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139화 (139/145)

139화.

막상 밖으로 나오니 이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에 문득 불안감이 몰려들었다.

아직 잘 모르는 사람인데….

두리번거리니 다른 집들은 모두 불이 꺼져 있다. 하지만 도착해 마당에 준비된 것들을 보니 괜한 걱정을 했나 싶었다.

예쁜 나무 탁자와 편안해 보이는 의자 두 개가 놓여 있었고 작은 모닥불이 타닥타닥 타올랐다. 홀로 구경하고 있으니 남자가 집에서 나왔다.

“오셨어요? 나름대로 준비해 봤는데…. 그런데 동생이 그사이 잠이 들었지 뭐예요.”

“네…? 어…. 그런가요.”

솔직히 무척 당황스러웠다. 단둘이 있어도 되는 건가. 하필 잠이 들었다니 뭘 어쩌겠나.

그런데 동생이 있다는 말이 사실이긴 한 거겠지?

남자도 당황스러운 듯 웃어 보였다. 뒤통수를 긁적이며 춥지 않냐고 묻는데 나는 차마 더워 죽겠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속에 옷을 워낙 많이 껴입었던 탓이다. 모닥불을 피울 줄은 몰랐지. 패딩까지 둘러 완벽하게 무장한 참이었다.

남자와 나는 나란히 앉아 각자 쥐고 있는 가느다란 막대에서 예쁘게 타들어 가는 불꽃을 감상했다.

“이거 오늘 안에 다 태울 수 있는 걸까요?”

무수히 많은 막대를 보니 아주 원 없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꼭 다 태울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나저나….”

말끝을 흐리는 순간 남자의 눈동자가 음산하게 변하며 나를 돌아보았다. 착각이었을까?

내가 긴장한 걸 알아챘는지 그가 입가에 웃음을 띠며 눈꼬리를 내렸다. 그러면서 내뱉는 나지막한 목소리에 어쩐지 등골이 서늘해졌다.

“세상이 흉흉하죠.”

“……네, 그렇죠.”

“솔직히 이렇게 선뜻 같이 어울려 주실 줄은 몰랐어요. 이런 늦은 시간에….”

“여동생도 함께한다고 하셨고, 그쪽이 나쁜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으니까요. 게다가… 혹시나 그렇다 하더라도 제가 유단자라 그쪽 정도는 쉽게 이길 수 있거든요.”

유단자라는 건 거짓말이지만, 괜히 불러 놓고 긴장되는 말을 하니 나도 급작스럽게 센 척을 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냥 더 하지 말고 들어가 버릴까. 하지만 그러다 돌변해서 쫓아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더욱 머릿속이 번잡해졌다.

“그래도 좀 더 조심하셨으면 좋겠어요. 이런 건 딱 오늘까지만 해요.”

“네? 오늘까지만이라니….”

“오늘 이후론 제가 불러내더라도 무시하기로… 약속해 주실래요? 오늘까진 무사히 보내 드릴 테니 그렇게 긴장하지 않으셔도 돼요.”

뭐라는 건지…. 저걸 농담이라고 하는 걸까? 이놈도 정상이 아닌 건가. 현실로 돌아왔는데도 현실이 아닌 것 같다.

나는 잔뜩 인상을 쓰고는 대충 시원치 않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불꽃이 꺼지자 그가 새로운 막대에 모닥불의 불을 옮겨붙여 내 손에 조심스레 쥐여 주었다.

아무래도 짚고 넘어가야 찝찝하지 않을 것 같아 결국 그에게 물었다.

“저기요. 이해가 안 가서요. 좀 더 명쾌하게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혹시 농담하신 거예요?”

“아…. 죄송해요. 너무 성급히 말했군요. 음… 제가 병을 좀 앓고 있어서요. 내일 왠지 다른 인격이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그래요.”

“예……?”

미쳐 버리겠네.

“이런 예감은 꼭 들어맞더라고요. 제 다른 인격이 좀 많이… 이상해요. 말려들면 그쪽한테 위협이 될 수도 있어서…. 그러니까 내일부턴 저를 무시하고 모른 척해 주세요.”

“아, 알았어요. 꼭 그렇게 할게요.”

남자는 내 대답에 안심했다는 듯 기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뭔가 안타깝기도 한데 스르르 돋아난 소름은 없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대체 뭐가 뭔지. 왜 이런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일이 나한테 벌어지는 건지 모르겠다.

내 이웃이 알고 보니 다중 인격자였다. 뭐 그런 건가?

그래도 내 이웃이 알고 보니 연쇄 살인마였다. 이런 것보단 나으려나.

어쨌든 이 남자와는 오늘 이후로 영원히 안녕이다. 최대한 마주치지 말아야지.

“어때요? 이곳에서의 삶은… 행복한가요?”

다행히 대화는 엇나가지 않고 다시 편한 방향으로 흘렀다. 그의 얼굴이 긴장감 없이 편해 보이기도 했고, 조심하란 얘기를 해 줘서 그런지 조금은 안심한 부분도 있었다.

“행복했던 때가 있긴 했어요.”

이야기하다 보니 서로의 불행사도 조금 공유하게 되었다. 그는 나처럼 부모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곳에선 동생과 단둘이 살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어떤데요?”

“지금은… 음…… 쉽지 않네요.”

갑자기 지금 행복하냐고 물으면 대체 뭐라고 받아쳐야 할지 모르겠다. 뜬금없이 자아 성찰이라도 하라는 건지.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뭐 꿈이라든가 그런….”

“음… 거창한 꿈 같은 건 없어요. 그래도 하고 싶은 건 많았는데….”

분명 그랬다. 간신히 들어간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는 것, 관심 분야를 파고들어 공부하는 것,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돈을 많이 버는 것, 열정적인 연애를 해 보는 것 등등.

평범해 보이면서도 하나하나 이루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노력했었는데, 어째선지 지금은 의욕이 전부 사그라들었다.

왜 그럴까, 자신도 당황스럽던 참이었다.

“과거형이네요. 뭔가 새롭게 하고 싶은 일이라도 생긴 건가요?”

“……네. 그런 것 같아요.”

하필 떠오른 것이 마력석이었다. 마력석을 연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왜 들었을까. 하지만 그에게 마력석 이야기를 해 봤자 알지도 못할 터라 대충 얼버무렸다.

“그렇구나. 잘 지내시는 것 같아 다행이네요. 씩씩하게 하고 싶은 일도 알아서 잘 찾고.”

“네…?”

남자가 씁쓸한 미소를 짓는 바람에 불꽃이 타들어 가는 막대를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덩달아 쓸쓸해지는 기분에 왠지 모를 위화감이 느껴졌다.

“남자 친구 있어요? 딱 봐도 커플링 같은데.”

“아…. 아니요. 없어요.”

그가 내 손가락의 반지를 유심히 훑었다. 나는 은근슬쩍 손을 말아 쥐며 반지를 감추려 했다.

별다른 뜻은 없었다. 그저 이 예쁜 불꽃 앞에서 노엘을 떠올렸다간 울 것 같아서 그랬다.

“아, 남자 친구가 아니면 이미 남편이 되었다거나…? 결혼반지였군요.”

“아니요! 미혼인데요.”

“그럼 약혼자가 있으신가 봐요.”

그 말을 하는 남자의 눈이 갑자기 집요하게 반짝였다. 자기 예상이 틀림없을 것이라 확신하는 모양인데, 노엘과 약혼한 사실을 떠올린 나는 찔려서 목덜미가 간지러웠다.

“아뇨. 그런 거 아니에요.”

단호하게 말하고 나니 현실이 서글퍼지려 했다. 이 남자는 대체 왜 이렇게 남의 인생에 관심이 많은 건지.

“거짓말. 약혼한 거 맞잖아요.”

……?

어쩌다 약혼에 확 꽂히셨을까. 불쾌해진 나는 마지막 불꽃을 털어내고 벌떡 일어나 버렸다. 그러니 남자가 곧바로 말을 이었다.

“왜 거짓말해요? 약혼자 있는 거 맞잖아요.”

왜 저래, 진짜.

“제가 아니라잖아요. 그리고 약혼하든 말든 그쪽이랑 무슨 상관이라고요. 전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고개를 까딱하며 인사하니 남자도 마지못해 일어나선 고개를 까딱 숙여 보였다. 나보다도 더 삐딱해 보이는 인사에 난 혀를 내두르며 걸음을 재촉했다.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얼굴이 홧홧했다. 화낼 가치도 없는 놈이었는데. 어째선지 분노가 치밀어 울컥하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쾅!

애먼 현관문에 감정을 싣고는 신발도 벗지 않고 주저앉아 버렸다.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결국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날 울린 남자는 조금 전까지 같이 있던 그 자식이 아니었다. 다름 아닌 노엘이었다. 그가 생각나 보고 싶어지고 만 것이다.

제대로 실연당한 사람의 행색을 하고 있다.

‘행복하지 않아.’

베키와 리마, 타란티나 등 벌써 그리워진 녀석들을 떠올리니 감정이 더욱 북받쳐 올랐다. 그 안에서 느꼈던 행복이 따스한 온도로 고스란히 기억되었다.

남겨 두고 온 녀석들이 계속 눈에 밟혔다. 미안한 마음과 그리운 마음이 교차하며 속이 뒤집혔다.

이렇게 힘껏 울고 나면 속이 좀 시원해질까. 시간이 얼마나 지나야 다 털어내고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금방 이겨낼 수 있게 되겠지. 그렇게 자신을 타이르며 괴로운 감정을 떨쳐내려 안간힘을 쓰던 중이었다.

스-윽.

바로 앞에서 차가운 바람이 스친 탓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주위엔 아무것도 없었지만 분명 느꼈다.

스산함에 제정신이 바짝 들어 신발을 벗고 곧장 계단을 뛰어올랐다. 순식간에 방으로 들어와 불을 켜고 문을 잠갔다.

혼자 지내며 이렇게 무서운 적은 없었는데. 여전히 우리 집에 누군가 같이 있는 것 같다.

시간을 보니 벌써 자정을 앞두고 있었다. 길고 길었던 오늘 하루가 곧 끝날 것이다.

결국 나는 종이를 남긴 누군가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이라 여긴 건, 못 찾아낸다고 하여 내게 해를 가할 것이란 말은 적혀 있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땀에 젖은 옷을 벗어 던지고 몸의 열을 식히고 있을 때였다.

쨍그랑!

아래층 부엌에서 접시인지 컵인지 뭔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와 화들짝 놀랐다.

“아…! 아 진짜…!”

또 뭔데……!

멀쩡한 식기가 지진이 난 것도 아닌데 혼자 떨어질 이유가 없었다. 석상이 된 것처럼 굳어 있으니 또 다른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쿵쿵 쿵쿵 쿵쿵.

처음으로 발소리를 들었다. 어린애가 뛰어다니는 듯한 천진난만한 리듬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쨍그랑!

그릇 하나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당장 휴대 전화기를 꺼내려 주머니를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다. 아마 1층 현관에 쪼그려 앉았을 때 떨군 모양이다.

절망감이 몰려왔다. 창문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았지만, 집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게 아니니 의미가 없었다.

문 앞에 서서 나가 봐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는데 더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경직된 채로 참았던 내 호흡만이 절제된 소리를 내며 터져 나왔다.

“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