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3화 (13/250)

<유능하다는 것. -(3)>

정민구 형사는 지나치게 당황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잠깐이다.

“무, 무슨 말씀이세요? 10년 전 일을 아직도 조사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하.”

어색한 웃음, 윗선에 알리지 않고 혼자 수사를 이어가는 것 같다.

하지만 숨기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

서진은 더 묻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말씀드린 대로 증거물을 보고 싶은데요.”

*

“지문은 없었고요. 체모나 정액도 발견되지 않았어요. 말 그대로 유령처럼 사라졌죠.”

증거 보관실이었다.

정민구 형사가 유아성 사건에서 찾은 물품을 테이블 위에 늘어놓았다.

폭력을 행사한 망치와 몸을 구속한 빨래줄 그리고 담배꽁초였다.

“이제 전부인가요?”

“네.”

서진이 담배꽁초를 가리키며 물었다.

“DNA 감식은 했나요?”

“했죠. 그런데, 없었어요.”

비슷한 범행을 저질렀던 놈 중에 매칭되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사건 반경 4km 안에 거주하는 65세 미만 남성 120명의 DNA까지 확인했지만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여기는 관광객이 많은 지역이잖아요. 범인은 관광객 중 한 명이 아닐까 추측하며 사실상 수사를 종결했습니다.”

“...형사님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범인이 관광객이라고?”

“네? 글쎄요. 제가 그걸 어떻게...”

정민구 형사는 이정우를 힐끗 보며 말을 얼버무렸다.

혼자 수사하는 것이 알려지면 난처한 모양이다.

서진은 다시 증거물로 시선을 옮기며 머릿속으로 정민구 형사와 악수를 하며 봤던 흑백의 세상을 떠올렸다.

그 세상에서 범인은 말했었다.

-반성하며 살고 있었어. 그런데, 왜 들쑤시고 다녀?

-미안하지도 않았냐? 이 뻔뻔한 새끼야!

두 사람의 대화를 기억하면 정민구 형사는 범인의 근처까지 다다랐고 범인은 주변인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주변인이라...’

그 주변인이 이 지역 주인일까 아니면 피해자의 지인일까 그것도 아니면 정민구 형사의 주변인일까.

서진이 고개를 틀어 다시 정민구 형사를 향했다.

“혹시 이런 장소가 주변에 있나요?”

“어떤?”

서진은 수첩과 펜을 꺼내 흑백의 세상에서 봤던 골목을 슥슥 그려봤다.

정민구 형사가 그림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 초선리 주택가 같은데요?”

조용히 있던 이정우도 고개를 슥 내밀고 그림을 바라봤다.

“맞네. 초선리 주택가. 교회 뒷골목. 여기 유아성이 살던 집 근처잖아.”

“살던 집? 그럼 지금은 여기 안살아?”

대답은 정민구 형사가 했다.

“애 죽고 바로 이사 갔죠. 5년 전에 이혼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서로 보고 있으면 계속 아성이가 생각난다고...”

서진은 장갑을 착용 후 모든 증거를 가볍게 만져봤다.

혹시 흑백의 세상이 나타날까 해서였지만 역시 나타나 주지 않았다.

이제 더 물어볼 것도 확인할 것도 끝났다.

이곳에 있을 이유는 없었다.

서진이 장갑을 벗으며 정민구 형사에게 인사했다.

“바쁘신데 감사합니다.”

“뭘요.”

“그럼.”

서진은 가볍게 인사를 전한 후 이소희와 함께 몸을 틀었다.

그리고 문으로 향하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실무관님. 확인하고 싶은 게 하나 있어서요. 초선리 대생길 12. 이곳을 기준으로 8km 반경. 최근 10년간 몇 집이나 이사를 오고갔는지 확인할 수 있을까요? 네, 감사합니다.”

서진의 목소리는 진심으로 범인을 잡고 싶어 한다.

정민구 형사가 두 사람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이정우에게 물었다.

“경위님 친구라고요?”

“네.”

“어떤 사람입니까?”

“목표가 생기면 어떻게든 해내는 놈이었어요.”

“어떻게든 해낸다?”

“네.”

정민구 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

“여긴 또 왜 온 거야?”

“초선리야. 유아성이 살았던 곳.”

초선리 주택가였다.

서진은 이정우가 말한 교회 십자가를 기준으로 잡고 흑백의 세상에서 봤던 그 골목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찾았다.

‘여기.’

무단으로 버려진 쓰레기가 가득한 곳이다.

심지어 소형 냉장고도 보인다.

이곳에서 정민구 형사는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었고 범인은 칼을 들고 위협했다.

‘정민구 형사는 사망했을 거야.’

성인 남자 두 명이 나란히 걷기도 힘든 좁은 골목이다.

이곳에서 칼을 피하기는 어려운 일.

정민구 형사는 끔찍한 고통을 느꼈을 거다.

‘하...’

서진은 한숨을 내뱉으며 이번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이유를 떠올렸다.

첫째, 미제 사건을 해결하면 네임벨류가 올라간다.

그럼, 주변에 사람이 모인다.

그 사람이 힘이고 권력이다.

그게 이유였다.

그런데 지금 또 한 가지의 이유가 생겼다.

‘살려야지.’

정민구 형사를 살린다.

그를 가족의 품으로 보내준다.

서진은 얼굴을 쓸어내리며 목표를 정리했다.

-사람을 모아 힘을 얻는다.

-정민구 형사를 살린다.

그리고 계속해서 흑백의 세상을 떠올리며 그 다음 상황을 상상했다.

‘놈은 정민구 형사를 죽인 후 또 잠적했을 거야. 그런데, 잡힌 이유가 뭐지? 또 담배를 피웠나? 그래서 과학수사팀에서 담배를 찾아 DNA 검사를 했고...’

바닥을 살피자 이미 담배꽁초가 한 가득이다.

놈은 별 생각 없이 담배를 입에 물었을 거다.

‘담배...’

주변을 둘러보던 서진이 이소희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제 됐어. 가자.”

“가자고? 여긴 뭘 확인하러 온 거야?”

서진은 흑백의 세상을 확인하러 왔지만 이소희가 볼 때는 그저 골목에 서서 주변을 살핀 게 전부다.

그녀는 서진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궁금해 미칠 것 같은 눈빛을 보였다.

서진이 픽 웃었다.

그 까만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뭐라도 가르쳐 주고 싶었다.

“범인은 주변인일 가능성이 높아.”

“어?”

“놈은 시신의 옆에서 느긋하게 담배를 피웠어. 그 시간에  동네 사람들이 현장에 오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던 거지. 그리고 경찰과 마을 주민은 유아성의 시신을 2주일이나 찾지 못했어. 잘 숨겼다는 것이고 이 지형에 익숙하다는 뜻이야.”

이소희가 손을 들어 서진의 말을 잠시 멈췄다.

“잠깐만, 사건 반경 4km 안에 거주하는 남성의 DNA를 확인했다고 했어. 그런데, 주변인이라고? 일치하는 DNA가 없었잖아?”

“DNA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8조 3항. 대상자가 동의하면 영장 없이 DNA를 채취할 수 있다.”

반대로 동의하지 않으면 영장을 가져 올 때 까지 DNA를 채취할 수 없다는 거다.

서진이 말을 이었다.

“놈은 경찰의 DNA 채취를 거부했을 거야. 혹은 DNA 채취를 요구하는 경찰과 마주치지 않았을 수도 있지.”

“그럼, 그 사람들을 의심하지 않았을까?”

서진이 고개를 저었다.

“유아성이 사망하고 2주일 후, 여기서 연쇄 살인 사건이 터졌어. 여 고생이 두 명 죽고 임산부가 사망했지.”

그렇게 유아성의 사건은 묻혔다.

정민구 형사를 제외하고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놈은 아직도 이곳에 살고 있을 거야.”

서진의 말은 확신에 차 있었다.

이소희가 눈을 깜빡인다.

“...아직 살고 있다고?”

“악랄하고 대담한 범행을 저질렀는데 경찰을 피해갔어. 놈은 이곳이 최적의 안전 처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어쩌면 이곳을 근거지로 삼고 추가 범행을 이어가고 있을지도 모르지.”

매년 3~4만 명의 아동이 실종된다.

그 중 끝까지 발견되지 않은 아동이 2018년 기준 180여명이다.

이소희는 마른 침을 삼켰고 서진의 말이 이어졌다.

“지난 10년, 수사 기법이 발전하는 동안 놈의 범행은 진화했을 거야.”

“진화했다?”

“그러니까 잡아야지. 더 괴물이 되기 전에...”

*

잠시 후, 지청으로 들어온 이소희는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서진이 ‘이제 됐어. 가자.’ 라고 했을 때 군말 없이 따랐어야 했는데, 괜히 질문을 했다가 동네를 한 바퀴 돌며 강의를 들었다.

그녀의 귓가에 서진의 목소리가 스쳤다.

-그러니까 잡아야지. 더 괴물이 되기 전에...

이소희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걸렸다.

그때, 실무관이 이소희의 책상 위로 커피를 내려두며 물었다.

“무슨 생각하세요?”

실무관은 사십대 중반의 여성으로 이소희가 수습을 밟을 때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이다.

“실무관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네.”

“만약에 정말 만약에 미제 사건이 해결되면 어떻게 될까요?”

“해결만 된다면 정말 난리가 나겠죠.”

“그럼, 그걸 해결한 검사는 어떻게 될까요?”

“경찰이 아니라 검사요?”

“네. 그것도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수사부터 기소까지. 잘 하면 공판에 서서 마무리도 할 수 있겠네요.”

어떻게 보면 뜬금없고 철없는 질문이다.

하지만 실무관은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을 하다가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전화 오지 않을까요? 정부 여당이나 야당에서?”

가능성은 존재한다.

총선이 다가오는 중이고 미제 사건을 해결한 검사의 영입은 상당히 효과적일 것이다.

실무관이 슬쩍 웃으며 계속 말했다.

“그런데, 이 검사님은 얼굴이 예쁘니까 방송국에서 연락 올 것 같아요.”

이소희는 고개를 저으며 커피를 손에 댔고 실무관이 의자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정치권은 조금 과하지만 위에서는 눈길을 둘 거예요.”

“위?”

“적어도 본청. 잘하면 대검.”

커피를 마시던 이소희의 행동이 멈칫거렸다.

“...대검?”

***

며칠 후 모두가 퇴근한 늦은 밤.

서진은 뒷목을 주무르며 기록물에 집중하고 있었다.

DNA를 채취하지 않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당시 중, 고등학생까지 용의선상에 올렸고 추리고 추려서 8명을 최종 선택했다.

‘이 중에...’

그때, 문이 열리고 신종승이 고개를 내밀었다.

“퇴근 안 하냐?”

여전히 비아냥대는 목소리, 서진은 관심을 끄고 서류를 넘겼다.

신종승이 건들건들 서진의 앞에 서더니 책상 위에 놓인 기록물을 슥 보고 낄낄 댔다.

“유아성? 진짜 이거 하게? 요즘 지청에 소문났더라. 너 병신 짓 한다고.”

누군가는 열심히 한다 말하기도 하지만 신종승은 좋은 이야기는 싹 빼고 지껄였다.

급기야 책상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계속 말한다.

“이제 며칠 후면 난 서울로 간다. 혹시 형한테 섭섭한 거나 필요한 것 있으면 말 해. 우리 친했잖아? 그런데, 계속 이렇게 있으면 좀 찝찝하지. 혹시 형 혼자 서울로 가서 삐진 거야? 그리고 여기서는 열심히 할 필요 없어. 가만히 있다가 내년 쯤 서울로 올라와. 형이 괜찮은 술집 세팅해 놓고 있을 게.”

서진이 한숨을 내뱉으며 신종승을 향해 눈동자를 옮겼다.

“필요한 것 있으면 말하라고?”

“어? 어. 뭐야. 말 해.”

“엉덩이 좀 치워줄래? 더러운데.”

“이 새끼가 진짜!”

“조용.”

“뭐?”

휴대폰이 울리고 있었다.

서진은 신종승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휴대폰을 귀에 댔다.

“네, 김서진입니다.”

-정민구입니다. 하나 물어보고 싶어서 전화했습니다.

“말씀하세요.”

-왜... 10년이나 된 낡은 사건을 꺼내보시는 거죠?

“이유가 있겠습니까? 범인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 그런 거죠.”

수화기 속 정민구 형사의 웃음소리가 낮게 들려왔다.

-그렇죠. 범인 얼굴 보고 싶어서 이 일을 하는 거죠. 좋습니다. 혹시 지금 시간 되십니까? 초선리에 있는 호프집입니다.

서진이 통화를 종료하며 신종승에게 입을 열었다.

“퇴근 해.”

서진은 신종승의 어깨를 툭 친 후 재킷을 손에 들고 사무실을 벗어났다.

신종승은 황당한 표정으로 서진을 쏘아봤다.

또 무시당한 기분이다.

그리고 뒤늦게 서진이 자신의 어깨를 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종승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익! 야!”

*

“10년을 쫓았습니다.”

초선리에 있는 작은 호프집이었다.

테이블 위에 누런 서류 봉투가 놓여있고 정민구 형사가 소주잔을 만지작대며 계속 말했다.

“피해자가 제 친구예요. 아성이 돌잡이 할 때 사회도 제가 봤었죠. 그래서 이 손으로 잡고 싶었고 더 파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눈치가 보여서 어렵네요. 다른 사건이 계속 터지는데 왜 죽은 자식 부랄 만지고 있냐고 욕을 먹거든요.”

“......”

“그리고 요즘 제 능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어요. 10년을 쫓았는데 그림자도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이제 그만 할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정우 경위에게 들어보니까 검사님의 성격이 집요하다고 들었어요.”

그것뿐이 아니다.

정민구 형사는 증거 보관실에서 서진이 찌르던 질문을 기억했다.

그 질문은 날카롭고 맥을 짚었다.

어쩌면 새로운 시각으로 사건에 접근해서 해결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통을 넘기고 싶었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정민구 형사가 소주잔을 쭉 들이켰다.

서진이 서류 봉투를 손에 들며 입을 열었다.

“반드시 잡겠습니다.”

서진은 서류 봉투에 있는 내용물을 꺼냈다.

용의자로 찍은 다섯 명의 파일이 보인다.

그런데, 이들은 서진이 생각했던 사람과 겹쳤다.

확실해졌다.

이 중에 한 사람이 범인이다.

서진은 서류를 한 장, 한 장 넘겨봤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세상이 색을 잃으며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반성하며 살고 있었어. 그런데, 왜 들쑤시고 다녀?”

주택가의 골목, 어두운 밤에 상대는 회칼을 손에 쥐고 있다.

그런데, 이 장면은 지난 번 봤던 흑백의 세상과 똑같다.

얼굴은 보이지 않고 번쩍이는 회칼만 보인다.

그런데,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

범인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정민구 형사가 아니라는 것.

그 앞에는 서진이 있었다.

범인이 서진을 보며 빠드득 치아를 갈며 계속 말했다.

“난 착하게 살았어! 기도도 했다고! 신은 용서 해 준다고 했는데, 넌 왜 지랄이야!”

상대가 회칼을 쥔 채 달려들었다.

*

세상이 다시 색을 찾았다.

서류 속 용의자의 얼굴이 보였고 정민구 형사는 쓴 소주를 마시고 있다.

그리고 식어서 퍽퍽해진 치킨이 놓여 있다.

잠시 눈을 찌푸리고 있던 서진이 끌끌 웃음을 터뜨렸다.

정민구 형사를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24시간 뒤를 밟아야 하나 어쩌나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미래가 바뀌었다.

범인은 이제 서진을 노리고 있다.

서진이 빙긋이 웃으며 소주잔에 술을 채웠다.

미래를 알고 있는데 당하면 멍청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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