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126화 (126/145)

126화.

침대 밖으로 고개를 내밀려는 순간이었다.

쿵!

무언가 묵직한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눈앞으로 떨어졌다.

“억!”

처박힌 건 피부가 없는 얼굴이었다. 어두워서 자세히 보이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에디…?”

하지만 침대 위에서 자고 있던 건 에디가 아니었다. 게다가 형체 또한 갸름한 것이 아이의 얼굴일 리가 없었다.

머리에 달린 눈이 나를 계속해서 주시하며 팔을 침대 밑으로 쑤셔 넣어 잡아채려 했다.

“악! 악! 안 돼!”

들어온 팔을 쳐내며 침대가 붙은 벽 쪽으로 최대한 깊숙이 들어가 밀착했다. 그러자 팔은 내게 닿지 못했고, 포기했는지 상체를 들어 올렸다.

한동안 침대 위에선 어떤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어떡하지 덜덜 떨면서 궁리하고 있는데, 침대가 삐그덕거리며 그가 다시 움직이는 기척이 들려왔다.

정확한 움직임은 알 수 없었지만, 몸을 일으켰는지 매트리스가 눌리며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침대 밑으로 그의 발이 내려오지 않은 걸 보면 아직 침대 위에 있는 건 확실했다.

나는 맞은편에 보이는 문에 시선을 고정하며 어떻게 해야 저곳까지 잡히지 않고 무사히 뛰어갈 수 있을까 고심했다. 그리고 한동안 또 위에서 아무 기척이 없자, 이 틈을 타 재빠르게 나가려 기어갔다.

그렇게 침대 밖으로 다시 나가려 할 때쯤이었다.

쿵!

“아악! 아, 진짜!”

그는 이번에도 머리를 바닥에 내리찍으며 내 앞을 가로막았다. 분명 팔을 또 더듬거리며 휘젓겠지 싶어 신속하게 벽에 딱 달라붙었다.

예상대로 그는 힘껏 뻗은 팔이 닿지 않으니 다시 침대 위로 올라갔다.

상대의 정체조차 파악하기 어려워 꼼짝없이 갇혀 있을 수밖에 없는 형국이었다.

그러고 보니 에디 외에 저런 용모를 가진 자라면… 친부인 시드밖에 없는 것 아닌가? 문득 노엘이 해 주었던 에디의 이야기가 생각난 나는 저자가 시드일지 모른다는 예감에 오싹해졌다.

이곳이 시드의 방이라고?

이렇게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내 상상 속 시드는 이 게임의 최종 보스라는 이미지가 아주 강했다.

하지만 애들을 잡아간 건 시드가 아니었지. 아직도 그 충격이 가시질 않는다.

터벅.

침대 밑으로 그가 내려왔다. 바닥에 닿은 두 발을 보니 초조해졌다.

이번엔 또 무슨 짓을 하려고?

끼이이이이이익!

이윽고 프레임을 잡은 그가 침대를 밀어냈다. 화들짝 놀란 나는 침대를 쫓아 황급히 엉금엉금 기었다.

‘이런…!’

그의 손이 더듬거리며 나를 잡으려 애썼다. 나는 잡히지 않으려 최대한 손에서 멀어졌다.

이런 실랑이도 잠시, 그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침대 위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한동안 또 휴식이라도 취하는지 가만히 있었다.

행동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한번 크게 움직이고 난 뒤에는 반드시 일정 시간 쉬어야 하는 걸까. 나는 긴장감으로 흐트러진 숨을 고르며 침착하게 생각을 정리했다.

‘다시 기회 봐서 저 문으로 뛰쳐나가는 거야.’

분명 이러다 보면 언젠가 기회가 오리라 생각했다. 너무 안일할지도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깊은 절망은 금물이었다. 포기하면 나락으로 가는 건 한순간일 것이다.

에디처럼 얼굴 피부가 없는 것으로 보아 시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버젓이 살아 있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약 시드가 맞는다면 노엘은 왜 그를 멀쩡히 놔둔 거지? 경호하는 괴물도 하나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금방 해치울 수 있었을 텐데.

노엘과 시드의 관계는 절대 성립할 수 없다고 여겼다. 에디는 특별히 잘못한 일이 없으니 노엘과 친밀한 관계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시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 아닌가.

그때였다.

침대 옆으로 스윽 이불이 흘러내렸다. 흘러내린 하얀 이불을 보고 있자니 남자가 제자리에서 뒤척이는 소음을 냈다. 눕기라도 한 걸까.

그러다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난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악!”

그가 머리만 내려 나를 보고 있었다. 도망치려는 내 발목을 빠르게 낚아챘다.

양 발목이 붙잡히자 몸이 속수무책으로 끌려갔다. 그렇게 침대 밖으로 질질 끌려 나간 나는 드디어 그의 얼굴을 보고 시드가 맞음을 확신했다.

손아귀 힘이 얼마나 센지 벗어나는 건 둘째 치고 더는 비명도 못 지르고 있었다. 얼굴 피부를 베개 옆에 떼 놓았던데 잘 때는 그리하는 모양이다. 뗀 모습은 처음 봐서 그런지 놀라서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다.

“시드…. 당신이 정말 시드?”

“…….”

그는 내 말은 무시한 채 일단 양손을 쇠고랑 채우듯 책상 위에 있던 밧줄로 꽁꽁 묶었다. 그 뒤에는 양팔을 들어 올려 침대 옆 벽에 박힌 거대한 못에 다시 한번 매듭을 지어 고정했다.

풀어 달라 애원해 풀어 줄 거였음 묶지도 않았겠지? 쓸데없이 기운 빼지 않기로 했다.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를 위해 기운을 비축해 두는 게 좋겠다.

저항 없는 날 결박한 시드는 제 피부를 들어 다시 얼굴에 꼼꼼히 눌러 붙였다. 손놀림이 확실히 에디보다 능수능란했다.

피부를 붙인 시드는 중년의 세련된 귀족처럼 보였다. 이전 환영에서 보았던 것처럼 위압감이 들진 않았다.

그는 잠을 자려는 건 관뒀는지 다시 촛불을 켜고 책상에 앉아 작업을 시작했다.

“거참. 과묵하시네. 날 어쩌려고!”

이러다 나도 바느질 당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흥분한 주둥이가 멋대로 움직여 그를 자극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내가 뭐라고 중얼거려도 뒤 한번 돌아보지 않았다.

귀가 안 들리는 것 같지도 않은데…. 어쩜 이렇게 무반응으로 일관할 수 있나. 도대체 어찌해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즘이었다.

철컥철컥.

내가 들어왔던 출입구의 문을 누군가 열려고 시도했다. 잠긴 문고리를 마구 돌리다 곧 문을 두드렸다.

툭툭!

“문 열어.”

나는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다급히 고개를 문 쪽으로 꺾었다. 다름 아닌 노엘의 음성이었다.

살았다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기묘한 위화감이 온몸을 적셔 오는 바람에 안도감은 금방 위축되고 말았다.

끼이익.

시드는 순순히 문을 열어 주었고, 노엘과 시드는 서로를 눈으로 확인했음에도 아무런 적대감을 표하지 않았다. 그저 아주 자연스러운 태도로 문을 열어 주고 들어왔다.

“이게… 이게 무슨…?”

그 모습은 시드와 노엘이 더는 적대하지 않는다는 걸 확실히 보여 주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될 리가 없는데. 그럴 리가 없는 일인데…. 말도 안 되는 일이라 머릿속에서 천둥이 치는 것 같은 굉음이 울려 퍼졌다.

들어와서 결박된 나를 본 노엘은 순식간에 눈이 휘둥그레져선 이마를 문질렀다.

“이런, 시드. 그냥 잠시 시간만 벌어 달라 했는데… 정말 이렇게 묶어 놓으면 어떡해.”

이제 보니 시드는 노엘의 종이라도 된 것 같은 모양새로 공손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모양새는 곧 사실로 드러났다.

나한텐 무반응으로 일관했던 그가 노엘의 명령엔 예민하게 반응했다.

어질어질한 머리를 굴려 이 상황을 어떻게든 이해하려 노력했다.

“노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나는 내가 이 게임의 끝에서 마주하게 될 최종 보스가 시드라고 오랫동안 굳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그를 쓰러뜨리고 친구들을 구할 생각만 했다. 지금은 모든 게 무너져 내려 혼란이 덮쳤지만.

“시드, 이제 넌 해야 할 일을 계속해도 좋아.”

시드는 노엘의 명령대로 책상 앞에 다시 앉아 작업을 계속 진행했다. 노엘의 명령에도 여전히 말은 아끼는지 대답은 고개를 한 번 숙이는 걸로 갈음했다.

노엘은 곧장 내게 다가와선 벽에 고정된 끈을 풀었다. 벽에서 양손이 떨어지자마자 나를 안아 들어 그대로 침대에 앉았다.

손목의 밧줄은 아직 풀리지 않았는데, 이건 당장 풀어 줄 생각이 없나 보다. 그 상태 그대로 나를 제 무릎에 앉히고는 팔을 둘러 꼼짝없이 가둬지게 했다.

조금 뒤, 목덜미를 받친 그의 단단한 팔이 조금 떨려 왔다. 눈을 마주치니 또 딴 길로 샐 것 같아 난 그의 눈길을 피해 시드의 뒤통수를 응시했다.

“시드는 어떻게 된 거야? 너 대체 뭐야. 난 이제 네 모든 게 거짓 같아서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어.”

잔뜩 날이 선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이런 때조차 혹여나 그가 마음 다칠까 봐 조심하고 있다니. 변함없이 물러터졌다.

“다 설명할게. 어차피 언젠가 다 말하려 했어. 그게… 내 생각보다 좀 더 빨라지긴 했지만 말이야.”

떨리는 그의 목소리에 돌아보니 잔뜩 겁먹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표정을 본 순간 가슴이 또 기가 막히게 저릿하며 아파져 왔다.

그래, 마음 아픈 건 그렇다 치자. 그렇게 나한테 벌벌 떨면서 쩔쩔맬 거였음 처음부터 다 말해 줬어야지. 그가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원망하게 된다.

노엘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그의 목적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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