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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134화 (134/145)

134화.

베키의 다급한 닦달에 나도 마음이 급해졌다. 그러면서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마음에 걸려 선뜻 마력석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누군가 보지 못한 얼굴은 없는지. 자꾸만 한 번 더, 한 번만 더 누군가를 보고 싶다는 갈망이 생겨 곤란했다.

아직도 이렇게나 할 말이 많은데. 그 많은 말들을 짧은 시간에 전달하려니 오히려 뒤죽박죽되어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하고 가슴이 갑갑했다.

“노엘을… 노엘을 보고 가지 않아도 될까?”

흔들리는 내 마음을 베키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녀는 내 어깨를 보듬으며 강인한 눈을 마주쳐 왔다.

“리사, 마음 단단히 먹어. 네가 돌아갈 기회는 지금뿐이야. 결혼식까지 치르고 도망갈 셈이야? 그건 노엘에게도 너에게도 더 큰 상처가 될 거야.”

“……그건 그렇지만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네 정체성을 되찾을 거라고 했잖아.”

그랬다. 부작용으로 잃어버린 기억들…. 내 정체성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소중한 것들이 있었다.

그중엔 내 꿈도 있지 않을까. 나 스스로가 살면서 꼭 이루고자 했던 무언가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나를 기다리는 소중한 가족과 친구, 그리고 내가 흥미를 갖고 열심히 하는 것, 잘하는 것, 노력하고 있던 것 등.

그것들을 버린다는 것은 그동안 내가 쌓아 온 모든 것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분명 원래 살던 곳에서 흘린 피 같은 땀방울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역시 애틋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데 어째서 지금은 돌아가는 순간이 기대되지 않는 걸까.

결국 어떤 선택을 해도 슬플 것 같았다. 어디를 택하든지 선택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이 남아 마음을 어지럽히리란 확신이 들었다.

악마가 내 심장을 손에 쥔 채 터뜨릴락 말락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압박하는 듯했다.

“베키, 토드….”

그들의 얼굴을 다시 한번 각인하듯 눈에 담았다. 0.1초라도 더 눈에 담아 가고 싶었다. 이 모습을 영원히 생생하게 기억하기 위해.

“노엘이 보고 싶어. 아무래도… 한 번은 더 봐야겠어.”

결국 조금 더 시간을 지체하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아직 한낮이었다. 노엘을 한 번 더 보고 가도 시간은 충분했다.

“알았어. 그런데 정말 괜찮은 거 맞아? 그 녀석이 무슨 마력석을 만들고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토드가 심각한 얼굴이 되어선 중얼거리자, 베키도 이제야 떠올랐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완성되었다고 들었어.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토드의 질문에 나 역시 긴장이 되긴 했다. 내가 돌아가기 전, 그가 완성된 의문의 마력석으로 무슨 일을 벌일지 몰랐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지금 바로 떠나야 할 것만 같은 위급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그냥 지금 돌아갈까?”

보고 싶지만 보아선 안 될 남자다.

우린 여전히 서로를 안고 머리를 맞대며 각자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셋 다 흠칫 놀라 어깨를 움찔했다.

“리사? 베키랑 여기 있다고 들었어. 들어갈게.”

다름 아닌 노엘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우리가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을 본 노엘은 눈을 가늘게 휘며 팔짱을 끼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내 약혼녀가 왜 너희 품에 안겨 있어.”

노엘은 유난히 ‘약혼녀’라는 단어에 힘을 실었다. 그 모습에 가슴이 시큰거린 나는 어찌할 줄 모르고 녀석의 잘난 얼굴만 그저 빤히 훑었다.

다들 나쁜 짓이라도 하다 걸린 것처럼 경직하자 노엘이 보다못해 다가와 하나씩 떼어냈다.

“마침 아늑한 곳에 있으니 둘이 오붓한 시간이나 보낼까.”

내 귀에 대고 작게 속삭인 노엘이 엉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둘이 좀 쉬다 나와.”

베키가 마지못해 나가자, 토드도 곧장 그 뒤를 따라나섰다. 토드는 노엘을 쏘아보는 눈으로 한마디 툭 내뱉으며 문을 닫았다.

“…음흉한 자식.”

그러거나 말거나 드디어 단둘이 되었다며 싱그럽게 웃는 노엘이었다. 그 맑은 미소에 혼이 쏙 빠질 것 같아 긴장되는 건지 아닌 건지도 모르겠다.

긴 소파에 나란히 앉아 마주 보니 어쩐지 그가 더욱 듬직해 보여 약혼했다는 사실조차 낯설었다.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노엘은 간지러운지 제 뺨을 잠시 손가락으로 긁더니 발그레해진 볼을 들어 나를 지그시 응시했다.

“리사…. 음. 그러니까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지…….”

청혼에 약혼식까지 폭주하는 기차처럼 치렀다는 걸 알긴 아나 보다. 거기다 이젠 밤의 결혼식까지 앞두고 있으니 그것까지 이루어진다면 하루 만에 다 치르는 셈이었다.

내 눈치를 살피는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보아, 지금 내 기분이 어떤지 알고 싶어 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지금 내 기분이 어떠하냐면… 노엘의 얼굴만 봐도 좋아서 힘들었다. 이 좋아하는 감정을 전부 그에게 쏟아붓고 싶은 서글픈 심정이었다.

“미안해. 뭔가… 강제로 약혼까지 치러 버린 느낌이라…. 지금이라도 무를까? 좀 더 기다렸다가 다시 한번 너한테 청혼할까?”

내 슬픔이 표정에 드러난 걸까. 노엘이 안절부절못하며 날 달래려 애쓰는 것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무슨 청혼을 밥 먹듯이 하려는 거야. 약혼은 또 어떻게 무르게?”

힘없이 말하니 노엘은 긴장이 더욱 바짝 들었는지 허리를 꼿꼿이 펴고 양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 따듯한 그의 온기가 손으로 전해지니 두말할 필요 없이 마음마저 따스해졌다.

그를 질타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는데 어쩔 줄 몰라 하는 행동이 귀여워서 좀 더 핀잔을 주고 싶기까지 했다.

“……어, 어떡할까. 그래도 오늘 난… 너와 꼭 결혼하고 싶은데.”

그러면서도 제 의지는 꺾지 않겠다는 녀석의 모습에, 짓궂게 굴고 싶은 마음은 금세 달아나고 말았다. 동시에 촘촘히 스며드는 설레는 감각에 꽉 붙잡혀서 또 허우적거리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뚫어져라 그의 조각 같은 이목구비를 감상하고 있으니, 노엘은 다시 원래의 계획을 강행하기로 결심했는지 눈썹을 강렬하게 치켜떴다.

“리사!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야. 그렇게 만들어 줄게.”

“…결혼 전엔 누구나 그렇게 달콤한 말을 하기 마련이지.”

“…….”

분위기 깨는 한마디를 하니 노엘은 믿었던 이에게 배신당한 사람처럼 하늘이 무너진 얼굴을 했다. 이럴 땐 아주 순진하고 순수해 보여서 괴리감이 들기도 했지만, 놀리는 나로선 즐겁지 않을 수가 없다.

“이 하루가 네겐 상당히 피로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러니 초야는… 당장 오늘 급하게 치르진 않을게. 어때? 혹시라도 네가 오해할까 봐 미리 얘기하고 싶어서….”

노엘은 아까부터 저 혼자 이것저것 조곤조곤 중얼거리며 들떠 있었다. 나를 위해 굉장히 세심하게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울까. 그가 날 생각하는 마음이 잘 전달되어서일까. 여러모로 굉장한 그가 이렇게 벌벌 떠는 모습을 나만 볼 수 있어서일까.

덕분에 무슨 말을 듣고 있는지도 잊어버렸다.

“리사! 지금 내 말 듣고 있는 거지?”

“응…? 아, 응.”

“그럼 대답해 봐. 어떻게 할까?”

“어? 무얼….”

“이것 봐. 내 말 안 듣고 또 딴생각했지.”

귀까지 붉어진 노엘은 어딘가 안달 난 눈동자였다. 내 손을 쥔 그의 손도 아까보다 훨씬 뜨거웠다.

“미안! 뭐라고 했는데?”

“그러니까…. 오늘 밤… 결혼식 후에… 쉬고 싶냐고…….”

“아…!”

보아하니 노엘은 초야를 그냥 보내긴 아쉬운 모양이었다. 은근슬쩍 다른 데로 돌리는 눈알이 아쉬운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는 것 같았다.

그가 다시 한번 손을 꼭 붙잡으며 다부진 입술을 열었다. 슬쩍 돌렸던 눈도 중심을 잡은 듯 나를 똑바로 향했다.

“날 배려할 생각은 하지 마. 오늘만큼은 네 컨디션이 가장 중요해. 난… 네가 어떤 순간에도 나와 함께하는 행복감을 느꼈으면 좋겠어.”

“…….”

만약 노엘과 오늘 밤 정말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더라면, 나는 무어라 대답했을까.

마음속으로 한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나 역시 이 밤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내가 여전히 대답 없이 듣고만 있으니, 노엘이 눈을 부릅뜨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설마 지금 내가 핑계 댄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절대 그런 거 아니야.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 내 능력은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야.”

왜 자기가 더 부끄러워하는 건지. 혼자 몹시 기대해선 아주 흥분 상태였다.

저 들썩이는 입꼬리만 봐도 설레서 죽겠다는 감정이 느껴졌다. 노엘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나 역시 그와 같이 설레게 되었다.

“응. 의심 안 해.”

“……의심하는 것 같은데. 정 그렇게 의심스러우면 확인해 볼래? 지금도 생각만으로 벌써 이렇게….”

노엘은 말을 하다 급히 끊고는 저 혼자 놀라 붉어진 얼굴을 손바닥에 파묻었다.

“노, 노엘…?”

“하… 진짜 미치겠다. 나 지금 완전 바보가 된 것 같아. 혼자 뭐 하는 건지 모르겠어.”

그의 흑발 사이로 튀어나온 새빨간 귀가 사랑스러웠다. 시야에 들어온 모습을 전부 내 눈에 담고 싶었다. 담아서 그를 가두어 두고, 평생 나만 보고 싶었다.

어쩌면, 우린 서로에게 가장 훌륭한 짝일지도 모르겠다.

노엘이 내게 광적으로 집착하는 게 좋았다. 이런 사랑스러운 집착이라면 얼마든지 받아 줄 수 있었다.

어쩔 땐 더욱 꽉 사로잡아 줬으면 할 때도 있을 정도로 나는 그가 좋다.

이렇게 계속 집착해 주고 사랑해 준다면 더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노엘 외의 다른 남자가 눈에 들어오거나 성에 찰 리도 없었다.

노엘은 저를 바라보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비장한 눈빛으로 말했다.

“아무튼! 밤마다… 아니, 아침이고 낮이고 밤이고 가리지 않고 저세상으로 보내 줄 테니. 각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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