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3화 (3/250)

<환생 검사. -(1)>

자동차 트렁크가 터엉! 닫혔다.

서진이 몸을 틀어 아버지와 어머니를 향했다.

“이제 그만 갈게요.”

조용히 웃고 있던 어머니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무래도 서진은 기억상실.

혼자 강원도까지 간다는 게 꼭 물가에 애를 내놓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괜찮아? 엄마가 같이 갈까?”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

“네.”

“무슨 일 있으면 엄마한테 전화하고. 시간 있으면 집에 와서 쉬고.”

어머니는 계속해서 걱정을 이어갔다.

“정말 괜찮아요. 전화 자주 할 게요.”

서진은 최대한 정다운 미소를 지었다.

비록 친 어머니는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게 이 몸의 원 주인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큼.”

아버지가 헛기침을 하셨다.

그리고 품에서 오만 원짜리 몇 장을 서진의 주머니에 넣었다.

“가다가 맛있는 거 사 먹어.”

“도착하면 전화 드릴게요.”

서진은 차에 올랐다.

국산 중형차, 검사에 임용되며 어머니가 사준 거다.

원래 어머니는 벤츠 E클래스를 뽑아 주려 했지만 서진이 한사코 만류했다고 한다.

서진은 시동을 걸고 엑셀을 밟았다.

자동차가 부드럽게 주차장을 빠져 나갈 때, 서진은 핸들을 틀며 힐끗 룸밀러를 바라봤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떠나는 서진의 차량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서진이 씁쓸하게 웃었다.

‘미안하게...’

***

강원도 동남군은 인구 4만 명이 거주하며 어촌 이미지가 강한 곳이다.

하지만 최근 국도가 확장되며 접근성이 개선되었고 각종 축제를 통해 도시 브랜드를 알리는 중이다.

이곳에 강원지방 검찰청 동남 지청이 있다.

비록 지청이지만 검사가 30명이나 될 정도로 규모가 크고 첨단범죄부터 환경범죄까지 다양한 사건을 수사하고 처벌한다.

하지만 검사들은 이곳을 기피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대부분의 검사가 정치인이나 기업인 등 권력자와 싸우다 박살난 자들이기 때문이다.

밖에서는 이곳을 동남군의 유배지라고 불렀다.

자동차의 엔진 소리가 멈추며 세상은 고요해졌다.

서진은 차에서 내려 트렁크로 향했다.

보스턴백을 어깨에 걸친 후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봤다.

15층의 아파트가 보인다.

이곳이 서진의 자취방이었다.

현관문 앞에 선 서진은 동생이 가르쳐준 비밀번호 1018을 눌렀다.

문 열리는 소리가 ‘삐리릭’ 들렸고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34평 아파트, 서진은 가방을 내려두고 집 안을 살폈다.

소파와 텔레비전 그리고 식탁까지 모두 고가구, 딱 보니까 다 어머니의 취향이다.

‘이것도 프랑스제인가?’

아마 그럴 거다.

어머니의 취향은 확고하다.

그 밖에 눈에 띄는 부분은 곳곳에 쌓인 책이었다.

소파 앞에도 그리고 식탁 옆에도 심지어 화장실에도 책이 한 가득이다.

서진은 소파에 앉아 책 한 권을 손에 들었다.

막 도착한 여독을 풀며 과거의 서진이 어떤 책을 읽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다.

그런데 그 순간, 세상이 색을 잃고 흑백이 되었다.

‘또...’

환생을 하고 나서부터였다.

세상이 흑백이 되고 어떤 영상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일이 종종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

“데뷔? 잡혔지. 교통사고 사망 사건. 유족 측에서는 강한 처벌을 원하는데 글쎄 모르겠네...”

서진은 거실의 창가에 서서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래, 그럼 나중에 보자.”

서진은 통화를 종료한 후 소파에 앉아 책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책을 읽기 시작했다.

*

그게 끝이었다.

세상이 다시 색을 되찾았고 서진의 손에는 영상에서 봤던 그 책이 들려 있었다.

서진은 책을 덮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흑백의 세상...’

처음에는 헛것을 봤다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하지만 현상은 반복되었고 그곳에서 본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다.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은 알아보면 과거의 일이었다.

그래서 고민도 해봤다.

흑백의 세상은 무엇일까?

내가 미쳤나?

아니면 미래를 점칠 수 있는 능력?

하지만 내려진 답은 없다.

여전히 미스터리...

서진은 지금껏 세운 가설을 정리해봤다.

-흑백의 세상은 컨트롤할 수 없다.

-사이코메트리처럼 어떤 물건을 만졌을 때 튀어 나온다.

-과거는 물론이고 미래를 볼 때도 있다.

여기까지 생각하던 서진은 고개를 저었다.

‘됐다.’

고민해봤자 답이 없는 문제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해결될 것, 서진은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소파에 몸을 뉘였다.

‘내일...’

내일이면 지청에 출근을 한다.

서준경이 아니라 김서진으로서의 첫 출근.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은 그동안 머릿속에 모두 집어넣었다.

최대한 조심하고 변수가 없다면 자연스레 넘어갈 수 있을 거다.

서진은 빙긋이 미소를 그렸다.

악착같이 공부해서 검사가 되었지만 성폭행 범으로 몰리며 모든 게 끝났다.

다시는 검사 복을 입지 못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또 검사가 되다니...

‘조금은 설레네.’

***

“아픈 곳은 다 나았고?”

“네.”

다음 날, 지청의 7층.

동남군 지청장의 앞에 서진이 서 있었다.

지청장 전동국은 서진도 아는 인물이다.

대형 로펌 중 하나인 에스 로펌에서 수십억의 계약금을 흔들었지만 거절했던 사람.

모두가 안 된다고 했을 때 여당 당대표 아들의 멱살을 잡고 교도소에 집어넣었던 대쪽 검사.

그래서 한 번은 만나보고 싶었고 어떤 사람인지 정말 궁금했다.

그런데, 그 지청장은 서진이 들어왔지만 지금껏 얼굴 한 번 보지 않고 손톱만 깎고 있다.

그러다 하는 말이...

“그래, 그럼 가봐.”

“네?”

“왜? 할 얘기 있어?”

지청장의 목소리에 의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상상했던 대쪽 검사는 이곳에 없었다.

복도로 나온 서진은 이후 부지청장과 형사 4부 부장검사에게 들러 인사를 했다.

그런데, 역시 분위기는 똑같았다.

이들은 모두 태어났으니까 살고 출근한 김에 의자에 앉아 있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602호.’

잠시 후, 서진은 복도를 걸어 한 사무실 앞에 섰다.

휴대폰의 조직도를 보며 다시 한 번 호실을 확인했다.

이곳은 이명수 검사의 사무실, 수습 기간 동안 실무를 배운 곳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실무관 혼자 앉아 있었다.

그녀가 서진의 얼굴을 보고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늘부터 출근이세요? 많이 아팠다고 들었는데, 이제 괜찮은 거예요? 어디? 어디가 아팠어요?”

“조금 아팠습니다.”

서진은 자신의 이름이 적힌 책상을 찾았다.

수습의 책상은 언제나 구석이다.

그곳에 가방을 내려두며 물었다.

“그런데, 검사님은요?”

“아직 출근 안 하셨어요.”

실무관은 가볍게 대답후 시선을 모니터로 옮겼다.

일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99%의 확률로 인터넷 쇼핑을 하고 있을 거다.

서진은 한숨을 내뱉었다.

서울에 있을 때는 업무에 치여 안구건조증까지 걸렸었고 새벽에 출근해서 새벽에 퇴근 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다르다.

지나치게 여유롭다.

물론 그 이유는 예상 가능했다.

이곳은 유배지.

들어오면 나가지 못한다.

열심히 해도 그 자리, 운에 기대 날개를 달지 못하면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할 거다.

사무실 문이 끼익 열렸다.

이명수 검사가 부스스한 머리로 사무실에 들어왔다.

그가 힐끗 서진을 바라봤다.

“왔냐? 쉬는 것은 뭐라고 안 하겠지만 데뷔 전은 준비해야지?”

서진은 흑백의 세상에서 봤던 것을 떠올렸다.

과거의 서진은 교통사고 사망 사건을 데뷔전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신임 검사의 데뷔전으로 쓰기에는 딱 적당한 싸이즈다.

이명수 검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진짜 부탁인데, 망신시키지 마라. 나 가뜩이나 검사 생활하기 싫은 놈이야. 그런데, 네가 나를 쪽팔리게 해봐. 그럼, 내가 그만 둘 수 있고 이제 고등학교 들어가는 우리 딸래미는 학원을 그만둬야겠네? 그러니까 잘 해라.”

“네.”

“모르는 것 있으면 물어보고. 혼자 안다고 까불지 말고.”

“네.”

서진은 ‘네, 네.’ 대답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명수 검사가 물끄러미 서진을 바라봤다.

그는 서진이 마음에 안 들었다.

수습이라는 놈이 데뷔를 앞두고 3주나 빠진 것부터 시작해서 가장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서진의 작은 아버지가 검사장이라는 것.

자신은 이 지청에서 검사 생활을 마감할 텐데 앞으로 검사장 작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승승장구할 서진이 부러웠고 미운 감정으로 드러났다.

“새끼가 대답은 넙죽, 넙죽...”

이명수 검사가 서진의 책상 서랍을 거칠게 열더니 기록물을 꺼내 책상 위에 탁! 올렸다.

“읊어봐.”

[술에 취한 채 집으로 향하던 40대 여성이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한 사건.

사건 발생 시간은 새벽 1시 40분.

운전자는 SUV를 운전했고 규정 속도 80km를 준수했다.

변호인 주장 : 새벽이었고 한적한 시골의 국도.

편도 2차로의 도로였지만 다른 차량은 없었다.

우측으로 급하게 굽은 도로라 피해자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피해자의 키가 160cm로 작아 발견하기 어려웠다.

피해자는 길의 골목에서 나왔고 인도가 아니라 갓길을 걷고 있었다. 역시 발견하기 어려웠다.

불가항력이며 무죄다.]

이명수 검사가 팔짱을 끼며 엉덩이를 책상에 반쯤 걸쳤다.

“뻔한 사건이지? 법정에서 일어날 밑그림 그려봐. 3주 동안 병원에 누워서 주사만 맞고 있지는 않았을 거잖아?”

서진은 곧장 대답했다.

“검찰은 운전자의 주의의무위반을 주장하며 기소했고 운전자는 불가항력이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건은 검사가 불가항력이 아니었음을 합리적으로 입증해야 합니다.”

이명수 검사가 움찔거렸다.

3주 만에 얼굴 비친 놈 갈구려고 했는데 말이 청산유수다.

하지만 그는 금방 표정을 사납게 바꾸며 물었다.

“예상 형량은?”

법률에 따르면 교통사고로 사람을 사망하게 했을 경우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판사가 5년을 때리는 일은 거의 없다.

합의 여부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규정된 12개 중과실 위반 여부를 판단해서...

“합의가 됐다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일 것입니다. 하지만 유가족 측에서 강력하게 처벌을 원하기 때문에 1년 정도 받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번에도 맞았다.

틀리면 트집을 잡으려 했는데 완벽했다.

이명수 검사가 부스스한 머리를 넘기며 입술을 잘끈 씹었다.

“새끼... 3주 동안 작은 아빠한테 과외 받고 왔냐?”

그런데, 이명수 검사의 머릿속에 갑자기 뭔가 떠올랐다.

그가 다급히 물었다.

“현장 가 봤어?”

“네?”

“안 가 봤지?”

검사가 현장에 나가는 일은 거의 없다.

“...네.”

이명수 검사는 드디어 꼬투리를 잡았다는 얼굴이었다.

“신분증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새끼가 벌써부터 현장을 외면해? 신임 때는 직접 나가봐야지! 사건이 호락호락해? 법정이 우스워? 당장 나가! 가서 현장을 보고 와!”

***

지청에 출근해서 분위기를 익히기도 전에 현장에 오게 됐다.

상관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감사했다.

서진은 현장에 오는 것을 좋아했고 시키지 않아도 들를 생각이었다.

현장의 서늘함과 섬뜩함, 알 수 없는 긴장과 호흡은 사진으로 보는 것과 달랐고 그 안에서 반전을 찾을 수도 있어서다.

현장은 조용했다.

새가 짹짹 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서진은 당시 상황을 상상하며 도로를 둘러봤다.

SUV는 시속 80km로 달려왔고 급커브를 만났다.

그 상상을 하는 순간 서진은 눈을 찌푸렸다.

‘이곳을 80km로 달렸고 커브를 틀었다고?’

말도 안 된다.

도로는 넓지만 말 그대로 급커브, 속도를 줄이는 게 정상적인 상황이다.

그런데, 운전자는 그대로 달렸다.

서진은 다시 주변을 살폈다.

도로에는 유리 조각 등 사고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한 쪽 무릎을 꿇어 앉아 유리 조각을 손에 쥐며 앞을 바라봤다.

여기서 부딪혔고 저만큼 튕겨 나갔다.

‘차량의 운전자가 내렸고...’

서진이 사건을 재현하던 그 순간이었다.

세상이 색을 잃고 흑백의 세상으로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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