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화 (1/250)

<환생하다. -(1)>

-속보입니다. 실무관에 대한 성폭행 혐의로 수사를 받던 서준경 검사가 송파구의 한 재개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서준경 검사는...

그 겨울, 서준경 검사가 죽었다.

고아로 자랐고 방통대를 졸업했으면서 사법시험과 연수원을 씹어 먹은 사내다.

동료들은 그를 정의롭다 말했었지만 그 마지막은 비참했다.

***

주방에서부터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진은 주방으로 자리에 앉았다.

주방 일을 돕는 아주머니가 식탁 위에 북엇국을 올릴 때, 아버지가 초췌한 얼굴로 식탁에 나타났다.

아버지의 이름은 김준만.

허세가 조금 있지만 가족에게 살뜰하며 사람 자체는 나쁘지 않다.

아버지가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내일부터 출근이지? 오늘 출발하나?”

아버지의 입에서는 아침부터 술 냄새가 났다.

어제 밤에도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들어온 게 분명하다.

한심하다고 볼 수는 없다.

아버지는 건설 회사를 운영했고 허가를 내줄 공무원과 술을 마시는 것은 중요한 업무였기 때문이다.

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녁에 출발하려고요.”

“그래? 그럼 잘 됐다. 저녁에 작은 아빠 부를 테니까 같이 밥이나 먹자.”

“형, 작은 아버지한테 말해서 조금 더 쉬지.”

서글서글하게 잘생긴 놈, 동생 진영이었다.

나이는 26세.

꿈이 쉐프라며 호텔 식당에 다니고 있다.

부모님은 진영이 아버지의 회사에 들어가 일하기를 바라지만 그의 결심은 대단했다.

“아, 괜찮아. 푹 쉬었어.”

마지막으로 방에서 어머니가 걸어 나왔다.

많은 여자들이 꿈꾸는 손에 물 한 번 묻히지 않고 사는 우아한 여자.

그게 바로 어머니 오미정.

대학 4학년 때 아버지를 만나 임신을 하고 부랴부랴 결혼 했다.

지금도 나이답지 않게 꽤 미인이며 특징으로 프랑스 제품이면 최고인 줄 안다.

그래서 집 안의 물건 대부분은 메이드 인 프랑스다.

접시부터 가방까지.

아, 차는 독일제를 좋아한다.

어머니가 자리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난 밥은 됐고 크루아상으로 줘요.”

역시 밥 대신 빵을 선택하셨다.

아주머니는 익숙하게 빵을 내왔고 그제야 아버지가 숟가락을 들었다.

“먹자.”

아버지와 어머니는 돈도 있고 인맥도 있다.

무엇 하나 부러울 것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 콤플렉스가 하나 있다.

바로 학력.

김준만은 고졸, 오미정은 임신으로 인해 학업을 포기했다.

그들은 그 콤플렉스를 자식에게 풀려했고 서진을 자랑스러워했다.

서진은 한국 최고의 대학을 졸업했으며 지금은 검사였다.

수습이라 강원도의 한 지청에서 근무하며 배우고 있는 중이지만 부모님, 특히 배운 것 없이 사업을 일으킨 아버지의 서진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잠시 후, 식사가 끝났다.

방으로 들어간 서진은 거울을 보며 이리저리 미소를 지어봤다.

‘아직 낯설어...’

서진이라는 이름과 이 얼굴이 낯설었다.

몇 주 전까지 그는 김서진이 아니라 대한민국 검사 서준경이었다.

이십 대 후반이 아니라 사십 대 초반의 베테랑 검사, 고아로 자라 방통대를 졸업했고 사법고시와 연수원을 씹어 먹은 수재.

하지만 정의를 위해... 아니, 권력의 끄나풀이 되어 또 다른 권력자와 싸우다가 자살로 위장되어 살해당했고 깨어나 보니 이 몸이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고 아버지가 힘을 써서 병적기록이 남지 않도록 정신병원도 오갔다.

얻은 병명은 기억상실.

뭐... 인간의 몸은 적응의 동물이고 3주 정도 지나자 차츰 이해할 수 있었다.

서준경이 죽었다는 것도 이제는 인정한다.

서진은 지금까지의 일을 잠시 정리했다.

-서준경은 죽었다.

-이제는 김서진이다.

-어린 몸.

-돈 많은 부모.

사실 아버지 김준만은 서진이 제일 싫어하는 부류 중 하나였다.

개같이 벌어서 개같이 쓰는 놈들.

검사 무서운 줄 모르고 뒷돈 찔러주는 사람들.

게다가 아버지 김준만의 친 동생이 김영준 검사장이다.

서진을 죽음으로 몰고 간 악귀이자 대한민국 권력의 흑막 중 하나.

그리고 서준경 검사였을 때 상대했던 자가 김영준 검사장이었다.

-아버지의 동생이 김영준 검사장.

-원수인데 작은 아버지.

서진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런데, 어쩔까...

이런 사람이 부모가 되었는데.

서진은 보스턴 백을 꺼내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오늘 밤 자취방으로 가기 위해서다.

서준경에서 서진이 된 3주, 지금까지 지청에는 병가를 내고 가지 않았다.

아버지의 동생, 작은 아버지 김영준 검사장이 힘을 쓴 거다.

하지만 그 시간이 이제 끝났다.

내일부터는 지청으로 출근해야 한다.

이것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출근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다시 수습부터 시작해서 뭘 할 수 있을까?

다 때려치우고 변호사나 할까?

서진은 그 고민의 끝에서 자신의 욕망을 보았다.

지난 생은 병신처럼 죽었지만 이번에는 정의와 법, 인간미 같은 얄팍한 소리는 집어 던지고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싶다.

돈도 권력도...

지난 삶에서 자신은 고아였지만 이번엔 이름 있는 건설사를 운영하는 아버지가 있다.

악마 같지만 작은 아버지가 검찰총장으로 유력한 김영준 검사장이다.

이용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활용하면...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고 다 뺏어 올 수 있다.

이전에는 세상을 정의롭게 만들고 싶었지만 이번에는 세상을 씹어 먹고 싶다.

짐을 챙기던 서진은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가방을 두들기며 생각에 빠졌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신체와 영혼이 뒤바뀐 비논리적이며 무속 신앙에 가까운 일이 벌어졌다.

지금은 욕심을 숨기고 적응해야 할 때다.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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