며 투명 인간이었다.
인간적인 대우를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만약 위기에 몰리면 운전기사를 제물로 삼을 수도 있을 거다.
서진의 목소리가 계속됐다.
“세상은 참 불리하죠.”
“네?”
“홍주대 사장은 돈도 많고 이 지역의 유지들과 가까운 사입니다. 잘못이 있어도 경찰서장이나 지청장을 만나 밥 한번 먹고 돈을 뿌리면.”
운전기사가 마른 침을 삼켰다.
이어질 말을 충분히 예상해서다.
그리고 이어진 서진의 목소리는 예상대로였다.
“미성년자 성매매 알선. 기사님은 포주가 될 겁니다. 검사로 일하며 이런 사례는 숱하게 봤습니다.”
말도 안 되는 공갈협박이다.
그런데 운전기사의 눈은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그는 홍주대 사장이 그럴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같이 만나 술 먹고 노는 사람이 국회의원이고 병원장이기 때문이다.
운전기사가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줄담배를 피워댔다.
서진이 그의 옆에 서서 입을 열었다.
“지킬 의리는 없습니다.”
운전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죠?”
“그 여자애 누굽니까?”
운전기사가 담배 냄새를 길게 내뱉었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
“느낌 오는 거 없어?”
주말이 지났다.
업무를 보고 있는데 이명수 검사가 야외 흡연장으로 서진을 불러내 대뜸 물었다.
“느낌이요?”
“지청장님이 부장검사들 불러서 닦달했나 봐. 계속 이슈 몰이를 해야 탈출할 수 있다고.”
지청장은 총선 이후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권력 지도가 바뀌면 동남군의 칼잡이를 원하는 권력자들이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묻는 거야. 미제 한 번 더 잡아 볼래?”
미제가 뚝딱뚝딱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이명수 검사는 꼬맹이들 술래잡기하듯 말하고 있다.
서진이 단호히 거절했다.
“아뇨.”
“나도 답답한 마음에 말한 거다.”
그 순간.
“어? 이 검사!”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서진과 이명수 검사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틀어졌다.
강치하 변호사다.
놈이 능글능글 웃으며 서진과 이명수 검사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한껏 비꼬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야, 이 검사. 아직도 안 그만뒀어? 난 네가 성질 못 이기고 제일 먼저 옷 벗을 줄 알았는데.”
“제가요?”
“네 성격 알아주잖아?”
강치하 변호사가 의자에 앉은 이명수 검사를 내려다봤다.
그 눈빛에 업신여김이 가득하다.
둘 사이가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이명수 검사가 손을 툭툭 털며 일어섰다.
“그러게요. 이게 뭐라고 계속 버티고 있네요. 그런데, 강 변호사님은 신수가 훤해지셨습니다.”
“나야. 뭐.”
강치하 변호사가 슬쩍 포르쉐 키를 보였다.
이명수 검사가 낄낄 웃었다.
“확실히 검사보다는 변호사가 어울리네요. 범죄자 새끼들 인권 생각해줬잖아요?”
찌르는 말투였다.
하지만 강치하 변호사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맞아. 그런데 난 적성을 찾아 돈을 벌고 있거든? 넌 뭐냐? 아직도 아픈 부모님 용돈 30주면서 생색내고 있냐?”
이명수 검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입에서 욕이 내뱉어지기 직전.
“거기서 뭐 해? 왜 안 들어오고 있어?”
형사 1부 부장검사 이재승이었다.
강치하 변호사가 이명수 검사의 팔을 툭툭 친 후 이재승 부장검사를 향했다.
“아이고, 부장검사님. 오랜만이에요.”
“여긴 어쩐 일이야?”
“일이 있어서 들렀다가 부장검사님 인사나 드리려고 왔죠.”
“가자. 커피나 마시자.”
“그런데, 김서진이란 놈이 누굽니까?”
이재승 부장검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서진? 왜?”
“공중파에 얼굴도 비추는 스타 검사잖아요. 궁금해서 그렇죠.”
“쟤야.”
이재승 부장검사가 손가락으로 이명수 검사 옆에 있는 서진을 가리켰다.
“아, 쟤예요?”
“어.”
“좀 대단할 줄 알았는데, 생긴 거 보니까 애기네요.”
“애기지. 겁나 운 좋은 애기.”
“명수 같은 애랑 어울리면 저놈도 뻔하네요.”
그리고 서진의 시선은 강치하 변호사의 뒷모습을 쫓고 있었다.
옆에서 이명수 검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재수 없는 새끼.”
이명수 검사는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냈다.
강치하 변호사가 검사였던 시절, 이명수 검사와 사사건건 부딪쳤던 모양이다.
그런데, 고개를 잠깐 뒤로 돌린 강치하 변호사와 서진의 시선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자 강치하 변호사는 순간 눈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뿐이다.
곧 비웃는 표정으로 입술을 움직였다.
“애기네.”
명백히 무시하는 태도.
하지만 서진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저 자신만만한 미소가 오래가지 않을 것을 알고 있어서다.
곧 박살날 거다.
그리고.
지이잉.
서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 번호가 이정우다.
“어, 정우야.”
-가출 청소년 잡았다. 그리고 성아라고 하는 애 맞지? 지금 배달해 줄까?
“그럼, 고맙지.”
-10초만 기다려.
말하는 순간 지청의 정문으로 정우의 차가 들어왔다.
서진을 알아본 정우가 차에서 내리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정우와 함께 차에서 내린 어린 여자애.
“내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요! 짜증나!”
앙칼진 목소리로 인상을 구기고 있다.
사이코메트리의 세상에서 본 그 애다.
이름은 채성아.
그런데 채성아를 본 강치하 변호사의 얼굴이 확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