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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우리 목욕합시다-51화 (51/155)

51화

그렇게 부푼 마음으로 돌아와 목욕과 관련된 사업 구상을 하려던 것도 잠시,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아직 산을 하나 덜 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루핀, 나디아 체류에 관한 건 말이다.”

“일단 작은 누나랑 나 몸 좀 말리고. 젖어 있는 상태가 계속 신경 쓰여. 누나도 말려줄까?”

“아, 그래 주면 고맙지. 나도 나디아가 젖어 있던 게 마음에 좀 걸렸거든. 그 뒤에 이야기를 좀 듣고 싶은데.”

“그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지. 마법이 천년만년 걸리는 것도 아니고.”

아르웬 언니에게 그렇게 답한 루핀이 엄지와 검지를 딱 소리 나게 맞부딪쳤다. 젖어서 축축했던 머리카락이 순식간에 보송보송해졌다.

나는 폭신하기까지 한 머리를 손가락으로 꼼질거리며 입술을 앙다물었다.

“…아니. 아직 안 끝난 거야, 그거?”

우리 온천에서 나름대로 유의미하고 감동적인 대화를 나눈 거 아니었어? 그거로 정리된 거 아니었냐고. 진심이 가득 담긴 내 질문에 아르웬 언니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답했다.

“나디아, 네 뜻은 나도 잘 알겠어. 하지만 네 건강에 관해서는 의지와 별개로 안심할 거리가 필요해. 너도 알지?”

“…….”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나는 언니의 말에 꾹 입을 다물었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무룩해진 내 표정을 보고 잠시 쓰게 웃던 언니가 루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루핀, 그래서 알아낸 게 있어? 정신적 안정과 연관이 있는 듯해?”

“그건…….”

“잠시.”

루핀의 말을 나서서 끊은 클로드가 내 쪽으로 다가오며 거리를 좁혔다. 그렇게 바로 옆에 섰을 무렵, 그가 자신이 걸치고 있던 로브를 내 어깨 위에 얹어주며 입을 열었다.

“급하게 논의해야 하는 상황도 아닌데, 굳이 서두를 필요가 있나?”

“…카르테인 공작.”

“아무리 마법으로 말렸다 해도 젖은 옷을 입은 채 바깥에 있던 시간이 길었다. 지금 입고 있는 옷도 평소보다 얇고.”

아르웬 언니의 푸른 눈과 카르테인 공작의 주황색 눈이 아주 잠시 얽혔다. 다소 호의적이지 않은 태도로 클로드를 응시하던 언니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클로드가 꺼낸 주제는 내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고, 언니는 그 주제를 마다할 리가 없었으니까.

“그럼 이 논의에 관해서는 내일 오전에 이야기하는 거로 해도 괜찮겠나?”

“문제없다.”

“좋아. 한 번에 정리하는 게 좋을 것 같으니, 내일 오전에 논의할 때는 골드게이트에서 정식으로 보낸 항의서에 대해서도 말하기로 하지.”

“잘 알겠다. 헤르잔, 두 분을 손님방으로 모셔다 드려.”

“네. 아르웬 경, 루핀 님. 이쪽입니다.”

당당하게 헤르잔의 에스코트를 받던 언니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살짝 머리를 기울인 채 내게 물었다.

“나디아, 안 가니?”

“…어?”

“같이 안 가느냐는 말이야.”

언니의 목소리는 아주 당연한 것을 말하듯 태연했다. 나는 그런 언니의 말에 반 박자 느리게 눈을 깜박이다가 멈칫했다. 클로드가 은밀하게 내 손목을 그러쥐며 귓가에 ‘잠시만’이라고 속삭인 탓이다.

그가 걸쳐준 로브로 좀 더 몸을 감싸며 언니를 향해 빙긋 웃음을 지었다.

“응, 나는 온천에서 봤던 사람들과 관련해서 잠시 줄리엔이랑 나눌 말이 있어서. 그렇지, 줄리엔?”

“네, 그럼요. 말씀하신 자료도 준비해 놨습니다.”

눈치껏 입을 맞춰주는 줄리엔에게 눈웃음으로 고마움을 표하고 있자, 언니가 옅게 걱정이 서린 눈으로 말을 이었다.

“카르테인 공작이 말했던 것처럼 옷이 퍽 얇은데…….”

“아. 그래도 그, 공작님이 준 로브 때문에 괜찮네! 이야기도 그렇게 길지 않을 거고.”

“음, 그래. 그렇구나. 그럼 나디아, 잘 자고 내일 보자.”

“응! 언니도!”

다행히 언니는 더 캐묻지 않고 내 말에 수긍했다. 나는 언니와 루핀, 그리고 헤르잔이 방을 나가는 것을 끝까지 배웅한 후 천천히 문을 닫았다.

배웅을 마치고 얼마 있지 않아, 줄리엔 또한 방을 나섰다. 말로는 아직 처리하지 못한 업무가 있다는데, 내가 보기에는 세 사람만 남은 분위기가 영 어색해서인 것 같다.

‘새로 만든 작은 방 욕실에서도 민망한 일이 잠깐 있었으니까.’

갑작스럽게 찾아온 손님들과 사용인들이 모두 빠져나간 방은 정말로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그와 나 말고는 아무도 없는 상황이 되고 나니 어째서인지 갑자기 피곤이 몰려왔다. 작게 하품한 나는 하늘을 향해 높게 팔을 뻗어 길게 기지개를 켰다.

“으으으……! 아이고!”

근육이 쭉쭉 늘어나는 게 기분 좋아 스트레칭을 하다 보니 어깨에 걸쳐져 있던 로브가 자연스럽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내가 몸을 숙여 줍기도 전, 떨어지던 로브를 낚아챈 클로드가 다시금 로브를 활짝 폈다. 그러고는 그대로 내게 둘러 주었다. 이번에는 꼼꼼하게 여며주기까지 했다.

“음, 고맙습니다. 그런데 공작님, 저 그렇게 춥지는 않아요.”

“옷이 얇습니다.”

아니, 아무리 내 옷이 얇아도 그렇지 지금은 거의 로브에 돌돌 싸인 상태잖아. 나는 뱀파이어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꽉 둘러싸인 내 몸을 보고는 볼을 살짝 부풀렸다.

“여기가 바깥도 아니고 이렇게 꽁꽁 싸맬 것까지 있나요?”

“나디아, 감기는 이렇게 방심하고 있을 때 찾아오는 겁니다. 온천에서도 옷이 완전히 젖어 달라붙은 상태인 걸 보고 얼마나 신경 쓰였는지 아십니까?”

아…하?

나는 일반적인 말처럼 스쳐 지나간 문장 가운데 오묘한 부분을 발견하고는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옷이 달라붙어 있던 제 모습이 신경 쓰였다? 그래서 자꾸 눈길이 갔다?”

“그건…….”

습관처럼 잠시 말을 멈춘 그가 내 입꼬리에 담긴 장난기를 보고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그와 내가 장난칠 때 자주 그랬던 것처럼 장난이 섞인 말투였다.

“그대야말로, 제가 시선을 눈치채지 못하리라 생각하셨습니까? 제가 그래도 기척을 읽는 거로는 제국에서 손꼽히는 사람 중 한 명인데요.”

“앗.”

“그게 아니라도 어색한 행동 탓에 알아봤겠지만.”

클로드의 나지막한 속삭임을 들으며 나는 양손으로 가볍게 마른세수를 했다. 내가 간과하고 있었다. 이게 농담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저 말에 해당하는 게 없거나, 해당해도 그런 의도가 아니어야 하는 건데…….

‘나는 맞잖아.’

저 말에 해당하는 거로도 모자라, 나는 그런 불순한 의도도 가지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떠오르는 클로드의 살빛 모습에 다시금 얼굴이 새빨개졌다.

이런 내 모습에 당황한 건 클로드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와 비슷하게 장난을 걸 수 있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장난을 친 건데 내가 보이는 반응이 다르니까.

내 반응이 되돌아오지 않자 잠시 멈칫했던 그가 이윽고 나지막이 내 이름을 불렀다. 클로드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웃음기가 담겨 있었다.

“나디아.”

“…….”

“괜찮습니다. 조금 봐도.”

“…아악, 그만…….”

“닳는 것도 아니고, 그냥 눈길만 좀 닿은 것 아닙니까. 또 설령 그런 생각을 해도 어떻습니까? 내가 그대의 약혼자인데.”

아, 이런 장난은 시작하는 게 아니었어!

건수를 잡은 사람처럼 나를 놀리는 클로드의 모습에 나는 괜스레 주먹을 내지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내 주먹은 전쟁의 영웅 앞에서 죄다 불발에 그쳤다.

게임으로 치면 ‘Miss’ 판정만 계속 뜨는 상황에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씨이, 내가 다시 검 잡고야 만다. 그래서 꼭 한 대 때리고 만다!’

괜히 억울한 마음에 혼자 헛된 다짐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낮게 웃음을 터트리며 내 주먹을 피하던 클로드가 손바닥으로 내가 내지른 주먹을 부드럽게 감쌌다.

그러고는 그대로 나를 살짝 끌어당기며 입을 열었다.

“별다른 건 아니고, 일라리아 백작 부인에게서 새로 연락이 와서 그랬습니다.”

“네? 연락이요?”

초대장을 보낸 게 바로 얼마 전이지 않았나? 분명 카르테인 공작가의 가신으로 초청하는 것의 연장선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내 물음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클로드가 내게 새로운 편지를 건넸다.

“일전에 제가 백작 부인이 먼저 나선 것이 사교계의 주인을 바꾸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그래서인 것 같습니다.”

“아하?”

나는 카르테인 공작의 말을 들으며 빳빳한 편지를 꺼내 찬찬히 내용을 읽었다.

그녀의 편지는 일라리아 백작가의 초대를 다소 확대해 티 파티를 포함한 저녁 초청으로 해도 괜찮겠냐는 것이었다.

“아, 다른 사람들을 포함한 티 파티군요?”

빌몬, 크로포드, 체임벨…….

나는 편지에 나열된 네다섯 개 정도 되는 가문을 쭉 훑고는 클로드에게 다시 편지를 건넸다. 편지에 쓰인 가문의 이름을 한 번 더 확인한 그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정식으로 충성 서약을 받기 전, 자리를 미리 마련하고자 하는 것 같긴 합니다. 그대에게 의견을 묻는 게 먼저인 것 같아서.”

“음, 효율적이네요. 다소 세심하기도 하고.”

여섯 가문에 초대를 받으며 얼추 안면은 틀 테지만, 그래도 북부 사교계는 내게도 처음이지 않나. 낯선 사람들이 있는 곳이고.

그러니 일라리아 백작 부인의 이런 초대는 꽤 호의적인 행위였다. 자신이 초대를 주관할 때 도움을 주겠다는 말과 다름없으니까.

‘북부 사교계의 중심이었을 만하네.’

그렇게 생각하며 좋다고 긍정의 답을 주려던 찰나, 나는 잠시 잊고 있던 것을 떠올렸다.

“아니. 그런데요, 공작님.”

“음?”

“저희 언니와 루핀이 내일 저를 데리고 가면 어쩌려고 이렇게 먼저 의견부터 물으세요? 그, 제 가족은 아직 약혼을 허락하지 않았거든요……?”

허락이 다 뭐야. 항의서까지 보냈잖아.

물론 카르테인 공작만이 이 세계의 내 유일한 구원자이기 때문에 약혼을 포기할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지만, 아무튼.

“무슨 방법이라도 생각한 게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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