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하게. -(4)>
“검사? 김서진 검사라고요?”
“네.”
랜우드 대표의 눈이 부릅떠졌다.
검찰이 회사를 들쑤시며 공사는 중단되고 업무가 마비됐다.
직원들이 겁을 먹고 일을 못 한다.
그 중심에 있는 게 김서진 검사다.
대표는 서진의 멱살을 잡고 욕이라도 한 바가지 내뱉고 싶었다.
그때였다.
“먼 길 오셨는데 앉으세요.”
느긋한 목소리가 들렸고 서진의 눈동자가 그곳을 향해 천천히 기울어졌다.
사십 대 초반의 남자가 소파에 앉아 있는 게 보인다.
한상준, 기획부동산 랜우드의 브레인.
그가 미끈한 얼굴로 자신의 맞은편 소파를 가리키고 있다.
“앉으세요.”
서진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그쪽이 한상준 씨?”
“아, 제 이름도 알고 계셨습니까? 영광입니다. 하하.”
“영광은... 검사가 범죄자 이름 아는 것은 당연한 거지.”
갑작스러운 반말에 한상준의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순간이었다.
슬쩍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커피 드시겠어요?”
잠시 후, 테이블에 커피가 석 잔 놓였고 조용히 있던 대표도 엉거주춤 자리했다.
그런데 서진은 대표에게는 눈짓조차 주지 않았다.
살벌한 눈으로 한상준만 쏘아보고 있다.
한상준이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입을 열었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영장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영장?”
“네.”
“푸하하하하!”
서진이 크게 웃었다.
예의라고는 밥 말아 먹은 건방진 태도에 대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이빨을 빠득 갈며 입을 열었다.
“검사님 왜 그렇게 웃으시는 겁니까?”
“아, 미안해요. 난 양아치 새끼들이 거물인 척 여유 부리는 거 보면 같잖거든요. 그러니까 그쪽이 양아치라는 거지. 어? 기분 나빴나? 그럼, 양아치를 뭐라 불러야 하지? 개새끼? 소 새끼? 그럼, 개나 소한테 미안하잖아?”
대표의 얼굴이 벌게졌고 지금껏 여유를 잃지 않으려던 한상준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었다.
서른도 안 된 놈이 검사라는 완장을 찼다고 유세를 떠는 게 재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진의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서진이 한상준을 향해 몸을 기울이며 말을 이었다.
“양아치를 뭐라 불러야 할지는 천천히 생각해 보기로 하고. 자, 맞춰봐. 내가 왜 왔을까?”
“공사 현장에는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서진이 한상준의 눈동자를 또렷이 보며 다시 물었다.
“아, 살인의 흔적은 이미 다 정리했다?”
한상준은 마른 입술을 핥았다.
서진의 눈빛이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서다.
하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자신의 논리를 펼쳤다.
“우리는 죽이지 않았습니다. 혼자 술 먹고 혼자 취하고 혼자 욕하다가 굴러떨어진 거죠. 도의적인 책임을 느꼈고 조의금 두둑이 넣었습니다.”
“사고 당일, 고인의 카드를 보면 자동차에 기름을 넣은 게 전부야. 소주는 산 적이 없지.”
“집에서 들고 왔나 보죠.”
“유가족의 증언에 따르면 소주를 쟁여두는 스타일은 아니라고 그랬어.”
“글쎄요. 그 사람이 어디서 어떻게 소주를 구했는지도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합니까?”
“마트 주인은 너희 직원이 술을 사서 올라갔다는데?”
“가끔 점심에 반주로 먹습니다.”
서진이 웃으며 손뼉을 짝 쳤다.
그리고 소파에 등을 기대며 말을 이었다.
“오케이. 이게 궁금했던 것은 아니고. 그 야산이 개발된다는 정보를 어디서 얻었지?”
“몇 번이나 소명했습니다.”
“알아. 그런데 어제 일어난 사건이라 생각하고 처음부터 다시 확인하는 중이야. 그러니까 친절히 대답해줬으면 하는데.”
“처음부터 확인해도 바뀌는 것은 없을 겁니다. 우리는 정당한 투자를 권했고...”
“잠깐만, 그런데 혹시 나 몰라?”
“네?”
갑작스러운 질문에 한상준이 눈을 가늘게 뜨고 서진을 바라봤다.
어디서 만난 적이 있는지 떠올려 보는 거다.
그러다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는데요.”
“자매 살인, 유아성 살인 그리고 며칠 전에 위준상 의원 뇌물 먹은 사건. 그거 다 내가 한 거야.”
서진이 빙긋이 웃었다.
서진이 자신의 업적을 떠벌리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일부러 이야기하는 거다.
자신을 과장되게 포장하고 반말을 하며 상대의 감정을 건들고 있다.
한상준을 초조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예상대로 한상준의 눈동자가 흔들렸고 서진의 목소리는 낮아졌다.
“최선을 다해서 숨기고 변명해야 할 거야. 그렇지 않으면 올해도, 내년도 감옥에 있을 거야. 내가 그 정도 능력은 있거든.”
“그 능력 정말 궁금하네요.”
“허세 부리지 마. 곧 알게 될 거야. 그러니까 일단, 부동산 정보나 가져와 봐.”
한상준이 일어섰다.
그리고 부동산 정보를 꺼내기 위해 책꽂이로 향했다.
몇 개의 서류를 툭툭 꺼내던 한상준이 입술을 잘근 씹었다.
‘그게 이놈이었어?’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동남군에서 미제 사건이 해결되고 군 의원이 뇌물을 받고.
하나같이 복잡한 사건이었다.
그걸 해낸 검사가 앞에 앉아 있다.
유능한 것은 물론이고 운도 좋다.
괜히 찝찝하다.
‘젠장.’
한상준이 낮게 한숨을 내뱉은 뒤 꺼낸 서류를 서진의 앞에 올렸다.
“이겁니다.”
서진의 시선이 서류로 향했다.
-동남군 장기종합개발계획.
-친환경 해양 도시 개발에 관한 기본 구상.
-관광도시를 위한 임야 개발계획.
“동남군이 직접 조사한 것도 아니고 용역업체에 의뢰해서 작성된 용역보고서잖아. 그리고 제목만 봐도 ‘계획’, ‘구상’ 확정되지도 않은 것을...”
“공격적인 투자는 소문이 돌 때 하는 겁니다. 이런 것을 과장 광고라고 하면...”
“예정도 아닌 것을 확정된 것처럼 허위 광고를 했잖아?”
“일반적인 관행입니다.”
“그건 그쪽 생각이고. 난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네?”
한상준의 인상이 찌푸려질 때다.
서진의 시선이 대표에게 옮겨졌다.
“갑시다.”
조용히 있던 대표는 서진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게 전부였다.
순간 서진의 목소리가 찌르듯이 이어졌다.
“윤기수 씨, 당신을 살인 그리고 사기 혐의로 체포합니다.”
“뭐, 뭐요? 체포?”
대표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검사면 다야!”
하지만 서진은 그의 목소리를 신경 쓰지 않았다.
휴대폰을 귀에 대고 조용히 입을 연다.
“들어오세요.”
동시에 사무실의 문이 벌컥 열리고 수사관들이 들어왔다.
서진이 대표를 향해 턱짓했다.
“이 사람입니다.”
수사관들이 대표의 양팔을 잡았다.
당황한 대표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른다.
“다, 당신들 뭐야! 뭐냐고! 내가 누군지 알아!”
하지만 수사관들은 대표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질질질 밖으로 끌어냈다.
정신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벌어진 소동.
그제야 정신을 차린 한상준이 살기 가득한 눈으로 서진을 노려봤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긴급체포하는 거야.”
[형사소송법 200조의 3. 긴급 체포.
검사 또는 사법 경찰관은 사형,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가 있다고 의심될 때 영장 없이 피의자를 체포할 수 있다.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을 때.
-도망 또는 도망할 염려가 있을 때.
-48시간 동안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다.]
“48시간. 난 그 안에 구속 영장을 받아낼 테고 이 사무실부터 압수 수색할 거야. 그럼 뭐라도 나오겠지. 검사가 이렇게 이 악물고 덤비는데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아?”
“......”
“그리고 정말 궁금한 게 있어. 너희들 대표가 조사 과정에서 무슨 말을 할까? 딱 보니까 한 성격하는 것 같은데 욱해서 아무 말 대잔치를 열 것 같지 않아? ‘내가 죽였다.’거나 또는 ‘그래, 사기였다.’라고 하거나.”
한상준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고 얼굴에는 초조함이 가득하다.
대표를 믿지 못하는 거다.
서진이 말대로 욱하는 성격으로 사건을 망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다.
한상준의 표정을 살피던 서진이 조용히 웃었다.
계획대로 되어가는 중이다.
-한상준은 초조하다.
-사건을 처음부터 생각하며 더 완벽하게 증거를 인멸할 거다.
-이제 서진은 그 과정을 지켜보면 된다.
서진이 그 옆을 스치며 대표의 책상으로 느릿하게 걸어갔다.
가볍게 서랍을 열어봤지만 달리 중요한 것은 없어 보였다.
보이는 것은 호두 두 개.
서진이 호두 두 개를 손에 쥐고 한상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만 포기했으면 좋겠어. 그럼, 서로서로 쉽게 갈 수 있잖아.”
서진은 계속해서 한상준을 자극하며 주먹에 쥔 호두를 굴렸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세상이 색을 잃었다.
*
“아, 오늘 늦어. 그러니까 먼저 자. 내가 매일 술 먹어? 일이라고. 일!”
한밤중이었다.
랜우드의 대표 윤기수가 운전하고 있었다.
자동차는 SUV.
그런데 도로를 달리는 게 아니다.
산길을 오르고 있다.
“됐어. 잠이나 자. 끊어.”
윤기수 대표가 조수석에 휴대폰을 집어 던지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씨발, 노는 줄 아나.”
윤기수 대표가 도착한 곳은 펜션 공사 현장이었다.
그런데 밤 11시가 훌쩍 넘었다.
당연히 일꾼들은 모두 퇴근했고 인기척은 어디에도 느껴지지 않는다.
어둡고 조용한 산속에서 윤기수 대표는 끌끌 웃었다.
잠시 후, 윤기수 대표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차에서 내렸다.
이어진 그의 행동이 익숙하다.
군용 후레시에 붉은색 필터를 장착 후 트렁크를 열었다.
그러자 2, 3열이 접힌 넓은 공간이 드러났고 원형 말 통이라 불리는 큰 페인트 통이 여러 개 보였다.
윤기수 대표가 페인트 통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펜션 건물을 지나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갔다.
약 10분 후, 윤기수 대표가 멈춰 섰다.
일부러 심어둔 것 같은 호두나무가 대여섯 그루 보인다.
그곳을 죽 둘러보던 윤기수 대표가 삽을 손에 들고 땅을 푹푹 파기 시작했다.
그렇게 무릎 높이까지 땅을 파더니 이번엔 들고 온 페인트 통 하나를 묻는다.
그리고 그 옆을 또 파고 있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하자 들고 온 페인트 통이 모두 땅속에 묻혔다.
윤기수 대표가 기분 좋은 얼굴로 땀을 씻어냈다.
“이제 안심이네.”
*
세상이 색을 찾았다.
서진의 손에는 호두가 보였다.
‘뭐지?’
방금 본 흑백의 세상.
윤기수 대표는 한밤중에 산을 올라 땅을 파고 페인트 통을 묻었다.
그런데 그 통에 페인트가 있지는 않을 거다.
‘뭐가 있는 거지?’
훼손된 시체?
어쩌면 마약?
그것도 아니면 정말 페인트?
윤기수 대표는 사기를 치고 사람을 죽였다.
돈이 된다면 뭐든지 하는 나쁜 놈.
그래서 그 통에 뭐가 들어 있을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정당한 투자 회사입니다.”
서진의 생각을 멈춘 것은 한상준의 목소리였다.
고개를 틀자 결의 가득한 표정으로 서진을 보고 있다.
한번 해보자는 얼굴이다.
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네. 편히 갔으면 했는데.”
*
“지금부터 한상준 쫓아 주세요. 30분 안으로 움직임이 있을 거예요.”
서진은 차에 오르며 임정택 수사관과 통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상준의 껌딱지가 되겠다는 호언장담을 들으며 통화를 종료했다.
하지만 바로 시동을 걸지 않는다.
주소록에서 이소희의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윤기수 대표 곧 도착할 거야. 살인은 접어두고 기망에 대한 것만 파고들어. 욱하는 성격이 있으니까 잘 이용하고. 참고인으로 경리부터 전 직원을 호출해. 압박 카드로 쓸 수 있을 거야. 어, 나도 금방 갈게.”
이어서 실무관에게 전화를 걸어 지시를 끝내고 나서야 모든 통화가 종료됐다.
서진의 시선은 휴대폰 화면으로 옮겨졌다.
-오후 4시.
밤이 되면 펜션 뒤 호두나무가 있는 곳으로 찾아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