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다시 내 뒤로 숨은 에디는 꼬리 내린 눈으로 책상에서 작업 중인 시드를 바라보았다.
“아빠를… 보고 싶었는걸.”
“…전에도 말했지만 네 아빠는 이미….”
나는 노엘의 발을 빠르게 밟았다. 굳이 어린 에디에게 무시무시한 소리를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아무리 전에 말했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내 굳어진 미간을 본 노엘은 이내 알았다는 듯 달싹이던 입술을 순순히 다물었다.
“아빠 얼굴이 점점 생각나지 않아서 보러 왔어. 그래도… 날 버리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단 말이야.”
나는 쪼그려 앉아 속상해하는 에디의 등을 토닥였다.
“잘 왔어. 에디, 노엘도 이해한대. 더는 네게 뭐라고 하지 않을 거야.”
“정말…?”
에디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의심의 눈초리로 나와 노엘을 번갈아 가며 흘깃거렸다. 그에 노엘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럼 에디, 온 김에 잠시 리사를 부탁할게.”
“응? 어디 가는데?”
“난 잠시 주방장이랑 갈 데가 있어. 멀지 않으니 금방 오긴 할 건데….”
노엘이 또 무슨 꿍꿍이일까. 어떤 일을 꾸미고 있길래 나를 두고 가려는 거지?
“음…. 잠시 여기서 기다려 줘. 리사, 아무 데도 나가지 말고.”
“뭐야, 어디 가는데.”
노엘은 내 말은 끝내 못 들은 체하더니 에디에게 신신당부했다.
“에디, 누나가 나가지 못하게 꽉 붙잡고 있어야 해. 알았지?”
“응! 잘할 수 있어!”
이, 이것들이……!
“그럼 얼른 다녀올게.”
그렇게 노엘이 주방장과 나가고 방엔 셋만 남게 되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침대에 걸터앉아 턱을 괴고 에디와 시드의 뒷모습을 잠잠히 지켜보았다. 에디는 작업에 열중하는 시드 옆에 딱 붙어서 신기하다는 듯 연신 입을 크게 벌려 감탄했다.
“우리 아빠는 바느질을 진짜 진짜 잘해!”
박수까지 짝짝 쳐 가면서 제자리 뛰기를 하는 것이 산만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딱 저 나이대 아이의 평범한 모습이었다. 그저 마냥 즐거운 모양이었다.
그러니 나도 지워진 기억 속의 알 수 없는 가족이 그리워졌다. 기억하지 못하는데도 그리운 마음이 든다는 건, 내게도 가족이 있다는 뜻이지 않을까?
‘괜찮아. 곧 돌아갈 거니까. 평범하고 소소한 내 일상으로 돌아가는 거야.’
이제 이곳에서의 시간도 친구들의 얼굴만 한 번 더 보고 나면 끝이었다. 어느새 결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으로 가득한 곳이 되었다.
생각에 깊이 잠겨 있다가 다시 정신이 든 건 시드가 작업을 마쳤을 때였다. 시드는 책상 안쪽에 놓인 커다란 나무 상자를 열어 안에 든 것들을 모조리 꺼내 펼쳐 놓았다.
나도 궁금해져 일어나 구경했는데, 그동안 그가 만들어 왔던 얼굴 피부들이 크기별로 나열되어 있었다. 누군가와 닮았다 했더니 전부 에디의 얼굴이었다.
시드는 늘어놓은 것들을 꼼꼼히 살피다 그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윽고 무릎을 꿇고 에디 앞에 앉았는데, 말은 없었지만 그걸 써 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에디도 알아들었는지 곳곳이 너덜너덜해진 제 피부를 떼어냈다. 그러니 곧장 시드가 빠르고 섬세한 손놀림으로 새 피부를 붙여 주었다.
에디는 그런 그를 한동안 무표정으로 응시하다 어쩐지 슬픈 얼굴이 되어선 금세 가득 고인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계속 이런 모습으로 내 곁에 있어 주면 좋았잖아…. 왜 나쁜 짓을 해서 날 아프게 해.”
제 가슴을 양손으로 감싸며 고통을 호소하는 작은 아이는 우는 법도 몰랐는지 소리조차 낼 줄 몰랐다. 나는 곧장 에디의 곁으로 다가가 흐느끼는 녀석을 감싸 안았다.
“에디….”
“아빠가 보고 싶어. 이런 말도 못 하는 바보 멍청이 같은 거 말고! 진짜 아빠가 보고 싶었는데….”
아예 내 품에 파고든 녀석은 온전히 힘을 놓고 어깨를 크게 들썩였다. 괜히 덩달아 가족이 보고 싶어진 나는 에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같이 울적해지고 말았다.
어느 정도 그러고 있었더니 좀 진정되었을까. 시드는 그새 새로운 작업에 몰두했고, 에디와 나는 침대에 같이 걸터앉았다.
“눈물이 났는데도 피부가 하나도 떨어지지 않았어.”
에디는 언제 그렇게 서럽게 울었었냐며 다시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제 얼굴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러게. 잘됐다. 에디. 새 피부가 더 좋은 건가 봐.”
“응! 최고야!”
신나서 다리를 접었다 폈다 하는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손에 쥔 저 아슬아슬하게 위험해 보이는 과도만 좀 어떻게 떼어내면 더 귀여울 것 같은데.
“그 칼은 왜 계속 들고 다니는 거야?”
“……아. 이건….”
에디는 잠시 수줍어하더니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내가 이걸 들고 있으면 아빠가 날 지켜 줬어. 막 눈을 이렇게 동그랗게 뜨고.”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 턱을 문지르고 있자니 에디가 벌떡 일어나선 시드 쪽으로 의기양양하게 걸어갔다.
“한 번 보면 알게 될 거야! 근데… 이건 멍청이라서 아마 날 지켜 주지 않을지도 몰라.”
“무얼 하려는 건데?”
의미심장한 말과 동시에 급속도로 서늘해진 미소라니. 걱정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긴장해 몸에 힘이 들어갔다.
“아빠! 나 이거 들었는데…. 이거 봐 봐.”
칼날의 방향을 뒤로 가게 움켜쥐고는 시드에게 노골적으로 치켜드는 에디였다.
칼은 금방이라도 상대방을 내리칠 것 같았지만, 칼날의 방향은 에디 그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알아챘다.
시드는 에디에게 눈길도 돌리지 않고 그저 바느질만 했다. 실망한 표정이 된 에디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나를 보고 웃었다.
“역시 멍청이라 나한테 관심이 없나 봐.”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안절부절못하던 나는 에디의 돌발 행동에 대비하려 침대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에디에게 조심조심 다가가고 있던 때였다.
시드가 갑자기 고개를 쓱 돌려 에디를 내려다보았다. 나와 에디는 동시에 그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벌떡 일어난 시드가 급하게 주저앉더니 에디의 손에 들린 과도를 능숙하고 빠른 속도로 빼앗아 갔다. 그러고는 굴러다니던 종이로 칼을 감싸 제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는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런데 그 표정에서는 무심한 듯하면서도 포근함이 느껴졌다.
“…….”
생각 이상으로 놀란 에디는 휘둥그레진 눈이 되어선 잠시 얼어붙은 듯 멈추어 있었다. 이윽고 다시 글썽이려는 듯하다 내게 방긋 웃어 보이며 말했다.
“방금 봤지? 이렇게 날 지켜 줬었어.”
곧장 시드의 품으로 기어들어 가 안기는 녀석이었다. 그 모습에 나는 다시 심장이 뭉개지며 스며드는 미묘한 통증을 떠안았다.
‘나도 돌아가면… 나를 지켜 주는 따듯한 가족이 있겠지?’
꼭 그랬으면 좋겠다고 기대하며 작은 미소를 억지로 지어 보였다.
***
생각보다 노엘이 돌아오지 않아 슬슬 몸이 근질근질했다. 이렇게 그를 기다리는 게 좋은 선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 참이었다.
친구들을 보여 주겠다고는 했지만, 내가 찾아 나서는 게 마음도 편하고 빠르기도 더 빠를 것 같았다.
아직도 시드 옆에 꼭 달라붙어 그의 작업을 구경하는 에디에게 살살 말을 붙여 보았다.
“노엘이 너무 늦는 것 같아. 나가서 이 근처 구경이나 좀 하려 하는데…….”
“안 돼. 누나. 나가지 말라고 했잖아.”
“지금까지 오지 않는 걸 보니 말인데. 노엘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그럼 내가 구해 줘야 한다고!”
에디는 내 머릿속을 읽었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그 모습에 나는 그를 한 대 쥐어박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곧 만들고 있던 마력석이 완성된다고 들었어. 아마 그걸 가지러 간 걸 수도…….”
조잘조잘 말하던 에디가 갑자기 제 입을 양손으로 황급히 틀어막았다. 하지만 이미 중요한 내용은 다 말해 버린 뒤였다.
분명 노엘이 나와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 마력석을 만드는 중이라고 하긴 했었는데. 그게 정확히 뭔지를 모르니 크게 위기감을 느끼진 못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그게 곧 완성된다면……. 그리고 그걸 지금 가지러 간 걸 수도 있다고…? 가져와서 곧장 나한테 사용할 생각인 걸까?
그럼 난 어떻게 되는 거지.
이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초조함이 돌풍처럼 밀려들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얌전히 기다릴 게 아니잖아!’
내가 벌떡 일어나니 에디가 어쩔 줄 모르고 발을 동동 굴렀다. 시드에게 과도를 빼앗긴 에디는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들고 있었어도 어차피 날 해치지 않겠지만.
“에디! 미안. 누난 가 봐야겠어.”
“어, 어딜 가려고! 금방 올 텐데?”
모든 게 밝혀졌으니 나가면 곧장 리프터를 타고 10층으로 올라갈 셈이었다. 그럼 어떻게든 친구들을 볼 수 있게 되겠지.
내가 물리쳐야 할 최종 보스도 사라졌다. 이곳에서 주춤거릴 이유가 전혀 없었다.
줄곧 도망치려고 바라봤던 문을 활짝 열어젖히자 뒤에서 에디가 소리쳤다.
“누나가 가 버리면 나 혼난단 말이야!”
“걱정하지 마. 노엘은 내가 나간 걸 알면 날 쫓아오느라 널 혼낼 시간도 없을 테니까!”
내가 짓궂게 웃자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뜯던 에디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씩 웃어 보였다.
“아, 몰라…. 그럼 어디 하고 싶은 대로 해 보든가. 나는 누날 못 본 거야.”
“응! 에디는 아빠를 지켜보느라 내가 몰래 나간 것도 못 봤어. 그렇지?”
나와 에디는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이며 훈훈하고도 어두운 미소를 나누었다. 그렇게 시드의 방문이 닫혔다.
노엘이 언제 돌아올지 몰랐으니 빠르게 올라가야 했다. 어차피 리프터를 타면 금방이니 탑승구만 제대로 찾으면 일사천리였다.
이전보다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체스판 무늬의 흑백 대리석 바닥을 달리고 있었다.
이제 내게 들어올 위협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단 사실을 알았으니 하나도 두려운 것이 없었다.
아! 단 하나 있긴 했다. 노엘이 오랜 시간 만들고 있었다는 정체 모를 마력석.
내 목숨을 위협하진 않겠지만, 탈출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으니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