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36화 (36/250)

<비밀스럽게 -(2)>

*

“전부 검사님의 계획이었다고 들었어요.”

이하은 기자가 수저를 착착 놓더니 서진을 향해 방긋 웃었다.

서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 계획이었다고요?”

이하은 기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임정택 수사관에게 들은 이야기를 나열했다.

-현장 검증과 동시에 대표를 긴급체포.

-한상준과 심리 싸움에서 완승.

-나머지 직원을 압박 신문했고 결국 대표가 살인을 자백.

“정말 대단하세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신 거예요?”

이하은 기자가 서진을 비행기에 태워 띄우려 했다.

하지만 그 말에 홀랑 넘어가 고개를 끄덕이면 안 된다.

이미 이하은 기자와 나란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 따끔따끔한 시선을 느끼는 중이다.

이하은 기자는 MBS의 간판 기자이며 우월한 몸매라는 연관 검색어가 따라다니는 사람.

결혼하지 않은 검사들이 술잔을 홀짝이며 질투 가득한 눈으로 서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래서.

“아뇨, 제가 뭐라고요. 선배님들의 조언이 큰 도움 됐죠. 김관용 부장검사님, 여기 계신 이명수 검사님 그리고 이소희 검사 또...”

교과서적인 대답을 입에 담았는데 맞은편에 앉은 이명수 검사가 ‘풉!’ 웃었다.

“대상 받아? 조금 더 기다리면 횟집 사장님 이름도 나오겠다?”

“네?”

“그런 거 있잖아. ‘이 상을 받기까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먼저 대표님, 실장님, 부장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인사해야 할 분이 너무 많은데.’ 하는 거.”

기자와의 대화는 하나하나가 조심스럽다.

이하은 기자가 생글생글 웃고 있어도 서진의 발언이 어떤 식으로 표현될지, 그것은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겸손을 바탕에 깔고 선배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한 거다.

그런데 이명수 검사가 ‘인터뷰 몇 번 하더니 연예인 다 됐네.’ 라는 말과 함께 낄낄거렸고 다른 검사가 ‘시상식에서 내 이름도 불러줘.’ 라며 큭큭 웃었다.

서진이 황당한 표정을 짓자 이명수 검사가 서진의 잔을 채우며 말했다.

“기자님이 이상하게 기사 쓸 분도 아니고 큰일 한 것 맞으니까 겸손 안 떨어도 돼.”

“......”

“이번에 찾은 300억, 피해자들에게 어떤 의미였을 것 같아? 사연 없는 돈 없어. 누군가는 평생 모은 쌈짓돈이었고 누군가는 자식 결혼자금이었어.”

“......”

“우리가 그 돈 찾아줬다고 인센 받는 것 아니지만 그 사람들이 오랜만에 발 뻗고 잘 수 있다는 것 생각하면 기쁘잖아? 그러니까 그 기쁨 누려.”

이하은 기자는 물론이고 주변에 있던 다른 기자들도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서진이 빙긋이 웃었다.

“그럼, 거만 좀 떨어볼까요?”

그 말에 옆에 있던 검사가 크게 웃었다.

“이명수 검사님, 멍석 깔아줬더니 기다렸다는 듯 올라가는데요?”

“내가 호랑이를 키웠어.”

이명수 검사가 서진을 향해 턱짓했다.

이제 목에 힘 좀 주라는 거다.

서진이 목소리를 다듬은 후 입을 열었다.

“선배님들의 조언이 큰 도움 됐습니다. 이명수 검사님...”

“에이! 헛소리 말고 술이나 마셔.”

그때였다.

“시작한다.”

누군가의 목소리에 모든 사람의 시선이 스크린으로 향했고 화면에 이하은 기자의 얼굴이 화면에 담겼다.

-안녕하십니까? ‘세상을 본다’ 이하은 기자입니다.

서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동생 진영에게 온 메시지다.

그런데.

-형, 큰일 났어.

서진의 눈이 찌푸려졌다.

큰일이라니.

뭔가 느낌이 싸늘하다.

서진이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살폈다.

이곳은 전화할 분위기가 아니다.

일어설 준비를 하며 다급히 메시지를 보냈다.

-무슨 일이야.

-아버지가.

찰나의 시간에 많은 생각을 했다.

아버지에게 지병이 있는지, 다른 문제가 있는지.

그 순간 이어진 메시지.

-블랙 기업이었어.

이해할 수 없는 메시지에 서진의 행동이 멈칫거렸다.

동시에 진영으로부터 동영상 메시지가 도착했다.

소리를 작게 해서 동영상을 플레이하자 누군가와 통화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 이사, ‘세상을 본다’ 보고 있어? 뭐? 내가 보라고 했잖아! 이유는 묻지 말고 그냥 봐! 강 전무한테도 연락하고.

옆에서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조용히 좀 해봐요. 지금 시작하니까.

블랙 기업이란 이유가 아들 자랑이었다.

서진이 어이없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휴대폰을 품에 넣으며 시선을 스크린으로 돌렸다.

방송의 중심은 사건이었다.

피해자들의 눈물과 사건의 재연.

돈을 빼앗기고 사람이 죽는다.

사기꾼을 향해 돌을 던지고 싶을 정도로 악랄하게 연출된 내용이다.

그리고 실시간검색에 댓글이 주르륵 올라왔다.

-악마 같은 놈들이네.

-시바 저런 새끼들은 대대손손 멸해야 해.

서진의 얼굴이 잡힌 것은 방송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동남 지청 김서진 검사입니다.

시원한 눈매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모습이 서글서글하니 꽤 잘생겼다.

화면 속 모습을 보던 서진이 미소 지었다.

서진은 금수저 물고 태어났다.

그런데 직업이 검사.

여기까지만 봐도 불공평한데 얼굴마저 이기적이라니.

‘세상 참 씁쓸하네.’

화면 속 서진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상당히 지능범이며 법을 연구한 놈들입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하지만’에서 화면이 바뀌며 갑자기 예고편이 튀어나왔다.

영화에서 볼법한 구도.

비장한 음악이 흘렀고 서진과 김관용, 이재승 부장검사가 모여 있는 장면이 보였다.

그리고 서진의 휴대폰에서 임정택 수사관의 목소리가 다급히 울렸다.

-이거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악질이라고 해야 할지.

광고로 넘어갔다.

사건의 과정과 결말을 알고 있는 검사들의 입에서도 짜증 가득한 목소리가 흘렀다.

“아, 진짜!”

“무슨 편집을 드라마처럼 하고 있어!”

원성 가득한 목소리가 방송의 성공처럼 여겨졌다.

실검 1위를 달성했다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이하은 기자가 생긋 웃으며 서진을 향했다.

“편집 잘 됐죠?”

“네, 충분히요.”

방송이 끝나며 광어와 우럭 기타 등등의 메인 회가 들어왔다.

그리고 본격적인 회식의 시작은 건배다.

서진은 다른 사람들과 잔을 부딪친 뒤 젓가락을 들었다.

이번에는 회를 배불리 먹겠다고 다짐하며 간장과 초장, 어떤 것을 찍어야 맛있을까 고민하는데.

“김서진!”

지청장이 호출했다.

서진이 자연스레 잔을 들고 일어섰는데 지청장이 손을 저었다.

“몸만 와.”

그래서 잔을 놓고 갔더니 맥주와 소주를 섞어 폭탄주를 제조하고 있다.

지청장이 직접.

“한잔 받아.”

“감사합니다.”

*

서진은 테이블 이곳저곳을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소주를 마셨다.

여기저기 부르는 사람이 많다.

이 자리의 주인공이며 막내이기 때문이다.

“연예인 맞네.”

서진을 보던 이명수 검사가 끌끌 웃으며 소주를 입에 댔다.

그리고 회 한 점을 집어 드는데 이하은 기자가 한숨을 내뱉고 있다.

“왜 그러세요?”

“네?”

이하은 기자는 서진과 대화를 나누려고 이 회식에 참여했다.

그런데 딱 보니까 기회는 없을 것 같다.

이하은 기자의 시선이 이명수 검사에게 향했다.

그래도 온 김에 서진이 정보라도 듣고 싶었다.

젊고 능력 있는 검사와 알고 지내면 자다가도 특종이 떨어진다는 소리가 있다.

잘 생기기도 했고.

“검사님?”

이하은 기자가 웃으며 잔을 내밀었다.

이명수 검사가 그녀의 건배를 받아줬고 그녀가 잔을 내려두며 물었다.

“김서진 검사요. 어떤 사람이에요?”

“서진이요? 부러운 놈이죠. 젊고 잘생겼고 실력도 좋고. 그리고 집안도 좋아요.”

이하은 기자는 아직 서진에 대해 잘 모른다.

인터뷰와 임정택 수사관에게 들은 것이 전부.

그래서 실력만 좋은 줄 알았는데.

“...집안도요?”

***

“하...”

적막한 사무실에 이소희의 한숨 소리가 울렸다.

형사 3부의 검사 한 명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다른 검사들이 그가 하던 업무를 나눠 받았고 이소희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기획부동산에 집중하며 다른 업무가 가득 쌓여있던 거다.

거기에 남의 업무까지 받았으니, 테이블 위에는 서류가 산더미였다.

딸칵.

문이 열렸다.

서류를 넘기던 이소희가 시선을 들었다.

서진이 서 있다.

“회식 끝났어? 집에 안 가고 왜?”

서진이 검은 비닐봉지를 들어 올렸다.

“맥주?”

“뭐?”

“싫으면 소주?”

이소희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너 술 많이 먹은 거 아냐?”

“많이 먹었지. 그런데.”

서진이 다른 손에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보이며 말했다.

“안주는 광어 대짜.”

광어라는 말에 이소희가 곧장 몸을 일으켰다.

“콜.”

*

“그런데 이러다 걸리면 혼나는 거 아냐?”

캔맥주가 놓였고 광어회가 푸짐하게 올라왔다.

서진이 젓가락을 손에 쥐며 답했다.

“안 걸려. 그리고 고생했는데 한잔은 괜찮잖아?”

서진이 웃으며 캔맥주를 들었고 두 사람은 가볍게 건배했다.

서진이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고생했어.”

“너도.”

여기까지는 분위기가 좋았다.

서로 동지애도 느껴지고.

그런데 잠시 후, 이소희가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야, 원수는 술이 아니라 회인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열심히 먹어? 회식 자리가 횟집이었잖아? 안 먹었어?”

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못 먹었어.”

“말도 안 돼.”

“진짜.”

정말이다.

끌려 다니며 술 먹느라 바빴다.

서진이 상추에 회를 한 점 올리고 입에 넣으며 슬쩍 웃자 이소희도 픽 웃었다.

“바보 같애.”

그렇게 둘만의 소소한 축하 파티가 끝났다.

이소희가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커피?”

“땡큐.”

서진이 테이블을 정리했고 이소희가 커피를 내렸다.

정리라고 해봤자 비닐봉지에 쓰레기를 담고 물티슈로 테이블을 닦으면 끝이다.

서진이 자리에 앉으며 테이블에 있던 태블릿PC를 손에 들었다.

방송 나간 것 댓글이나 보려고 하는데 검색창에 ‘백기호’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백기호?’

-판사 출신의 3선 국회의원.

-방송에 자주 출연하는 스타 정치인.

-예능도 가리지 않는다.

-서민적이며 소박하고 청렴한 정치인이란 이미지가 있다.

이소희가 서진의 앞에 커피를 내려뒀다.

서진이 태블릿PC를 덮으며 물었다.

“백기호를 좋아하나 봐?”

“어?”

“검색한 거 봤거든.”

서진이 태블릿PC를 가리키자 순간적으로 이소희의 얼굴이 굳었다.

하지만 그녀는 곧 평소의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실검에 있어서 검색해봤어. 정치는 별 관심 없고.”

서진은 이소희의 말과 행동에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하지만 묻지 않았다.

감추려 하는 것을 꺼내면 상처가 된다.

그리고 이소희가 몸을 기울이며 주제를 바꿨다.

“그런데 다음은 어떻게 할 거야?”

“다음이라니?”

“주어진 업무만 열심히 할 거야? 아니면?”

사건을 찾아 해결하는 스타일.

서진이 던져진 사료만 먹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의 예상대로였다.

서진이 조용히 웃었다.

“또 만들어 봐야지.”

서진이 동남군에서 세운 목표는 크게 3가지다.

-김영준 검사장의 도움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중앙에 진출한다.

-유배지의 칼잡이들과 깊은 인연을 만든다.

-그들을 서울에 보낸다.

-그리고 그 계획의 시작에 지청장이 있다.

계획을 성공시키려면 계속해서 사건을 터뜨려야 한다.

지금의 관심이 잠깐으로 끝나지 않도록 물고 또 물어뜯어야 한다.

그럼, 정치권이나 고위직의 누군가가 동남지청을 들여다볼 거다.

-말 잘 듣는 사냥개를 고르기 위해.

서진은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역으로 이용하기 위해.

“그래서.”

서진이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이소희의 앞으로 밀어 넣었다.

이소희가 종이를 펼쳤고 곧 가뜩이나 큰 눈이 더 크게 떠졌다.

“...이걸 한다고?”

“어.”

서진이 느릿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같이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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