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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우리 목욕합시다-132화 (132/155)

132화

나디아가 야무지게 방에서 탈출할 계획을 세울 때쯤, 카르테인 공작가에서는 때아닌 청문회가 열렸다. 당연하게도, 소피아 일라리아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한 청문회였다.

소피아가 나디아일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청문회는 나름대로 편안한 환경에서 은밀하게 열렸으나, 분위기가 편안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골드게이트 공작가와 카르테인 공작가의 직계 가족, 그리고 이례적으로 소피아 일라리아의 남편인 일라리아 백작까지. 누구 하나 쉬운 사람이 아니었다.

“…소피아 님, 마실 거라도 한 잔 드릴까요?”

무겁기 짝이 없는 공간 속에서 줄리엔이 다소 딱딱하게 소피아를 불렀다.

그녀가 자신의 주인일 수 있다는 점을 전달받기는 했으나, 정말 나디아를 모시듯 그녀를 보필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소피아 일라리아 아닌가.

“아, 아니야. 괜찮아.”

“그러시군요. 그럼 이쪽으로 앉아주시겠어요?”

“응.”

줄리엔은 소피아를 편안한 소파로 안내하면서도 혹시 몰라 물을 한 컵 따라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맞은편을 서성거리던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움직임을 좇았다.

사랑스러움이 물씬 느껴지는 은색의 머리카락이 나풀거리는 모습도, 분홍색 눈이 깜박거리는 것도, 작은 손짓 하나도 전부.

물론 그들의 시선이 확인하고자 하는 건 작은 움직임을 통해 알아낼 수 있는 나디아만의 특징들이었다.

“으음, 일단 저는 준비가 되었는데요…….”

침묵으로 가득 휩싸인 공간 속에서 소피아가 난처한 듯이 도르르 눈을 굴렸다. 그러고는 손을 들어 한쪽 머리카락을 귀 뒤로 꽂았다.

그 모습이 나디아가 멋쩍을 때 보이는 행동과 제법 비슷해서, 프리지아 골드게이트가 지그시 검지로 자신의 눈두덩이를 눌렀다.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아내의 상태를 한 번 살핀 데릭 골드게이트였다. 분홍색 눈과 시선을 맞추며 그가 담담하게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간단한 질문부터 하지. 이름은?”

“아, 나디아… 골드게이트입니다.”

“지금 본인이 말하고 있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겠지?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이 듣고 싶다만.”

데릭의 말을 들은 그녀가 잠시 머뭇거리다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저를 설명하라니, 생각보다 굉장히 어렵네요. 제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듣는 것도 실은 가슴이 아파요. 하지만 저는 나디아 골드게이트니까 최대한 설명해 보겠습니다. 당시의 상황은 잘 기억나지 않아요.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정신이 없었거든요.”

“…….”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걸 꼽아보자면, 역시 아이작 달튼이 목걸이를 쥔 채 소원을 빈 모습이겠지요. 그가 그렇게 한 뒤로 번쩍거리는 빛이 공간을 채웠고, 눈을 뜨니 저는.”

“소피아 일라리아의 몸이었다?”

“네, 저도 정말 놀랐어요. 제 금색 머리카락 대신 은색 머리카락이 보이고, 목소리도 다르고 손도 제 손이 아니라서……. 뭐든 물어봐 주세요. 제가 골드게이트라는 건 답해드릴 수 있어요.”

프리지아는 고요히 소피아가 말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침묵만이 흐르는 공간 속에서 아르웬이 딱딱한 목소리로 질문을 내던졌다.

“내가 네게 준 것이 있다. 그게 무엇이고, 가문에서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알고 있나?”

“언니가 내게 준 거라면 후계자만이 가질 수 있는 황금 열쇠를 말하는 걸까? 잘 알고 있지. 후계자만이 쥘 권리를 가진 황금 열쇠는 우리 가문의 가보인걸. 대외적인 힘은 물론이고 실은 고대급 마도구이기도 하잖아. 그렇지, 루핀?”

“…아직 질문이 끝나지 않았어. 그 황금 열쇠를 보관하고 있는 장소도 아는가?”

“공작가 서재의 책을 당기면 나오는 비밀 공간. 아니야?”

아르웬의 표정이 조금 더 딱딱해졌다. 자신이 그녀에게 황금 열쇠를 주었다는 것은 북부에서 워낙 잘 알려진 사실이니 그럴 수 있다 해도, 후자에 대한 답은 골드게이트가 아니라면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정말 사실이란 말인가. 그런데 왜 나는…….’

이토록 동생이 멀게만 느껴지는지. 자신이 사람의 외모에 이렇게나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이었나 싶어 아르웬이 자책할 때쯤 에스텔 카르테인, 전 공작 부인이 슬쩍 손을 까닥였다.

근래 공작가에 일이 연이어 터지기도 했고, 아들의 상태를 보아 하니 이러다 곧 결혼이겠구나 싶어 근처에 마련한 별장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이건 또 무슨 상황인지.

서늘한 시선으로 소피아 일라리아를 훑어본 그녀가 천천히 입을 달싹였다.

“그래, 아가. 그렇다면 나도 하나 물어보지. 내가 너를 부르는 호칭이 있단다. 이곳에 머물렀던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누차 강조했던 호칭. 그게 뭐지?”

에스텔의 말을 들은 소피아가 살짝 눈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며 단숨에 답변을 입에 담았다.

“에스텔 님은 저를 카르테인의 유일한, 귀한 보석이라고 불러주셨지요. 제게는 과분한 말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저를 아껴주시는 말임을 알아서 실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매우 기뻤답니다.”

“그래, 그랬지.”

그리고 그 호칭은 나디아의 방에서 그녀와 이안, 클로드, 이렇게 셋만이 나눈 것이었다.

차분히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슬쩍 시선을 굴려 루핀 골드게이트를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무언가 고민할 거리가 있는 사람처럼 눈을 가느다랗게 뜬 채 소피아 일라리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루핀 골드게이트, 확인했더니 마력이 나디아의 색이었다고?”

“예, 그렇습니다.”

“비록 몇 개 되지 않긴 하지만, 내가 느끼기로는 지금 했던 문답들은 나디아가 아니면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었던 것 같은데……. 아닌가?”

“맞습니다.”

루핀 골드게이트는 그렇게 긍정하면서도 이 청문회를 그만둘 생각은 없어 보였다.

짧은 태도에서 그 모든 것을 느낀 그녀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은 이후, 그녀를 나디아라고 짐작한 그녀로서는 차라리 영혼을 되돌릴 방법을 찾는 쪽을 고민하는 게 나아 보였지만, 어쩔 수 있나.

‘아무래도 가족이다 보니 나보다는 마음이 훨씬 복잡하겠지.’

심지어 나디아는 그들에게 큰 의미가 있는 딸이기도 했고. 그렇다면 다소 지난하더라도 골드게이트 가문 사람들의 마음이 정리될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맞았다.

클로드가 나선 것은 그렇게 결론을 지은 그녀가 계속 진행하라는 말을 던진 직후였다.

“딱 세 가지만 묻겠습니다.”

“…얼마든지요.”

다른 사람들이 질문할 때와 다르게 소피아의 표정이 다소 가라앉았다. 풀이 죽은 동물처럼 그녀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클로드는 가련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녀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첫째. 나디아, 일전에 내가 물은 적이 있습니다. 내 어디가 좋냐고. 같은 질문을 하겠습니다.”

“그, 그런! 부끄러운…….”

볼을 붉히며 아랫입술을 깨문 소피아가 주위 사람들을 눈으로 살피다 작게 한숨을 쉬었다.

“좋아하는 이유가 너무 많아서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클로드의 다정함이 좋아요.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시선이 좋고, 또.”

“됐습니다. 두 번째 질문입니다. 나디아, 내가 그대에게 청혼하며 한 말이 무엇이지?”

“…나의 유일한 이해자라고 하셨어요.”

다소 먹먹한 목소리로 입을 달싹인 그녀가 천천히 클로드와 눈을 맞췄다. 잘게 일렁이는 소피아의 분홍색 눈동자와 달리 클로드의 눈은 미동 하나 없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나디아, 그대는 나를 위해 목숨도 걸 수 있습니까?”

“당연하죠.”

소피아는 왜 그렇게 당연한 것을 물어보느냐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연한 일이다. 그건 소피아가 회귀하기 전의 나디아도 했던 말이었으니까.

‘목숨? 그럼요. 걸 수 있죠. 그 사람이 없는 세상에는 큰 미련이 없어서요.’

물론, 지금까지의 모든 대답도 회귀 전 나디아에게서 알아낸 사실 덕에 가능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의아함을 담아 클로드를 바라본 소피아는 그와 시선을 마주한 순간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가 작게 입술을 벌리기도 전, 소피아에게서 시선을 돌린 클로드가 단호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우선은 아이작 달튼과 나디아 골드게이트의 수색에 집중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 말은?”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확실함을 위해 당사자 세 명이 모두 모였을 때 신전의 확인을 받을 것을 제안합니다. 이 자리는 여기에서 파하는 것으로 하죠.”

신전의 확인. 그건 신전이 신의 권능을 가지고 있다는 가장 대표적인 증거였다.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클로드의 말에 반대하지 않았다. 별다른 미련 없이 방에서 나가는 그를 붙든 것은 당연하게도 소피아 일라리아였다.

“잠시만요!”

“무슨 일이십니까.”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아직 클로드가 곁에 없으면 불안해서…….”

나디아가 자주 보이는 표정을 지은 그녀가 살짝 위를 올려다보며 조심스럽게 클로드의 옷깃을 잡았다. 이 또한 나디아가 가끔 하던 행동이었다.

소피아 일라리아는 당연하게 나디아가 하는 행동을 하고 또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을 알고 있었다. 클로드는 이 기묘한 상황을 전부 눈에 담으며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나디아인 척은 그만하지, 소피아 일라리아. 그녀는 어디에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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