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하다는 것. -(5)>
***
“저는 애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제가 살인을 했다고요? 그럼, 어떻게 애들 얼굴을 보겠어요. 인간인데!”
취조실이었다.
이재환은 결백을 주장했고 서진은 팔짱을 낀 채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억울합니다! 억울해요!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더니, 죄 없는 사람을 이렇게 잡아둬도 되는 겁니까!”
“죄 없는 사람?”
서진은 끌끌끌 웃었고 이재환은 더 강하게 입을 열었다.
“증거를 대보라고요! 증거를!”
“...그 빨랫줄 있잖아?”
“빨랫줄?”
“유아성을 결박하고 있던 빨랫줄. 거기서 네 지문이 나왔어.”
“......!”
이재환이 눈을 부릅뜨며 얼마 전 커피숍에서 들었던 두 여자의 대화를 떠올렸다.
그때,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여자가 말했다.
-요즘에는 사람 몸에 묻은 지문도 찾아낸다며, 유아성을 묶은 빨랫줄에 무슨 흔적이 발견됐나봐.
이재환이 마른 침을 삼켰다.
‘그게 지문이었다고?’
이재환이 억지로 담담한 표정을 연출하며 입을 열었다.
“내 지문이 거기서 왜...? 난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
취조실의 거울 뒤, 그곳엔 이명수 검사와 신종승, 이소희가 서 있었다.
취조실을 지켜보던 이명수 검사가 고개를 틀어 신종승을 봤다.
“넌 서울로 가지? 내일이 마지막인가?”
“아, 네.”
신종승은 내일을 마지막으로 서울로 향한다.
그런데, 지청장의 지시로 서진의 취조를 견학하는 중이다.
“피곤하지?”
“괜찮습니다.”
당연히 피곤하지만 그보다 서진의 취조를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성공하는지, 실패하는지...
물론 실패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명수 검사의 말이 이어졌다.
“수습들에게 질문하나 하지. 빨랫줄에 특별한 증거는 없었어.”
그 말에 신종승의 표정이 확 밝아졌고 내뱉어지는 목소리마저 신났다.
“그럼, 김서진 검사는 지금 거짓으로 자백을 이끌어 내는 중인가요?”
이명수 검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뭐, 그렇지. 어ㅤㅉㅒㅆ든, 질문. 지금 김 서진 검사의 행동은 증거로 인정이 될까?”
신종승은 즉시 대답했다.
“아뇨.”
[형사 소송법 제309조(강제 등 자백의 증거능력)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 폭행, 협박, 신체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으로 임의로 진술한 것이 아니라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하지 못한다.]
신종승의 입가에 기름진 미소가 걸렸다.
서진이 용의자를 끌고 지청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가슴이 철렁거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관심종자야.’
자매 살인 사건을 해결하더니 뭐가 된 줄 알고 있다.
억지로 용의자를 만들어 나대는 중이다.
‘미친 놈.’
신종승은 주먹을 꽉 쥐며 다짐했다.
만약 서진이 끌고 온 이재환이 억울하게 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라면 곧바로 기자에게 연락하겠다고.
그럼, 기자들은 신나게 키보드를 두들길 거다.
-검찰의 인권 유린.
-만들어진 죄인.
신종승이 청사진을 그리며 입을 열었다.
“저런 자백은 증거로 인정될 수 없어요. 자백을 해도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만들어 줄 증거가 있어야 하죠. 그렇지 않으면 정말 기망일 뿐이에요. 그리고...”
신종승이 한 발 앞서 걸어 나와 손가락으로 이재환을 가리키며 계속 말했다.
“용의자가 자백은커녕 전면 부인하고 있네요. 제 생각에 이번 사건은 김서진 검사가 잘못 찍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걱정입니다. 저 용의자가 검찰이 누명을 씌웠다고 언론에 찌르지는 않을지...”
말은 걱정한다고 했지만 신종승의 입 꼬리는 자신만만하게 비틀어져 있었다.
*
“...아니라고요.”
“어, 맞아. 네 지문은 안 나왔어.”
“네?”
서진의 말에 이재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한 템포 늦게 눈을 찌푸렸다.
“...안 나왔다고요?”
“대화를 나누기 전에 가벼운 인사. 조크. 이해하지?”
“하...”
이재환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셔츠의 윗 단추를 풀어냈다.
“지금 뭐하시는 거죠?”
“그럼, 시작하지. 당시 아이들의 진술에 의하면 유아성이 마지막으로 만났던 사람 중 하나가 너야.”
“막 전근 왔을 시기에요. 같은 학교 선생과 약속이 있는데, 주택가가 워낙 미로 같잖아요. 길을 잘 몰랐어요. 그래서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잡고 물어 봤습니다. 그 아이가 유아성이었고요.”
“그래서?”
“자기 집 방향과 같다면서 함께 가자고 했어요. 고마워서 아이스크림도 사줬죠. 그건 슈퍼마켓 주인이 증언했을 텐데요.”
이재환의 목소리가 점점 적극적으로 바뀌고 있었다.
서진의 질문이 과거 경찰이 물었던 것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거기서 거기다.
‘뭐야?’
이재환은 서진의 질문을 받으며 몇 가지 상황을 정리했다.
-검사가 증거로 제시하려 했던 빨랫줄의 지문은 존재하지 않는다.
-검찰이 가진 증거는 10년 전과 같다.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이재환은 오히려 여유로워졌다.
“그런데, 검사님. 제가 여기 앉아 있는 이유가 뭡니까?”
“그쪽이 범인이니까.”
“하! 아니라고 말했잖아요! 계속 이러면 저도 안 참아요!”
이재환은 강하게 부정했다.
어떤 것도 변한 게 없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서진은 이재환이 숨기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며칠 동안 놈의 뒤를 밟으며 알게 된 사실이며 결정적인 증거.
서진이 입을 열었다.
“내가 알아낸 게 하나 있어. 유아성의 시신을 2주 동안 못 찾았던 이유.”
“네?”
“넌 그 현장에서 죽였던 게 아니야. 다른 곳에서 죽이고 나중에 옮겨 둔 거지.”
이재환이 박차고 일어났다.
“검사면 다야!”
“락스는 왜 샀지?”
“하! 청소가 취미다. 주기적으로 화장실을 청소하는 게 이상한 일이야?”
“그럼 바인더 끈은?”
“주말 농장을 하고 있다. 현금으로 산 것은 카드로 계산하기 미안해서였고. 됐어? 그런데, 이제 뒷조사까지 해? 내가 10년 동안 그 용의자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시달렸는지 알아? 이거 개인 사찰이야. 내가 언론과 인권위에 고발할 거야. 김서진 검사가 사람 잡는다고!”
이재환은 이제 반말을 했고 사나운 이빨을 보였다.
하지만 서진은 신경 쓰지 않았다.
원래 궁지에 몰린 쥐는 이빨을 보이는 법이다.
“고발은 알아서 하고 대답이나 해. 집은 왜 두 개나 계약했지?”
“어?”
순간적으로 이재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놈이 숨기고 있던 것.
집이 두 개.
하나는 거주하는 곳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살인을 하는 곳이다.
서진은 정민구 형사에게 용의자를 넘겨받은 후 그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흑백의 세상에서 들었던 목소리와 비교했다.
정보를 흘리고 메시지를 보내며 압박했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냈다.
그게 이재환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흑백의 세상에서 본 목소리는 증거가 될 수 없다.
그래서 놈의 뒤를 쫓으며 증거를 찾아냈다.
이재환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멎어 있었다.
여유로웠던 미소는 증발했고 뻣뻣하게 굳어진 얼굴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있던 이재환이 느릿하니 입을 열었다.
“...집이 두 개?”
“네가 이사 왔을 무렵에 이사 온 또 한 명의 남자.”
경찰서에 간 날이었다.
서진은 사건 발생 지역을 중심으로 8km 반경, 최근 10년간 몇 집이나 이사를 오고갔는지 확인해 달라고 실무관에게 부탁했었다.
그리고 이상한 집을 하나 찾아냈다.
“그런데, 그 집을 계약한 남자를 본 사람은 서울에 사는 집주인과 지금은 돌아가신 부동산 사장님. 이웃 주민은 물론이고 편의점 사장도 그 남자가 누군지 본 적이 없어.”
“......”
“그래서 찾아봤어. 남자의 이름은 이종욱. 신기하게 네 동생이더라.”
“......”
“그리고, 그 집의 주인을 찾아갔지. 그런데, 그 집 주인은 계약한 사람의 얼굴로 너를 지목했어. 이상하지 않아? 명의는 동생인데, 계약은 네가 했네?”
이재환의 눈동자가 사방으로 굴러갔다.
도망갈 곳을 찾는 거다.
그러다가 뭔가 떠올랐는지 재빨리 마른 입술을 움직였다.
“그, 그런데 그게 뭐? 내가 그 집에 드나든 증거 있어?”
이재환이 그 집에 가는 것은 언제나 새벽 1시에서 2시 사이다.
그것도 CCTV를 피해 담을 넘어 이동했고 본 사람도 없었다.
이재환이 다급히 말을 이었다.
“주변 CCTV 보면 알잖아? 내가 드나들었는지 아닌지! 난 그 집을 계약한 적이 없어!”
하지만 서진은 퇴로를 마련해 주지 않았다.
테이블 위로 휴대폰을 툭 던졌다.
이재환의 눈동자가 휴대폰으로 굴러갔다.
“이, 이게 뭐야?”
“내가 그 집 앞에 차를 장기 주차를 해뒀거든. 그런데, 블랙박스에 네가 대형 등산 가방 메고 담 넘는 게 찍혀 있더라고. 달밤에 어디를 그렇게 다니시나?”
“...어?”
검찰의 압박을 느낀 후 혹시나 해서 확인 차 다녀 온 적이 있다.
그게 찍혔다니...
물론 그 모든 것은 서진의 의도였지만 이재환은 거기까지 생각할 수 없었다.
이재환의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흔들렸다.
그리고 그의 귓가에 서진의 목소리가 저승사자처럼 들려왔다.
“보여줄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플레이 버튼은 이미 눌려진 상태였다.
화면에 담을 넘어 주택으로 들어가는 이재환의 모습이 선명하게 잡혔다.
이재환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지금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 그게 뭐? 그래, 산에 갔다 온 거야.”
하지만 이재환은 이미 벼랑 끝에 몰렸다.
눈에는 초점이 목소리에는 영혼이 없었다.
서진이 그를 향해 몸을 기울인 후 정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난 봤어.”
며칠 전, 서진은 블랙박스를 확인했고 그 집에 찾아가 문고리를 잡았었다.
그 순간 흑백의 세상이 펼쳐지며 소름끼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뭐... 뭘?”
“알잖아?”
그때 지이이잉, 서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 번호는 이정우.
서진이 스피커폰 버튼을 누르자 이정우의 목소리가 취조실을 울렸다.
-지금 집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런데?”
-이 새끼 미쳤어. 애들 신체를 모으고 있었어! 이 미친 새끼!
이정우의 목소리는 분노로 가득했다.
앞에 이재환이 있었다면 주먹으로 놈의 얼굴을 짓뭉갰을 것 같다.
서진이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며 이재환을 바라봤다.
“약속 하나할 게.”
“...약속?”
“네 인생에서 바깥 구경을 할 수 있는 날은 이제 없을 거야. 내가 반드시 그렇게 만들어 줄 게.”
서진의 목소리가 두렵게 들려왔다.
이재환이 허옇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야... 아니야, 아니라고!”
“네 인생은 끝났어.”
서진의 단호한 말, 이재환이 억울한 눈으로 서진을 바라보다가 실이 툭 끊어진 인형처럼 고개를 숙였다.
그의 어깨가 가늘게 떨려왔다.
*
“지청장님, 자백 받아냈습니다. 김서진이 놈의 집 근처에 블랙박스를 설치해 뒀나 봅니다. 브리핑은 내일 아침에 하도록 하고 지금은 우리 도와주는 HN 일보 애들 불러서 특종하나 던져주겠습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지청장과 통화를 이어가는 이명수 검사의 목소리에 묘한 흥분이 맺혀 있었다.
지금껏 조용했던 지청이 최근 시끄럽게 움직였고 죽어 있던 검사들의 눈에 조금이지만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네? 브리핑하고 인터뷰까지 김서진 검사에게 맡기라고요? 그렇죠, 그럴 자격 충분하죠. 하하, 알겠습니다.”
미제 사건이며 열 살 어린 애를 죽인 연쇄 살인범이 잡혔다.
전국의 모든 시선이 동남군에 모일 거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서진이 서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