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하게. -(5)>
***
“김서진이라고 했지?”
“네.”
동남지청, 형사 1부 부장검사가 주차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랜우드의 대표 윤기수가 수사관들에게 끌려 나오는 게 보인다.
“대책 없는 새끼네.”
영장을 받은 게 아니다.
특별한 증거가 나온 것도 없다.
그런데 긴급 체포를 통해 잡아 왔다.
“...그런데, 저러다가 해결하면 어떻게 합니까?”
들려온 목소리에 형사 1부 부장검사가 몸을 틀었다.
한 검사가 소파에 앉아 있는 게 보인다.
지난번, 형사 1부 부장검사에게 ‘가능성은 제로야.’라는 말을 들었던 그 사람이다.
부장검사가 담배를 손에 들며 물었다.
“해결하면 어떻게 하냐고?”
“네.”
“글쎄, 그럴 가능성을 생각 안 했네. 불가능하다고만 생각해서.”
기획부동산은 초토화되었고 이젠 그 대표를 긴급체포했다.
그 모든 게 김서진이란 놈의 생각이다.
놈은 뒤를 생각하지 않고 극단적으로 날뛰고 있다.
다른 사람이 저렇게 행동했다면 쌍욕을 처박았겠지만 김서진은 그동안 보여준 게 많다.
그래서 ‘어쩌면... 해낼 수도?’라는 생각이 들고 있다.
부장검사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말했다.
“다시 가져와야지.”
“가져온다고요?”
소파에 앉아 있던 검사가 깜짝 놀랐고 부장검사는 기름지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거 우리 사건이야. 넘긴 거 아니잖아? 정확히 말하면 형사 4부가 우리 일을 돕고 있는 거야. 대충 해결될 기미가 보이면 그때 슬쩍 가져오면 되는 거지.”
검사는 마른 입술을 핥았다.
정말 치사하고 더러운 계획이다.
저런 유치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동남군까지 왔는지 모르겠지만 검사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반론을 제기하면 피곤해지는 거다.
그래서 웃으며 말했다.
“대단하십니다.”
“그렇지?”
*
“...기본 구상 계획을 마치 확정된 것처럼 이야기했네요. 인정하세요?”
취조실이었다.
이소희의 질문에도 윤기수 대표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윤기수 씨? 영화나 드라마에서 뭘 봤는지 모르겠지만 묵비권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에요. 혐의를 인정하는 것으로 오인될 수도 있어요.”
“변호사는 언제 옵니까? 그때 이야기하죠.”
윤기수 대표의 첫 목소리였다.
취조실까지 끌려왔는데 떨지 않는다.
오히려 거만하다.
이소희가 윤기수 대표의 서류를 착착 넘겨봤다.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 및 조세포탈.
-범죄단체 조직 및 집단 폭행.
-사기.
-보이스 피싱.
돈이라면 뭐든 손을 대는 닳고 닿은 양아치다.
이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럼.”
서류를 덮고 일어나려는데 윤기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아가씨, 여기는 밥도 안 줍니까? 배가 고픈데. 혹시 8천 원짜리 시켜도 되나?”
검사와의 신경전에서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알리며 주도권을 쥐기 위한 행동.
주로 악질 범죄를 저지른 놈들이 이런 짓을 한다.
이소희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었지만 윤기수는 여유롭다.
다리를 외로 꼬며 입술을 핥았다.
“아가씨라는 말이 싫은가? 그럼, 여 검사님이라고 해야 하나? 아이고, 그렇게 쳐다보니까 말 한마디 하는 게 겁나네요. 그냥 그 남자 검사 불러주면 안 됩니까? 우리 회사 찾아왔던 그 멀끔한 사람.”
이소희가 양손으로 테이블을 집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눈빛은 얼음장 같지만 윤기수는 오히려 웃고 있다.
의도가 통했다는 표정이다.
이소희가 윤기수를 향해 느릿하게 몸을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여 검사? 아가씨?”
“......”
“너 같은 새끼가 뭐라 부르던 상관이 없는데, 양치 안 했지? 네 입에서 똥냄새나.”
“......!”
윤기수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이소희가 빙긋이 웃으며 허리를 폈다.
그리고.
“변호사 오면 다시 이야기하죠. 그전에 가글이라도 했으면 좋겠네요. 원하면 사다 줄 수 있는데, 사줄까요?”
***
-문이 열립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윤기수의 변호사 최장현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후 손목을 틀어 시간을 확인했다.
-4시 10분.
한숨을 낮게 내뱉은 뒤 1층을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곧장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문이 열립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스르륵 열릴 때 최장현 변호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서진의 담당이었던 이명수 검사가 앞에 서 있었다.
이명수 검사가 손을 살짝 들어 인사하며 입을 열었다.
“잠깐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는데.”
최장현 변호사가 손목시계를 보며 입을 열었다.
“편의점에서 커피 마실 시간은 될 것 같은데, 커피는 네가 사라.”
“내가 집 살 돈은 없어도 커피 살 돈은 있지.”
*
“형도 그런 새끼 변호하는 것 마음에 안 들잖아?”
편의점 앞, 파라솔이었다.
이명수 검사가 최장현 변호사의 앞에 커피를 놔두며 입을 열었다.
최장현 변호사, 그의 전직은 검사였다.
동남군으로 유배되어 몇 달 버티다가 옷을 벗고 변호사로 눌러앉은 사람.
이명수 검사의 말에 최장현 변호사가 피식 웃었다.
“마음에 안 드니까 거절하라고? 변호사 윤리장전 3장 19조 1항 몰라?”
[변호사 윤리장전 3장 19조 1항.
-변호사는 의뢰인이나 사건의 내용이 사회 일반으로부터 비난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수임을 거절해서는 안 된다.]
이명수 검사가 고개를 저었다.
“윤리장전 같은 것을 누가 지킨다고.”
“목구멍이 포도청이야. 동남군에서 그만큼 돈 많이 주는 호객님도 없어.”
이명수 검사가 최장현 변호사 앞에 담배를 슥 밀어 넣었다.
최장현 변호사가 담배를 입에 문다.
이명수 검사가 라이터를 들어 그의 담배에 불을 붙이며 부탁했다.
“오늘은 그냥 집에 가시고 지청은 내일 오면 안 될까?”
“내일?”
최장현 변호사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어서다.
이명수 검사가 담배를 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변호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야. 딱 하루만 늦추자. 애초에 지금 가면 얼굴도장 찍고 의뢰인 안심시켜주는 게 전부잖아.”
“......”
“그러니까 오늘은 쉬고 내일 가줬으면 좋겠어.”
최장현 변호사가 눈을 가늘게 뜨고 이명수 검사를 바라봤다.
“...뭐 꾸미냐?”
“어.”
“뭔데.”
“나도 잘 모르겠어. 그런데 추측을 해보면 지청장님이 이곳을 떠날 생각인 것 같아.”
최장현 변호사의 행동이 뚝 멎었다.
담배가 타들어 가는 것도 모르고 한참 동안 생각에 빠져 있다.
그러다가 느릿하니 물었다.
“지청장님이?”
“어.”
그동안 세상에 실망한 채 죽은 듯 있던 지청장이 움직인다고 한다.
그 말에 최장현 변호사가 웃기 시작했다.
“그럼 윤리장전이고 뭐고 도와야지.”
“고마워. 형.”
“고맙기는, 서울에 포탄 떨어지는 것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거잖아? 팝콘 사놔야겠네. 당황하는 새끼들 표정 보면서 팝콘이나 씹어 먹게.”
이명수 검사는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끼며 조용히 고개를 틀었다.
최장현 변호사를 만난 것은 서진의 부탁이었다.
서진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부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복잡하게 꼬인 깡치가 쉽게 풀릴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최장현 변호사가 휴대폰을 들고 주소록을 뒤졌다.
그러다가 통화 버튼을 꾹 누르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최장현입니다. 아이고 정말 죄송합니다. 장례식이 있어서요. 어차피 오늘은 할 것도 없고 내일 찾아뵙겠습니다.”
*
“하!”
기획부동산 랜우드, 윤기수 대표의 사무실.
최장현 변호사와의 통화를 종료한 한상준이 휴대폰을 거칠게 던져뒀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다.
‘장례식이 있다고?’
개소리다.
변호사가 사건을 피하려 하는 게 확 느껴졌다.
‘왜?’
돈도 많이 주는데 사건을 피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더 돈을 달라며 꼬리를 흔들어야 할 시기다.
‘그런데 왜!’
순간 한상준의 머릿속에 서진의 얼굴이 떠올랐다.
변호사가 사건을 피하는 이유가 서진 때문인 것 같다.
그 악랄한 놈이 뒤에서 뭔가를 조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말이 안 되잖아!’
아무리 검사라 해도 새파란 애송이다.
이제 막 검사가 되어 선배들 똥이나 닦고 다녀야 할 시기다.
‘그런데 어떻게!’
말이 안 되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놈이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눈과 그 태도, 이 바닥에서 십 년은 굴러먹은 것처럼 보였다.
한상준은 노트북을 열고 서진의 이름을 검색해봤다.
기사가 주르륵 나온다.
-미궁으로 빠질 뻔했던 아찔한 보험사기, 의심의 눈으로 바라본 김서진 검사.
-김서진 검사, 유아성의 원한을 해결하다.
한상준의 입술이 바짝 말라갔다.
기사가 많으니까 정말 대단한 놈처럼 여겨진다.
한상준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책꽂이로 옮겨졌다.
‘어쩌지?’
한숨을 내뱉은 한상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책꽂이로 걸어갔다.
그리고 가운데 있는 성경책을 뽑아내 펼쳤다.
성경 말씀이 아니라 대포 통장 수십 개 보인다.
피해자들의 돈을 숨겨둔 통장이다.
혹시 사기로 걸려 감옥에 가더라도 돈을 돌려주지 않기 위해 숨겨 둔 것이며 출소 후 떵떵거리며 살기 위한 보험.
통장을 쥔 한상준의 표정이 탐욕스럽게 변했다.
*
“왔어?”
동남지청, 이소희의 사무실이었다.
머그컵에 커피를 타고 있는 이소희의 옆으로 서진이 섰다.
이소희는 윤기수 대표를 취조하며 신경전을 벌이는 중이었고 지금은 잠시의 쉬는 시간이다.
“어때?”
서진의 질문에 이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밥 달라고 하더라. 변호사가 올 때까지 묵비권을 행사하시겠대.”
“오늘은 오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밥이나 시켜줘.”
“...안 온다고?”
“어. 장례식이 있어서 오늘은 못 온다고 하네.”
서진이 책상에 엉덩이를 걸쳐 앉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윤기수를 잡아 둔 이유는 한상준을 초조하게 만들기 위해서야.”
“......”
“그놈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지켜보고 집어삼키면 되는 거지.”
그때, 서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임정택 수사관이다.
-검사님, 한상준 움직였습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통화를 종료하자마자 서진의 휴대폰은 또 진동했다.
드르륵 소리가 날 때 서진이 휴대폰을 들고 귀에 댔다.
“네, 김서진입니다. 내일이요? 좋습니다.”
통화를 종료한 서진의 시선이 이소희에게 틀어졌다.
“내일 인터뷰 좀 해라. 이 사건, 아직 우리한테 넘어온 게 아니잖아.”
즉, 언제 뺏길지 모른다.
“고생만 하고 이력서에 적지도 못하면 억울할 것 같은데.”
이소희는 서진의 말을 알아들었다.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사건에 침을 발라 쉽게 뺏기지 말자는 거다.
“좋아, 그런데 어디 인터뷰야?”
“MBS에서 하는 ‘세상을 본다’ 알지?”
“어?”
‘세상을 본다’, 20년째 방영되는 시사 프로그램이다.
미제 사건이나 성역 없이 정치권을 꼬집는 방송으로 논란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
시청률도 5~6%가 나올 정도로 인지도가 꽤 큰 방송.
“...거기서 인터뷰한다고?”
이소희는 기껏해야 지방 신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공중파라니.
서진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신입사원들 물 먹이지 말라고 지청장님이 연결해줬대.”
사건을 맡기 전이었다.
서진은 지붕 쳐다보는 개가 되고 싶지 않으니 안전장치를 마련해 달라고 김관용 부장검사에게 요청했었다.
그 결과 지청장이 움직였고 공중파 시사 프로그램의 인터뷰가 들어왔다.
서진은 눈을 깜빡이는 이소희를 보며 입을 열었다.
“뭐, 그렇게 됐어. 그리고 나 잠시 나갔다 올게. 고생 좀 하고 있어.”
“또 어디 가려고?”
“잠깐 확인할 게 있어서.”
몸을 일으킨 서진이 손을 흔들며 사무실을 벗어났다.
***
밤 10시.
서진은 펜션 앞에 차를 주차했다.
늦은 밤의 공사 현장이었고 그것도 산속, 세상은 적막했다.
서진은 트렁크에서 삽을 꺼내 어깨에 짊어진 후 산을 올랐다.
발소리만 저벅, 저벅 들리는 가운데 윤기수 대표가 삽질했던 호두나무 앞에 섰다.
‘여기였나?’
주변을 둘러보던 서진은 삽을 푹 찔러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삽 끝에 단단한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돌은 아니고.’
흙을 긁어내자 원형 말 통, 즉 페인트 통이 보인다.
서진은 플래시로 페인트 통을 비추며 낮은 한숨을 내뱉었다.
윤기수 대표는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 하는 악질이다.
페인트 통 안에 뭐가 있든 놀라지 말자.
훼손된 시체 또는 그 이상의 것이 있더라도.
서진은 페인트 통을 끄집어낸 뒤 뚜껑을 열었다.
놀라지 않겠다고 그렇게 다짐했는데 서진의 눈이 부릅떠졌다.
“와씨!”
신사임당, 5만 원이 수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