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그래, 나도 좀 알고 싶다.
‘아니, 당신은 안 나서기로 했잖아. 애초에 이런 거에 관심도 없다며! 오늘도 완성된 비누가 궁금해서 그냥 보러만 오는 거라고 했으면서.’
아무리 마법사 놈들이 변덕스럽다지만, 대체 갑자기 왜 이러는 거냐. 게다가 깊은 연? 깊은 연 같은 소리 하네. 처음에 계약 조건 내밀 땐 들여다보지도 않았으면서.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상황에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내 시선은 물론, 사람들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은 그가 앞으로 다가와 붉은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위아래로 나를 훑어보는 시선이 조금 불편했다. 일전에도 그랬지만, 저 눈을 보고 있으면 혼자만 아는 것까지 다 들킨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
‘아니, 그래서 대체 왜 나를 저런 눈으로 보는 건데.’
이번에는 또 뭔가 싶어 불안해질 때쯤, 마탑주가 잠시 미간을 좁히고는 입술을 달싹였다.
“영애, 목걸이는 잘 하고 있나?”
“목걸이요?”
무슨 목걸이. 아, 루핀이 준 그거 말하는 건가?
“어, 네……. 그런데요.”
지금도 목에 잘 걸고 있다. 나는 얼떨떨한 목소리로 그에게 답을 하고는 뒤늦게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가 일전 마탑에서 만났을 때도 루핀이 준 목걸이를 언급했다는 사실이 떠오른 탓이다.
‘왜 또 목걸이를 언급하는 거지?’
나는 애꿎은 목을 만지작거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알쏭달쏭하기 짝이 없는 마탑주의 말을 듣고 있으려니, 퍽퍽한 빵을 잔뜩 먹은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 역시 그때 목걸이가 가진 효과를 제대로 알아놨어야 했어. 대체 이 목걸이가 뭐길래?’
게임이나 소설 같은 곳에서 보면 이런 건 아주 높은 확률로 중요한 아이템이란 말이야.
나는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는 마탑주에게 목걸이의 정확한 효과를 물어볼까 고민했다. 마탑주의 성격상 대놓고 물어보면 도리어 답을 해줄 것도 같은데.
“그…….”
왜 묻느냐는 질문이 막 입 밖으로 나오려던 참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에게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목걸이를 잘 하고 있다는 대답을 듣자마자, 마탑주가 그럼 됐다는 듯 미련 없이 고개를 돌렸기 때문이다.
‘놓쳤네.’
나는 어색하게 뻗은 손을 모른 척 내리며 작게 헛기침을 했다. 민망함이 살짝 담긴 내 기침과 누가 들어도 이상한 대화 탓인지, 옆에서 클로드의 시선이 느껴졌다.
무슨 일이냐는 듯한 그런 눈빛이었다. 나는 뭐라 답할 말이 없어 가만히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 나도 얘기해 주고 싶은데 뭔가 있다는 감 말고는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없다.
마탑주는 클로드와 내가 무슨 눈빛을 주고받건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대신관을 힐끗 바라봤다.
‘정확하게는 나벳 대신관의 옆에서 나지막하게 분노하고 있는 성기사를 보는 것 같았지만, 아무튼.’
성기사를 한 번 훑어본 그가 내게 고개를 돌린 채 다시 입을 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마탑에서도 선물을 주는 거로 하지.”
“어, 선물이요?”
내 반문을 들은 그가 허공에서 가볍게 손을 휘적거렸다. 그를 닮은 시린 마력의 움직임과 함께 허공에서 반지 한 쌍이 뿅 하고 나타났다.
백금색에 푸른 사파이어가 박힌 아름다운 반지였다. 손 위에 놓인 아름다운 자태에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찰나, 그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공이 두 사람일 때는 반지만 한 선물이 없지.”
[위급한 상황이면 서로에게 신호가 가는 목걸이다.]
“…예?”
마탑주의 목소리가 머릿속과 귀에서 동시에 울려 퍼졌다. 괴이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 얼빠진 소리를 내자, 마탑주가 슬쩍 자신의 눈썹을 밀어 올렸다.
“왜, 맘에 안 드나?”
[그렇게 수상하다는 티를 내다니, 많은 사람 앞에서 소문낼 일 있어?]
아, 아……. 그런 거구나?
‘아니, 이렇게 선물을 줄 거면 신호를 주든가 미리 말을 해달라고.’
나는 부연 설명을 듣고 나서야 이해가 되어 멋쩍게 눈을 굴렸다. 그러나 불손한 마음이 든 것도 잠시, 나는 빠르게 표정을 가다듬고는 감사함을 담아 반지를 꼭 쥐었다.
“아닙니다. 그냥, 제가 받기에 과분한 게 아닌가 싶어서요. 잘 쓰겠습니다.”
빈말은 아니었다. 나는 냉큼 클로드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고는 고개를 숙여 그에게 인사했다. 사람이 건넨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던 그가 할 일을 마쳤다는 듯 내게 두 손을 내밀었다.
“그럼 도리도 할 만큼 했겠다, 본론으로 들어가지. 내놔.”
“감사합……. 네?”
벌써 세 번째 되물음이었다. 마탑주가 어디 모자란 사람을 보는 것 같은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게 억울하다.
‘아니, 마지막 거는 어이없어서 내뱉은 말이다. 인마!’
아, 오늘은 무사히 넘어가나 했는데, 머리가 다시 지끈거리는 기분이다. 현기증이 나서 고개를 돌린 곳에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는 헤르잔이 서 있었다. 속이 쓰린 듯 명치 쪽을 꾹 누르는 그를 보자 괜한 안심이 들었다.
‘그래,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어.’
그냥 마탑주가 상식 외의 사람인 거지.
나는 비누를 내놓으라는 마탑주의 당당한 요구를 지켜보며 작게 신음을 내뱉었다.
‘누가 보면 맡겨둔 줄 알겠다.’
실없는 소리를 하면서도 선뜻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비누가 자랑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정해진 순서도 아닌 지금, 이렇게 얼렁뚱땅 공개해도 되는지 고민이 되어서였다.
당황스러운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통로 쪽에서 에이포드와 타냐가 동그랗게 뜬 눈을 깜박이는 게 보였다. 그렇게 입술을 달싹이고만 있던 때였다.
“나디아.”
옆에서 상황을 눈여겨보던 클로드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한 손으로 마탑주가 준 반지를 만지작거린 그가 내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 숙인 채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냥 지금 두 사람을 불러도 괜찮을 듯합니다.”
“…그래요?”
“예.”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제가 책임을 지지요. 단단하기 짝이 없는 그의 미소에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진정되었다.
나는 고민하던 것을 뒤로한 채 발을 구르고만 있던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가지고 와도 좋다는 뜻이었다.
내 시선이 어딜 향하는지 확인한 마탑주가 슬쩍 고개를 기울였다. 그의 긴 머리카락이 스르륵 앞으로 넘어왔다.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깜박인 그가 작게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마탑의 주인을 앞에 두고 무슨 수고스러운 일인지.”
그가 손가락을 까닥하자 ‘으악!’ 하는 소리와 함께 에이포드가 저 멀리서 날아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끌려왔다고 해야겠지.
‘분명 걸어오는 시간도 아까워서 그랬을 거야.’
마법을 숨 쉬듯이 사용하는 사람이니 그에게는 느리게 느껴졌을 수 있지만, 당하는 사람도 좀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당황하잖아.
얼떨떨하게 끌려온 에이포드가 떨리는 손으로 안경을 추켜세웠다. 어딘가 부산스러워 보이는 그를 지그시 바라본 마탑주가 맡겨놓은 물건을 찾듯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때였다.
“에카르트 키엘.”
지금껏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던 클로드가 살짝 인상을 쓴 채 마탑주의 이름을 불렀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자신의 공간에서 제멋대로 굴지 말라는 경고를 담고 있었다. 또렷하게 들린 자신의 이름에 마탑주가 눈을 굴려 가만히 그를 응시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치열하게 얽혔다.
자존심을 걸고 기 싸움을 하는 건지, 아니면 나한테 했던 것처럼 마법으로 대화를 나누는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대로 두면 분명 한도 끝도 없겠지.’
나는 점차 심해지는 두통에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는 빠르게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었다.
“거기까지.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죠. 아무래도 여기 있는 사람들 앞에서 개발한 걸 공개해야겠네요.”
나는 이러려던 게 아니라는 듯, 일부러 과장되게 한숨을 쉬고는 두 사람이 가지고 온 트레이에서 가장 좋아 보이는 비누 조각을 골라 잘 보이게 들어 올렸다.
“어머, 저게 뭐죠?”
“글쎄요? 돌조각 같기도 하고…….”
“저는 마치 버터처럼 보이는데.”
“색깔이 특이한데요?”
처음 선보이는 낯선 물건에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그들의 속닥거림을 배경 음악 삼아, 나는 대신관과 마탑주에게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나벳 님, 그리고 에카르트 님. 이게 말씀드렸던 ‘비누’입니다.”
두 사람의 눈이 흥미로 물들었다. 내 손에서 비누를 받아 간 마탑주가 엄지로 비누를 문지르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과연. 이 무른 돌조각이 지금까지의 진리를 깨부수는 물건이라는 말이군.”
“으음, 그렇죠. 피부에 비누를 문지른 후 물로 그 부분을 씻어내면 더러운 게 없어집니다.”
병균 같은 오염 물질도 전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알아들은 마탑주가 희열 섞인 웃음을 입가에 지을 때였다.
씻어낸다는 말에 잠시 고요해졌던 공간에서 누군가가 불쑥 불쾌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자기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는 듯이 있던 헤링본 자작이었다.
코웃음을 친 그가 눈썹을 까닥이며 좌중에 불신의 싹을 틔웠다.
“뭐야, 이거 지금 위험한 거 아니야? 의사들의 진료도 그렇지만 지금 이거, 악마와 교류하는 목…….”
아니, 정정한다. 싹이 틀 뻔했다.
헤링본 자작이 악마 운운하던 순간, 비누를 본 나벳 대신관이 기쁨에 겨워 감탄을 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오! 이것이 정결함에 도움을 줄 수 있다던 바로 그 물건이로군요!”
야, 헤링본 자작아. 너 그거 모르지?
‘나벳 대신관님은 이미 온천수에 몸을 담갔다가 뽀얘진 자신의 피부에 충격을 받았던 사람이야.’
이미 목욕이라는 개운한 행위에 길들 대로 길든 사람이라고. 나는 남몰래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헤링본 자작의 타격감 제로인 공격을 비웃었다.
불신의 싹을 틔워 비누 공개에 초를 치려 했던 헤링본 자작의 얼굴이 일그러진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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