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왜 그가 아이작에게 예민하게 구는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질투하느냐’라는 말은 반쯤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었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그 나머지 반은 심술이고.’
연애 관계에서 감정의 크기를 비교하는 게 얼마나 쓸데없는 일인지는 내가 더 잘 알았다. 이렇게 구는 게 얼마나 유치한지도.
하지만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일라리아 백작 부인의 마음을 나만 알고 있어서일까? 괜히 억울해지는 거다.
‘아, 나만 사소한 일 하나에도 파르르 떠는 것 같잖아!’
반대로 저 사람은 모든 면에서 성숙해 보이고.
분명 우리 둘 다 서로에게 끌린다고 털어놓은 것 같은데, 왜 나는 그와 다르게 점점 예민함에 대한 역치가 낮아지는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성격 차인가?
‘그러니까 이렇게 장난처럼 농담이라도 던져야지.’
답을 듣고 나서 ‘에이, 난 또 질투인 줄 알았네.’ 같은 말과 함께 하하 호호 웃고 나면 그래도 괜찮을 것 같거든.
그에게서 별로 유의미한 답이 나오길 기대하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그냥 성격이 상극이라는 말 정도려나? 그도 아니면 정말로 아이작이 클로드가 싫어할 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거나.
애초에 질투라니, 대체 클로드 카르테인이 뭐가 아쉬워서 아이작 달튼을 질투한단 말인가.
‘심지어 우리 집 의사 선생은 나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하지만 소피아 일라리아는 클로드 카르테인을 좋아하지!
‘아, 아냐. 이러지 말자.’
무슨 생각을 하든 자꾸만 소피아 일라리아가 떠오르는 듯해서 나는 깊게 심호흡을 했다. 그때였다. 의외의 말을 들었다는 듯 미간을 좁힌 클로드가 작게 중얼거렸다.
“질투? 내가 아이작 달튼을?”
나는 괜스레 삐죽 솟은 감정을 다시 꾹꾹 묻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질문을 한 사람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은 덤이었다.
“아니, 그냥 ‘설마!’ 한 거죠. 볼 때마다 점점 사이가 나빠지는 것 같은데, 왜인지 궁금하잖아요.”
“그게 눈에 보였나?”
“보이지 그럼 안 보여요? 의사 선생님을 볼 때마다 입꼬리가 이렇게 틀어지잖아요. 눈도 삐죽해지고.”
손가락으로 쭉 눈을 찢어 보이자, 클로드가 입을 다물었다. 곧바로 부정하지 않을까 했던 내 예상과 다르게 그가 엄지와 검지로 턱을 매만졌다.
점점 더 심각하게 인상을 찌푸리는 그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어라?’
그……. 이게 아니지 않아?
‘뭐지, 그냥 이유 없이 싫다는 말이 유치하게 여겨지거나 애같이 보일까 봐 마음에 걸리나? 아니면 몰랐던 거야? 자기가 아이작을 볼 때 보이는 반응을?’
나는 꼴깍 침을 삼키고는 슬쩍 눈을 굴려 줄리엔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친 줄리엔 역시 잘 모르겠다는 듯 살짝 고개를 기울일 뿐, 어떤 답도 주지 못했다.
기묘하게 이어지는 침묵 속에서 클로드가 할 예상 답안들을 여러 개 떠올리고 있을 때였다.
“아, 미안하군. 그게 그대의 눈에 보였을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어서 잠시 당황했어.”
“…오.”
존댓말을 쓰는 것도 잊어버린 채 저렇게 대답하는 걸 보면, 당황했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 모양이었다. 심지어 클로드는 자신이 지금 반말을 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말은 내가 감정을 다 드러내 놓고 다녔다는 말인데.”
“어……. 그러니까, 달튼 자작이 싫은 건 맞는단 말이네요?”
“그래.”
의외로 빠르게 인정한 그가 가볍게 입술을 달싹였다.
“달튼 자작이 나디아 그대에게 추근대는 것이 싫어. 그대가 알아봐 주길 바라는 것처럼 감정을 줄줄 흘리고 다니는 것도.”
“…네?”
이번에는 내가 당황해서 굳을 시간이었다. 그가 꺼낸 말이 상상조차 못 해본 전혀 다른 답이었던 탓이다. 내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건지, 클로드가 담담하게 쐐기를 박았다.
“그러니까 아이작 달튼이 치료라는 명목으로 그대에게 과하게 달라붙는 게 싫다는 뜻이다.”
“…….”
“아, 이런. 내가 방금 반말을 했던가?”
이제야 자신이 한 실수를 깨달은 클로드가 차분히 사과를 덧붙였다. 그게 내 머릿속에 들어왔는가 하면 그건 또 별개의 문제지만.
나는 점점 머리가 복잡해지는 걸 느끼며 빠르게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니에요.”
“음?”
“아이작 달튼은 저를 안 좋아한단 말이에요.”
내가 재빠르게 그의 말을 정정하자 클로드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봤다. 그런 클로드의 눈빛은 어딘가 복잡해 보였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마주했던 희한한 것을 보는 듯한 눈빛과 약간의 안타까움, 그리고 기쁨 등이 동시에 엿보였달까.
아주 잠시 나와 눈을 마주치던 그가 담담하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닐 겁니다.”
단호하기 짝이 없는 그의 대답에 일순 어이가 없어졌다. 아니, 뭘 믿고 저렇게 당당하대?
“아니, 정말이라니까요? 진짜 안 좋아해요. 그냥 아이작 의사는 모두에게 친절한 사람일 뿐이라고요. 자주 상냥하게 웃고, 사람들한테 기본적으로 관심도 많고.”
“…….”
“물론 헷갈리게 굴 때가 있다는 건 인정해요. 근데 그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걸? 나한테만 유난히 그러는 게 아니라고요.”
“글쎄요.”
자신의 턱을 재차 매만진 그가 입꼬리 한쪽을 희미하게 비틀며 말을 받아쳤다.
“그것도 아닐 겁니다.”
단칼에 내 말을 부정한 그가 조금 더 자세히 설명을 이었다.
“그대가 보는 순간순간에 그의 행동이 그랬던 것뿐입니다. 사람은 자기 눈에 보이는 정보로 다른 이를 판단하니 말입니다.”
“으음…….”
“나디아, 그대가 보지 못한 순간들을 나는 봤습니다.”
맞는다. 객관적으로 그가 한 말은 틀림이 없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르는 법이니까. 그러니 클로드가 한 말이 다 맞기는 하는데.
‘그럼 지금 아이작 달튼이 내가 보지 못한 사이에 클로드를 도발했다는 말이야? 소피아 일라리아처럼?’
로맨스 판타지 서브 남주 ‘상’인 우리 집 의사 선생이 알고 보니 진짜 서브 남주라니 이게 무슨……. 나는 개울가에서 솜사탕을 씻은 너구리처럼 눈을 깜박이다 느릿느릿 입술을 달싹였다.
“아니, 그럼… 그럼 정말 질투를 한 거란 말이에요? 공작님이 아이작을?”
“그…….”
“아니다! 아냐! 말하지 말아 봐요!”
갑자기 얼굴에 열이 몰리는 기분이 들어서 나는 빠르게 손을 내저었다. 이런 나를 보며 작게 웃은 클로드가 뭔가를 말하려던 찰나, 헤르잔이 탁자 위를 손등으로 두드렸다.
똑똑, 하는 청량한 소리와 함께 헤르잔의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말씀 나누시는 중에 죄송하지만, 주제가 ‘질투’인 거면 저희는 나가 있겠습니다. 대화 다 끝나시면 다시 불러주시죠.”
“음, 네. 저도 그게 좋을 것 같아요.”
옆에서 멋쩍게 웃으며 동조한 줄리엔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대로라면 두 사람은 방을 나설 거고, 그럼 나는 또 클로드 카르테인과 둘이 남아서…….
‘둘이.’
…둘이 뭘 할 건데! 진실 게임이라도 할 거야? 사실 걔를 그렇게 대했던 건 너를 향한 마음이 너무나도 커서였고, 이렇게 알아버린 이상 다 털어놓겠다. 뭐, 이런 거냐고.
생각만으로도 어색하고 부끄럽다. 나는 다급하게 줄리엔과 헤르잔을 잡으며 고개를 마구 내저었다.
“아, 아냐! 그런 거 아니니까 그냥 있어도 괜찮아!”
“으음, 하지만…….”
잠시 눈을 옆으로 굴려 클로드를 확인한 줄리엔이 미묘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클로드가 웃을 때부터 차마 그를 보지 못했던 나는 그런 줄리엔의 모습에 조금 더 불안해졌다.
“부르시면 언제든 다시 올 테니까요.”
아냐, 나가지 마! 내가 자초한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이상한 분위기 속에 나만 두고 가는 게 어디 있어! 가지 마.
내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매정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앗, 하는 사이에 방문을 열고 방에서 나가버렸다.
‘아…….’
문이 닫히는 것과 동시에 나와 그 사이에 적막이 가라앉았다.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이대로라면 나는 탈탈 털려서 그에게 내 속내까지 다 내보이고 말 거다. 나는 클로드 카르테인에게 매우 약하니까.
‘잘못하면 내 입으로 소피아 일라리아가 댁을 좋아하는 것 같고, 그렇게 생각하니까 나도 일라리아 백작 부인이 자꾸 신경 쓰인다는 것까지 다 밝힐지도 몰라.’
부끄러운 것도 부끄러운 거지만 이것만큼은 절대 말할 수 없었다.
‘일단은 내가 마음을 진정하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라도 좀 벌어야 하는데!’
어떻게 이 난관은 헤쳐 나가야 할지 고민하는데, 의자가 밀리는 소리가 끼익하고 귓가를 울렸다. 뚜벅뚜벅 내게 가까워지는 구두 소리에 심장이 점점 더 빨리 뛰었다. 그리고 그가 내 이름을 부른 그 순간, 입이 뇌보다 먼저 움직였다.
“나디아.”
“우…우리 내기할까요!”
“내기?”
“저는 ‘아이작 달튼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에 한 표!”
입이 멋대로 내뱉은 말에 클로드가 잠시 눈을 가늘게 떴다. 내가 부리는 수작을 대충 눈치챈 것 같았다.
조금 더 가깝게 내 쪽으로 다가온 그가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좋습니다, 내기. 인정해야 하는 게 썩 기분 좋진 않지만 저는 반대에 걸죠. 그래서 이기면 뭘 받을 수 있습니까.”
이기면…….
“원하는 거 아무거나?”
“아무거나, 라. 정말로 그거로 괜찮으시겠습니까? 제가 뭘 요구할 줄 알고?”
아, 그러네.
“어, 그럼…….”
“하지만 이미 입 밖에 내셨으니 못 무르십니다.”
나는 딱 잘라 거절하는 클로드를 보며 입을 비죽 내밀었다. 아니, 그럴 거면 왜 말해주는데. 지금 나 놀리냐?
“승부를 판별하는 기준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가 그대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우리 둘 다 납득할 만한 기준점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아, 그건.”
무난하게 삼 문답이나 스무고개를 떠올리던 중, 갑자기 괜한 오기가 치솟았다.
“그건 60초 후에 공개해 드리죠!”
나는 그 말을 던진 직후 재빠르게 문을 열고 방에서 뛰쳐나갔다.
어디 ‘나 잡아 봐라’까지 얹어서 맵게 한번 가보자고. 내가 누구야. 게임의 민족 출신이다, 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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