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어?”
내가 지른 외마디 비명에 에이포드는 물론, 클로드를 방으로 옮기던 헤르잔까지 내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무슨 일이냐는 듯이 두 사람이 나를 바라봤지만, 나는 에이포드가 준 약을 보는 것에 집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머릿속이 빠르게 굴러갔다. 병 안의 액체를 뚫어져라 바라보고만 있자, 에이포드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 나디아 님? 혹시 제가 만든 영양제에 뭔가 문제라도…….”
“에이포드.”
“어, 넵.”
“이 영양제 말이야, 일전에 우리가 이야기 나눴던 대로 만든 게 맞아? 그러니까, 달튼 자작님의 처방대로 만들기로 했던 거 말이야.”
내 말을 들은 에이포드의 표정이 굉장히 미묘해졌다. 왜 그런 당연한 걸 물어보느냐는 듯이 눈을 굴리던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긍정했다.
“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처방전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니까요.”
“좀 더 잘 만들기 위해 재료를 더 추가하거나 바꾼 것도 없어?”
“없습니다.”
짤막하게 대답한 에이포드가 잠시 뒷머리를 긁적이더니 이런저런 말들을 늘어놨다.
재료를 추가하지 않았다고 해서 잘 만들기 위한 연구를 하지 않은 건 아니라느니, 재료 하나 과정 하나에도 정성을 다했다느니 하는 말들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한 말이 약의 완성도에 대한 추궁같이 느껴진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내젓고는 에이포드에게 바싹 몸을 붙였다.
“으악. 왜, 왜 갑자기 이렇게 다가오고 그러십니까!”
“에이포드, 영양제의 색이 달라.”
“우리 거리를 좀 두고……. 예?”
갑작스럽게 좁힌 거리에 화들짝 놀라던 에이포드가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잠시 눈을 깜박이던 그가 미간을 좁히며 안경을 고쳐 잡았다. 나를 따라 목소리를 낮춘 그가 입을 달싹였다.
“영양제의 색이 다르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제가 만든 것과 달튼 자작님께 받았던 영양제의 색이 다르다는 말씀이십니까?”
“응.”
“제조 방식에 따라 영양제의 색이 조금 탁해지거나 선명해질 수는 있는데……. 표정을 보아 하니 그건 아닌 모양이군요.”
나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포드의 표정이 조금 더 심각해졌다.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걸 짐작한 내가 다시 입을 열려던 찰나, 뒤에서 우리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헤르잔이 먼저 말했다.
“나디아 님, 우선은 각하의 침실로 가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에이포드, 그대도 따라오고. 한 번 더 각하의 상태를 확인했으면 하는군.”
“아……. 아, 예!”
반 박자 늦게 헤르잔의 말에 반응한 에이포드가 그의 뒤를 따랐다.
“가실까요, 나디아 님?”
“응, 그래.”
나는 헤르잔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걸음을 옮기면서도 손에 쥔 병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푸른색의 액체가 내 마음속의 상황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아이작 달튼은 정말 뭘 하고 싶었던 거지?’
그가 수상한 행동을 보였다는 건 자명했다. 클로드가 말했던 목걸이 사건도 그렇고, 내게 했던 말도 그렇고, 또 이번 영양제 건도 그렇고. 하지만 왜?
‘뭔가… 소피아 일라리아의 상황과 비슷하네.’
무엇을 위한 행동인지가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는 면에서 말이다. 클로드의 침실로 들어온 나는 침실의 문이 닫히자마자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훑었다.
나와 클로드, 줄리엔, 헤르잔, 그리고 에이포드.
내 사람들이라는 걸 재차 확인한 후에야 입 사이에서 긴 숨이 터져 나왔다. 어쩐지 이제야 긴장이 풀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절로 파리해진 안색 탓일까, 줄리엔이 급하게 의자 하나를 가져다주었다.
“나디아 님,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각하는 또 어쩌다 저렇게 되셨고요.”
“아이작 달튼이 나를 습격했다. 그걸 습격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만, 내게 손을 뻗은 건 확실하지.”
짤막하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알려주자, 세 사람의 표정이 덩달아 심각해졌다. 나는 약병을 꾹 쥔 채 다시금 에이포드에게 시선을 건넸다.
“그래서 이 영양제에 대해 더 자세한 설명이 듣고 싶어. 내가 먹었던 영양제는 분명 파란색이 아니라 선명한 노란색이었거든. 그건 줄리엔도 알고 있을 거야.”
“네, 맞습니다. 그럼 혹시 지금껏 나디아 님이 아프셨던 게 다 이 영양제 때문이었던 걸까요?”
“글쎄요. 그건 영양제를 분석해 봐야 확실해질 문제라서…….”
“양이 적기는 하지만, 제게 영양제가 하나 있긴 합니다.”
줄리엔이 품에서 꺼낸 약병에는 익숙한, 그래서 더 기분이 이상한 아이작의 영양제가 들어 있었다. 에이포드가 아이작의 영양제를 건네받았다.
눈으로 가만히 영양제를 살핀 그가 끙, 하고 소리를 내며 뒷머리를 긁었다.
“아직 정확하게 분석이 나온 게 아니라서 확신을 드릴 수는 없지만. 그, 색이 다른 이유는 아마 별무리꽃 때문일 겁니다.”
“별무리꽃? 그게 왜?”
“별무리꽃은 그대로 쓰지 않아서 말입니다. 별무리꽃은 찌고 말리지 않으면 약재로 쓸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구하기도 힘들뿐더러 손이 아주 많이 가는 약재죠. 그렇게 만든 별무리꽃이 들어간 약은 죄다 선명한 파란색을 띱니다. 그러니 다른 게 들어가지 않았다는 걸 전제로 뒀을 때 노란색이 나올 수 있는 건 딱 한 가지 경우인데…….”
의도를 짐작이라도 해보려는 듯 잠시 말을 멈췄던 그가 천천히 입술을 달싹였다.
“그건 찌거나 말리는 공정을 거치지 않은, 생화 그대로의 별무리꽃을 사용했을 때입니다.”
“생화 별무리꽃을 쓰면 문제가 생기나? 독성이 있다든가.”
“그게 의아한 점입니다. 생화 별무리꽃은 그런 게 전혀 없거든요. 그냥 별무리꽃의 약효를 전혀 보지 못한다는 것 말고는요. 그래서 저희끼리는 그런 약을 볼 때면 의사 놈이 덜떨어진 거라고 합니다만, 골드게이트 공작가의 주치의씩이나 하는 의사가 그 정도로 모르는 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래, 여기에는 분명 무슨 의도가 있을 것이다. 내 건강을 해치려는 게 아닌, 다른 의도.
약 같은 경우는 아이작 달튼 외의 다른 의사에게 보이면 결국 들통이 날 문제다. 똑똑한 그라면 굳이 이런 수를 쓰지 않을 터였다.
게다가 아이작 달튼은 이상하리만치 내 건강에 집착하지 않았나. 몸에 해로운 약을 쓴다는 건, 그 ‘건강’을 해치는 일이고.
‘그럼 가장 먼저 의심할 건 이게 마탑주가 말한 연결 고리에 가해진 충격이라는 건데.’
또다시 왜라는 질문이 나왔다.
그러면서도 이제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하는 거다. 혹시, 정말 혹시라도… 그가 뭔가를 알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의구심이.
‘과거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굴었을 때도 빙의 자체에 대한 건 절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던 거로 기억해. 아닌가?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건가?’
머릿속이 실타래처럼 뒤죽박죽 엉켰다. 기억을 떠올리려고 하면 할수록 더 혼란스러워져서 나는 우선 머릿속을 채운 생각들을 뒤로 미뤄두기로 했다.
“우선 에이포드는 최대한 빠르게 달튼 자작의 영양제를 분석해 줬으면 좋겠어. 느낌상 네 말이 맞을 것 같긴 하다만,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니까. 언제까지 될까?”
“음, 내일까지는 기한을 맞춰보겠습니다.”
“그리고 헤르잔, 소피아 일라리아와 로드릭 헤링본에 대한 걸 빠짐없이 조사해 줘. 특히 아이작 달튼과 관련해서 수상한 점은 없었는지. 줄리엔은…….”
내가 말을 잇기도 전, 줄리엔이 가볍게 손을 들고는 먼저 입을 열었다.
“나디아 님, 죄송하지만 저는 나디아 님과 각하의 건강 관리에 힘을 쓰겠습니다. 아무래도 지금 두 분께는 그게 급선무인 것 같아서요.”
“응, 고마워.”
줄리엔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쯤,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헤르잔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역시 줄리엔의 말에 동의합니다.”
“음?”
“사실 나디아 님께 보고드려야 할 사안이 또 있기는 했습니다만, 지금 제일 중요한 건 회복인 것 같군요. 소피아 일라리아와 로드릭 헤링본, 그리고 아이작 달튼을 조사하는 동안 최대한 건강 회복에 집중해 주시길 바랍니다. 보고드릴 사안 역시 그때 같이 전달해 드릴 테니까요.”
단호하네.
안경 너머로 보이는 그의 눈빛에서 절대 미리 알려주지 않겠다는 다짐이 엿보였다. 왜 저렇게 말하는지 모르지 않았던 터라, 나는 이번에도 그의 말에 조용히 수긍했다.
그런 나를 지켜본 헤르잔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쉬실 수 있도록 잠시 자리를 피해드리겠습니다. 아니면 나디아 님, 나디아 님의 방으로 자리를 바꾸시겠습니까?”
“음……. 아니, 괜찮아. 지금은 여기에 있을게.”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 살래살래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은 내 방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방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이런저런 일이 많았던 곳 아닌가. 방에 혼자 있으면 또 그날의 일들이 생각이 날 것 같았다.
그럴 바에야 카르테인 공작의 곁에서 잠든 그를 구경하고 있는 편이 훨씬 나았다.
“잘 알겠습니다. 그럼 식사 때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시다면 언제든 불러주세요!”
“응, 고마워.”
가벼운 인사와 함께 세 사람이 문을 닫고 나갔다. 나는 순식간에 고요해진 공간 속에서 길게 숨을 내쉬었다.
곁에서 들리는 카르테인 공작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복잡하기 짝이 없던 머리를 차분하게 다독여 주는 기분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평온함에 눈꺼풀이 점차 무거워지던 찰나 바깥에서 똑똑, 하고 짧은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구야?”
바깥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줄리엔이나 에이포드, 헤르잔이라면 답이 돌아오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찬물을 끼얹듯 갑작스레 긴장감이 몰려왔다.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문 쪽으로 다가가 손잡이를 잡았다. 혹시 몰라 클로드의 침실에 장식으로 놓여 있던 작은 조각상을 손에 쥐기까지 했다. 그렇게 살짝 열어본 문의 바깥에는 쪽지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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