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8화 (8/250)

<환생 검사. -(6)>

***

“이기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 JTJ 로펌의 대표 이사실.

구상진 변호사가 장택준 대표를 향해 입을 열었다.

장택준 대표는 몸을 틀어 창가로 걸어가더니 손가락으로 블라인드를 내려 창밖을 살폈다.

로비 앞에 가득 서 있는 기자들이 보였다.

그 기자들이 침을 질질 흘리며 기다리는 것은 바로 구상진 변호사다.

장택준 대표의 시선이 천천히 구상진 변호사를 향했다.

“요란하더라.”

정의로운 척 하던 구상진 변호사가 동생을 죽인 언니를 변호한다.

그 소식이 전국을 울리고 있었다.

-돈만 주면 악마도 변호한다는 게 진짜였구나.

-방송에서는 그렇게 정의로운 척 하더니...

-아직도 예능이 진짜인 줄 아는 사람이 있나???

-난 예전부터 구상진 마음에 안 들었어.

-검사 생활하다가 JTJ 들어간 거 보면 사이즈 나오잖아.

-돈에 영혼을 판 거지.

-JTJ였음? 그 나물에 그 밥이네.

“죄송합니다.”

장택준 대표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죄송할 것은 없어. 난 네가 동네 똥개를 변호해도 상관없어.”

“......”

“하지만 지는 것은 용서 못 해.”

그 목소리가 서늘했다.

구성진 변호사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장택준 대표가 뚜벅뚜벅 구상진 변호사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구상진 변호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며 말을 이었다.

“그 언니를 불쌍하게 포장해. 죽은 동생을 죽어도 싼 사람으로 묘사해. 그리고 그 검사를 악마처럼 연출하는 거야.”

“......!”

“그 언니의 눈물에 대중의 마음이 흔들리겠지. 누군가는 그 언니를 풀어주라고 말할 거야. 여론이 움직이면 판사들은 부담을 느끼지. 법리 싸움은 그 다음이야.”

구상진 변호사의 어깨를 두들기던 장택준 대표의 손길이 뚝 멎었다.

그리고 싸늘한 목소리가 구상진 변호사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이번 사건은 여론의 관심을 받고 있어. 반드시 이겨야 해. 기억해, 우리 고객은 인터넷에서 욕하는 새끼들이 아니야.”

“......”

“우리의 고객은 우리가 선한지 악한지를 신경 쓰지 않아. 우리가 유능한지, 무능한지, 그것만 신경 쓰지.”

“......”

“이겨라. 이런 하찮은 싸움도 이기지 못하면 이곳엔 네가 서 있을 곳이 없어.”

장택준 대표가 구상진 변호사의 어깨를 다시 툭툭 토닥였다.

그리고 몸을 돌려 창가로 걸어갔다.

구상진 변호사가 장택준 대표를 향해 천천히 허리를 굽혔다.

고개를 숙인 구상진 변호사가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계속 이곳에 있으려면 무조건 이겨야 한다.

*

기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더니 앞 다투어 셔터를 눌러댔다.

타깃은 구상진 변호사였다.

“구상진 변호사님! 이 사건을 맡으면서 부담은 없으셨습니까?”

“돈만 밝히는 변호사라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구상진 변호사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도대체 누가 죄인이라는 겁니까? 판결이 확정 났습니까? 무슨 증거가 있다는 겁니까? 당신들의 펜대가 사람 하나를 살인자로 몰고 있어요!”

기자들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이들도 산전수전 겪은 기자들이다.

곧바로 질문이 쏟아졌다.

“변호사님은 무죄로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 이유가 뭐죠?”

“말씀해 주십시오!”

구상진 변호사가 고개를 저었다.

“모든 것은 검찰의 주장이고 의혹입니다. 이 살인 사건은 지문 하나 나오지 않았어요. 동생을 잃은 언니의 슬픔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살인자로 몰려 체포됐어요!”

“......”

“기자님들 무죄추정의 원칙을 기억해 주세요. 2심에서 유죄의 판결이 선고되었어도 그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의 추정을 받습니다. 그런데 한 가련한 여자가 1심도 끝나기 전에 동생을 죽인 살인범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검찰이 그렇게 만들었어요. 여러분은 지금 동조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조금만 자중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구상진 변호사가 기자들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곧바로 플래시가 눈이 부실 정도로 터졌다.

*

잠시 후, 동남군 경찰서 변호사 접견실.

구상진 변호사는 피해자의 언니 우수진과 마주 앉아 있었다.

구동진 변호사가 우수진의 앞으로 휴대폰을 내밀었다.

“읽어 보세요.”

언니가 동생을 죽였다는 자극적인 기사 제목이 보였다.

-동남군 살인 사건 언니 긴급 체포, 남자 친구와 짜고 동생 살인.

-친동생 살해한 언니 사채 빚까지 있어.

-동생 살해 후 조카들 끌어안고 ‘너희는 내가 키우겠다.’ 충격. 발언.

-동생은 살아 있었다. 하지만 죽을 때 까지 기다려. 반인륜적 범행 반성 없어.

우수진이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러자 구상진 변호사가 빙긋이 미소 지으며 화면을 툭 건드렸다.

다른 기사 내용이 보인다.

-구상진 변호사, 지문 하나 없는 사건. 교통사고일 뿐이다.

-구상진 변호사, 억울한 수감자 만들지 않기 위해 이 사건 맡았다.

구상진 변호사가 눈동자를 움직여 우수진을 향했다.

“보험금으로 10억이 나오죠? 그 절반을 제게 주세요. 무죄로 만들어 주겠습니다.”

우수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무죄요?”

“난 그럴 능력이 있어요. 하지만 보험금의 절반. 그 정도는 받아야겠습니다.”

손을 꼼지락 대던 우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구상진 변호사가 빙긋이 웃으며 우수진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왜 죽였습니까? 어떻게 죽였죠? 어떤 계획이 있었습니까? 난 당신 편이에요. 그러니까 솔직히 말해주세요. 그래야 무죄를 만들 수 있습니다.”

“...빚을 갚아야 했어요.”

“빚?”

“인간답게 살고 싶었어요. 그런데 동생이 생명 보험에 들었고 그 수익자가 저라는 말을 했어요. 아이들이 어리니까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그 돈으로 도와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미쳤었나 봐요. 그래도 동생의 애들은 거두려 했어요. 동생도 애들 좋은 학원 못 보내는 것으로 미안해했으니까 내가 좋은 학원 보내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너무 미안해요. 동생이 보고 싶어요.”

우수진은 한참을 울었다.

그러다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설움 가득한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어 물었다.

“...그런데, 정말 무죄 받을 수 있나요?”

구상진 변호사가 빙긋이 웃었다.

“네.”

***

“아, 걱정하지 마세요.”

며칠 후 아침, 서진은 어머니와 통화하며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언니가 동생을 죽인, 그것도 보험금을 노리고 청부 살인 사건에 전국이 시끄럽다.

그런데, 그 사건을 맡은 검사가 서진이다.

걱정이 안 될 수 없다.

-밥은 먹었어?

“네, 먹었어요.”

서진은 슬쩍 식탁으로 시선을 돌렸다.

루이 14세가 식사를 해도 어울릴 것 같은 고풍스러운 식탁, 물론 어머니의 취향이다.

그 식탁에 라면이 올라와 있었다.

-또 라면 끓여 먹은 거 아니야?

“곰탕 끓여 먹었어요.”

거짓말 한 것은 아니다.

곰탕 라면이었다.

-정말?

“네.”

-잠깐만 아버지가 전화 바꿔 달래.

전화를 끊으려는데,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이 공판이지? 힘든 거 있으면 아빠한테 말해.

아버지의 든든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통화가 종료된 후 서진은 휴대폰을 내려두며 슬쩍 웃었다.

‘부럽네.’

서진은 전생의 부모님 얼굴을 기억 못 한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삼겹살집 앞에 버려졌고 인생의 절반을 고아원에서 보냈다.

그래서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지라는 것을 모른다.

그 감정이 무엇인지, 얼마나 든든한 것인지 책으로 배웠을 뿐이다.

그런데, 환생을 해서 그 감정을 느끼고 있다.

부러웠고 미안했다.

서진은 다 먹은 라면 그릇을 설거지한 후 밖으로 나섰다.

엘리베이터에 오르며 서진의 눈이 점차 차가워진다.

오늘은 1차 공판이다.

구상진 변호사는 피고인 우수진이 동생을 살인할 어떤 의도도 없었으며 교통사고와 어떤 관계도 없다고 주장한다.

공범으로 지목된 운전자 장동익도 마찬가지.

처음부터 지금까지 모든 것을 발뺌하고 있다.

오늘 서진은 그들이 치밀하게 준비한 거짓말을 부숴야 한다.

엘리베이터가 멈춰서고 서진이 내렸다.

휴대폰이 또 울린다.

이번엔 동생 진영이다.

“어, 진영아.”

-형, 정우 형 못 봤어?

“정우?”

-내가 예전에 이야기 했었잖아.

서진은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이정우.

서진과 고등학교 친구이며 경찰대를 졸업하고 동남군 경찰서 강력반에서 근무하는 중이다.

1년 정도 더 있다가 서울로 발령될 가능성이 높다고 들었다.

어떻게 경찰대에 입학했는지 모를 정도로 건들거린다고... 동생 진영에게 들었다.]

“어, 기억해. 왜?”

-어제 동네 커피숍에서 만났거든.

“그런데?”

-내가 입이 방정이지. 술 한잔 마시고 술 깨려고 들어갔는데, 좀 취해서 정우 형을 만났더니 반가웠나 봐. 형 아픈 이야기를 했어. 아파트 5층에서 떨어졌다고. 그랬더니...

진영은 이정우에게 이끌려 서진이 떨어진 아파트 현장을 돌아 다녔다고 한다.

여기저기, 쉬지 않고 새벽 2시까지.

진영의 불쌍한 모습이 떠올라 서진은 픽 웃었다.

“고생했다.”

-몰라, 새벽에 바로 형 본다고 강원도로 갔어. 그 성격 알지? 아, 모르는 구나. 어쨌든 고생해.

서진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주차장으로 몸을 틀었다.

그때였다.

“김서진!”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덩치 좋고 날카롭게 생긴 남자가 서진을 향해 다가왔다.

사진에서 본 적이 있다.

저놈이 바로 이정우였다.

이정우가 주머니에 손을 꽂고 서진에게 걸어왔다.

“아팠다며?”

“어.”

“난 기억 나냐?”

“누군지는 알겠네.”

이정우가 담배를 입에 물며 한숨처럼 연기를 내뱉었다.

그리고 거친 외모로 울먹이며 말했다.

“...내가 너 민 새끼 꼭 찾아줄 게.”

“밀었는지 떨어졌는지 어떻게 알아?”

“강력반 형사의 감이야. 거기 사람 떨어뜨리기 딱 좋더라.”

그것은 서진도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과거의 서진이 재개발 아파트 5층에서 떨어진 이유부터 사고 당시의 상황까지 모든 게 의문이었다.

주변의 CCTV를 둘러봤었지만 나오는 것은 없었고 119에 신고한 사람조차 기록에 없었다.

서진은 이정우의 말을 조금 더 듣고 싶었지만 지금은 법정으로 가야할 시간이었다.

“휴가라고 했지?”

“어?”

“일단 타.”

서진이 차에 올랐고 이정우가 조수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두르며 말했다.

“그런데, 너 되게 무게 잡는다? 예전처럼 장난도 좀 치고 그러면 안 되냐? 너 걸그룹 좋아했잖아! 걸그룹은 언제나 옳다면서!”

“잠깐만... 지금은 나도 집중해야 할 게 있거든.”

“아, 그 우수진 사건? 그거 우리 서에서도 유명해. 구상진 변호사가 이 악물고 덤빈다며?”

“어, 그러니까 지금은 조용히 하고 재판 끝나고 이야기 좀 하자.”

서진은 엑셀을 꾹 밟았다.

차량이 법원을 향해 미끄러졌다.

*

“진짜 구 변호사 말대로 검찰이 세도우 복싱하는 거 아냐?”

“그럴 가능성이 높지. 이번 사건 기소한 애가 초짜래. 이번이 데뷔전.”

조용했던 법원이 소란스러웠다.

기자들이 담배 연기를 뿜어대며 저마다 생각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럼, 첫 사건 맡았다고 쓸데없이 열심히 한 거 아니야? 그냥 교통사고인데 자기가 셜록인줄 알고 사건을 만들어 낸 거지.”

“말 되네.”

기자들이 낄낄 거렸다.

법무법인 JTJ에서 연일 보도 자료를 뿌려대고 있다.

그 모든 것은 피고인 우수진이 알고 보니 죄가 없다는 것이었다.

-우수진은 열심히 살아왔고 체포되기 직전까지 조카들에게 아침밥을 차려줬다.

-동생이 죽고 사흘밤낮을 울었다.

사건과 관계없는 감성팔이 기사였다.

하지만 여론은 ‘저런 사람이 범인일리 없어!’라며 흔들리고 있었다.

“이번엔 검찰이 두들겨 맞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신인이 구상진을 이기기는 힘들어.”

베테랑 기자의 말이었고 기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의견에 동의했다.

그때였다.

소란스러웠던 곳에 갑자기 적막이 찾아왔다.

저벅, 저벅 들리는 발소리.

기자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옮겨졌다.

서진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신인이 구상진을 이기기는 힘들어.’라고 말했던 베테랑 기자가 중얼거렸다.

“...신인 맞아?”

그는 오랜 시간 법정에서 굴러왔다.

데뷔 전을 치르는 검사가 얼마나 긴장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서진은 다르다.

이곳에 있는 기자들이나 구상진 변호사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있다.

느긋하며 여유롭다.

베테랑 기자가 마른 입술을 핥았다.

“구상진이가 망신당할 수도 있겠어.”

그리고 복도를 걷던 서진이 시선을 들었다.

서진에게 기자들의 속삭임은 들리지도 않는다.

오직 법정만 보이고 있다.

서진이 서늘한 문고리를 잡으며 비틀었다.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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