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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우리 목욕합시다-92화 (92/155)

92화

“나디아 말이에요, 어딘가 이상하지 않았어요?”

프리지아가 나지막하게 꺼낸 말에 데릭이 닫힌 문을 바라보다 뒤로 돌았다.

나디아를 향해 미소 짓고 있던 표정을 그새 지운 그가 다소 진지한 눈으로 제 아내를 바라보았다. 작게 한숨을 내쉰 데릭이 조심스럽게 프리지아의 말에 동의했다.

비록 짧은 만남이었고 대화도 몇 마디 나누지 못했지만, 딸아이의 어색함을 읽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디아와 꼭 닮은 푸른 눈을 깜빡인 그가 한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입을 열었다.

“이상하다기보다는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 것 같았습니다.”

“마음에 걸린다라…….”

남편의 말을 들은 프리지아가 조용히 그의 말을 되뇌었다. 어딘가 고민이 담긴 목소리 탓일까? 그녀의 옷차림을 다듬어 주던 시녀가 무언가 생각이라도 난 듯 작게 입소리를 냈다.

“혹시 제대로 된 허락을 받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리시는 거 아닐까요? 아가씨가 이렇게 자기주장을 하신 것도 처음이잖아요.”

“음, 일리는 있는 말이구나.”

가볍게 그녀의 말에 긍정한 프리지아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디아가 그간 착한 아이로만 살아온 건 사실이지.”

그녀의 둘째 딸은 쓰러지기 전까지 한 번도 크게 속을 썩인 적이 없는 아이였다. 발랄하면서도 다정한 성격 덕에 상대의 말도 잘 들어주고 웃음도 많았지. 그래서 나디아는 부부뿐 아니라 골드게이트 공작가의 기쁨이 되어준 아이였다.

‘물론, 그렇게 쓰러진 이후 정신을 차리고 나서는 걱정스러운 부분이 더 많지만 말이야.’

나디아는 분명 밝았던 모습을 되찾고 있었지만, 여전히 예측할 수 없는 묘한 불안감과 특이한 행동이 그녀의 신경을 잡아챘다. 지금도 봐라, 갑작스러운 심경의 변화로 북부행까지 하게 되지 않았나.

‘그러니 이런 행동들이 자꾸만 그 아이의 마음에 걸렸으리라 생각하면, 그럴 수 있을 것 같긴 하다만…….’

거기까지 생각한 프리지아는 잠시 나디아가 보였던 모습을 다시금 찬찬히 떠올렸다.

‘음, 역시 아니야.’

아무래도 이번에는 그 이유가 아닌 것 같았다.

부모의 눈으로 찬찬히 되짚은 딸은 분명 당황스러워했고, 또 얼핏 겁을 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대체 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표정이 가장 노골적으로 달라졌던 건 네펠리 영애의 소식을 들은 이후였던가?’

허공을 노려보던 금안이 짧게 반짝였다. 그 부분이 맞았다.

사실 조금 어색해하는 모습까지 고려하면 그보다 훨씬 앞부분을 건드려야 했지만, 프리지아는 그러지 않았다. 나디아가 어색해하는 모습은 그녀가 정신을 차린 이후로 계속되었던 일이었으니 말이다.

‘얼추 진정해서 상태가 나아진 이후로도 이건 여전했지.’

그랬음에도 버틸 수 있던 건 루핀이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이라고 미리 언질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나디아 누나의 영혼은 쉽게 말하면 뽑혀 나갔다가 다시 심어진 나무와 같습니다. 딛고 있던 땅이 뒤흔들렸던 거기 때문에, 영혼이 안정화되기 전까지는 종종 그럴 수 있지요.’

그래, 분명 그랬었지. 그래서 루핀이 북부에 머무는 나디아의 상태가 좋아졌다고 했을 때 내심 기대한 면이 있었다. 건강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런데 막상 보니 그다지 살이 오른 것 같지도 않고.”

다시 만난 나디아의 모습은 기대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볼도 좀 더 통통하고, 혈색도 좋은 건강한 모습이기를 바랐는데.

다소 불만족스러운 표정의 프리지아가 작게 한숨을 쉬며 귀걸이를 만지작거렸다. 귓불에서 물방울 모양의 사파이어 귀걸이가 흔들렸다.

아내의 표정을 읽은 데릭이 나지막하게 말을 건넸다.

“부인께서는 아르웬과 루핀이 한 말이 마음에 자꾸 걸리시는 모양입니다.”

“영혼의 안정화가 되어가고 있다는 말이요? 네, 당연하죠. 그게 나디아를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단호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지만, 데릭은 그 안에 섞인 속상함을 알아챘다. 한 손으로 턱을 긁으며 데릭이 작게 침음을 삼켰다.

아내가 말한 부분이 자신의 마음에 걸렸던 부분과 같았기 때문이다. 눈 아래로 옅게 피곤이 묻어나던 얼굴도, 잠겼던 목소리도 전부 일상적이지는 않았다.

‘물론, 부모의 눈에 만족이라는 게 있기야 하겠냐마는. 어찌 되었든.’

잠시 생각을 정리한 데릭이 가볍게 고개를 내저으며 프리지아의 손을 꼭 쥐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하나씩 천천히 살펴보지요. 네펠리 영애가 했던 말도 그렇고, 그 아이가 북부에 있는 동안 보였을 모습들도 궁금하군요. 조금 전에 봤던 장면으로 미루어 봤을 때 북부에 잘 녹아들고 있는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루핀이 말했던 안정화는 뒤로하더라도, 나디아가 이곳 사람들에게 환영받고 있다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자신들을 반기기 위해 나왔을 많은 이들이 두 사람이 아닌 나디아에게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본다면 누군들 그렇게 생각할 것이었다.

‘그건 단순히 모시는 귀족 영애를 대하는 눈빛들이 아니었지. 분명 그들의 눈에는 온기가 서려 있었어.’

나디아가 북부에 머문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이토록 사람들에게 큰 호감을 산 것은 분명히 어떤 사건이 있어서일 거다.

그게 정말 소문처럼 신의 축복 탓인지, 아니면 황금 열쇠를 사용했다던 모종의 투자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런 데릭의 생각은 실내 정원에서 차를 마시고 공작가의 여기저기를 안내받으며 더 강해졌다. 당연했다.

“나디아 님! 오늘은 연구실에 안 오시나요? 일전에 스치듯이 말씀해 주셨던 것에 영감을 받아서 배합을…….”

“쉿! 뒤로 골드게이트 공작 각하과 공작 부인이시잖아. 나디아 님도 가족과 시간을 보내셔야지. 그간 뵙지도 못했을 텐데.”

“아, 맞아. 그러네.”

그들이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나디아를 친근하게 부르며 찾았으니까.

은근히 나디아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채워진 식탁과 호위 등은 눈에 보이지 않은 곳에서도 이들이 그녀를 아끼고 있음을 말해줬다.

심지어 몇 발자국 지날 때마다 누군가의 미소를 보고 있을 때면 신기하기까지 했다.

‘골드게이트 공작가와 영지가 아닌 곳에서 이런 반응을 볼 줄이야.’

물론, 골드게이트 공작 내외에게 나디아는 어여쁘기 짝이 없는 아이인 게 당연했다.

때로는 세상 누가 그녀를 싫어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사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두 사람에게 나디아 골드게이트는 하나뿐인 사랑스러운 딸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이건 그런 것과는 다소 다른 문제였다. 그저 ‘골드게이트’ 가문의 딸이라는 이유로 호의를 받을 수 있는 고향과 다르게, 이곳은 북부였다.

어째서일까. 이런 모습들을 보고 있자니, 일순 골드게이트 공작가를 찾아온 네펠리 영애의 말이 생각났다.

‘각하, 그리고 프리지아 님. 처음에는 굉장히 당황스러웠던 것도 사실이고 또 오랜 기간 나디아 영애와 함께 지냈던 친우로서 말릴 생각도 많았습니다만.’

‘…….’

‘어쩌겠어요. 그 짧은 시간마저 이곳보다 그곳에 있는 영애가 더 자유로워 보였는걸요. 그러니 저는 오늘도 영애를 지지하며 이 로켓 목걸이만 두고 가도록 할게요. 아무리 떨어져 있다 해도 영애의 옆자리는 내어주기 싫거든요.’

그때 그 말을 꺼냈던 네펠리 영애는 왜 씁쓸하면서도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던 걸까?

‘아버지, 나디아가 맑게 웃었어요. 제 눈에 나디아는 새로운, 자신만의 둥지를 이미 만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때 아르웬은 왜 둥지라는 표현을 썼었지?

당시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들을 데릭은 이제 알 수 있었다. 그들 역시, 직접 눈으로 이 모든 것을 보았을 것이 아닌가.

자신의 딸은 정말 두 사람의 말마따나 자유로워 보였고, 비교적 안정되어 보였다. 골드게이트 공작가에 있었을 때와는 달리.

“이상한 기분이네요.”

“음?”

“내가 우리 딸을 너무 모르고 있었던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한참 동안 나디아의 모습과 신의 축복이라는 레티시아, 그리고 새로 시작해 연구 중이라는 것들까지 지켜본 프리지아가 나지막하게 말을 건넸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데릭이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느릿하게 눈을 깜박이던 그녀는 한참 동안 무언가를 고심하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나 나디아가 또 아플까 봐 목욕은 절대 안 된다고 제가 소리를 치기는 했는데, 지금 보니 그건 큰 문제도 아니었군요.”

“…예.”

“제일 큰 문제는 지금 나디아의 내면이 불안정한데, 그걸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가 아니라는 거예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들의 딸은 그들과 있을 때 더 불안하고 힘들어 보였으니까.

애써 감추고는 있지만, 그건 감춘다고 감추어지는 무언가가 아니었다. 데릭은 북부가 도움이 된다고 했던 루핀의 말을 이제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북부는 나디아의 영혼이 다시 안정화되는 것에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적어도 자신들보다는 더. 다만 의문이 남는 것은 사실이었다.

‘왜? 왜 그 아이가 가장 보호받는 느낌을 받아야 하는 우리에게서 도리어 불편함을 느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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