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4화 (14/250)

<유능하다는 것. -(4)>

***

“이걸 정민구 형사님이 찾아낸 거라고?”

“어.”

“대박.”

다음 날, 서진의 집이었다.

이정우가 식탁에 앉아 정민구 형사가 준 자료를 읽고 있었다.

용의자는 총 다섯 명.

물론 사건 초기에는 훨씬 많은 사람이 수사 대상에 올랐었다.

하지만 정민구 형사가 10년의 수사 끝에 최종적으로 선택한 사람은 이 다섯 명이 최종이다.

이정우가 턱을 문지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용의자랑 담배는 상관이 없네?”

정민구 형사는 남몰래 DNA 검사를 했다.

피다 버린 담배꽁초를 줍고 사비 들여 검사하고.

하지만 담배에 있던 DNA와 매칭되는 사람은 역시 없었다.

“지능범이야. DNA 감식을 예상하고 담배를 가져다 둔 것 같아. 검경이 DNA를 잡고 낑낑댈 때 이놈은 낄낄거리며 비웃고 있었겠지. 세상이 자기 손바닥 안에 있는 것처럼...”

“아오. 미친 새끼. 애를 죽이고 그 상황에 DNA 감식까지 생각했던 거야? 진짜 그 거지 같은 얼굴 한번 보고 싶어지네.”

이정우가 머리를 북북 쥐어뜯었고 서진은 한참동안 거실을 돌아다녔다.

‘뭘까.’

흑백의 세상에서 놈은 정민구 형사를 죽이며 또 살인을 저질렀다.

놈의 성격상 그때도 흔적을 남기지 않았을 거다.

완벽하게 현장을 정리하고 떠났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놈은 결국 잡혔고 지청장은 특별 수사팀을 구성했다.

‘어떻게 잡은 거지?’

서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흑백의 세상에서 봤던 모든 것을 떠올렸다.

흔들리는 가로등부터 바닥에 가득한 쓰레기까지.

그리고 서류를 읽고 또 읽으며 하나의 특징을 찾아냈다.

“정우야. 이거.”

이정우가 서진이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용의자의 알리바이가 적혀 있는 곳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아?”

물끄러미 보던 이정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거. 완벽하네. 지나칠 정도로 완벽해서 오히려 수상해.”

“그렇지?”

정민구 형사는 1년마다 추려진 용의자를 만나 당시 상황을 물어보고 또 물어봤다.

그때마다 그들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에 대한 6하 원칙을 똑같이 대답했다.

서진이 손가락으로 툭툭 서류를 두들기며 말을 이었다.

“놈은 지능범이야. 남의 담배꽁초를 주워와 수사에 혼선을 줄 정도로 머리를 쓸 줄 알아. 완벽 주의자.’

그리고 흑백의 세상에서 놈은 말했었다.

-...왜 들쑤시고 다녀?

서진이 입술을 쓸었다.

뭔가 정리가 되는 것 같았고 놈을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이 눈앞에 아른 거렸다.

‘놈의 목소리는 짜증이 가득했어.’

집요하게 달라붙는 수사, 자신의 완벽 범죄가 깨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분노.

그것을 이용하면?

‘잡을 수 있어.’

서진의 머릿속에 앞으로의 일이 쫙 펼쳐졌다.

그리고 다급히 이정우에게 시선을 옮겼다.

“부탁 하나해도 될까?”

“뭐든.”

“이 다섯 명의 귀에 들어가게 소문 좀 내줘. 검사 김서진이 유아성 사건의 범인 흔적을 찾았다. 그 흔적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

“고등학교 선생이 범인일 가능성이 크대.”

“진짜? 유아성 사건 해결되는 거야?”

커피숍이었다.

친구로 보이는 20대 후반의 두 여자가 주변의 눈치를 보며 속삭이고 있었다.

분명 작은 목소리다.

하지만 또렷했고 가까이 있는 사람은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휴대폰을 만지작대던 한 남자가 멈칫 거렸다.

남자는 용의자로 선택된 고등학교 교사 이재환.

금테 안경을 쓴 그는 미끈하게 잘 생겼고 누구에게나 호감 가는 인상이다.

그가 귀를 쫑긋 세우고 여자들의 대화에 집중했다.

“요즘에는 사람 몸에 묻은 지문도 찾아낸다며, 유아성을 묶은 빨랫줄에 무슨 흔적이 발견됐나봐.”

“그거 지청에 김서진 검사지?”

“어. 자기 혼자 독식한다고 자세한 것은 아무도 안 가르쳐 준대.”

“하긴 나라도 독식하겠다. 그거 성공하면 대박이잖아? 10년 째 미제 사건인데. 부럽다.”

이재환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번에 들이 마신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동시에 이재환의 휴대폰이 지이이잉 진동했다.

휴대폰을 들고 메지시를 확인한다.

-너구나?

이재환의 눈동자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평범한 커피숍의 분위기, 메시지를 보낸 것 같은 사람은 없다.

아니, 모두가 이재환에게 메시지를 보낸 것 같다.

이재환의 시선이 다시 휴대폰으로 향했다.

그가 메시지를 작게 소리 내어 읽어봤다.

“너구나?”

이재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가 입술을 씹으며 중얼거렸다.

“이건 또 뭐야? 아직도 의심하는 거야?”

*

며칠 후, 지청.

서진은 식당에 앉아 밥을 먹으며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이재환의 SNS다.

올려둔 게시물은 학생들과 찍은 사진들이 대부분.

-내 새끼들과 함께.

-성적이 아니라 성격이 좋아야 해.

-졸업하는 내 새끼들, 앞으로 너희들의 길이 항상 행복하기를 기도한다.

“용의자야?”

서진의 옆에 이소희가 앉았다.

그녀가 서진의 휴대폰 화면을 보며 말을 이었다.

“...학교 선생님? 설마, 선생님이 초등학생을 죽였겠어?”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세상이야. 고등학교 선생이 초등학생 죽인 게 특별한 일은 아니야. 용의 선상에 있으면 의심해 봐야지.”

서진이 휴대폰의 화면을 바꿨다.

그리고 다른 영상을 재생시켰다.

슈퍼마켓의 CCTV다.

이재환이 물건 사는 장면이 나온다.

“표백제, 베이킹파우더, 다량의 락스.”

“...어? 하지만 이것으로 특정 지을 수는 없잖아?”

“단서는 더 있어.”

하지만 두 사람의 대화는 더 이어질 수 없었다.

“야, 그만 좀 해라. 쪽팔려 뒈지겠다.”

서진의 앞에 신종승이 앉고 있었다.

그가 숟가락으로 국을 뜨며 말을 잇는다.

“나 이제 강원도 생활 며칠 안 남았어. 좀 조용히 있다가 가면 안 되냐? 나만 보면 사람들이 수군거려. 내 동기 김서진이 똥오줌 못 가리고 장기 미제 사건에 달라붙었다고. 좀 말려 보라고! 내가 너 때문에 부끄러워야겠냐?”

“그거 좀 미안하네. 꼭 해결해서 자랑스러운 동기 해줄게.”

“끝까지 허세부리기는... 야, 소희야. 내가 서울에 있는 선배 검사한테 들었거든? 시작부터 정의감 내세우는 이런 애들이 제일 먼저 옷 벗는단다.”

신종승이 낄낄 거렸다.

그런데, 그 순간 신종승의 귓가에 이소희의 싸늘한 목소리가 박혔다.

“...시끄럽네요. 열심히 하고 있으면 응원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서진도 시선을 돌려 그녀를 향했다.

서진과 대화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목소리다.

마치 가시가 돋친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이소희가 신종승에게 친절한 적은 없었다.

그녀는 언제나 냉랭했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신종승은 이소희의 반응이 익숙한지 주눅 들지 않는다.

“내 목소리가 좀 크지? 그런데, 응원을 해주기는 어렵네. 내 목소리보다 김서진 검사 때문에 더 시끄러워질 거야. 수습 떼고 처음 주도적으로 시작한 사건이 미제? 검사가 칼을 꺼냈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는데, 이건 아무리해도 뭐가 안 나오잖아? 김서진 검사야, 보여주기 그만하고 민생에 집중해.”

“걱정해줘서 땡큐.”

서진이 손을 살짝 들었고 신종승의 미간은 찌푸려졌다.

말을 다다다 쏘아 붙였지만 서진의 여유로운 태도를 보면 이번에도 무시당한 기분이다.

아니, 무시당했다.

서진의 눈에는 신종승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더 열 받는 것.

옆에서 이소희가 ‘풉!’ 웃고 있었다.

신종승은 지고 싶지 않았고 굳이 쓸데없는 말을 더 지껄였다.

“그래, 잘 되나 보자.”

***

수요일 밤, 작은 교회 안에서 찬송가가 울리고 있었다.

그곳에 고등학교 교사 이재환이 앉아 기도를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재환의 옆에 누군가가 앉았다.

서진이었다.

그리고 곁눈질로 서진의 얼굴을 확인한 이재환의 눈동자가 확 커졌다.

‘김서진?’

커피숍에서 김서진 검사라는 이름을 듣고 인터넷을 뒤져서 그 얼굴을 악착같이 찾아냈다.

그래서 서진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여기는 왜 온 거지? 내 옆은 왜 앉은 거야?’

이재환의 눈동자가 떨려왔다.

10년 전, 이재환은 이 지역의 사립 고등학교에 터를 잡았다.

가르치는 과목은 수학.

그런데, 그는 지금 검사에게 용의자로 몰렸으며 급기야 교회까지 찾아와 옆에 앉아 있다.

이재환이 마른 입술을 적시며 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그때, 서진의 입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흘렀다.

“바쁘시네. 학교에서는 좋은 선생 코스프레, 교회에서는 한 주간의 반성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무엇을 하실까?”

“...무슨 말씀이시죠? 혹시 저를 아십니까?”

이재환이 억지로 웃으며 질문했고 서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너도 나 알잖아?”

이재환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질 때, 서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유아성 살해 사건의 범인은 너로 확정됐어. 지금은 네 다른 죄를 찾는 중이야.”

“...전 아니에요.”

“아니야. 너 맞아.”

서진이 시선을 틀어 이재환과 눈을 마주쳤다.

이재환의 표정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어두웠고 눈빛은 괴상했다.

그 비틀린 눈빛이 서진을 향했다.

“아무리 검사라 해도 엄한 사람 죄인으로 몰고 그러는 것 아닙니다.”

서진이 픽 웃었다.

그런데, 그 웃음이 서늘하다.

“엄한 사람?”

“그, 그러니까, 영장 가지고 오세요.”

그 말이 끝이었다.

이재환은 몸을 벌떡 일으킨 후 교회를 빠져 나갔고 서진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

교회 밖으로 나온 이재환은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멈춰 서고 말았다.

큰 덩치의 남자들, 그들이 이재환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가장 무섭게 생긴 남자가 신분증을 꺼내며 입을 연다.

“이재환 씨죠? 동남 경찰서 이정우 경위입니다.”

“겨, 경찰이요?”

뒤에서는 서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재환 씨, 유아성 살해 용의자로 긴급 체포 합니다. 영장 말씀하셨는데, 48시간 안에 받아서 보여줄 테니까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앞에는 형사, 뒤에는 검사.

이재환이 몸을 바들바들 떨며 말했다.

“나, 난 아니에요. 내가 안 그랬어요. 진짜야, 진짜라고! 난 그냥 애들 가르치는 사람이에요!”

이재환의 목소리는 혼란으로 가득했지만 서진의 목소리는 사무적이었다.

“알았으니까 일단 가시죠. 미란다 원칙도 가면서 천천히 설명 드릴 테니까 잘 들으시고요.”

***

“왜 이렇게 설치고 다니냐?”

신종승은 김윤환과 통화하며 지청의 복도를 걷고 있었다.

퇴근 하는 중이다.

이제 내일을 마지막으로 지긋지긋한 지청 생활의 끝이다.

-설쳐?

“미제 사건 해결하겠다고 까불고 다녀. 누가 보면 슈퍼맨인 줄 알겠어.”

수화기 너머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예전에는 그렇게까지 눈치 없이 굴지는 않았는데.

“그놈은 여기가 딱 어울려. 그냥 동남군에서 평생 썩었으면 좋겠어.”

-그런데, 그 미제 사건. 설마 해결하는 거 아니야? 지난번에 자매 사건도 그놈이 해결했다며?

“소 뒷걸음치다가 쥐 밟은 거라니까. 그리고 미제 사건이 왜 미제냐? 그걸 저놈이 어떻게...”

-하긴.

“어쨌든, 서울 가서 보자. 그리고 김서진 이 새끼는 신경 쓰지 마. 절대 해결 못 하니...”

그때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이명수 검사와 부장 검사, 그리고 지청장과 부지청장이 다급하게 내렸다.

신종승이 허리를 굽혀 인사했지만 그들은 본척만척하며 빠르게 입을 열었다.

“김서진이 유아성 사건의 범인을 잡았다고?”

“네, 지금 데리고 오는 중이랍니다.”

“확실한 거야?”

“김서진 말로는 그렇다고 합니다.”

지청장이 끌끌 웃었다.

“그놈 도대체 뭐야? 어? 이거 해결하면 서울 놈들한테 엿한번 먹일 수 있는 것 아니야?”

그들이 스쳐 가는 것을 보며 신종승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미제를 해결하면 서진은 단숨에 화제의 중심이 될 거다.

서진과 점점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신종승도 느꼈다.

그가 지청장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아니야, 아니겠지? 아닐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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