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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김서진-2화 (2/250)

<환생하다. -(2)>

오후 5시.

서진은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의 헬스장에서 런닝 머신을 뛰고 있었다.

온 몸에 땀이 흘렀고 폐가 찢어질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서진은 쉬지 않고 달렸다.

‘앞으로 2시간 후.’

오후 7시에 아버지의 동생이자 서진의 작은 아버지 김영준 검사장과 식사 자리가 약속되어 있다.

김영준 검사장은 서진의 원수, 얼굴을 마주하면 자신도 모르게 사나운 표정을 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혹할 정도로 달리는 중이다.

몸을 피곤하게 만들어 억지로 표정 관리를 하려고...

인상을 쓰는 것보다 힘들어 지친 게 낫다.

“1시간이나 뛰었어?”

진영이었다.

생전 헬스장에 오지 않던 녀석이 런닝 머신 바로 옆에 서서 싱글벙글 웃고 있다.

서진은 런닝 머신을 종료 후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

“여기는 어쩐 일이야?”

“강원도에 잘 다녀오라고 미리 인사하는 거야. 난 같이 밥 안 먹을 거거든. 약속 있다고 빠져 나왔어. 아버지한테 욕은 좀 먹었지만.”

“왜?”

“난 작은 아버지가 싫어.”

진영의 표정에서 김영준 검사장이 정말 싫다는 표정이 드러났다.

진영이 발끝으로 바닥을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검사가 뭐 대단한 직업이라고 아버지 어머니를 무시하고. 돈 필요하면 대놓고 손 벌리고. 생각만 해도 짜증나.”

“그래?”

“형은 기억에 없지? 그럼, 얼마나 재수 없는지 오늘 한번 겪어봐. 조선시대 임금님이 따로 없어. 형이 검사 안 됐으면 진짜 얼마나 꺼드럭댔을지 생각만 해도 소름끼치네. 어쨌든, 난 미리 인사했다. 운전 조심하고. 현관 비밀 번호는 1018!”

진영은 떠났고 서진은 물을 한잔 마신 후 아령을 손에 들었다.

가볍게 들기 시작했다.

근육이 조여 오고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그런데, 생각을 안 하려 해도 김영준 검사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버러지 같은 새끼야.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알아? 네 주인은 저 거지 새끼들이 아니야!

-세금 내면서 네 월급 주는 게 누굴까? 저 새끼들은 아니야. 오히려 대한민국에서 돈을 받아가고 있어. 그런데, 더 돈을 달라고 하고 있어. 열심히 일한 부자들에게 더 세금을 내라고 하고 있어! 그럼, 대체 누가 도둑놈이야!

-개도 밥 주는 사람은 안 물어. 그러니까 덮어. 조용히 살아. 이 새끼야.

쾅!

서진이 아령을 떨어뜨렸다.

“...시끄러워서 집중이 안 되네.”

***

한강이 훤히 보이는 응접실.

그곳의 둥근 원형 식탁에 촛대와 꽃이 놓였고 분위기 있는 피아노 소나타가 공간을 채웠다.

김영준 검사장이 오기 30분 전이었지만 주방 일을 하는 아주머니와 어머니는 분주했다.

서진은 방의 책상에 앉아 눈을 감았다.

심장이 쿵쿵쿵 뛰고 있었다.

‘김영준...’

재정 건설의 김준만 대표와 중앙지검 김영준 검사장은 형제다.

시골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두 사람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토지 보상금을 받아 서울로 입성했다.

김준만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공사판 일을 하며 잔뼈를 키웠고 동생 김영준의 뒷바라지를 자처했다.

그 결과 동생 김영준은 서울 대학교 법학과에 입학, 법조인의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 김준만 대표의 간지러운 부분을 김영준이 긁어줬고 김준만 대표는 김영준의 주머니를 채워줬다.

두 사람은 그렇게 상부상조하며 덩치를 키워갔다.

이게 밖에서 봤던 겉모습이다.

어떻게 보면 우애 좋고 다르게 보면 욕심 많은 형제.

하지만 직접 본 것은 달랐다.

실제로 본 김준만 대표는 욕심이 많지 않은 사람이다.

적당히 벌고 적당히 살기를 바랐지만 김영준 검사장이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김영준 검사장은 아무리 배를 채워도 배가 고픈 탐욕스러운 호랑이.

죽을 때 까지 김준만 대표를 이용할 거다.

“서진아, 작은 아버지 오셨다.”

이제 그 김영준 검사장을 다시 만날 시간이다.

서진은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응접실 식탁에는 이미 김영준 검사장의 가족이 앉아 있었다.

김영준 검사장과 그 아내.

첫째 김유환.

둘째 김유미.

김윤환은 31세.

김영준 검사장은 대학에 다니며 사법 고시를 패스했고 사고를 쳐서 결혼했다.

그래서 형인 김준만보다 일찍 자식을 낳고 일가를 이뤘다.

어쨌든 김윤환 역시 검사, 동부 지검에서 근무하고 있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로스쿨에 검사까지 했지만 여기까지 올라온 게 장하다는 평가, 아버지를 제외한 그 스스로는 평범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유환은 아버지와 비교되는 것이 스트레스이며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 어떻게든 으스대려 하는 못난 놈이기도 하다.

“어, 서진아. 몸 안 좋았다며? 괜찮아?”

딸 김유미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서진과 동갑, 28세.

대학 병원에서 레지던트로 일하고 있다.

김영준 검사장의 자식들은 검사고 의사다.

이들의 성공을 보며 서진의 아버지는 꽤나 부러웠을 거다.

서진이 김영준 검사장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안녕하십니까.”

김영준 검사장의 시선이 처음으로 서진에게 향했다.

날카롭고 어두운 눈, 그 눈빛으로 서진을 관찰한다.

“그래, 기억이 없다고?”

“네.”

“회사 생활은 할 수 있겠어?”

“이름과 나이 등의 개인정보를 제외한 다른 기억은 모두 정상입니다.”

“다행이군.”

서진은 힐끗 어머니를 살폈다.

김영준 검사장은 아버지의 동생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를 두려워하고 어려워한다.

김영준 검사장이 가진 권력 때문이다.

만약 아버지가 김영준 검사장의 눈에 벗어났을 때 벌어질 비극.

김영준 검사장과 아버지는 형제지만 때때로 그가 보여주는 냉혈함과 냉혹함은 살이 떨릴 정도였다... 고 동생 진영에게 들었다.

그런데, 지금 이 식사 자리를 생각해도 그렇다.

서진이 병가를 원활하게 낼 수 있도록 도와줬다는 이유로 마련된 것인데, 과할 정도로 꾸민 것을 보면 진영의 생각이 과장된 것은 아닌 것 같다.

모두 자리에 앉았다.

어머니와 아주머니가 테이블에 음식을 올리기 시작했다.

메뉴는 스테이크.

한 눈에 봐도 최고급 고기다.

김영준 검사장이 고기를 썰었다.

설익은 고기에서 핏물이 죽죽 흐른다.

그걸 작게 썰어 입에 넣으며 느긋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동남 지청이지? 수습 끝나면 배치 받을 곳은 정해졌나? 서울로 올래? 내가 내 조카 서울로 끌어줄 힘은 있는데.”

아버지가 김영준 검사장의 잔에 와인을 채우며 끼어들었다.

“서울? 도와줄 수 있어? 야, 할 수 있으면 좀 해줘라. 서진이가 시골을 별로 안 좋아하잖아. 어?”

김영준 검사장의 눈동자가 서진에게 옮겨졌다.

“어떻게 생각해?”

서진은 김영준 검사장을 만나기 전에 정말 많은 걱정을 했다.

저 사람 때문에 성폭행범으로 몰렸고 아파트 옥상으로 끌려 올라가 살해까지 당했다.

어떻게 저 얼굴을 봐야 할까?

참을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서진은 무서울 정도로 침착했다.

피묻은 고기를 보며 떠올렸다.

난 저런 고기가 되지 않을 거다.

“아뇨. 괜찮습니다. 발령 받는 데로 가서 일할 게요.”

“그래?”

“네.”

서준경에서 서진이 된 후 세웠던 계획 하나가 세상을 씹어 먹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하나의 계획이 더 추가됐다.

저 낯짝을 화장실에 처박는 것.

그걸 볼 때까지는 얼마든 웃어 줄 수 있다.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그런데... 사고의 순간은 기억 안나? 왜 사고가 일어났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서진은 아파트 5층에서 떨어졌다.

병원으로 실려 갔고 기적적으로 깨어났다.

물론 그때 깨어난 사람은 서진이 아니라 서준경이었고 당연히 왜 떨어졌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었다.

“네, 없습니다.”

순간 김영준 검사장의 입에서 묘한 미소를 봤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어른들의 대화가 이어졌고 서진은 식사를 마친 후 방으로 돌아갔다.

“짐 다 싼 거 아냐?”

방문이 열리며 김영준 검사장의 아들 김윤환이 들어와 벽에 비스듬히 등을 기대고 섰다.

서진이 서준경이었을 때는 감히 눈도 못 쳐다보던 놈.

그런데, 지금은 서진을 아랫사람 대하듯이 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게 있나 확인하려고.”

“그래?”

김윤환이 팔짱을 풀고 서진을 향해 걸어왔다.

놈이 책상에 놓인 서진의 서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방금까지 읽고 있던 신문 기사.

김윤환이 맡은 사건이다.

[40대 고등학교 교사의 미성년자 성폭행.

한 고등학교 교사가 미성년자를 자신의 오피스텔로 불러 술을 먹인 뒤 성관계를 가졌다.

미성년자의 부모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곧바로 고소를 했지만...]

김윤환이 신문을 들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거 내 사건이잖아?”

“아, 그래?”

알고 있었다.

김영준 검사장을 기다리다가 김윤환이 맡은 사건 하나를 읽어 본 거다.

교사의 미성년자 성폭행이라 유명했고 그것을 맡은 게 김윤환이라는 것도 유명했다.

정말 그 뿐이다.

더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김윤환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슬쩍 웃는다.

“공부하고 있던 거야? 설명해줄까?”

괜찮다고 말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김윤환은 빠르게 입을 열었다.

“지금 문제는 강제성을 입증할만한 결정적 증거가 없다는 거지. 부모는 그 남자가 술을 먹이고 취하게 한 후 강제로 관계를 맺었다고 주장하거든? 뭐, 우리도 그쪽에 무게를 두고 있고.”

*

응접실에서 식사를 하던 김영준 검사장과 아버지, 어머니는 방에서 들려오는 김윤환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김영준 검사장이 와인을 입에 대며 고개를 저었다.

“저 모자란 놈이 누굴 가르친다고.”

쯧쯧 거리며 혀를 찼지만 자기 아들이 서진을 가르친다는 게 기분 나쁜 표정은 아니었다.

그 눈빛부터 ‘내 혈통이 위다.’라는 게 보였다.

아버지는 어색하게 웃었고 어머니는 답답한 표정으로 와인을 마셨다.

김영준 검사장이 술잔을 들며 입을 열었다.

“서진이 저놈도 몇 년 이 바닥에서 구르면 노련해질 거야. 매일 같이 보고 듣는 게 저런 사건이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방에서 서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폭행으로 가면 어려울 것 같은데?”

반격의 목소리에 응접실은 조용해졌다.

김영준 검사장을 비롯한 아버지와 어머니 역시 숨소리까지 죽인 채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김윤환의 삐뚤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네가 뭘 안다고?”

“술을 먹였어도 피해자가 만취상태였는지를 따져봐야 하지만 그걸 증명해 내기는 쉽지 않지. 게다가 이 두 사람은 한 달 동안 몇 번이나 만났고 사랑하네 어쩌네 카톡도 주고받았어.”

“그래, 변호인 측에서는 너처럼 말해. 그런데, 이 사건은...”

“나라면 형법 302조로 찌를 것 같은데.”

“어?”

“쉽게 갈 수 있는 것을 왜 어렵게 가는 거야? 책 조금만 뒤져 보면 답이 나오는 것인데...”

김윤환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리고 김영준 검사장의 행동도 정지화면처럼 멎었다.

앞에서 아버지가 ‘왜? 302조가 뭔데?’ 라고 물어도 답이 없었다.

[형법 제302조(미성년자 등에 대한 간음) : 미성년자 또는 심신미약자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쉽게 말해 40대 남성이 미성년자에게 앞으로 연인 관계 또는 그 이상의 관계로 발전할 것처럼 속였다는 거다.

하지만 그는 유부남이었고 미성년자와 오래 만날 생각도 전혀 없었다.

즉, 서진의 말이 맞는 거다.

하지만 김영준 검사장은 그 말을 여기서 하지 못한다.

“누가 맞는 거야?”

아버지의 질문에 떨떠름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법이라는 게 그래.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지. 두 사람 모두 맞는 말이야.”

그리고 김영준 검사장은 이 집에 들어온 이후 단 한 번도 웃지 않고 입도 열지 않은 자신의 아내를 툭 건드렸다.

그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왜요?”

“그만 윤환이 데려와. 서진이 내일 출근할 아이야. 이제 가야지.”

***

“푸하하하! 네가 영준이 그놈 얼굴 색 변한 것을 봤어야 했는데.”

서진이 강원도로 떠나기 위해 자동차 트렁크를 열고 보스턴 백을 넣고 있을 때였다.

어머니는 조용히 웃었고 아버지는 배를 잡고 웃었다.

김영준 검사장이 당황한 모습을 처음 봤다나 뭐라나...

“우리 아들이 최고다. 최고야. 푸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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