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그렇게 노엘을 돌아본 순간, 혼비백산한 얼굴을 눈에 담자 숨이 턱 막혔다.
“가지 마.”
그의 동그랗게 뜬 강렬한 눈빛에 내 눈마저 붉게 멀어 버릴 것 같았다.
“나 버리지 마. 내가… 내가 억지로 결혼하자고 해서 그래? 그럼 그 결혼 안 해도 되니까 제발 곁에만 있어 줘. 응?”
노엘의 애잔하게 떨리는 목소리에 녀석들마저 동요했는지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
“정말이야. 아무것도 안 할게. 이제부터… 네가 하자는 대로 다 들어줄 테니까. 그러니까…… 제발….”
저런 모습을 보니 노엘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나 보다. 그 어느 때보다 충격받은 듯 어쩔 줄 모르는 모습에 내 눈동자마저 혼란하게 흔들거렸다.
“흐으…. 흐우으…. 누나, 그냥 안 가면 안 돼? 솔직히 누나가 없으면 너무 허전할 거 같아.”
발밑에 있던 리마가 부들부들 떨자 내 몸도 같이 떨렸다. 은근히 눈물이 많은 녀석이라 얼굴을 보지 않아도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남아서 제 머리 계속 쓰다듬어 주면 안 돼요? 실은 언니를 잡고 싶어요. 이러면 안 되는 거 알지만…!”
리마와 타란티나의 말을 시작으로 녀석들이 웅성웅성 각자 하고 싶었던 말을 입 밖으로 꺼내 놓았다.
“리사! 난 이렇게 널 보내 주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어. 내가 이기적인 걸까? 허윽…. 허흐흑.”
알프레드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얘기하는 듯하다가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렸다. 생각보다도 마음이 여린 녀석이다.
“이러지 않기로 약속했지만 실은 나도 보내고 싶지 않다. 내 발목을 또 잘라도 좋으니 우리와 함께 지냈으면 좋겠다.”
데릭의 조곤조곤하고 담담한 목소리에도 축축한 물기가 어려 있어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나도… 나도 할 말이 있었는데. 왜 생각 안 나지? 아무 말도 기억이 안 나. 흐끅.”
에디는 이미 눈물을 줄줄 흘리다 못해 하도 문질러댄 피부가 반쯤 떨어져 나갔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와 눈을 계속 마주치려는 듯 좇는 눈빛이 가여웠지만, 계속 마주 보고 있기엔 내 심장이 견딜 수 없었다.
“다들 한마디씩 하니 나도 뭔가 말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라서 그런데, 여기서 내 손길이나 받으며 지내는 게 어때. 나 같은 유능한 의사는 그곳엔 없을 테니 말이야. 아직 엉덩이 주사도 안 맞았잖아.”
“흐어어어어?”
항상 나사가 풀린 매드와 깁스도 뭐라고 한마디씩 했는데, 저 콤비는 여전하구나 싶었다.
주방장은 작아진 상태로 노엘의 어깨에 붙어 있었다. 말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무어라 외치는지 꿈틀거리는 온몸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두의 눈물 콧물 뽑는 소리로 이 넓은 공간이 가득 찼다.
결국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고 있으니 베키가 일그러진 얼굴로 녀석들을 노려보다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 모자란 것들이 기어코……!”
토드는 따듯한 미소를 지으며 베키의 어깨에 손을 올려 토닥거렸다.
“너도 같은 마음이면서. 뭘.”
“……혼자 괜찮은 척, 멋있는 척하는 거 다 알거든요?”
“…….”
아래를 받치고 있던 리마가 심하게 몸을 들썩이며 울었다. 감정이 격해졌는지 위에 있던 내 몸마저 덩달아 크게 울렁거릴 정도로 움직였다.
“리, 리마야…?”
“흐윽. 누나, 가지 마! 내가 더 잘할게. 훌쩍.”
푸에취!
콧물을 들이마시던 리마가 거하게 재채기하니 모두가 일순 중심을 잃고 흔들거렸다.
“야 이! 정신 차려! 중심이 흐트러지잖아.”
“어윽…. 간신히 잡았어요.”
겨우 중심이 잡혀 다시 안정적으로 고정되나 싶던 탑은 아주 잠시뿐이었다.
“어? 내 다리! 내 다리가 빠졌나 봐.”
조금 전의 큰 재채기로 다리가 몇 개 빠져나간 리마가 제 다리를 확인하려 몸을 급하게 꺾는 순간이었다.
“악! 움직이지 말라니까요!”
아래에서 타란티나를 비롯한 몇몇의 비명이 들려왔다.
“어, 어…? 어…!”
곧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겠다고 생각했을 때, 무게 중심이 쏠려 뒤로 넘어간 내 손이 열려 있던 마력석의 소용돌이에 닿았다.
아주 조금 닿았을 뿐인데 내 몸은 급속히 안으로 빨려 들어갔고, 질끈 감았던 눈을 떴을 땐 이미 회오리 속에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나는 허공에서 빠르게 멀어지는 저 아득한 공간을 눈으로 좇았다. 이젠 손을 뻗어도 닿지 않을 곳이었다.
그리고 녀석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다 노엘의 얼굴을 아껴 두기라도 한 것처럼 가장 마지막으로 떠올렸다.
이내 심장이 짓뭉개지듯 고통스러워져 태아처럼 몸을 웅크렸다. 이 아픔마저도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다.
***
책상 앞에 엎드린 채로 눈을 번쩍 뜬 순간, 너무 밝아서 눈이 부셨던 나는 곧장 방의 불이란 불은 전부 꺼 버렸다.
그래 봐야 천장의 등과 컴퓨터 모니터의 빛뿐이었지만, 컴퓨터를 제대로 종료하지도 않고 콘센트의 버튼을 발로 밟아 버리고 만 것이 뒤늦게 후회되긴 했다.
“나… 돌아왔어?”
원래 살던 곳으로 정말 돌아왔다. 코로 들어오는 공기부터가 다르다. 그곳에 꽤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역시 돌아오니 이 공기가 훨씬 더 안온하게 느껴졌다.
어둠 속에서 휴대 전화기를 간신히 켜 시간을 확인하니, 이곳은 여전히 크리스마스 당일이었고 시간은 겨우 3시간 지나 새벽 3시가 아닌 6시였다.
오래간만에 맡은 내 방의 정겨운 냄새에 포근해졌다. 익숙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기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부작용으로 잊어버렸던 내 기억도 전부 돌아왔다. 돌아오는 데엔 부작용이 없는지, 노엘과 녀석들과의 추억도 단 하나 잊히지 않고 고이 간직한 채였다.
이제 안전하다는 생각에 긴장이 확 풀리니 몸이 아파져 왔다. 몸살이라도 날 것 같아 다시 일어나 진통제를 먹고 누웠다. 약 기운이 돌자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그저 몽롱해져 솔솔 졸음이 왔다.
원래 혼자 잘 땐 항상 주황색 등을 켰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랬다. 그런데 오늘은 이 평온한 어둠이 좋아서 등을 켜지 않아도 잘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줄 알고 한참을 누워 있었는데……, 잠은 결국 오지 않았다. 약 기운에 눌린 정신은 여전했지만, 돌아온 내 기억이 머릿속에서 나를 그보다 더 세게 짓눌러 온 탓이었다.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없는 걸 보니 혼자였구나. 살던 곳으로 돌아가면 내게도 평범한 가족이 있으리라 당연히 생각했었는데, 대체 무슨 확신으로 그랬을까.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새삼 부끄러웠다. 그저 내 바람을 줄줄 읊은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엄마에 대해선 나를 키워 준 할머니한테 들었다.
그래도 4살까진 엄마의 품에서 키워졌던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나는 그때의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기억이 아주 흐릿한 것이 차라리 잊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푸른 봄의 공원에서, 맞은편 벤치에 앉아 있던 할머니는 자연스레 엄마와 있는 내게 시선을 두며 쉬고 있었다고 했다. 내가 엄마와 빵을 아주 맛있게도 먹고 있었다고.
그러다 엄마는 그대로 날 두고 사라져 오래도록 나타나지 않았는데, 그 당시의 난 울지도 않고 혼자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고 들었다. 마치 그렇게 될 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너도 혼자고 나도 혼자니, 우리 둘이 살면 되겠구나. 그렇지?’
기억이 선택적일 수도 있는지. 할머니가 같이 살자고 손을 내밀어 주었던 때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할머니는 보육원으로 보내질 뻔한 날 먹여 주고 재워 주며 정성껏 돌봐 주셨다. 그러면서도 엄마를 찾으려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긴 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아빠의 존재는 할머니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결혼 유무조차 불확실했다.
어차피 그들을 찾길 포기한 지 오래되었다. 더는 찾지 않는다.
날 거둬 준 할머니는 재산은 많았지만 가족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다섯이나 되는 자식들의 재산 싸움으로 결국 뿔뿔이 흩어져 연락도 다 끊고 살았다.
그 뒤로 할머니는 본인 소유의 땅이 넘치는 한적한 이곳에 내려와 저택을 짓고 지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나를 주워 기른 곳도 바로 이 저택이었다.
이곳에서 할머니와 여느 가족 못지않게 둘이서 행복하게 지냈다.
이후 돌아가셔서 나 홀로 지내기 시작한 지도 벌써 3년 차다.
처음엔 이 거대한 집에서 어떻게 지내나 싶었는데, 할머니의 냄새가 아직도 짙게 배어 있어 차마 떠날 수 없었다. 행복한 추억이 있는 나의 유일한 집이었으니까.
비록 원했던 평범한 형태의 가족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나는 부모님에게 받지 못했던 사랑을 할머니에게 듬뿍 받았다. 내가 지금껏 삐뚤어지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었던 건 전부 그녀의 공일 것이다.
혼자가 된 3년 동안 부단히도 애썼다. 하나뿐인 가족을 잃었으니 마음이 시든 이파리처럼 점점 말라 갔다.
이 저택에서 영원히 혼자 살게 되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시도 때도 없이 엄습해 왔다.
할머니와의 추억이 흐려질 때마다 붙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녀와의 이별이 떠올랐을 땐 슬퍼서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러다 건강에 지장이 생기면 안 된다 생각하여 밖을 열심히 뛰어다니기도 했었다.
그렇게 지내 온 지금, 다시 돌아온 지금에서야 내 심장이 하얗게 얼어붙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단단하게 굳었던 심장이 노엘과 녀석들 덕분에 조금씩 녹았다는 걸 인정했다.
무섭고 괴로웠던 순간들조차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곳에선 결코 느껴 보지 못한, 생의 고동이었다.
그곳에서부터 녹기 시작한 심장이 지금, 이렇게나 맑은 눈물이 되어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빙하 같은 심장이 녹아 깨어지고 무너져서 전부 떠내려갈 것 같았다.
하염없이 흐르는 걸 막을 수 없어 혼돈 속에 허우적거렸다. 그저 다 쏟아낼 때까지 기다리는 일밖에는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