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6화 (16/250)

<유능하다는 것. -(6)>

모두가 힘 나는 분위기다.

그런데, 신종승의 얼굴만 흙빛으로 변해있다.

신종승이 심줄 솟은 주먹을 꽉 쥐었다.

‘하필이면 지금!’

지금껏 조용했던 동남 지청이다.

검사들은 의욕이 없었고 무기력한 패잔병처럼 하루를 살아왔다.

하지만 그것은 옛 말이 될 거다.

곧 특별 수사팀이 구성될 테고 이재환의 범죄가 낱낱이 밝혀질 게 분명하다.

동남 지청은 축제의 폭죽을 쏘아댈 준비를 마쳤다.

문제는 그 자리에 신종승, 본인이 없다는 거다.

잘 차려진 밥상을 보며 숟가락 한 번 얹지 못하고 서울로 떠나야 한다.

더 억울한 점은 그 앞에 서진이 선다는 것이다.

‘브리핑에 인터뷰까지 한다고?’

그것도 지청장의 지시.

아무리 유배지의 지청장이라 해도 그 파워는 무시할 수 없다.

신종승의 눈, 그 안의 눈동자가 질투로 물들었다.

“조심히 가세요.”

이명수 검사가 취조실을 떠나고 이소희의 목소리가 신종승의 귓가에 들려왔다.

신종승이 눈동자를 움직여 이소희를 바라봤다.

“...조심히 가라니?”

“내일이면 정신없을 것 같아서요. 미리 인사하는 거예요. 잘 가라고요.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넌? 넌 안가? 너도 본청으로 가잖아?”

예정된 인사 명령에서 신종승은 서울로 이소희는 강원지검으로 결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전 여기 남아요.”

“...남는다고?”

“네, 그렇게 됐어요.”

이소희가 신종승의 옆을 스쳐갔다.

신종승은 다급히 노트북을 열고 인사 명령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얼마 전, 수습 검사들에게 정식으로 인사 명령이 떨어졌다.

신종승은 예정대로 서울로 결정되었는데, 이소희는 동남 지청에 남게 되었다.

‘이게 뭐야?’

신종승의 시선이 빠르게 이소희의 뒷모습을 향했다.

예정되었던 인사 명령이 확정되지 않은 것이라 해도 정식 발표를 며칠 앞두지 않고 들은 거다.

99.99%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소희의 명령은 바뀌었다.

적어도 검사장 급의 빽이 없다면 불가능 한 일이다.

‘어떻게 바꾼 거지?’

신종승은 이소희에게 관심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집안을 살짝 알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별 것 없었다.

아버지는 계시지 않고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집.

집은 경기도, 25평대 아파트, 가격은 3억 대.

그게 전부였다.

‘빽이 있을 리 없잖아?’

아니, 빽이 있어도 그게 더 이상하다.

‘빽을 써서 동남군에 남는다고? 아니, 애초에 그 성적에 빽까지 있으면 엘리트 코스를 밟아야 하는 것 아니야?’

이소희의 성적은 뛰어났다.

수습이 끝나면 곧장 성공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하이패스 달고 들어가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코스에서 벗어났고 그 이유가 빽이 없어서 라고 생각했는데....

‘뭐가 뭔지 모르겠네.’

신종승은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문이 닫히며 홀로 남게 되었다.

***

다음 날, 서울 중앙지검 조우재 부장 검사 실.

메기 같은 얼굴의 조우재 부장 검사는 김영준 검사장의 오른 팔이며 수족이다.

소파에 앉아 있던 조우재 부장 검사는 ‘똑똑똑’ 노크 소리에 고개를 틀었다.

김영준 검사장의 아들 김윤환이 들어와 정중하게 허리를 굽혔다.

김윤환은 꽤 잘생겼다.

하얀 피부에 짙은 눈썹, 누가 봐도 미남이라 말할 거다.

그를 보며 조우재 부장 검사가 손을 저었다.

“됐어. 우리끼리 있을 때는 편하게 해.”

김윤환이 슬쩍 웃으며 맞은편에 앉자 조우재 부장 검사가 리모컨을 들어 전원 버튼을 눌렀다.

텔레비전 화면에 동남 지청 브리핑 실이 나타났고 아래에는 ‘속보, 동남군 유아성 살인 사건 범인 10년 만에 검거’ 라는 자막이 크게 적혀 있다.

“동남군이면 그 새끼 있는 곳이지?”

“저것도 그놈이 해결했대요.”

조우재 부장 검사가 멈칫 거렸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틀어 김윤환을 바라봤다.

“자매 살인 사건도 그놈이 해결했었잖아?”

“네.”

“그런데, 저것도? 그놈, 네 사냥개로 쓰려던 것 아니었어?”

김윤환이 고개를 끄덕이자 조우재 부장 검사가 쓰게 웃으며 담배를 입에 물고 계속 말했다.

“윤환아. 개를 산책 시킬 때도 가르쳐야 할 게 있어. 주인보다 앞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거지. 끈을 당겨서 제동을 걸든지 몽둥이로 패든지 어쨌든 버릇을 고쳐놔야 해. 안 그러면 나중에 골치 아파진다.”

“지금은 지켜보는 중이에요.”

김윤환은 조용히 웃고 있었다.

그 표정을 물끄러미 보던 조우재 부장 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아직은 어리지만 그 아비의 그 아들이다.

김영준 검사장이 자신의 친형 김준만 대표를 길들인 것을 보면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뭐, 그건 차차하면 되는 거고... 어쨌든, 올라오라고 한 것은 저걸 잘 봐야 해.”

조우재 부장 검사가 손으로 텔레비전 화면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기서 오늘 브리핑할 놈, 그놈이 메인이야. 인생에 꿀 떨어질 놈이고.”

“......”

“전국의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이야. 서로 하겠다고 밤새 개싸움을 했을 걸?”

잠시 생각에 빠졌던 김윤환이 턱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저것도 그놈이 하는 것은 아니겠죠?”

“절대 못 해. 동남이 어떤 곳이야? 유배지야, 유배지. 저기서 벗어나 서울 공기 마시려는 애들이 한 둘이야? 그런데, 기회가 왔어. 언론에 얼굴 딱 비추고 1차, 2차, 3차 사건 브리핑 하면, 각 지검에 계신 지검장님들이 얼굴 마담으로 쓰려고 서로 데려가려 할 텐데, 이 기회를 놓친다고? 윤환아, 인간은 그렇게 배려심이 넘치지 않아.”

“그렇겠죠?”

“너라면 저런 기회를 까마득한 후배한테 넘길래? 아니면 네가 할래.”

“그러니까, 김서진은 남 좋은 일 시켰다는 거죠?”

“어.”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김윤환이 살짝 미소 지었다.

그리고 텔레비전 속 웅성거리던 기자들의 목소리가 조용해졌다.

드디어 브리핑이 시작되는 거다.

김윤환과 조우재 부장 검사의 시선이 텔레비전으로 집중됐다.

조우재 부장 검사는 담배 연기를 내뱉었고 김윤환은 마른 입술을 핥았다.

그리고 곧 두 사람의 눈이 부릅떠졌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서진이었다.

-안녕 하십니까? 동남 지청 김서진 검사입니다.

조우재 부장 검사의 행동이 그대로 멎었다.

담뱃재를 터는 것도 잊고 멍하니 있다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저, 저놈이 어떻게...”

까마득한 후배, 그것도 수습 따위가 브리핑을 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동남 지청 새끼들, 미쳤어? 미친 거야? 왜 저런 애새끼한테 브리핑을 넘겨!”

그 사이 텔레비전에서는 플래시가 번쩍였고 셔터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하지만 서진은 떨지도 않고 담담한 목소리로 사건 설명을 시작했다.

-먼저 오랜 시간 사건을 해결하지 못해 유가족 및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10년 전 일어났던 유아성 살인 사건의 수사 진행 사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김윤환이 휴대폰을 꺼내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곧바로 실검을 확인, 이미 장악됐다.

9위 동남군 살인 사건.

8위 검찰 브리핑.

5위 살인범 누구?

4위 김서진 검사.

1위 유아성.

김윤환의 손이 파르르 떨려왔다.

이번엔 SNS를 확인해 봤다.

하지만 잠시였다.

김윤환은 눈을 꾹 감았다.

더 볼 수 없어서다.

SNS 역시 유아성 살인 사건에 대한 글이 쫙쫙 올라오는 중이었다.

-유아성이 시작이었고 지금껏 죽인 애가 9명, 성폭행이 22명이라고?

-추가로 더 있을지 모르니까 특별 수사팀을 구성한다고 하잖아.

-면상 좀 공개해라! 연쇄 살인범에게 인권이 어디 있어!

-그런데, 지금껏 뭘 했는데 못 잡았어? 옆집에 누구 사는지 모름?

-옆집에 누가 사는지 신경 쓰고 사는 사람 있나? 피해 없으면 닥치고 사는 거지.

-그런데, 김서진 검사? 잘생겼네. 진짜 검사처럼 생겼다. ㅋㅋㅋ

-딱 보니까 아직 어린데, 인물보고 브리핑 하라고 올렸겠지.

-아님. 지금 독점 인터뷰 기사 뜬 거 봤는데, 동남 경찰서의 한 형사가 10년 동안 범인 쫓았고 그걸 김서진이 넘겨받아서 한 큐에 끝냈대.

-경찰과 검찰의 콜라보.

-한큐가 정말이면 김서진 실력 좋네. ㄷㄷㄷ

-그러니까 브리핑하겠지. 이참에 저런 쓰레기는 바깥공기 두 번 다신 못 마시게 해야 할 텐데...

“...단 하나의 거짓도 없는 진실 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서진의 브리핑이 끝났다.

단상의 옆으로 이동해 고개를 숙이자 카메라 플래시가 더 거세게 번쩍였다.

기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손을 들었다.

“특별 수사팀의 구성은 어떻게 됩니까?”

“검사와 수사관 그리고 경찰을 포함해 약 예순 명으로 구성될 예정입니다.”

“검사님께서 직접 범인을 검거했다고 들었습니다. 확신을 갖게 된 부분이 무엇이었습니까?”

*

브리핑을 끝내고 서진은 복도를 걸었다.

스치는 검사들이 툭 서진의 등을 치고 지나간다.

거기에 고생했다는 말을 붙이는 사람도 있다.

그들의 눈빛은 모두 부드럽다.

이들도 동남 지청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온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바람이 서진에게서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휴대폰을 보니 10통의 부재중 통화가 보였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아버지였다.

-브리핑 봤어. 하하하하!

서진이 텔레비전에 나왔고 대표로 브리핑을 했다.

아버지는 마냥 기쁘신 모양이다.

옆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좀 바꿔 봐요.

-잠깐만, 잠깐만...

두 분의 티격태격하는 소리를 들으며 서진이 입을 열었다.

“스피커 폰 누르면 되는데요.”

-아.

그제야 스피커폰의 사용법을 알게 된 아버지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지금 너 나온 기사하고 댓글 인쇄하느라 바쁘다. 바빠.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이어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가 네 이름 나온 신문 전부 산다고 난리야. 난리. 그런데, 눈 보니까 밤 샌 것 같던데, 안 피곤해? 그리고 그 범인 직접 가서 잡았다며? 다친 곳은 없고?

“네, 없어요. 없어.”

환생을 해서 가장 기쁜 것은 대가 없는 사랑을 받게 됐다는 거다.

서진은 감사함과 죄스러움을 함께 담아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사건 마무리 되면 집에 올라가서 멀쩡한 것 보여드릴게요.”

아버지와 통화를 이어가며 서진은 지청의 로비를 벗어났다.

주차장에서 잠시 이정우를 만나기로 약속되어서다.

그런데...

‘어?’

왜 있는지, 왜 아직도 이곳에 있는지, 그것은 모르겠지만 수십 명의 기자들이 서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서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김서진 검사님! 지난 자매 살인 사건도 해결하셨다면서요? 어려운 사건을 해결하는 노하우라도 있나요?”

“지금 김서진 검사님에 대한 관심이 꽤 크거든요? 아무거나 한 말씀만 해주시겠어요?”

“김서진 검사님!”

서진은 기자들에게 몰렸고 그 상황을 모르는 부모님의 목소리가 휴대폰에서 작게 들려왔다.

-서진아! 무슨 일이야! 서진아!

그리고 저 멀리 이정우가 낄낄 대며 그 장면을 휴대폰으로 찍고 있었다.

한참을 찍던 이정우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출세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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