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9화 (9/250)

<환생 검사. -(7)>

서진이 법정으로 들어갔다.

뚜벅, 뚜벅 검사석을 향해 걷는다.

그리고 보자기를 내려두며 방청석을 향해 시선을 틀었다.

기자, 피해자의 남편 그리고 다른 재판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방청객들.

그런데, 그 자리에 이곳에 함께 온 친구 이정우는 없었다.

서진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시간 안에 올 수 있을까?’

***

“그런데, 진짜 아무것도 기억 안 나?”

“어.”

20분 전이었다.

법원으로 이동하는 자동차 안, 서진은 이정우에게 재판 끝날 때 까지 조용해 달라고 부탁했었다.

하지만 이정우는 그 부탁을 외면한 채 계속 떠들었다.

“기억이 안 난다는 거지? 그럼... 나한테 30만원 빌렸던 것도 기억 안나?”

기억을 잃었다고 약을 파는 중이다.

서진은 단호히 말했다.

“어, 기억난다. 안 빌렸어.”

“자전거 준다던 것은?”

“그것도 기억난다. 안 준다고 했어.”

“에헤이, 다 기억하네. 자전거와 돈은 아쉽지만 다행이야.”

이정우는 낄낄낄 웃으며 서진을 바라봤다.

그 눈빛 역시 진정으로 서진을 아끼는 눈빛이었다.

그때, 이정우의 품에서 트로트 음악이 흘렀다.

놈의 벨 소리다.

“요즘 트로트가 좋아서.”

이정우는 빙긋이 웃으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네, 박 형사님. 우수진 사건이요? 그렇죠. 가장 먼저 알려달라고 부탁드렸죠. 네, 술사겠습니다.”

이정우는 우수진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형사와 나눴고 서진은 자연스레 귀를 기울였다.

이정우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네? 이수진 휴대폰이요? 원형볏짚에서 찾았다고요? 그게 왜 거기서 나와요?”

그 순간이었다.

서진은 운전하던 차를 갓길에 세우며 브레이크를 밟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정우가 깜짝 놀랐다.

“왜? 왜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아?”

서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세상이 흑백으로 변하고 있었다.

*

“엄마는 지금 회식 끝나고 슈퍼마켓 앞을 지나가는 중이야.”

풀벌레 소리가 나는 시골 길이었다.

어둑한 곳을 한 여성이 비틀비틀 걸어가고 있었다.

누군가와 통화하는 게 아니다.

화면에는 녹음 표시가 보인다.

“오늘은 사장님이 택시타고 가라고 돈을 줬어. 그걸로 엄마가 크리스마스 선물 사줄 게. 지웅이는 운동화, 정웅이는 터닝메카드.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아빠가 올지 모르겠다. 아빠 오면 혼내 주자.”

그때였다.

거친 엔진음이 들렸다.

라이트가 번쩍이며 여성의 시선이 불빛을 향해 틀어졌다.

콰아아아앙!

여성이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이 논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길 위에서 남자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치긴 쳤어. 그런데, 아, 아직 숨 쉬는 것 같아. 어쩌지? 기다릴까? 기다리면 죽을 것 같은데... 아, 씨발. 누가 보면 어떡하지?”

서진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고 있었다.

바로 차량을 운전했던 운전자 장동익이었다.

*

“왜? 왜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아?”

세상이 색을 찾으며 이정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진은 이마를 감싼 채 고개를 저었다.

‘물건을 만지지 않았는데도 보여?’

서진이 세웠던 규칙과 조금 어긋났다.

하지만 지금은 능력에 대해 깊게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정우야, 증거 가지고 와줘.”

“뭐?”

“그 휴대폰 법정으로 가져다 줘.”

***

20분 전에 있던 기억을 떠올리며 서진이 자리에 앉았다.

환생해서 이곳에 앉으니 감회가 새롭다.

서진은 손가락으로 툭툭 책상을 두들기며 눈을 감았다.

법정의 공기와 밖의 공기는 다르다.

큰 소리도 낼 수 없을 만큼 무거운 분위기가 사람들을 짓누르고 있다.

이 안에서 서진은 칼잡이다.

죄인의 목을 쳐서 피해자의 복수를 대신해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자리에 선 의미가 없다.

오늘의 죄인은 우수진.

그녀는 교통비까지 아끼며 두 아이를 키우던 엄마를 죽였다.

이유는 보험금 10억.

그깟 돈 때문에 두 아이는 평생 엄마를 그리워해야 한다.

서진은 생각을 이어가며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들겼다.

그러다가 그 리듬을 멈추고 손바닥으로 검사석을 쓸어 만졌다.

다시 앉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검사석.

입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검사복.

다시 시작된 검사의 인생이다.

지난 삶에서 성폭행 범으로 몰렸고 자살로 위장당해 살해당한 것은 힘이 없어서였다.

이번에는 다를 거다.

전생과 달리 모든 것을 씹어 먹을 거다.

이 재판은 그 계획의 첫 시작이다.

서진이 천천히 눈을 떴다.

맞은편에 구상진 변호사가 보였다.

기름진 얼굴로 거만하게 서진을 쏘아보고 있다.

그 눈빛이 말하는 게 들린다.

-넌 안 돼.

피고인 우수진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깨를 가늘게 떨며 손을 꼼지락 거리는 중이다.

긴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어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서진은 그 안쪽에 어떤 얼굴이 자리 잡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우수진은 어서 이 시간이 지나 무혐의를 선고받고 밖으로 나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동생이나 조카에 대한 미안함은 없다.

자기 자신이 우선이다.

두 사람을 바라보며 서진이 조용히 웃었다.

두 사람이 발버둥 칠수록 떨어지는 골짜기는 깊을 거다.

“검사, 기소요지 진술하세요.”

판사의 목소리가 울렸다.

서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법정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서진에게 집중됐다.

수습 검사가 수사를 시작으로 기소에서 공판까지 서게 됐다.

하나의 실수로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이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심장이 뛸 수밖에 없다.

침이 마르고 초점이 흐려야 한다.

하지만 서진은 달랐다.

목소리부터 여유롭다.

“피고인 우수진은 초등학교 동창 장동익과 친동생 우수경을 살해하기로 공모했습니다. 두 사람은 타인의 명의로 개통된 휴대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살해 계획을 구체화 했으며...”

서진의 말이 이어질 때였다.

구상진 변호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건방진 새끼.’

구상진 변호사는 서진의 저 느긋함이 마음에 안 들었고 주는 것 없이 싫었다.

‘재판이 끝날 때 쯤 그 표정이 어떻게 바뀌나 보자. 그 자리는 혼자 서 있어야 해. 울어도 도와주는 사람 없어.’

구상진 변호사가 입술을 뜯어 물며 자신의 옆에 앉은 피고인 우수진을 슬쩍 바라봤다.

우수진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몸을 가늘게 떨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자신의 범죄 행위가 사람들 앞에서 낱낱이 드러나는 중이다.

몸이 떨리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거다.

‘먼저 이 여자를 안심 시켜야 해.’

구상진 변호사가 우수진에게 몸을 기울이며 작게 속삭였다.

“괜찮습니다. 확정된 것은 없어요. 절차일 뿐입니다.”

우수진이 고개를 끄덕였고 구상진 변호사가 말을 이었다.

“검사의 말은 모두 부인하세요. 내 말만 따르세요. 그럼, 집에 갈 수 있습니다.”

“...전 잘 못이 없어요. 정말 없어요.”

“맞아요. 없어요. 잘 들으세요. 당신은 무죄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동안 내가 말했던 것을 기억하세요. 산 사람은 살아야죠. 당신이 감옥에 들어가면 조카들은 어떻게 합니까?”

범죄자는 범죄를 저지른 자신과 평소의 자신을 분리시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범죄를 저질렀던 그 상황에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입하며 스스로 납득시킨다.

-그래, 그럴 수밖에 없었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난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야.

자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는 스스로의 변명.

스스로가 스스로를 용서하며 죄의식은 씻겨간다.

우수진이 그랬다.

그녀의 떨리는 몸이 멎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며 구상진 변호사를 향했다.

“맞아요. 조카들을 위해서였어요. 동생도 원했던 일이에요.”

구상진 변호사가 우수진을 보며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동생 분도 원하고 있었습니다.”

구상진 변호사가 악마처럼 웃었다.

이제 우수진의 멘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됐어.’

구상진 변호사는 방청석으로 시선을 틀었다.

기자들이 가득했고 그 중에는 촌 동네 사건에는 관심 없다며 건방떨던 메이저 언론사의 기자들도 보였다.

그들을 살펴보던 구상진 변호사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여기서 패배하면 변호사로서 끝이다.

JTJ 장택준 대표는 말했다.

고객들은 선과 악을 보지 않는다고 능력과 무능을 볼 뿐이라고!

그 고객들이 이 사건을 지켜보고 있다.

고객이 없다면 변호사는 법을 잘 아는 자영업자일 뿐이다.

‘좋게 생각해. 이기기만 하면 다이렉트로 VIP와 이어질 수도 있어.’

여기서 패하면 대중은 그를 악마를 변호한 변호사라며 욕할 것이고 고객들은 능력이 없다며 외면할 거다.

하지만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승리만 하면 대중은 검찰의 무리한 기소를 막아낸 정의의 변호사라며 칭찬할 것이고 고객들은 그 능력을 인정해 줄 거다.

‘할 수 있어.’

다행히 상대는 수습 검사이며 서포트한 검사들도 중앙에서 유배당한 한물 간 인물들이었다.

구상진 변호사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때, 판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피고인 우수진은 검사의 기소 사실을 인정합니까?”

고개를 숙이고 있던 우수진의 시선이 판사에게 옮겨졌다.

우수진의 얼굴에 죄의식은 없었다.

지나칠 정도로 담담한 눈동자로 판사를 바라보며 톤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뇨. 전 동생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 말이 끝이 아니었다.

우수진의 시선이 서진에게 옮겨졌다.

그리고 건조한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검사님, 제발 믿어 주세요. 제가 동생을 왜 죽여요. 지금도 보고 싶어요. 저 집에 가야 해요. 우리 조카들 누가 키워요.”

법정이 술렁였다.

그 목소리는 정말 억울했고 처연했다.

방청석에 앉은 사람들의 속삭이는 목소리가 서진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진짜 누명 쓴 거 아니야?”

“그런 것 같은데? 인간인 이상 저럴 수 없잖아?”

“검사가 초짜라더니, 영웅되고 싶어서 무리했네.”

그 목소리가 향하는 곳은 당연히 서진이었다.

하지만 서진은 빙긋이 웃었다.

‘궁금하네.’

소름끼치도록 뻔뻔한 얼굴이 박살났을 때 드러난 본 모습.

서진은 그게 궁금했다.

“그럼, 검사는 피고인 신문을 시작하세요.”

서진이 자리에서 일어서 우수 진의 앞으로 다가갔다.

서늘한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우수진 씨, 고인의 사망 보험금 10억의 수익자라고요?”

“네.”

“알고 있었나요?”

“네.”

“어떻게 알았죠?”

“...동생이 말했었어요. 자신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만약 잘 못 되면 아이들을 잘 돌봐 달라고요.”

“사채 빚이 있네요?”

“전 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어요. 현금이 필요하니까 잠깐 돈을 빌렸다가 바로 갚아요. 이상한 게 아니에요.”

우수진은 서진의 모든 질문에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말 그대로 철면피, 뻔뻔스럽고 염치없다.

서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고인이 된 동생에 대해 묻겠습니다. 고인은 남편과 사실상 이혼이었다고요?”

“네. 결혼하고 애를 난 뒤에 쭉 따로 살았어요.”

“남편은 그렇게 주장하지 않던데요?”

“그건 보험금을 나누려고 그런 거죠! 그게 아니면 돈이라도 보냈겠죠!”

“많은 돈은 아니지만 불규칙하게 보낸 증거가 있습니다.”

“하! 양심은 있었나 보네요.”

서진은 조용히 우수진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장동익과 연락할 때, 왜 타인 명의의 휴대폰을 사용했습니까?”

“장동익이 선물해 줬어요. 다른 사람 명의인 줄은 몰랐고요. 이유는... 자신과는 그 휴대폰으로 연락하자고 했거든요.”

“왜죠?”

“...사귀었으니까요.”

“동창회에서 만나 사귀었고 보험금 이야기를 공유했으며 범죄를 공모했습니까? 죽이자고?”

“아니라고요!”

핏발선 목소리가 법정을 채우는 순간 구상진 변호사가 다시 일어섰다.

“재판장님! 검사는 근거 없는 억측으로 피고인을 당황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검사측은 객관적인 사실에 대해서만 질문하세요.”

서진이 곧바로 우수진을 향해 찌르듯 말했다.

“그럼, 계속 휴대폰에 대한 질문을 하겠습니다.”

“그냥 사귀니까 받은 거라고 했잖아요!”

우수진은 비명처럼 대답을 했고 구상진 변호사는 또 일어섰다.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검사!”

하지만 서진은 멈추지 않았다.

“우수진 씨 휴대폰 말고 동생 우수경 씨의 휴대폰입니다!”

“......!”

“동생이 휴대폰의 녹음 기능을 이용해서 일기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까?”

갑자기 일기를 왜 질문할까?

우수진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을 이어가던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씩 녹음했어요. 그런데 왜요?”

“고인은 사건 발생 시각에 일기를 녹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인의 목소리 말고 다른 게 녹음되어 있었습니다.”

“네?”

우수진의 얼굴이 허옇게 질리더니 핏발선 눈동자로 서진을 바라봤다.

“...다른 게 녹음되어 있었다고요?”

동시에 법정의 문이 열리고 이정우가 들어왔다.

그를 본 서진이 몸을 돌려 판사를 향하며 입을 열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방금 고인의 휴대폰을 찾아냈습니다. 사전에 채택되지 않은 증거지만 이 사건의 진실을 찾는데 중요하다고 판단되어...”

저 증거가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저것으로 인해 이 재판이 기울어질 것은 확실하다.

기자들이 마른 입술을 핥으며 속삭였다.

“치열한 공방이 있을 줄 알았는데...”

“나도. 구상진이 아무 것도 못하고 끝날 줄은 몰랐어.”

“저 수습 누구야?”

일방적이었다.

구상진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지금도 그렇다.

멍하니 앉아 있을 뿐이다.

그러다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이, 이의 있습...”

하지만 구상진의 목소리는 이어질 수 없었다.

우수진이 귀를 막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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