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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우리 목욕합시다-151화 (151/155)

151화

봐서는 안 될 것을 본 사람들처럼 굳은 두 사람을 보며 나는 슬쩍 눈웃음을 쳤다.

‘그래, 그럴 줄 알았어.’

집착과 이기심을 사랑이라고 믿는, 지독히 미친 너희라면 이쪽이 더 괴롭겠지. 나와 클로드가 서로를 아끼는 모습을 보는 게 꼭 평생 사랑해 왔던 반려의 외도 현장을 목격한 기분일 거다.

클로드는 내가 두 사람을 보고 있다는 걸 알아채고는 녹진하게 혀를 얽던 것을 멈췄다. 살짝 뗀 입술이 붉었다.

더운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그가 조금 더 나른한 손길로 턱을 붙잡은 채 말했다.

“저쪽에 줄 관심이 있다면 내게 주는 거로.”

“읍…….”

재차 입술을 포개는 그에게 매달리면서도 일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음. 이건 뭔가 좀 이상하지 않냐? 굳이 지하 감옥에서 이러고 있는 이유가 저 두 사람 때문인데…….

‘그, 너무 이때다 싶은 그런 거 아니야?’

나는 노골적으로 옆구리를 쓸어내리는 그의 손을 가볍게 찰싹 때렸다. 씁, 하는 소리와 함께 클로드를 노려보자 입술 사이로 나지막한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게 들렸다.

짙은 입맞춤이 아니라 장난스럽게 쪽쪽 입을 맞춘 그의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선명한 그의 주황빛 눈동자는 어두운 지하 감옥에서도 여전히 아름답게 일렁이고 있었다.

“아, 아악! 아아악! 아니야, 아니야! 공작님, 그 여자가 아니라 저예요! 공작님이 바라봐야 하는 사람은 저라고요!”

그의 눈에 단 한 사람을 위한 애정이 차오르는 걸 본 소피아가 발악했다. 귀청이 찢어지도록 비명을 지르며 그녀가 외치는 건 오로지 그것 하나뿐이었다.

나는 머리카락에조차 입을 맞추는 클로드를 잠시 말린 뒤, 일그러진 울음으로 엉망이 된 소피아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너, 너!!”

우악스럽게 뻗은 손은 철창 너머 내게 닿지도 못했다. 땅바닥을 긁어댄 건지 잔뜩 지저분해진 손가락이 내 옷깃을 스치며 바들바들 떨렸다.

“나야. 내가 나디아 골드게이트야…….”

사랑의 무엇이 저렇게까지 사람을 망가지게 하는지.

내가 생각에 잠겨 가만히 그녀를 보고 있을 때쯤, 소피아의 손가락이 소매의 끝자락에 걸렸다.

“하!”

희열에 찬 눈으로 그녀가 나를 끌어당기려던 순간, 아이작이 다소 난폭한 손길로 소피아를 밀쳤다. 직전에 본 광경 탓에 여전히 분노 서린 표정과 차가운 눈빛으로 백작 부인을 보며 중얼거렸다.

“지저분해진 상태로 나디아 님께 손대지 마시죠. 거칠게 다뤄질 분이 아니시니까.”

아이작의 녹색 눈동자가 소피아에게서 내 쪽으로 느릿하게 옮겨졌다. 웃음기 하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보는 그의 눈은 클로드가 입을 맞췄던 부분들을 집요하게 훑어보고 있었다.

옅게 뭉개진 입술도, 살짝 흐트러진 머리카락도, 자국이 남은 목도. 흔적들을 지우다 못해 후벼 파 없애고 싶다는 듯 보던 그가 소피아가 그랬듯 창살 너머로 손을 뻗었다.

소피아가 손을 뻗었을 때와 다르게 소름이 돋아 나는 순간 몸을 움찔하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찰그랑!

그 탓일까? 소피아 일라리아가 계속해서 나를 긁어대면 겁이라도 줄 용도로 품에 넣어 가져왔던 황금 열쇠가 창살 근처에 떨어졌다.

당황한 내가 황금 열쇠를 집으려는데, 아이작 탓에 바닥에 넘어졌던 소피아가 이번에는 그를 밀치며 황금 열쇠를 가지려 달려들었다.

“화, 황금 열쇠! 내 거, 내 거야! 저것만 있으면 내가 나디아 골드게이트라는 걸 모두가, 모두가 인정할 거야!”

“아, 잠깐만!”

내가 미처 그녀를 말리기도 전, 소피아가 기어이 황금 열쇠를 손에 쥐었다.

“꺄아아악!!”

조금 전 들었던 발악은 별것도 아니었다는 듯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이 감옥 전체를 뒤흔들었다.

‘황금 열쇠는 골드게이트 가문의 사람이 아니라면 만질 수 없다.’

소피아가 가지고 있던 목걸이와 마찬가지로 황금 열쇠가 골드게이트 가문의 가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나는 화상을 입은 것처럼 타들어 가는 소피아의 손을 보고는 질끈 눈을 감았다.

‘걸려 있는 고대급 마법에 관한 정보가 부족해서 발동 조건이 혈족의 피인지, 영혼인지, 그도 아니면 육체인지 알 수 없어 이번 사건 때 사용하길 주저했다고 루핀이 말해줬었지. 감히 물건 자체에 손을 댄 자가 없어 결과도 확실치 않은 것을 나인지도 모르는 이에게 섣불리 건넬 수는 없었다고.’

그 이유가 이해됐다. 눈을 감았어도 선명하게 들리는 고통 섞인 비명과 타는 냄새가 끔찍했다.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휘청이던 날 받쳐준 것은 클로드였다.

“듣지 마십시오.”

귓가에 나지막하게 속삭인 그가 뒤에서 손바닥으로 내 귀를 막아주었다. 비명이 끊이질 않는 걸 보니, 소피아는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욕심을 버리지 못해 황금 열쇠를 쥐고 있는 모양이었다.

“…클로드.”

“여기까지면 됐습니다, 나디아.”

나는 아랫입술을 물면서도 클로드의 속삭임에 도리질 쳤다. 그러고는 귀를 막고 있는 그의 손을 끌어 내렸다. 클로드는 내키지 않는다는 듯 잠시 힘을 주었다가 결국 내 뜻을 따라주었다.

눈앞에 놓인 광경은 참담하고도 처절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눈에 담으며 그녀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소피아.”

“끄윽… 내 거…….”

“그만해. 여기까지 하자.”

처참한 그녀의 손을 잡아 손수 열쇠를 놔주며 고요히 속삭였다. 그녀의 귀에 내 목소리가 닿았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생각이 복잡해지는 것을 누른 채 고개를 들어 아이작 달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담담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내가 내릴 벌은 이제 시작이겠지만 너도 여기까지야, 아이작.”

“무슨 벌이든 나디아 님이 주신 거라면 달 거라 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조금 전의 모습은 제법 아팠습니다만.”

“글쎄.”

고통에 헐떡이는 소피아를 놔두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아이작을 똑바로 바라보며 차분하게 입술을 달싹였다.

“나는 지금 이 길로 마탑주를 찾아갈 거거든. 그리고 부탁할 거야. 너와 관련된 모든 기억을 지워달라고.”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아이작, 나는 너를 내 인생의 아주 작은 부분으로도 남겨놓고 싶지 않아. 그래서 부탁하려고. 비어있는 기억은 그냥 클로드나 아르웬 언니에게 듣고 말지, 뭐.”

경험으로 남은 기억과 전달받은 기억은 하늘과 땅 차이니까.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아이작의 표정에서 핏기가 사라지는 것을 본 기분이었다. 물론, 나는 마탑주를 찾아가지 않을 것이다.

루핀이 기억에 손을 대는 마법은 위험하다 경고하기도 했고, 이 모든 경험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다.

‘하지만 아이작이 이런 걸 알 필요는 없지.’

처음으로 아이작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민낯을 내보였다. 소피아처럼 창살에 매달린 그가 잔뜩 눈을 흔들며 나를 불러댔다.

“나디아 님, 나디아! 아니, 거짓말이야. 당신 주위 사람들이 그런 걸 허락할 리가 없…….”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널 지워내고 싶을 만큼 네가 끔찍해.”

내 눈에서 진심을 읽은 아이작의 입술이 떨렸다. 내가 이토록 단호하게 나간다면 결국 허락해 줄 이들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짧은 작별을 고하며 두 사람에게서 등을 돌렸다.

“안녕, 잘 가. 클로드, 그만 갈까요?”

“예, 먼저 나가십시오. 단속하는 기사에게 주의만 주고 따라가겠습니다.”

“알겠어요.”

“나디아 님!”

나는 처음 듣는 아이작 달튼의 외침을 외면하며 순순히 클로드에게 대답했다. 그렇게 곧장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마탑주에게 갈 생각은 없지만, 잊겠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다. 그러니 이제는 잊어야지.

이제는 정말 이 관계를 끊어낼 시간이었다. 물리적으로도, 내적으로도.

* * *

“갔군.”

나디아의 기척이 감옥을 빠져나간 것을 느낀 클로드가 얼굴에서 표정을 지웠다.

그의 시선이 철창을 흔들며 나디아의 이름을 부르는 아이작과 쓰러진 상태로 여전히 고통스러워하는 소피아를 감흥 없이 훑었다.

나디아는 분명 그녀가 내릴 수 있는 최대의 형벌을 내렸다. 다만 그가 지금 이곳에 남은 것은, 그녀가 아닌 그가 줄 수 있는 처벌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짧은 손짓에 그림자처럼 붙어있던 수족이 그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명령을 기다리는 기사에게 클로드가 한 치의 온기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소피아 일라리아는 이미 손과 정신이 망가진 듯하니 됐고, 아이작 달튼은 눈과 목을 모두 망가트려.”

“알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거슬렸다. 그녀만을 좇는 초록색 눈도, 그녀의 이름을 자꾸만 담는 입도 모두.

너무도 거슬려 살심이 치밀어 오르던 것을 참은 건 그가 그녀에게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지.’

목숨이 걸린 전투를 여럿 겪은 데다 영웅이라는 칭호까지 얻은 이에게 ‘잔혹성’이 전혀 없길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클로드의 입매가 작게 비틀렸다.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다.

‘마수들에게 던져줄까? 그녀가 모르는 곳에서 잔혹하게 생을 마감시켜 줄까?’

하지만 그 모든 생각의 끝은 결국 다시 나디아로 돌아왔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뜬 클로드가 어둡기 그지없는 생각들을 덮어내며 고민했다.

최선은 역시 카를루스 황태자가 그랬듯, 제국을 밟을 수 없도록 국외로 추방하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다시는 이쪽과 엮일 수 없게 하는 것.

나디아는 읽지 않았지만, 실제로 황태자가 쓴 편지에는 헤링본 자작의 영구적인 추방과 관련한 내용 역시 적혀 있었다. 그 모든 것을 떠올린 그가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일을 처리한 후에는 국외로 내쫓도록. 주기적으로 관찰하는 것도 잊지 말고 보고해.”

“명심하겠습니다.”

클로드는 나디아처럼 두 사람을 마지막으로 돌아보지조차 않았다.

그에게는 그만한 가치가 없는 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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