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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김서진-7화 (7/250)

<환생 검사. -(5)>

신종승은 구상진 변호사의 저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느긋했던 구상진 변호사가 화를 참으며 주먹을 꽉 쥐고 있다.

마치 벼랑 끝에 서 있는 것 같은 모습으로 입술을 물어뜯는다.

그런데, 더 웃긴 것은 그 앞에 걸어 나오는 서진이었다.

구상진 변호사와 달리 어깨를 피고 당당한 모습으로 나타나 그 앞에 섰다.

그리고 느긋하니 입을 열었다.

“가시는 겁니까?”

구상진 변호사의 입술이 달싹 거렸다.

하지만 구상진 변호사가 대답하기 전에 취조실 안에서 피의자의 목소리가 비명처럼 들려왔다.

“돈 받았잖아! 변호해 줘야지! 난 죄가 없어! 없다고!”

서진의 시선이 취조실을 향했다.

그리고 구상진 변호사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고 물었다.

“아니면 계속 하시겠습니까?”

“안 해. 수임 안 해! 난 교통사고인 줄 알고 들어왔어. 그런데 이건...”

“그럼, 가십시오.”

서진은 구상진 변호사의 말을 중간에 끊어 버렸다.

그리고 몸을 돌려 취조실로 향했다.

구상진 변호사가 볼 때는 정말 건방진 행동, 그 눈빛이 일그러졌다.

“...김서진이라고?”

“네.”

“너처럼 행동하다가 옷 벗고 떠난 놈들 많이 봤어. 예의는 갖춰라.”

“예의요?”

서진이 서준경 검사였을 때, 구상진 변호사와 몇 번이나 부딪친 적이 있다.

텔레비전에 나와 선하고 실력 있는 척, 서민을 위하는 척 떠벌렸지만 언제나 권력의 앞잡이였고 나팔수였다.

구상진 변호사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뭘 그렇게 열심히 해? 그런 것 하면 출세 못 해. 열심히 할수록 찍히고 등신 되는 거지. 출세하고 싶으면 살살 기어. 엎드려서 외쳐. ‘사랑합니다. 의원님.’ 이렇게!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는 한 없이 강한 인물이다.

저 느물거리는 얼굴이 그때도 마음에 안 들었는데, 지금도 마음에 안 들었다.

“하...”

서진은 한숨을 내뱉으며 천천히 몸을 틀었다.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가는 구상진 변호사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 뒷모습을 서늘한 눈동자로 노려봤다.

마치 구상진 변호사의 모든 것을 씹어 먹을 것 같은 눈빛이었다.

서진은 조만간... 구상진 변호사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잃게 해줄 생각을 가졌다.

서진은 천천히 몸을 틀어 취조실로 들어갔다.

그제야 숨어서 지켜보던 신종승이 조용히 고개를 내밀었다.

“저... 저 새끼...”

“달라졌죠?”

“어?”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신종승이 뒤를 돌아봤다.

언제 왔는지 이소희가 서 있었다.

그녀가 까만 눈동자로 취조실을 보며 다시 물었다.

“신 검사님이 볼 때도 김 검사가 달라졌죠?”

신종승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도 서진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취조실에서 나와 하늘같은 구상진 변호사의 앞에 당당히 섰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서진이 멋있다는 생각마저 해 버렸다.

‘젠장.’

신종승이 입술을 잘근 씹었다.

그때, 지이이잉 신종승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번호가 구상진이다.

***

장동익이 살인 혐의로 긴급 체포되어 취조실을 끌려 나갈 때였다.

서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이명수 검사다.

서진의 시선이 취조실의 거울로 틀어졌다.

이명수 검사는 저 거울 너머에서 지켜보고 있을 거다.

‘그런데, 갑자기 왜 전화?’

서진은 천천히 휴대폰을 귀에 댔다.

“네, 검사님.”

-고생했다. 밥 먹자. 나와.

간단한 세 마디를 끝으로 통화가 종료됐다.

그리고 서진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지청에 오고 처음 듣는 말이었다.

그 말은 이명수 검사는 물론이고 그 어떤 사람에게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밥 먹자.

콩나물국밥집이었다.

서진은 이명수 검사와 마주 앉았다.

음식을 기다리며 이명수 검사가 입을 열었다.

“사건 뒤집힌 거 왜 이야기 안 했어?”

교통사고라고 넘겨줬는데 살인 사건이다.

당연히 보고해야 했다.

서진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됐다. 이유는 알 것 같네.”

보고를 했다면 이명수 검사가 막았을 수도 있다.

이게 말이 되냐며 타박했을 거다.

이명수 검사가 물었다.

“단순 교통사고에서 어떻게 살인을 뽑아 낸 거지?”

흑백의 세상에서 봤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단서를 맞춰봤을 때, 조금씩 어긋난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사해봤는데 모든 증거가 살인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서진은 준비했던 증거를 끼워 맞추며 논리적으로 대답했고 한참 듣던 이명수 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계속 그렇게 해. 나무가 아니라 숲을 봐야 해.”

조금 이상했다.

지금 표정과 목소리는 평소의 이명수 검사가 아니다.

사건 보고를 하지 않은 것부터 화를 냈을 텐데, 구상진 변호사의 치욕적인 모습을 지켜봐서 그런지 모든 게 부드러웠다.

심지어 컵에 물도 따라 준다.

잠시 후 국밥이 나왔다.

이명수 검사가 계란을 깨 넣으며 말했다.

“이 사건 계속 맡을 수 있겠어? 부담스러우면 말해. 돌려줄 테니까.”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구상진 그놈이 이 악물고 덤빌 거야. 이길 수 있겠어?”

“네? 구상진 변호사는 수임을 안 맡겠다고 했는데요.”

“다시 올 거야.”

씩씩대고 떠난 변호사가 다시 온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명수 검사는 확신하는 말투였다.

“온 다고요?”

이명수 검사가 국밥에 고춧가루를 뿌리며 말을 이었다.

“어, 올 거야. 내가 그놈 인생에 고춧가루를 뿌리는 중이거든.”

이명수 검사가 밥을 먹자는 것도 그렇고 지금처럼 기쁘게 웃는 것도 처음 봤다.

눈빛부터 삶을 귀찮아했는데, 갑자기 적극적이다.

그 모습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그가 고춧가루를 내려두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대답해봐. 할 수 있겠어? 구상진이가 저래 보여도 능력은 있는 애야.”

“네, 할 수 있습니다.”

“대답은 잘 해요. 그럼, 이 사건 끝까지 가볼래? 수사가 아니라 공판까지 해보겠냐고.”

수사를 담당한 검사가 공판에 서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모든 공판에 서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루 고발되는 사건의 숫자가 어마하기 때문이다.

해서 공판을 전문으로 하는 공판 검사가 존재한다.

하지만 드물게 수사 검사가 공판에 서는 경우가 있다.

쟁점이 치열하고 복잡한 사건.

또는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건의 경우는 직접 공판에 참여하기도 한다.

서진은 당연히 마무리까지 짓고 싶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쟁점 몇 개 있던데, 추가 조사하면서 확실하게 잡아. 고인의 억울함 풀어줘야지. 그러니까 인력 필요하면 이야기하고. 어차피 우리 지청 시간 남는 사람들 많은 거 알잖아? 모르겠는 것 있으면 물어보고.”

“네.”

이명수 검사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한창 이야기를 하다가 시선을 틀어 화면을 바라봤다.

발신번호에 김은지 기자라고 떠 있다.

이명수 검사가 슬쩍 웃었다.

“죽을 맛일 거다.”

***

동남군의 한 한정식 집이었다.

그곳에 구상진 변호사와 신종승이 마주 앉았다.

구상진 변호사가 소주를 맥주 컵에 따른 뒤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에이.”

구상진 변호사가 입술에 흐르는 소주를 훔치자 신종승이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무슨 일이 있으셨나 봐요?”

“속았어. 교통 사고인줄 알았더니 청부 살인이었어.”

속았다 해도 상대가 서진이 아니었다면 계속 갔을 수도 있다.

쟁점도 보였고 의뢰인도 무조건 죄가 없다며 박박 우기던 중이다.

승산은 보였지만 뭔가 꺼림칙했다.

그 대상은 서진이었다.

‘어린놈의 새끼가 뱀 눈깔을 하고 노려보고 있어.’

잠시 서진의 얼굴을 떠올리던 구상진 변호사가 고개를 저었다.

‘됐다. 잊자.’

생각을 하던 중 로펌에서 전화가 왔다.

구상진 변호사가 휴대폰을 귀에 대며 입을 열었다.

“어, 정 팀장. 광고? 모바일 게임 광고를 내가 왜 찍어? 칼 들고 싸우는 거 아니야? 내가 전사 같은 강한 이미지가 있다고? 그건 또 몰랐네. 그래, 얼마짜리야? 알았어. 서울 가서 이야기해.”

구상진 변호사가 휴대폰을 내려두며 피식 웃었다.

‘CF?’

지금껏 더러웠던 기분이 조금은 풀리기 시작했다.

구상진 변호사가 젓가락으로 시뻘건 육회를 집으며 조금은 화가 풀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김서진, 그놈 가르친 게 이명수지?”

“아, 네. 이명수 검사를 아시나요?”

“동기야. 그놈도 똑같이 예의 없고 뻣뻣했어. 선배들 깔아뭉개고 제 잘난 맛에 살았지. 그런데, 지금 그놈이 뭘 하고 있지? 동기들 부장 달고 있을 때 아직도 부부장이야. 옷 벗고 나갈 수도 없어. 받아 주는 로펌이 없거든. 말 그대로 등신이지.”

구상진 변호사는 다시 맥주 컵에 소주를 가득 채웠다.

이미 한 컵을 마시며 조금 취했는지 친구 아들에게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내뱉었다.

“내가 김서진의 미래를 말해줄까? 이명수하고 똑같을 거야. 평생 외곽이나 돌다가 존재감 없이 사라지는 거지. 안 그러면 내가 없애 버릴 거야. 이 아저씨가 그럴 힘은 있거든.”

신종승이 입술을 핥으며 미소 지었다.

구상진 변호사가 서진에게 밀리며 조금 우울했는데 듣던 중 반가운 말이 튀어 나왔다.

신종승이 소주 잔을 내밀며 말했다.

“저도 한 잔 주세요.”

“근무 시간 아니야?”

“동남 지청이잖아요. 입 다물고 있으면 아무도 모를 거예요. 그리고 한잔인데요.”

“하긴 여기는 의욕 있는 인간이 없지.”

구상진 변호사가 술병을 들 때다.

휴대폰이 또 울렸다.

이번엔 모르는 번호.

신종승의 잔에 소주를 채운 뒤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구상진입니다.”

-HN 일보 동남 지국 유하은기자입니다.

“HN 일보요?”

-변호사님께서 동남군에 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구상진 변호사가 슬쩍 웃었다.

이곳은 연예인 한번 보기 힘든 시골이다.

그런데, 왕성하게 방송 활동을 하는 본인이 나타났다.

어떻게든 인터뷰를 따고 싶을 거다. 라고 생각했다.

구상진 변호사가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 무슨 일이죠?”

-잠깐 통화 괜찮으세요? 여쭤 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구상진 변호사가 손목을 틀어 시간을 확인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이라면 괜찮습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는데 성과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구상진 변호사의 표정이 구겨졌다.

“성과라뇨...?”

-어? 아닌가요? 첩보로 들었는데, 구상진 변호사님 급의 변호사가 신임검사한테 깨진... 아니 죄송합니다. 밀린 사건은 흔치 않다...

“누가 그러죠? 누가 그러냐고!”

-아, 그냥 여기저기서 들은 거라 서요. 어쨌든 질 것 같아서 아니, 밀릴 것 같아서 사건 안 맡는다는 게...

“이봐요!”

-네?

-내 말 잘 들어. 지금 내뱉은 말 한 마디도 기사에 쓰지 마. 아니, 그쪽 회사는 내 이름 한 글자도 올리지 마. 만약 내 이름이 그쪽 신문사에...”

그런데, 수화기 너머가 지나치게 조용하다.

구상진 변호사는 그 적막함이 불길했다.

이어서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죄, 죄송해요...

“오, 올렸어?”

-네.

“올렸다고?”

-신임 검사한테 밀렸다는 것은 안 올렸는데요.

구상진 변호사가 다급히 자신의 이름을 검색했다.

일단 어떤 개소리를 나열했는지 확인부터 해야 한다.

[구상진 변호사 동남군 살인 사건 수임.

방송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구상진 변호사가 강원도 동남군의 살인 사건을 수임해 눈길을 끌고 있다. (중략) 작년에 임관한 신임 검사 김서진으로 (후략)]

동시에 그의 휴대폰에 메시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구 변, 강원도까지 간 거야?

-신인 상대야? 누워서 떡 먹겠어.

구상진 변호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뭔가 이상했다.

아무리 구상진 변호사가 인기 방송인이고 강원도까지 왔다 해서 이런 관심을 받을 수는 없다.

하루 일어나는 살인 사건이 몇 개인데...

‘대체 뭐야?’

이유는 이어지는 메시지로 파악할 수 있었다.

친 자매끼리 벌어진 청부 살인, 자극적인 소재는 확산이 빨랐다.

-미제 사건이 될 수도 있었다며?

-그런데, 언니가 동생을 죽인 거야?

-그 남자가 애인인가? 같이 보험금을 나누려고?

-아들이 둘?

-진정한 변호사야. 이런 사건도 수임하고.

-부러워. 또 이름 알리겠어.

부럽다고 하지만 모두 구상진 변호사를 비꼬고 있었다.

창창하던 인생에 엿이 던져지는 중이다.

구상진 변호사는 눈을 감고 치아가 부서질 듯 이를 갈았다.

이제 도망칠 수 없다.

원치 않아도 콜로세움에 올라 서진과 싸워야 한다.

“씨이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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