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25화 (25/250)

<친구. -(9)>

*

“몇 살이냐?”

“스물 셋이요.”

동남군 터미널 근처의 모던 바.

위스키를 마시며 앉아 있던 박상영 부장이 바텐더를 보며 히죽 웃었다.

“남자 친구는?”

“있어요.”

“있을 것 같은데?”

“그럼 없고요.”

바텐더의 목소리는 쌀쌀했다.

이제 막 가게 문을 열고 테이블을 닦던 중이다.

그런데 만취한 놈이 들어와 치근덕대고 있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박상영 부장이 담배를 물자 바텐더가 그 앞에 라이터를 놓았다.

박상영 부장이 불을 붙이며 말했다.

“그럼, 오빠는 어때?”

“네?”

“오빠가 원래 이런 곳에서 여자 꼬시고 그런 사람 아닌데, 넌 좀 예쁘게 생겨서 이러는 거야. 오빠 어때?”

“하하.”

바텐더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박상영 부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기 일하면서 얼마 받아? 시간당 만 원? 2만 원?”

“손님? 지금 하신 말씀은...”

바텐더의 목소리에 찬바람이 불었지만 박상영 부장은 상관 않고 주섬주섬 지갑을 꺼냈다.

그리고 백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을 테이블 위에 턱 올려두며 입을 열었다.

“오빠한테 뽀뽀해주면 이거 줄 게. 사귀는 기념으로 받아. 적어? 그럼 한 장 더 꺼내줄까? 뽀뽀 한 번에 이백만 원. 괜찮은 장사 맞지?”

그때였다.

“박상영 씨?”

바텐더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뒤에서 들린 낯선 목소리에 박상영 부장이 고개를 틀었다.

깔끔한 정장을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박상영 부장이 눈을 게슴츠레 뜨고 그 여자를 바라봤다.

이소희였다.

그녀가 박상영 부장을 체포하기 위해 수사관 두 명과 함께 이곳에 나타났다.

그런데, 박상영 부장은 그녀가 검사인 것을 모르고 헛소리를 내뱉었다.

“와씨, 시골 바닥에 존나 예쁘...”

“당신을 형법 133조, 뇌물 공여 혐의로 체포합니다.”

“뭐?”

그 말과 동시에 이소희의 양옆에 섰던 수사관 둘이 다가가 박상영 부장의 양팔을 꽉 잡았다.

박상영 부장이 황당한 표정으로 양옆의 수사관을 바라봤다.

“너, 너희들 내가 누군지 알아?”

이소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 변명의 기회 그리고 체포구속적부심을 법원에 청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야!”

박상영 부장의 입에서 술 냄새가 확 퍼졌다.

대낮부터 위준상 의원과 술을 마셨기 때문이다.

사리분별을 못하고 검사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다.

“내가 누군지 아냐고!”

이소희가 머리를 쓸어 넘기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서늘한 눈으로 박상영을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누군지 알아야 하나?”

*

지청 앞으로 승합차가 멈춰 섰다.

내린 것은 이소희와 수사관 그리고 술에 취한 박상영 부장이다.

수사관들이 박상영 부장을 질질 끌고 올라갈 때, 이소희가 고개를 들어 계단 위를 바라봤다.

서진이 계단을 걸어 내려오고 있다.

“어디가?”

“잠시 서울.”

이소희가 손목을 틀어 시간을 확인했다.

저녁 6시 30분이다.

이소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내일 오후에는 들어올 거야. 그러니까 그때까지 위준상 의원도 좀 부탁해.”

“어?”

“그리고...”

서진이 질질 끌려가는 박상영의 뒷모습을 힐끗 본 후 이소희의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저놈 원하는 대로 해줘. 원하는 대로 안 될 테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럼, 부탁해.”

서진은 더 설명하지 않고 이소희를 스친 후 주차장으로 바삐 달렸다.

이소희가 서진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봤다.

‘원하는 대로 해주라고?’

*

“변호사 오기로 했으니까 그때 이야기합시다. 아오! 술이 안 깨네.”

박상영이 물을 벌컥벌컥 마신 후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시선을 앞으로 옮겼다.

이소희가 앉아 있는 게 보인다.

박상영이 끌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검사님. 난 잘 못 없어요. 확인해 보세요. 정당하게 후원금 냈고 신고도 했으니까.”

“위준상 의원이 자백했어요. 후원금 외에 스크린 골프장에서 주고받은 박스가 있던데요.”

“그거 사과입니다. 안동 사과! 안동 갔다가 사과가 맛있다 해서 사왔어요! 선물도 못 해요?”

“박스는 사과, 하지만 내용물은 세종대왕이라고 들었어요.”

“봤습니까? 그 안에 뭐가 있는지 눈으로 봤냐고요! 그래, 진실을 말해 줄까요? 그 안에 강아지 한 마리 들어 있었습니다! 그게 진실이에요!”

“박상영 씨!”

“강아지 있었다는 것은 안 믿으면서 세종대왕 들어 있던 것은 어떻게 믿어요? 아니면 위준상 그 인간 말만 듣고 나를 죄인으로 만드는 거예요? 무죄추정의 원칙? 그런 것은 다 죽었나?”

박상영 부장이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아무리 술이 덜 깼어도 검찰에 끌려왔는데 당당함을 넘어 건방지게 행동하고 있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다.

박상영이 손을 쭉 내밀더니 거만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전화 한 통 씁시다.”

느물거리는 얼굴을 보면 어떤 것도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소희의 머릿속에 서진이 했던 말이 스쳤다.

-저놈 원하는 대로 해줘. 원하는 대로 안 될 테니까.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서진의 말을 따르고 싶었다.

이소희가 박상영의 앞에 휴대폰을 건넸다.

박상영이 웃으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아, 윤환아. 나야. 나 지금 검찰에 끌려왔어. 야, 요즘 검찰은 증거도 없이 사람을 잡아 놓고 이러냐? 바빠 죽겠는데 미쳐버리겠네. 그래서 말인데 네 아버지한테 말 좀 해주면 안 될까? 다음 주에 우리 아버지가 한번 뵙고 싶어 하던데... 네?”

실실 웃던 박상영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휴대폰을 쥔 손이 바르르 떨렸고 잔뜩 겁먹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거, 검사장님? 죄, 죄송합니다.”

박상영의 얼굴에 방금까지 건방졌던 표정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온몸이 파들파들 흔들렸고 목소리는 한없이 공손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빛이다.

***

“어쩐 일이야?”

조금 전, 김영준 검사장의 집.

서초구에 있는 단독주택이다.

마당을 지나 현관에 들어선 서진이 김영준 검사장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가 바로 하며 입을 열었다.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들어와.”

김영준 검사장이 손짓했고 서진은 거실로 향했다.

두 사람이 마주 앉자 집안일을 도와주는 아주머니가 차를 내왔다.

작은 어머니는 어디 갔는지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다.

김영준 검사장이 찻잔을 손에 쥐며 무심한 눈으로 서진을 바라봤다.

서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윤환이 형은 왔습니까?”

동시에 계단에서 김윤환이 내려오며 입을 열었다.

“서진이 왔냐? 오랜만이다.”

잠을 자고 있었는지 머리가 부스스하다.

소파에 앉은 김윤환이 서진을 향해 고개를 틀었다.

“휴가야? 미제 사건도 해결하고 스타 됐더라?”

“운이 좋았지.”

“야, 부럽다. 그런 운 있으면 형도 좀 주고 그래라. 맨날 잡범만 보고 있으니까 좀이 쑤셔.”

대화는 화기애애하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벽이 느껴진다.

잠시만 말을 하지 않아도 얻어지는 서먹함과 불편함.

그것을 깬 것이 김영준 검사장이었다.

“그래,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서진이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리고 말없이 지동민 검사와 박상영 부장의 대화 녹취 파일을 찾아 재생 버튼을 눌렀다.

박상영 부장의 목소리가 흘렀다.

-형이 윤환이한테 꼬리 치는 이유가 딱 하나잖아? 동남군 떠나고 싶은 것. 내가 잘 이야기해줄 게. 알지? 나랑 윤환이랑 친한 거. 걔 요즘에 자기 팀 만드는 것 같더라.

김윤환의 행동이 멈칫거렸다.

분노 가득한 눈이 서진을 향한다.

“야...”

서진은 김윤환을 신경 쓰지 않고 김영준 검사장을 바라봤다.

“윤환이 형의 친구 박상영입니다. 지금 지역 군 의원에게 뇌물을 증뢰한 죄로 잡혀 있죠. 그런데, 윤환이 형을 협상의 거래 조건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뭐라?”

“윤환이 형은 검사장의 아들이며 현직 중앙지검 검사. 괜찮은 빽이죠.”

김윤환은 귀까지 벌게진 상태로 서진을 노려보고 있다.

눈빛으로 서진을 씹어 삼킬 것 같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상관하지 마.”

하지만 서진은 멈추지 않았다.

김윤환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김영준 검사장만 보며 입을 열었다.

“윤환이 형이 정이 많아서 그런지 박상영 같은 양아치를 떼어 내지 못하더라고요. 계속 연락할까 걱정됐습니다. 그래서 일부로 작은 아버지를 찾아왔어요.”

“......”

“우린 가족이잖아요.”

그 말을 끝으로 서진이 김윤환을 향해 고개를 틀었다.

그리고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김윤환에게는 가증스럽게 보였을 미소다.

“야, 내가 양아치를 만나든 그지 새끼를 만나든...”

“그만.”

김영준 검사장의 낮은 목소리에 김윤환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김영준 검사장의 시선이 천천히 그를 향해 틀어졌다.

해명하라는 눈빛에 김윤환이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아, 아버지...”

“내 이름을 팔고 다녀?”

“그, 그게 아니고요.”

“팀은 또 뭐야? 네까짓 게 벌써 사조직을 만들고 있어?”

금방이라도 폭력이 이뤄질 것 같은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드드득! 김윤환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그런데 발신번호가 박상영이다.

‘젠장!’

검찰에 잡혀 있다는 놈이 전화를 했으면 어떤 내용인지 안 봐도 뻔하다.

김윤환은 입술을 꽉 깨물며 서둘러 휴대폰을 뒤집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김영준 검사장은 적힌 이름을 봤다.

“받아. 모두가 들을 수 있게.”

“네?”

“받으라고!”

벼락같은 호통에 김윤환이 움찔거렸다.

이제 어쩔 수 없다.

받아야 한다.

김윤환은 박상영이 제발 입 닥치고 있기를 기도하며 스피커폰을 눌렀다.

하지만 기도와 달리 박상영의 혀 꼬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윤환아. 나야. 나 지금 검찰에 끌려왔어. 야, 요즘 검찰은 증거도 없이 사람을 잡아 놓고 이러냐? 바빠 죽겠는데 미쳐버리겠네.

완벽하게 검찰을 무시하는 말투.

김영준 검사장의 윗입술이 꿈틀댔다.

-그래서 말인데 네 아버지한테 말 좀 해주면 안 될까? 다음 주에 우리 아버지가 한번 뵙고 싶어 하던데...”

“나다.”

-네?

김영준 검사장의 낮지만 살벌한 목소리에 박상영은 대답하지 못했다.

김영준 검사장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

“박상영이라고? 내가 네 애비를 왜 만나야 하지?”

-거, 검사장님.

“너희 회사, 곧 압수수색이 시작될 거야. 어디까지 뇌물을 처먹였는지 확인할 수 있겠지. 자금은 동결되고 업무는 마비될 거야. 지금까지 숨겼던 비리가 언론에 드러날 거야.”

-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박상영의 목소리가 간절했다.

하지만 김영준 검사장의 목소리는 싸늘하다.

“알아서 자백하고 몇 년 살다 나와. 쓸데없이 이상한 소문 흘리지 말고. 그럼, 네 애비는 오늘처럼 내일도 회사를 운영할 수 있을 거야.”

김윤환에게 불똥 튀지 않게 하란 엄포.

박상영 부장은 알아들었고 꼬리를 말았다.

-...알겠습니다.

김영준 검사장이 종료 버튼을 누른 후 날카로운 시선으로 앞을 바라봤다.

김윤환이 앞으로 혼날 것을 예상하며 허옇게 질린 얼굴로 앉아 있을 때, 김영준 검사장이 시계를 풀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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