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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우리 목욕합시다-142화 (142/155)

142화

그 말을 하며 나는 클로드 카르테인의 얼굴을 빠짐없이 눈에 담았다. 그곳에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있었다.

단순히 그의 외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그가 내 곁에 존재했다. 내가 모든 것을 헤쳐 나갈 수 있었던 건 많은 이들의 도움도 있었으나 결정적으로 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작님, 그러니까 나는…….”

“나디아.”

“허어엉!”

클로드가 당황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음에도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사실 왜 울고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그냥 계속 눈물이 나서, 나는 어린아이처럼 그의 앞에서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다. 불안했을 그를 안심시켜야 하는 건 나였음에도.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질 때마다 나도 모르게 속 안에 가득 차 있던 무언가가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 전부 끝났다는 안도감에 그간 미뤄 두었던 중요한 것들을 드디어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

클로드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나를 끌어안았다. 물에 젖어 있던 발 때문에 그의 바지가 축축하게 젖어 들었지만, 나도 그도 그런 걸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근래 하도 안겨 있어 익숙했던 품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울었다.

쉼을 가지기 이전에 이 시간을 거칠 필요가 있었다는 걸, 그를 통해서야 알 수 있었다.

힘을 주어 날 안은 그가 등허리를 서툴게 쓸어내렸다. 조금이나마 나를 진정시키려는 움직임이었다.

“왜 당신이 불안해, 흐으, 해야 해요? 왜 그 두 사람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상처를 받아야 해?”

“나디아, 쉬이. 더 울면 머리가 아플 겁니다.”

“헤르잔에게 들었어요. 소피아가 개 같은 말을 지껄였을 때 당신 집무실에서 나오지도 않고 먹지도 않았다고.”

“그건…….”

“울지도 못했죠? 울면 진짜 끝일 거 같아서, 정말 작별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잠도 못 잤죠? 이 세상에서 당신만이 날 기억하는데, 혹시라도 자는 사이에 그 기억이 조금이라도 흐릿해질까 봐! 당신만은 나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보지 않았어도 훤했다. 벌겋게 뜬 눈으로, 아주 실낱같은 희망 하나만을 붙잡은 채 밤낮을 지새웠을 그가.

나는 이게 절대 그의 탓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의 가슴을 때리며 울었다. 웃기게도, 클로드는 내가 엉엉 울어 젖히는 모습을 보며 웃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의 표정을 보고는 더 크게 울며 웅얼거렸다.

“허어엉! 공작님은 왜 남이 우는 걸 보면서 웃고 있어요. 내 약혼자 이상해애…….”

“아뇨, 그냥.”

이제는 작게 소리를 내 웃기까지 하는 그가 눈꼬리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내게 말했다. 아주 오랜만에 그의 목소리가 평소와 같이 들리는 것 같았다.

“나를 대신해 울고 화를 내는 게 아닙니까.”

“그게 뭐요!”

“신기해서. 고작 그대의 눈물 하나에 잊히지 않을 것 같았던 시간이 그럭저럭 넘길 수 있는 시간이 된다는 것이.”

진심이라는 듯 어색하게 입가를 가린 그가 내 볼을 감싸고는 느리게 입술을 달싹였다.

“그대를 잃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지 않을 거예요.”

“그대가 위험을 감수하는 모험을 한다면, 신뢰를 잃고 미움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그대를 막을 겁니다.”

“내가 얼마나 겁이 많고 안정 지향적인 사람인지를 공작님이 알아야 할 텐데.”

“여기에 머물겠다고 제 집무실에 들이닥치고 아르웬 경에게 내기를 요청했던 당신이 말입니까?”

아, 그건 솔직히 예외로 쳐줘야 한다. 그때는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고!

내가 코를 훌쩍거리며 그를 노려보자 클로드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이마를 맞댔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생각합니다. 이대로 그대를 새장 속에 가둔 채 내보내고 싶지 않다고. 영영 안전한 내 품 안에 가둬두고 싶다고.”

“공작님, 그러니까…….”

“압니다. 그럴 수 없다는 것. 내가 그렇게 한들, 나디아 그대는 그대가 원할 때 새장을 부수고 나가리라는 걸.”

속삭이듯 내려앉은 그의 말에는 아주 옅게 아쉬움이 서려 있었다. 그걸 알아챈 내가 재차 그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때리자, 그가 내 손을 잡고는 진지하게 말했다.

“그러니 제게 하나만 약속해 주십시오.”

클로드가 진지하게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래서 나 역시 진지함을 담아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는 저를 혼자 두지 않겠다고.”

“그럴게요.”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빠르게 그에게 답했다. 대답을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그게 뭐 어려운 거라고.’

나를 괴롭히던 일들이 모두 해결된 지금, 이번처럼 위험을 무릅쓰면서 클로드를 혼자 둘 이유가 내게는 없었다. 카르테인 공작가에서 나갈 생각은 더더욱 없었고.

내가 펼쳐놓은 미래 사업의 씨앗이 여기에서 자라고 있는데, 내 토끼 같은 자식들을 놔두고 어디를 간단 말인가.

지나치게 빠르게 답을 한 탓인지, 클로드가 조금 더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저는 진지합니다.”

“저도 진지한데요.”

봐라, 진심이 뚝뚝 떨어지는 내 눈을.

눈을 부릅뜬 채 그와 눈싸움 아닌 눈싸움을 벌이던 때였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나는 작게 탄성을 내뱉으며 그를 향해 살짝 코를 찡긋거렸다.

“아, 만약 그 혼자 두지 않겠다는 말이 일상에서조차 한시도 떨어지지 않겠다는 말이었다면 좀 곤란해요. 그, 저도 화장실 정도는 혼자 가고 싶어서.”

“나디아.”

“앗, 지금 말하기에는 좀 눈치 없는 농담이었어요?”

그가 고개를 내젓는 모습을 바라보며 멋쩍게 웃음을 짓고 있자니, 스쳐 지나가듯 자연스럽게 넘겼던 말 하나가 불쑥 입 안을 맴돌았다.

“클로드.”

“음?”

“내가 아이작 달튼에게 들은 게 있어요.”

주치의 선생의 이름을 들은 클로드가 반사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그의 미간을 검지로 꾹꾹 눌러주며 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소피아 일라리아가 회귀를 했다고 했잖아요. 공작님을 너무도 사랑해서, 공작님의 옆자리에 서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기억해요?”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요? 난 이거 들었을 때 내심 기분 좋았는데. 나랑 공작님은 그때도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지 뭐예요? 심지어 이미 맺어진 후였던 모양이더라고요.”

궁금했다.

그때의 우리는 어떻게 만났을까? 어쩌다 서로를 보았고,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을까?

분명, 소피아 일라리아가 회귀하기 전의 나는 지금처럼 냄새에 예민하게 굴지 않았을 텐데.

나는 무수히 많이 떠오르는 상상들을 뒤로한 채 그를 향해 씩 웃어 보였다.

울다가 운 탓에 볼썽사나운 얼굴일 게 분명했지만 괜찮았다. 이곳에는 울다 웃으면 엉덩이에 뿔이 난다는 속담 따위는 없으니까.

“음.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 무엇도 나와 공작님을 갈라놓을 수 없었다는 거예요. 우리는 어느 시간선에서라도, 어느 상황에서라도 서로를 만날 그런 운명이었으니까.”

“…….”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는 클로드의 손을 꼭 잡고는 조금 더 확신을 담아 그에게 말했다.

“그러니 내 모든 걸 걸고 약속해요, 클로드. 내가 당신의 곁에 서지 않는 날은 없을 거예요. 당신의 곁에서 사라지는 일도 없을 거예요.”

“…….”

“나는 서약식 때 했던 말처럼, 당신의 곁에서 새로운 북부의 주인이 될 준비가 되어 있어요.”

내 말을 들은 클로드가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던 그가 다시 눈을 뜨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나를 보며 웃었다.

“…그대를 잃었을 때 믿음 따위는 부질없다고 진심으로 생각했습니다만.”

“으음, 이렇게 들으니까 그 부질없는 믿음을 또 품게 되죠?”

“불가항력입니다. 나디아 그대는 제 구원자이니까.”

입에 침 한번 바르지 않고 낯간지러운 말을 자연스럽게 내뱉다니, 정말 남자 주인공 같군.

그러고 보니 클로드도 북부 공작이면 한 번쯤 할 법한 일들을 다 하기는 했다.

‘봐라? 상황이 상황이었지만 처음에는 쌀쌀맞고 재수 없게 굴었지? 나랑 썸 탈 때도 쉽게 본인 감정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 뭐야, 내 여자에게만 따뜻하게 굴기도 했고 집착도 해봤잖아?’

종합 세트가 따로 없다.

나는 공교롭게 이루어진 일들을 떠올리며 그를 끌어안은 팔에 한 번 더 힘을 주었다.

‘나도 이제는 불안하지 않아.’

골드게이트 가문의 영애로 자란 나디아의 기억이 모조리 살아난 지금, 나는 서약식 때 약속했던 것들을 이제 조금 더 능숙하게 해낼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아이작 달튼과 소피아 일라리아의 음모에 가담했던 이들을 정리하는 것부터였다.

내 사랑을 혼자 두지 않기로 약속했으니, 카르테인 공작가까지 끼워서.

“클로드.”

“예, 나디아.”

“공작님과 함께 하고 싶은 일들이 아주 많아요.”

“그게 무엇이든 전부 이루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비장하게 답할 내용은 아닌데.

소소하게 나단을 돌아다니면서 데이트도 하고, 북부는 별이 참 예쁘니까 따뜻한 코코아를 먹으며 별구경도 하고…….

그렇게 날이 따뜻해지고 그가 조금 한가한 때가 오면 골드게이트 공작령으로 가서 내가 살아왔던 곳도 보여주고 싶은 것뿐이니까.

나는 목숨이라도 걸 것 같은 그의 모습에 고개를 내저으며 웃음을 터트리다 그의 손을 꼭 붙들었다.

“그러니 마음 놓고 신나게 놀 수 있게 빠르게 숙제부터 처리합시다. 물론, 같이.”

클로드의 표정이 다시금 온순해지는 걸 본 나는 루핀이 맘껏 쓰라며 손에 쥐여주고 갔던 마도구를 들어 익숙한 패턴을 그렸다. 곧게 뻗은 세로선 위로 그어지는 두 번의 사선과 한 번의 가로선.

제국의 황태자에게로 연락이 닿는 직통 연결선이었다.

[나디아? 영애가 내게 먼저 연락을 주다니, 이건 참 드문 일이군.]

“안녕하세요, 전하. 무탈하게 잘 지내셨나요?”

나는 황태자에게 담담하게 인사를 건네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내 개인의 문제 탓에 잠시 미뤄두었던 일들을 이제는 처리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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