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3)>
“형, 저기 봤어? 우리 오는 거 보니까 후다닥 커튼 치잖아? 요즘 애들은 이런 곳에서 노는 거야? 좋네, 스릴 넘치고.”
“요즘 애들은 이런데 안 올 걸? 예전에 유행하던 거 아냐? 80년대.”
커튼 밖에서 박상영과 지동민 검사의 낄낄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진이 이소희를 향해 눈짓했다.
“쉿.”
이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누르고 있는 서진의 손을 툭툭 건드리며 속삭였다.
“알았으니까 치워.”
목소리가 냉랭하다.
“아. 미안.”
서진이 손을 치웠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고개를 들지는 않았다.
이곳을 설명하자면 호프집의 불편한 나무 좌석에 커튼이 달린 것 같은 공간이다.
커튼이 쳐져 있어도 그 높이가 낮다.
어떻게든 이쪽의 얼굴을 보려면 볼 수 있을 높이,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서진은 커튼을 살짝 열고 그 사이로 박상영과 지동민 검사의 움직임을 확인했다.
두 사람은 서진과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있다.
어떤 비밀 이야기를 나누려는지 커튼까지 친다.
서진이 바로 앉으며 속삭였다.
“잠깐만. 뒷 좌석에 휴대폰 좀 놓고 올 게.”
“휴대폰?”
서진이 휴대폰을 꺼내더니 비행기 모드로 전환 후 녹음 어플을 꾹 눌렀다.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녹음하겠다는 뜻.
이소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술을 움직였다.
“조심해.”
서진은 박상영, 지동민 검사가 앉은 곳으로 향했다.
그때 놈들이 앉은 자리, 그곳의 커튼이 확 걷어지며 박상영이 튀어나왔다.
“화장실 좀 다녀올 게.”
서진은 박상영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순간적으로 서진의 얼굴이 굳었다.
회색 정장, 양아치처럼 생긴 얼굴의 박상영이 삐뚤어진 눈으로 서진을 바라본다.
서진은 그의 눈을 피했고 박상영은 서진을 신경 쓰지 않고 화장실로 향했다.
다행히 박상영은 서진의 얼굴을 모르고 있었다.
“하...”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그들이 앉은 뒷좌석에 휴대폰을 숨겨두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10m 정도를 이동한 것이 전부인데,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
긴 한숨을 토해내며 커피를 벌컥벌컥 마시는데 이소희가 커피 잔을 내려두며 물었다.
“만약에 튀어나온 사람이 박상영이 아니라 지동민 검사님이었다면 어떻게 하려고 그랬어?”
“너랑 사귄다고 말하려고 그랬지. 여기, 커플들 오기에 딱 좋은 곳이잖아.”
“믿겠어?”
“글쎄.”
이소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과자를 집어 먹었다.
긴장되는 순간에도 정말 무던한 얼굴이다.
그녀가 손을 툭툭 털며 물었다.
“그런데, 저 두 사람이 여기에 올 것 알고 있었어?”
지청 근처에도 커피숍이 많은데 굳이 이곳까지 이소희를 끌고 왔다.
그런데, 두 사람이 딱 들어왔으니 이상할 수밖에 없다.
서진은 부정하지 않았다.
“낮에 지동민 검사가 전화하는 것 들었어.”
기가 막힌 타이밍이고 우연스러운 일, 이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럭키 가이? 난 실력인 줄 알았는데...”
“운도 좋고 실력도 있다고 하자.”
“그건 잘난 척이고.”
그게 끝이었다.
서진과 이소희는 어떤 대화도 없었다.
커피를 입에 대며 간간히 커튼 사이로 보이는 밖의 상황을 이야기할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지동민 검사와 박상영이 떠났다.
서진은 곧장 휴대폰을 회수했고 다시 이소희와 마주 앉았다.
“여기서 듣기는 조금 애매한데, 다른 곳으로 이동할까?”
커피숍은 조용하다.
녹취한 대화를 듣기에 좋은 장소는 아니다.
이소희가 작은 가방을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치킨?”
“또 먹어?”
“치킨 배는 따로 있는 거야.”
*
“이어폰이 있었네.”
호프집이었다.
서진이 이어폰을 꽂고 한 쪽을 건네자 이소희가 ‘풉’ 웃었다.
“이럴 거면 커피숍에 있었어도 되잖아?”
“그러게. 뭐 동기끼리 마셔 본 적 없잖아? 겸사, 겸사라고 생각하자.”
이소희가 고개를 끄덕였고 서진은 휴대폰을 조작했다.
그리고 서진은 물론 이소희의 얼굴에서도 웃음기가 사라졌다.
진실은 아름답지 않고 추악하다.
벌어지는 상황에 따라 지동민 검사의 손에 수갑을 채울 수도 있다.
“준비됐어?”
“어.”
이소희의 목소리를 들으며 서진은 녹음 파일을 툭 눌렀다.
-지동민 : 조심해. 수사 대상에 올랐어.
서진의 눈이 찌푸려졌다.
예상대로 지동민 검사는 수사 정보를 흘렸다.
이제는 지동민 검사가 사건에 관여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서진은 턱을 매만지며 계속 집중했다.
-박상영 : 나를? 검찰이 왜?
-지동민 : 혹시 공무원한테 돈 뿌린 것 있어?
-박상영 : 있지, 많지. 사업하면 공무원 뒷주머니에 돈도 찔러주고 뭐 그런 거지. 그래야 일처리가 빨라지니까. 그게 내 문제인가? 공무원들 문제지. 뭐, 어쨌든. 그것 때문에 나를 수사하는 거야?
박상영의 목소리엔 불만이 가득했지만 지동민 검사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지동민 : 강원 도시 공사가 갑자기 사업을 반납했어. 그리고 너희가 드라마틱하게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됐지. 어떻게 된 거야? 누구한테 뭘 먹였어?
-박상영 : 하... 군 의원 만나서 옆에 여자도 앉혀주고 돈도 좀 줬다. 이것으로 모자라? 그럼, 술은 뭘 마셨고 안주는 뭘 먹었는지 까봐?
-지동민 : 야!
-박상영 : 됐고. 앞으로 검찰에서 뭘 터는지 연락 줘. 그럼, 다음 인사 명령 때 동남군을 벗어나게 해줄 게. 표정이 왜 그래? 내가 모르는 줄 알았어? 형이 윤환이한테 꼬리 치는 이유가 딱 하나잖아? 동남군 떠나고 싶은 것. 내가 잘 이야기해줄 게. 알지? 나랑 윤환이랑 친한 거. 걔 요즘에 자기 팀 만드는 것 같더라. 그 팀에 들어가면 동남군은 바이, 바이야.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의 대화는 끝났다.
박상영은 일어났고 커피숍을 벗어났다.
서진이 음성 파일을 종료하며 이소희를 바라봤다.
그러자 이소희가 이어폰을 빼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상황인지 대략 이해가 되네.”
지동민 검사는 동남군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
빽 없고 돈 없는 그에게 유일한 라인이 김윤환인 것 같다.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일 거다.
이소희가 말을 이었다.
“어쨌든, 군 의원이라고 그랬지? 그쪽을 알아보면 될까?”
“아니, 군 의원도 정치인이야.”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기초의원만 되어도 엄청난 권력을 갖는다.
서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정치인을 칠 때의 정석은 외곽부터 도려내는 거지. 기초의원이라 해도 국회의원을 잡는 것처럼 접근해야 해.”
서진이 휴대폰으로 동남군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조직도를 살폈다.
그리고 한 이름을 가리켰다.
“이 사람이 적임자네. 환경 관광 개발 과장 박범균. 여기서부터 파기로 하고... 그렇다고 군 의원을 내버려 둘 생각도 없어.”
“그럼?”
“잠시만.”
생각에 빠졌던 서진이 느릿하니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하자. 네가 개발 과장을 만나봐. 물론 남들 시선을 피해서 조용히.”
“조용히?”
“주차하다가 사고 냈다고 전화하면 혼자 나올 거야. 그렇게 만나서 조용히 압박.”
“그럼, 넌?”
“네가 개발 과장을 만나고 그래서 소스가 있다면 곧바로 군 의원을 만나볼 게. 물론 조용히.”
군 의원 만난다는 소리를 동네 친구 만나듯이 한다.
누가 보면 10년 차 검사인 줄 알겠다.
“너 가끔 이상해.”
***
“윤정이라고 했지? 오늘부터 오빠라고 불러.”
“네?”
“집이 원주라며? 나도 그쪽 출신이야. 그러니까 고향 오빠다 생각해.”
며칠 후, 삼겹살 가게.
동남군의 오케스트라 회식 자리, 가게를 통째로 예약했고 여기저기 고기 굽는 소리가 지글지글 들려왔다.
다들 먹고 마시는 즐거운 분위기.
그런데, 위준상 군 의원이 앉은 상석의 공기는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위준상 의원이 여성 단원을 옆에 앉히고 성희롱에 가까운 말을 내뱉고 있기 때문이다.
“오빠라고 해봐. 어서, 오빠.”
하지만 아무도 그를 제지하지 못한다.
어색하게 웃으며 술잔만 기울이고 있다.
이유는 위준상 의원이 이들의 갑이기 때문이다.
오케스트라의 운영권은 군청이 아닌 군 의회에 있고 이들은 계약직이다.
게다가 위준상 의원은 자치행정 위원회의 상임 위원장.
그의 비위를 맞추지 못하면 오케스트라의 예산이 대폭 삭감되는 게 당연하다.
즉, 위준상 의원이 이들의 밥그릇을 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역시 고향 동생이 예쁘네. 종종 만나서 밥이나 먹을까? 술 좋아해? 오빠가 사줄 게. 전화 번호 줘봐.”
윤정이라는 여성은 오케스트라에 들어온 지 2년 차, 33세로 미혼모다.
집에 6살 아이가 있는데 오케스트라에서 짤리면 먹고 사는 일이 두려워진다.
그래서 위준상 의원의 치근거림을 직접 거절하지 못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바로 앞에 문화국장, 예술국장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그녀의 시선을 슥 피한다.
괜히 나섰다가 당장 목이 날아갈 수도 있어서다.
“마셔.”
위준상 의원이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술을 따랐다.
그녀가 몸을 흠칫 떨자 위준상 의원이 낄낄 웃는다.
“왜? 오빠가 이러면 싫어? 동생 같아서 그런 거야. 알잖아? 내가 음흉한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하하하.”
그 웃음에 국장들도 따라 웃었다.
“...하, 하, 하.”
“다들 마셔, 마셔.”
위준상 의원이 잔을 내려뒀다.
어느새 얼굴이 벌게졌다.
하지만 기름진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수첩을 꺼내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어 그녀에게 밀어 넣었다.
“내일 아침에 안부 인사 안 들어와 있으면 오빠 삐진다. 푸하하하!”
“...네.”
그때,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남자 단원이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의원님, 술을 많이 드신 것 같은데...”
그 순간이었다.
위준상 의원의 눈이 사납게 변했다.
그리고 남자 단원을 잡아 먹을 듯이 노려보며 낮고 험악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하, 이거. 분위기 파악 못 하는 놈이네. 세상 살다보면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이는 새끼가 꼭 하나 씩 있어.”
분위기가 싸해졌고 남자 단원의 얼굴은 뻣뻣하게 굳었다.
하지만 아무도 돕지 않는다.
오히려 그를 탓하고 있다.
“왜 그래?”
“빨리 의원님께 사과드려!”
위준상 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씨발, 술 맛 떨어지네. 야, 문화국장아.”
“네.”
“화장실 다녀 올 테니까 저 새끼 치워라.”
“아, 네. 알겠습니다.”
“분위기 다시 띄워 놓고.”
“예.”
위준상 의원은 비틀비틀 일어섰고 화장실로 향했다.
문화국장이 다급히 남자 단원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먼저 들어 가. 어서.”
*
“븅신 새끼. 농담하고 진담을 구분 못 해. 다들 재밌어 하구만.”
위준상 의원이 담배를 물고 소변기 앞에 섰다.
주섬주섬 지퍼를 열고 몸을 부르르 떠는데, 누군가 들어와 화장실 문을 닫았다.
이어서 ‘딸칵’ 문을 잠가 버린다.
위준상 의원이 고개를 틀었다.
“뭐야?”
“일단 마무리 하시고.”
“누구냐고!”
“질문 좀 하려고 왔습니다.”
위준상 의원이 눈을 찌푸린 채 앞을 바라봤다.
이십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어린 놈.
“누군데?”
험악한 목소리에 앞에 선 청년이 조용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동남지청 김서진 검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