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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우리 목욕합시다-65화 (65/155)

65화

‘당장 가야 해! 여기에서 이렇게 지체할 시간 같은 게 어디 있어!’

나는 당당한 표정으로 클로드 카르테인을 돌아보며 빠르게 눈을 깜박였다. 빨리 타냐와 에이포드에게 가보자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혹시 몰라 엄지로 저택 쪽을 가리키며 발을 동동 굴렀더니, 클로드가 바람 빠진 웃음을 터트렸다. 어쩔 수 없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내저은 그가 다시금 내게 팔을 내밀며 눈썹을 밀어 올렸다.

“이 값은 비싸게 받을 겁니다.”

“공작님, 말과 행동이 굉장히 상반되시네요.”

내뱉는 대사는 북부 공작의 클리셰를 그대로 따르면서 몸은 다정하게 에스코트를 하고 있다니. 이게 그겁니까? 입은 싫다고 하면서 몸은 솔직한?

클로드의 눈썹이 설명을 바라며 슬쩍 올라갔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에게 팔짱을 꼈다.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거린 건 덤이었다.

“그래서 싫으십니까?”

“아뇨, 엄청 좋다는 말이었어요. 축하드립니다. 설렘 적립금 5골드 적립되셨어요!”

“그게 적립되면 제게 좋은 점이라도?”

“어……. 글쎄요? 진정한 사랑에 빠질 확률이 급격하게 높아진다……?”

소리 내 짧게 웃는 그와 마주 웃은 나는 타냐와 에이포드를 만나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두 팔을 벌려 환영하는 마음으로 찾아간 응접실에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두 사람이 있었다.

“앗! 영애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잘 지내셨나요?”

타냐는 북부를 책임지는 카르테인 공작가에 와 있다는 것이, 그리고 나를 다시 만났다는 것이 진짜로 행복한 것 같았고.

“…안녕, 하십니까…….”

에이포드는 고양이처럼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영 껄끄러워하며 경계하는 듯했다.

일반적인 귀족이 본다면 사실 상당히 기분 나쁠 일이었지만, 나는 도리어 기분이 좋았다. 지금도 저렇게 깐깐하게 구는데, 한번 위생을 챙기기 시작하면 얼마나 예민하게 굴어주겠어.

지금도 봐라. 생활이 궁핍해서 그렇지 손만큼은 깨끗해 보이지 않나.

‘에이포드 짐머는 이 지저분한 로판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천연기념물이니까. 그것만으로도 이미 나한테 점수는 왕창 땄지.’

그리고 나는 눈에 콩깍지가 씌면 상대에게 아주 관대해진다.

클로드와 함께 두 사람의 맞은편에 앉자, 에이포드의 눈이 쉼 없이 굴러갔다. 아무래도 자신에게 칼을 겨눴던 카르테인 공작이 바로 앞에 있어서 불안한 것 같았다.

물론 이런 그의 모습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 상당히 수상쩍었으므로, 헤르잔은 조금 전부터 인상을 가득 쓴 채 에이포드를 주시하는 중이었다.

‘음, 이대로는 제대로 된 대화가 안 되겠네.’

나는 소리 하나 없지만 어딘가 부산스러운 이 분위기를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고 그렇게 환기하는 데에는 박수만 한 게 또 없지.

―짝짝!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의 시선이 손뼉을 친 내게 순식간에 쏠렸다. 주목받는 것에 늘 약한 나지만, 지금은 괜찮았다. 여기엔 내가 아끼는 사람들만 있으니까.

나는 누가 봐도 기분이 좋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밝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우선, 이렇게 카르테인 공작가까지 찾아와 줘서 고마워. 급하게 돌아가느라 초청도 느닷없이 이뤄졌는데…….”

“아니에요, 영애님! 확실하게 제가 필요하다고 말씀도 해주셨고, 사람도 보내주셨잖아요! 느닷없지 않습니다!”

“그래? 그렇게 느꼈다니 다행이네.”

“네! 단지 제가 무엇으로 영애님을 도와드릴 수 있을지는 잘…….”

나는 순식간에 타올랐다가 순식간에 식은 타냐를 보며 슬쩍 입 안의 살을 깨물었다.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온도 차가 제법 귀여웠던 탓이다.

시무룩해진 채 입술을 꾹 깨물던 타냐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아! 우선은 혹시 몰라 그간 제가 직접 제작한 향수 같은 걸 들고는 왔는데요!”

부산스럽게 가방을 연 그녀는 빠르게 열몇 개의 병들을 탁자 위로 올려놓았다. 상당히 많은 양의 향수가 놓이자 내 옆에서 그저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클로드가 입을 열었다.

“조향을 한다고 했던가?”

“네? 네! 그렇습니다!”

“이렇게 준수한 재료로 향수를 만들려면 꽤 비용이 들 텐데, 그대에게 향수를 사려는 손님이나 후원자가 많은가?”

클로드의 시선이 타냐의 옷에 닿았다. 그녀가 돈이 없다고 무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등급의 향수를 파는 사람치고 지나치게 수수한 외관을 짚은 것이다.

향수를 구매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귀족이고, 그런 귀족들이 사는 향수는 제법 값이 나갔으니 말이다.

나는 냄새를 가리기 위해 귀족들이 열심히 사들였던 향수들을 떠올리며 작게 침음을 삼켰다. 그 광경을 떠올리자니 속이 영 안 좋아졌던 탓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할 때쯤, 향수병을 모두 진열한 타냐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게……. 향수를 파는 건 제가 아니라서요.”

“향수를 파는 게 그대가 아니다?”

“네. 저는 향수를 만들어서 납품하고 있어요. 새로운 향수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는 다 그분이 마련해 주셔서……. 아, 물론 새 향수를 만들다 보면 비싼 재료들이 낭비되기도 하고 그러니까 그만큼 돈이 깎이긴 하지만요.”

제품이 개발되는 동안 낭비되는 재료를 고려해 돈을 덜 주겠다는 게 무슨 소리람. 그걸 받아서 파는 본인은 신제품이라고 더 비싸게 팔아먹을 거 아니야.

어디선가 개가 짖는 듯한 소리에 나는 나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아니, 로맨스 판타지 세계관에도 악덕 사장이 있구나.

“그……. 네가 향수를 납품한다는 그 사람이 누군데?”

“아, 로드릭 헤링본 자작님이세요!”

“로드릭 헤링본?”

그게 누군데? 한쪽 눈썹을 밀어 올린 채 타냐의 말을 듣던 공작이 내 의아함을 풀어주려는 듯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헤링본 자작가는 북부에서 꽤 부유한 귀족가입니다. 헤링본 자작은 젊은 나이에도 혼자 가문을 잘 지탱하는 실력 있는 귀족으로 평가받고 있지요.”

“로드릭 헤링본이 젊어요?”

“헤링본 자작과 자작 부인이 마차 사고로 세상을 떠난 지 좀 되었습니다. 아, 사적으로 헤링본 자작은 일라리아 백작 부인의 남동생이기도 하죠.”

뭐야? 소피아 일라리아의 남동생이라고?

나는 반사적으로 구겨지려는 인상을 펴고는 꾹 입을 다물었다. 나 참, 누가 이렇게 악덕하게 구는가 했더니만 일라리아 백작 부인의 가족이잖아?

‘아주 남매가 쌍으로 닮았구먼.’

나는 편견에 가득 찬 생각을 펼치며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옹졸하게 보여도 어쩌겠어. 난 소피아 일라리아가 싫은데.

내가 혼자 생각에 빠져 있던 찰나, 타냐가 나와 카르테인 공작의 눈치를 살피다 향수병을 살짝 내 앞으로 밀었다.

“그, 답이 되셨다면 향수를…….”

“아, 그렇지!”

나는 머리를 빠르게 흔들어 정신을 차리고는 타냐가 내민 향수 몇 개를 시향했다. 꽃을 가득 담은 듯한 향이나 과일을 떠올리게 하는 향 등, 타냐가 만든 향수는 정말로 질이 좋았다.

“정말 좋은데?”

“앗, 정말이요? 으아, 어떻게 해. 영애님이 칭찬도 해주시고 저 너무 기뻐요!”

“아니,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좋아.”

“그…….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뿐인데, 이런 제가 영애님께 정말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요?”

내게 도움이 되냐고? 당연하다. 나는 코끝에서 흔들던 병을 내려놓고 입꼬리를 살짝 당겨 웃었다.

‘왜 내가 굳이 두 사람을 같이 불렀겠어.’

간절하지만 어딘가 자신 없어 보이는 타냐와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에이포드. 두 사람을 바라보며 천천히 운을 뗐다.

“두 사람한테 연구를 좀 부탁하려고 해.”

연구라는 말에 에이포드의 시선이 곧장 내게 꽂혔다. 나는 그의 시선을 받아내며 깊게 심호흡을 했다. 아직 어디에 발표하지도 않았는데, 왜 이 말을 꺼내는 게 이렇게 떨리는지 모르겠다.

몇 초 동안 숨을 고른 나는 겨우 마음을 다잡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지금 북부의 위생 사업을 구상하고 있거든. 그런데 그 사업을 성공적으로 펼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의 노고가 필요해.”

“위생 사업…이라면…….”

“말 그대로 깨끗한 북부를 만들고 싶은 거야. 집 안에서 가축을 키우지 않게 하고, 손과 얼굴은 물론 몸의 구석구석을 잘 씻게 하고 싶어. 이를 잘 닦는 걸 권장하고 수도 시설을 정비하며 식수를 관리하고 싶기도 하지. 아, 물론 온천도.”

노골적인 내 말에 두 사람의 눈이 동그래졌다.

사실 말하면서 내 심장도 엄청 뛰었다. 목욕이 만악의 근원처럼 여겨지는 이곳에 도착한 이후로 지금까지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는 말이었거든.

그래서일까?

“사람들에게 온몸을 구석구석 씻게 하고 싶으시다고요? 지금 그게 말이나 되는 겁니까?”

그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입을 꾹 닫고만 있던 에이포드가 날 선 말을 내뱉었다.

제법 불손하게 들리는 말투에 헤르잔이 움찔거리는 게 보였지만, 별문제는 되지 않았다. 클로드가 방해받기 싫다는 내 마음을 읽고 먼저 그를 제지한 덕이었다.

턱에 힘을 준 채 눈을 번득인 에이포드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온천에 몸을 담그는 건, 그래. 그것도 미친 짓 같아 보였지만 그건 신이 내린 축복이고 또 치유의 물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씻는 걸 장려하신다고요? 누가 그런 미친 짓을 한답니까?”

“…….”

“영애님, 정말로 이딴 게 하고 싶으십니까? 분명 손가락질할 겁니다. 절대, 아무도 하지 않을 거라고요!”

나는 순식간에 침묵으로 휩싸인 공간 속에서 조용히 에이포드의 눈을 응시했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예? 네! 누가 그딴 쓸데없는 짓을 한답니까!”

“에이포드, 당신이 하고 있잖아.”

에이포드의 인상이 왈칵 찌푸려졌다. 말장난하지 말라는 듯 그가 입을 달싹였지만, 내가 그보다 조금 더 빨랐다.

“손, 매일 닦으면서 관리하고 있는 거 아니야? 동료 의사들한테도 그걸 권했다가 내쫓긴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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