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8화 (18/250)

<친구. -(2)>

이소희와 함께 들어온 검사는 지동민, 5년차 검사로 선이 굵고 잘생겼다.

심지어 사람 좋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

서진이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김서진입니다.”

“아, 들었어. 럭키 가이라면서?”

“네?”

서진을 향해 럭키 가이라 부르는 사람은 없다.

즉, 지동민 검사가 만들어 낸 말이다.

자기 스스로 ‘운이 좋았다.’라고 말하는 것은 겸손이지만 타인이 ‘럭키 가이.’라고 하는 것은 비아냥대는 거다.

지동민 검사가 서진의 팔을 툭 치며 말을 이었다.

“기분 나빴으면 미안. 부러워서 한 말이야.”

빙긋이 웃고 있는데 묘하게 기분이 좋지 않다.

분명 착하다는 소문이 있는데 서진에게는 잘생긴 얼굴 뒤에 흉측한 감정을 숨기고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그만, 인사 나눴으면 자리에 앉아.”

김관용 부장 검사가 교통정리를 했고 서진을 비롯한 세 명은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 김관용 부장 검사가 앞에 섰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지금부터 시작될 말은 철저히 비밀로 해야 해. 먼저 김서진, 연쇄 살인 범 이재환의 특별 수사팀에 네 이름이 올라갈 거야. 그런데, 이름만 올려두고 다른 일을 해줬으면 좋겠어. 걱정하지 마. 네 실적을 가로 채려는 것은 아니야. 네 실적은 그대로 반영될 거야.”

“알겠습니다.”

여기까지는 흑백의 세상과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서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김관용 부장 검사의 시선은 서진을 벗어나 모두에게 틀어졌다.

그리고 속삭이듯 물었다.

“박상영이라고 아는 사람 있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조용했다.

김관용 부장 검사의 눈이 지동민 검사를 향했다.

“지 검사도 모르나?”

지동민 검사는 턱을 매만졌다.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을 보면 분명 알고 있는 눈치인데 조금 더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죄송합니다. 들어 본 적 없습니다.”

그 순간 조용히 있던 서진이 입을 열었다.

“박상영, 그 사람이 제형 건설 부장이라면 알고 있습니다.”

김관용 부장 검사의 시선이 서진에게 틀어졌다.

“...알아?”

서진은 흑백의 세상을 통해 박상영의 이름을 미리 들어 알고 있었다.

당연히 확인을 했고 대략적인 스토리는 머릿속에 파악했다.

“제형 건설이 해양 공원 1지구 우선 협상 대상자가 되었고 그 중심에 박상영 부장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김관용 부장 검사의 눈빛에 뿌듯한 감정이 실렸다.

서진을 선택한 자신의 안목이 옳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맞아. 그 박상영 부장이야. 내가 너희를 부른 이유이기도 하고.”

김관용 부장 검사가 화이트보드를 끌고 왔다.

그리고 박상영과 동남 군청 환경생태국장의 이름을 나란히 적으며 계속 말했다.

“강원 도시 공사가 사업을 반납하며 제형 건설이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됐어.”

“......”

“이 과정에 부당한 업무 지시가 있는 첩보가 있어. 너희 셋은 지금부터 이 사건을 수사할 거야.”

“......”

“조용히 수사해야 해. 공사판에 날리는 먼지가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물 한 번 뿌리면 사라지는 게 공사판 먼지야.”

김관용 부장 검사의 시선이 지동민 검사에게서 멎었다.

“지 검사가 리더를 맡아. 두 신입 검사는 경험은 부족하지만 실력은 완벽해.”

지동민 검사가 슬쩍 서진과 이소희를 바라봤다.

“워낙 뛰어난 후배들이라 제가 리더 역할을 잘 해낼지 모르겠네요.”

*

“앞으로 잘 부탁해.”

김관용 부장 검사의 방을 나와 복도에 섰을 때다.

지동민 검사가 서진과 이소희를 보며 빙긋이 웃었다.

이소희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네.”

지동민 검사의 시선이 서진에게 옮겨졌다.

그리고 서진의 옷매무새를 만지며 입을 열었다.

“럭키 가이, 이번 사건에도 좋은 운이 왔으면 좋겠어.”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꼈지만 단단한 가면 속에 어떤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지동민 검사와 연관된 흑백의 세상이 나타나기를 바랐지만 어떤 변화도 없었다.

사람 좋은 척 하는 그 미소만 보일 뿐이다.

지동민 검사가 서진과 이소희를 보며 말했다.

“일단 각자의 시선으로, 개별적으로 사건을 수사한 후에 중복되는 점을 찾아 객관적으로 파고들었으면 하는데... 어때?”

이소희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던 바였다는 표정이다.

“전 좋아요.”

시선은 자연스레 서진에게 모였다.

“저도 그게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고. 다시 모이는 것은 내가 연락을 줄 게.”

지동민 검사가 서진의 팔을 툭 쳤다.

그 순간이었다.

세상이 흑백으로 물들었다.

*

어느 커피숍, 창밖으로 ‘로열 첼리스’라는 아파트 브랜드 명이 보인다.

커튼을 쳐서 프라이빗한 공간을 마련해주기 때문에 젊은 연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그곳에 문이 열리고 지동민 검사와 박상영이 들어왔다.

박상영이 골치 아픈 표정으로 지동민 검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검찰이 왜?”

*

그게 끝이었다.

세상은 다시 색을 찾았고 지동민 검사는 손을 흔들며 복도를 걸어 자리를 떠나고 있다.

서진이 지동민 검사의 뒷모습을 쫓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뭐지? 박상영을 따로 만났어? 그런데, 흑백의 세상에서도 지금 저 옷을 입고 있었지?’

서진은 두 사람이 만난 시점을 고민했고 박상영이 지동민 검사를 향해 ‘검찰이 왜?’ 라고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높은 확률로 미래를 보여준 것이다.

게다가 같은 옷이라면?

‘오늘인가?’

가능성이 높다.

서진은 흑백의 세상에서 본 아파트를 떠올리며 커피숍의 위치를 추측해 봤다.

그때 이소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분 나빠.”

이소희가 중얼거렸다.

지동민 검사가 사라진 쪽을 보며 말한 것을 보면 기분 나쁨의 대상은 명확하다.

이소희를 바라보며 서진이 물었다.

“너도?”

서진도 흑백의 세상을 보기 전부터 지동민 검사의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가식적인 눈빛에 계속 찝찝함을 느끼고 있었다.

각자 개별적으로 사건을 수사하자는 말에 동의한 것도 지동민 검사와 함께 하는 것보다는 혼자 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이소희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지동민... 언젠가 터질 걸? 여직원들 이야기하는 것 몇 번 들었어. 쓰레기 같아.”

이소희는 징그러운 무엇인가를 보는 것처럼 지동민 검사가 사라진 복도의 끝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난 저런 여성 편력 있는 놈들이 정말 싫어. 책임도 못 질 짓을 왜 하는지...”

이소희는 입술을 물어뜯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멈췄지만 지금까지의 이야기에 어떤 사연이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서진은 더 묻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것은 있으니까.

그리고 지금 중요한 것은 서진뿐만 아니라 이소희도 지동민 검사를 보며 거부감을 느꼈다는 거다.

흑백의 세상을 떠나 지동민 검사를 경계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판단됐다.

생각을 정리한 후 서진이 이소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지동민 검사님은 각자 수사하자고 했는데, 우리는 공유할까?”

이소희의 까만 눈동자가 서진을 향했다.

서진이 계속 말했다.

“이런 사건에 객관적일 필요가 뭐가 있어? 담당 공무원이 뇌물을 먹었는지, 시의원이나 군수 등 윗선의 부당한 지시가 있었는지, 짚어보고 확인하면 끝이야.”

“...그렇지? 그런데, 지동민 검사는 왜 각자하자고 했을까?”

이번엔 서진의 시선이 복도의 끝으로 향했다.

서진의 목소리가 낮게 흘렀다.

“모르지. 우리는 그것도 확인해야겠지.”

오늘 밤, 어쩌면 확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

이소희와 퇴근 후 만날 것을 약속하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향하는 곳은 사무실이 아니다.

지청 앞에 있는 커피숍이다.

“아메리카노 3잔과 치즈 케이크요.”

처음 배정 받은 사무실, 새로 만나는 수사관과 실무관, 서류를 봤기 때문에 누군지 알고는 있지만 설레는 감정은 어쩔 수 없다.

첫 인사로 아메리카노 3잔과 치즈 케이크는 나쁘지 않다.

서진은 커피를 캐리어에 담아 사무실로 향했고 앞에 도착했다.

문고리를 틀고 안으로 들어가자 수사관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임정택 수사관입니다. 하하하.”

서른 한 살의 임정택 수사관 짧은 스포츠 머리가 인상적이다.

그리고...

“도민지 실무관입니다.”

역시 서른 한 살의 도민지 실무관, 깔끔하게 생겼고 커트 머리가 커리어우먼처럼 보인다.

두 사람을 보며 서진이 살짝 허리를 굽혔다.

“김서진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커피와 치크 케이크를 사왔습니다.”

서진이 두 사람의 앞에 커피와 케이크를 내려뒀다.

도민지 실무관이 커피를 받으며 활짝 웃는다.

“어마, 이거 독약 아니에요? 독하게 일시키는 독약?”

“맞아요. 제 취미가 야근이고 특기가 밤을...”

임정택 수사관이 다급히 손을 저었다.

“검사님! 처음 만나는 자리에 말 끊어서 죄송하지만 농담이라도 그런 말씀 하시면 안 돼요. 말이 씨가 된다고 그랬어요.”

임정택 수사관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고 진심이었다.

가뜩이나 서진의 사무실로 배정된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의 염려가 한 가득이었다.

-그 검사가 뭘 했는지 알지? 자매 살인 사건하고 유아성 살인 사건이야.

-수습인데 그렇게 움직이는 사람 흔치 않다.

-스타일 보면 딱 알지. 일거리 없으면 만드는 사람이야.

-정택아 네 미래가 보인다. 넌 법정 근로 시간으로 주 100시간 찍을 거야.

-네가 죽으면 과로사다. 푸하하하!

걱정 가득한 임정택 수사관을 보며 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저녁 있는 삶을 좋아해요.”

“정말이죠?”

서진이 커피를 들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약속이요.”

술잔처럼 커피로 건배를 했다.

그리고 잠시 흔치 않은 여유를 즐기며 커피를 마셨다.

서진은 그들을 둘러봤다.

이례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였다.

어쩐지 활기찬 사무실이 될 것 같다.

***

퇴근 후, 서진과 이소희는 지청에서 조금 떨어진 커피숍 2층에 마주 앉았다.

이소희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과자를 먹으며 물었다.

“여기까지 온 이유가 뭐야? 그리고 또 커튼? 커튼은 왜 있어?”

창밖으로 로열 첼리스 아파트가 보여서 그리고 이곳에서 박상영과 지동민이 만날 가능성이 높아서 여기까지 찾아왔다.

하지만 지금 그 말을 할 수는 없고.

“이 사람이 박상영 부장이야.”

서진이 휴대폰을 들고 박상영을 찾아 건넸다.

이소희가 화면에 뜬 박상영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서른한 살, 부모 잘 만나 부장이 된 놈.

몇 달 후에는 이사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어때?”

“느끼하게 생겼네.”

이소희는 이번에 뻥튀기를 먹으며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커피숍에 와서 이것저것 먹는 중이다.

케이크, 과자 기타 등등.

저렇게 먹는 데 살이 안찌는 게 신기하다.

서진이 뻥튀기를 집어 먹는 이소희를 보며 말했다.

“어쩌면 군수와 국회의원, 최소 시의원은 관련되어 있을 것 같아. 그 규모가 얼마인지 어떤 방식으로 돈을 건넸는지가...”

서진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드르륵.

이소희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화면에 ‘엄마.’라는 발신번호가 뜬다.

순간적으로 이소희의 표정이 굳어진 것을 봤지만 서진은 모른 척 입을 열었다.

“받아.”

“아니야. 괜찮아. 일해야지.”

이소희가 통화를 거부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서른한 살에 돈 들고 다니면서 정치인을 만난 거야? 이무리 돈이 좋아도 만난 정치인도 대단하네.”

“돈에는 나이가 없으니까.”

그때, 다시 드르륵. 이소희의 휴대폰이 진동했고 메시지가 화면에 나타났다.

-엄마 : 밥은 먹고 다니지?

이소희는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계속 흐름 끊기게 해서 미안.”

“전화 드려야 하는 거 아니야?”

“괜찮아. 나중에 해도 돼. 일해야지. 일...”

서진은 더 권하지 않았다.

집 안의 문제 역시 각자의 사정이 있는 법이다.

“그럼, 계속 이야기하면... 박상영은 중앙지검 김윤환 검사와 친구야.”

“갑자기 검사 친구는 왜 나와?”

“그리고 김윤환과 지동민 검사는 학교 선후배야.”

“어?”

서진이 SNS를 들어갔다.

“김윤환의 비공개 그룹이야. 지동민이 댓글 쓴 게 보이지.”

-잘 놀았다. 나중에 또 재밌게 놀자.

서진이 김윤환의 비공개 SNS를 헤집고 다니는 것을 본 이소희가 황당한 표정으로 서진을 바라봤다.

“...비공개는 어떻게 들어갔어?”

“아, 김윤환이 우리 친척 형이야.”

“뭐?”

이소희의 표정이 불신으로 가득 변한 것은 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신종승이 김윤환, 김서진 어쩌고 했던 적이 있다.

이소희의 표정을 본 서진이 고개를 저었다.

“같은 취급하지 마.”

“친척이잖...”

이번엔 이소희의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서진이 갑자기 그녀의 머리를 손으로 잡아 확 누른 후 몸을 숙였기 때문이다.

이어서 커튼을 빠르게 친다.

그녀가 인상을 찌푸리며 한기가 뚝뚝 떨어질 정도로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야, 지금 뭐하는...”

“쉿. 지동민, 박상영 들어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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