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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145화 (145/145)

145화.

노엘이 이틀 동안 생각할 시간을 준다고 했지만, 마음을 정한 이상 1분이라도 더 질질 끌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어쩌면 내 결정에 대한 부정적인 면이 떠오르기 전에 지금 빨리 실행해야 한다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베키! 내 몸은 어디 있어?”

잠시 뒤, 허공으로 떠오른 펜이 책상에 놓인 종이 위에서 빠르게 움직였다.

<지하실에.>

“그럼 지금 지하실로 노엘을 불러와 줘! 날 다시 빙의시키라고 해.”

<좀 더 생각해도 되는데. 너무 성급하게 결정하는 거 아니야?>

“아니! 지금 해야만 해. 마음 바뀌기 전에!”

<정말 괜찮겠어?>

나는 그 글씨만 본 뒤 곧장 문을 세차게 열어젖혔다. 그러면서 뒤를 돌아 날 보고 있을 베키에게 쑥스러움을 감수하고 떨리는 입술로 말했다.

“난 이제 너희 아니면 안 돼. 이번엔 내가 너흴 붙잡는 거야. 그러니까 같이 가자. 우리들의 새집도 찾고!”

그러고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걸 느껴 도망치듯 지하실로 뛰어 내려갔다.

덜컥!

문을 열자마자 습기의 감촉과 퀴퀴한 냄새가 피부로 확 스며들었다.

이전엔 어둡고 무서워서 정말 필요한 일이 아니면 지하실 근처엔 발도 들이지 않았는데. 이 지하실과도 곧 작별할 걸 생각하니 오히려 애틋한 감정이 들었다.

줄에 매달린 따듯한 색의 동그란 전구를 켜고 깊숙이 들어가니 저 끝에 익숙한 관이 서 있었다. 관은 또 언제 가져온 건지.

관을 열어 보니 검붉은 장미만 한가득 담겨 있었다. 보이진 않지만, 이 안에 내가 빙의했던 몸도 있으리란 촉이 들었다.

장미의 짙은 향을 코로 들이마시며 반갑고 그리운 감각을 만끽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눈앞이 하얗게 번뜩여 한동안 눈을 뜨지 못했다.

조금 뒤 눈꺼풀을 치켜떴을 땐, 관 속의 형체가 눈을 깜박이는 모습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깜짝 놀랄 틈도 없이 시야가 좁혀지며 그 눈동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다시 눈을 깜박였을 땐, 내가 장미의 관 속에 파묻혀 있었다. 동시에 눈앞에서 검은 머리카락의 몸이 휘청이며 쓰러져 내렸다.

활기찬 마력의 흐름이 느껴지니 몸이 구름처럼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쓰러진 원래의 몸을 뒤로하고 천천히 걸어 나가니 모두가 또렷하게 보였다. 다시 이전처럼 그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언제부터 있었던 건지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와 있었다. 노엘을 포함한 모두가 나를 둘러싸고 잔뜩 울먹이며 행복한 얼굴을 했다. 나 역시 같은 모습이겠지.

노엘은 믿기지 않는다는 묘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멋쩍게 웃으며 팔을 벌린 내게 달려들어 안겼다. 그러자 다른 녀석들도 덮쳐 와 또다시 커다란 무리를 이루었다.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평생 이어질 것처럼 끊이지 않았다. 다시 만져지는 황홀하고도 따듯한 온기를 나는 눈을 감고 마음껏 흡수했다.

한동안 그렇게 다 같이 껴안고 애틋한 마음을 나누었다.

***

“새집은 평화로운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맑은 물이 흐르고 푸르른 숲도 있고!”

타란티나가 행복에 가득 찬 얼굴로 말하자, 다들 원하는 집의 형태를 제각각 떠올리고는 재잘재잘 중얼거렸다.

“난 침대만 있으면 된다. 침대 밑이 좋다.”

그것참 소박하다며 데릭을 한껏 비웃은 매드는 진료실이나 마련해 달라며 노엘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다 같이 살려면 저택이 완전히 커야겠는데? 난 지하실이 좋겠어. 지하실은 무조건 다 내 구역이야!”

리마는 무언가를 상상하며 군침을 연신 들이켰다. 나는 리마가 무엇을 상상하는지 알아챘지만 떠오른 생각을 애써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어림도 없지. 같이 살긴 누가. 너넨 너네끼리 살아. 난 리사랑 둘이서만 살 거야.”

노엘은 창백한 낯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알프레드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팔짱을 끼었다.

“그래, 새 보금자리를 찾으면 결혼도 할 거라고 했잖아. 저택은 규모가 작아지더라도 여러 채로 나누는 게 좋겠어. 무엇보다 신혼부부를 방해해선 안 되겠지. 큼….”

어째선지 혼자 얼굴이 급격히 발그레해진 알프레드는 콧구멍을 벌렁거리다 두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어 버렸다. 그러고는 다시 작게 노엘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걸 나도 들었다.

“노엘, 모르는 거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 먼저 경험해 본 내가 세세하게 알려 줄 테니까.”

“그 일을 꼭 경험해야만 아는 건 아니지.”

영혼 없는 미소를 짓던 노엘이 나와 눈이 딱 마주치자 급히 눈알을 돌렸다. 제 목뒤를 긁적이며 얼굴이 붉어지는 걸 보니 괜히 나까지 긴장이 되고 말았다.

“난 하루하루가 화창하고 맑은 날씨인 곳이면 좋겠어. 꾸질꾸질한 건 질색이야.”

베키가 내게 어깨동무하니 나도 그녀의 어깨를 같이 끌어안았다.

“어떻게 날씨가 항상 좋기만 하겠나. 먹구름이 끼고 폭풍이 오더라도 모두가 함께한다면 매 순간이 즐거울 것이야.”

껄껄 웃으면서 한마디 건넨 작은 주방장은 에디의 머리 위에서 편히 누워 다리들을 배배 꼬았다.

조금 떨어져서 조용히 서 있던 토드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었다. 그에 나도 보답하듯 밝게 웃어 주자, 그 모습을 포착한 노엘이 토드와 나 사이를 가로막아 섰다.

“그럼 당장 출발할까? 정착해서 결혼 준비하려면 해야 할 일이 많아.”

모두가 새로운 집을 떠올릴 때, 노엘은 혼자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그와의 삶을 택했는데도 그는 여유 부리는 법이 없었다.

결혼식까지 마치고 나면 긴장을 좀 놓으려나 싶었지만 왠지 모르게 크게 기대가 되진 않는다.

“그러네. 결혼식이 끝나 손잡고 나오기 전까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랬어. 리사 누나가 나한테 결혼하자는 터무니없는 소리를 할지도 모른다고. 그럼 난 안 받아 줄 거지만.”

“하?”

참 나. 리마와 내가 동시에 어이없는 눈빛으로 에디를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노엘은 내게 세계 이동의 마력석으로 세공된 붉은 사각형의 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그와 함께 주머니에 다양한 빛깔의 마력석들을 넣어 주었는데 다 확인해 보지는 못했다.

다시 마력을 쓸 수 있는 몸이 된 나는 목걸이에 마력을 주입해 새로운 곳으로 이동할 문을 열었다.

<새로운 세계로 이동하는 문을 엽니다. 횟수 제한이 없어 영구적인 사용이 가능하나, 이동한 곳에 따라 다시 사용하기까지 쿨 타임이 발생합니다. 단, 빙의자 단 한 명만 이동 가능.>

이 마력석은 영구적인 대신에 한 번 사용하고 나면 다시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 시간도 어딜 갔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노엘이 언질을 주었다.

그래서 일단 내가 먼저 가서 살펴본 뒤 노엘에게 연락을 취하기로 했다. 그럼 노엘과 친구들이 반지를 통해 날 따라올 것이다.

드디어 우리의 새 보금자리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게 되었다.

끼익.

딸기처럼 맑은 빨간색의 나무 문이 열렸다. 밖은 우주처럼 온통 검은 공간이 펼쳐졌을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 공간 너머엔 무엇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어떤 세상이 존재하는 걸까? 기대하면서도 문득 불안해선 뒤를 돌아 노엘을 보았다.

“그, 그럼 나 먼저 출발한다?”

“우린 대기하고 있을게. 도착하자마자 상황 보고 연락해 줘. 혹시라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면 몸부터 숨기고, 숨을 곳이 없으면 내가 준 마력석을 사용해. 우리가 도착할 동안 잠시나마 널 보호해 줄 거야.”

설마 또 공포 게임 같은 곳으로 가는 건 아니겠지. 처음 이동하는 거라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 같기도 한데….

“……연락하면 꼭 빨리 쫓아와야 한다? 잡은 물고기라고 딴맘 먹는 건 아니겠지?”

내 말에 노엘은 어림도 없다는 듯 붉은 눈빛을 매섭게 치켜떴다. 서늘하다 못해 어두운 기운이 한입에 잡아먹을 것처럼 온몸을 단숨에 휘감아 버렸다.

“그런 걸 걱정할 때가 아닐 텐데? 다방면으로 더 집요해질 테니 기대해. 매일 날 듬뿍 받을 걱정이나 해야 할 거야.”

이보다도 더 집요해질 수 있다고? 그것도 다방면으로?

“뭐, 뭐야? 허세는…! 앞으로 하는 거 봐서 결혼도 다시 생각해 볼 거야. 확정이 아니라고!”

나도 허세 한번 부려 봤다. 노엘의 저 진중하고도 귀엽게 절망하는 얼굴이 무척 만족스럽다.

“……! 알았어.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지. 나와 결혼하지 않고선 못 배길 정도로 잘할 거야. …사정없이 다 퍼부어 줄 테니 각오해.”

정말 그럴 것 같은 강렬한 기세에 아찔해져선 멍하니 있으니, 기다리다 못한 노엘이 성큼성큼 앞으로 다가와 내 턱을 양손으로 붙들고 박력 있게 입술을 포갰다.

“꺅!”

“아, 아니!”

“이런!”

그러자 녀석들의 비명과 탄성이 여기저기서 폭죽처럼 터져 나왔다. 리마와 에디가 눈을 가리는 척하며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는 걸 얼핏 보았다. 타란티나는 대놓고 보며 얼굴을 붉혔다.

깁스는 즉시 제 붕대를 풀어 매드의 눈을 가려 버렸다. 데릭은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 듯 오므린 입을 벌렸다.

그리고 곧 토드와 베키의 진심을 담은 무거운 살기가 주위를 가득 메웠다.

하지만 노엘이 멈출 리 없었다. 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 그의 부드러운 입술이 곧 꿀 같은 혀를 밀어 파고드니 자연스레 몸이 밀려났다.

그대로 배웅이라도 해 주겠다는 듯 더욱 깊숙한 입맞춤으로 밀어붙였다.

곧 문밖의 검은 공간으로 빨려 들어갔고 그제야 그와 나의 입술도 아쉽게 떨어졌다. 무중력 같은 허공에 떠서 점점 멀어지며 서로가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노엘은 매혹적이면서도 어두운 미소를 흘리며 강직한 눈으로 나를 좇았다.

그 끈질기게 달라붙는 눈길에 난 어째선지 간담이 간질간질하면서도 서늘했다. 이어 그가 부러 작게 말한 목소리가 내 귀에 또렷하게 들려왔다.

“네가 오지 말래도 영원히 쫓아갈 거야.”

이제야 명쾌하게 깨달았다. 그가 무서운 것도 맞고, 그에게 설레는 것도 맞다. 그러면서도 가장 큰 건 설렘이었다.

어느새 그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졌다. 급격히 어딘가로 휩쓸려 갔다. 감당하지 못할 속도에 온몸이 심장과 함께 떨려 와 눈을 질끈 감았다.

분명 무서운 상황인 것 같은데 노엘이 떠올라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같이 있는 게 아닌데도 곁에서 날 꽉 붙잡고 있는 듯했다.

마주치게 될 미지의 세계가, 상상조차 되지 않는 미래가 설레서 벌써 두근거렸다.

-노엘, 나 도착했어! 근데 여긴 폐공장인 것 같아. 마력석 재사용 대기 시간이 720시간이네……?! 미쳤나 봐!

-폐공장…? 일단 우리도 곧 갈게.

-아니, 잠깐만! 여기 뭔가 이상해. 곳곳에 할퀸 흔적이 있어.

-움직이지 말고 어디 숨어 있어. 당장 갈게!

연락 수단인 마력석 귀걸이에서 뿜어져 나오던 붉은빛이 소리와 함께 뚝 끊겼다.

아무래도 정착하기까진 시간이 꽤 걸릴 듯하다. 설령 그 끝에 절망이 기다리더라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건, 더 이상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겠지.

멀리서 검은 그림자가 쓰윽 지나갔다. 사람이 아니라는 직감에 나는 근처에 있던 녹슨 캐비닛에 재빠르게 들어가 몸을 숨겼다. 또 공포물이 배경인 곳으로 온 걸까?

터벅터벅.

스산한 바람 소리와 함께 접근하는 급박한 발걸음에 긴장했다.

끼익.

밖에서 누군가가 캐비닛의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창문에 번진 포근한 달빛이 틈을 파고들어 화사하게 내려앉았다.

노엘과 함께 정겨운 녀석들이 활짝 웃는 얼굴로 날 들여다보며 동시에 외쳤다.

“찾았다! 리사.”

<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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