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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121화 (121/145)

121화.

토드와 출입구로 무사히 들어온 나는 당장 그의 몸부터 살폈다. 혹시라도 다친 곳이 없는지.

뛰어든 나를 받아 주며 샅샅이 훑는 그의 시선 역시 느껴졌다.

손에 쥐고 있던 사신의 낫은 횟수를 다해 검은 가루를 휘날리며 소멸했다. 나는 흘러내리는 가루를 아쉬운 눈으로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이것보다 강력한 무기가 또 있을까.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이렇게 보내자니 너무 아쉬웠다.

“리사, 저 앞에 출입구가 또 있어. 그런데 밖이 보이는 것 같아.”

내가 헝클어진 머리를 단정히 고르는 사이, 토드가 전방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활기차게 말했다. 그의 화사한 은빛의 머리카락은 정리하지 않아도 좌르르한 윤기를 자아냈다.

“가 보자!”

일직선으로 된 통로의 끝에 커다란 출입구가 보였고, 양옆 벽으로 평범한 크기의 통로가 뚫려 있었다. 세 갈래로 길이 나뉘는 것 같아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는 중이었다.

나와 토드는 주변을 경계하면서도 차분히 걸어 나갔다.

좀 전의 전투 때문인지 아직도 후끈한 기운이 감도는 듯했다. 기분이 몹시 고조되었다고 해야 할까.

흥분으로 거칠어진 숨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건 나뿐 아니라 토드도 마찬가지였다.

“근데 아까 그건 대체 어떻게 된 거였어? 진짜 대단했어. 솔직히 좀… 아니, 많이 멋졌어. 그런 식으로 너한테 보호받게 될 줄은 몰랐는데.”

“아… 그거?”

나는 괜히 들떠 어깨를 으쓱하며 코밑을 손가락으로 쓱 문질렀다.

토드에겐 내가 마력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운 좋게 가지고 있던 마력석이 공격형이었다고만 간단히 말해 주었다.

“진짜… 넌 날 매번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어.”

상기된 토드의 눈빛과 목소리에 하마터면 설렐 뻔했다. 노엘에 비해 선해 보이는 눈웃음이 매력적인 그였다.

금방 다다른 거대한 출입구는 정말 토드의 말대로 시원하게 뻥 뚫려 있었다.

하지만 완전하게 밖은 아니었다. 아래는 꽤 높은 절벽이라 이 출입구는 그저 창문 역할에 불과하단 생각이 들었다. 떨어지는 순간 끝을 맞이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콜로세움처럼 원형으로 된 건물이었다. 건너편에 비슷한 출입구가 있는 걸 보니, 양옆으로 이어진 통로로 가면 저 건너편에도 가 볼 수 있을 것이라 짐작되었다.

그때였다.

순간 거대한 무언가의 기척과 함께 엄청난 위화감이 내려앉았다. 바로 이 출입구 밖에서.

“뭐… 뭐지?”

토드와 나는 그대로 걸음을 멈추고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더는 나아가선 안 될 것 같은 묵직한 기운이 순식간에 내리쳤다.

그리고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은.

“흡…!”

출입구와 견줄 만한 크기의 눈알이었다. 그것은 조금 전 괴물들보다 훨씬 더 컸다.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에 우리는 압도되었다.

문 너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건 거뭇거뭇 말라 있는 피부와 툭 불거져 금방이라도 빠질 것만 같은 괴물의 눈알이었다.

부리부리한 눈알이 저 크기라면 몸은 대체 얼마나 큰 건지.

“토드!”

이다음 괴물의 행동을 어렴풋이 예측한 순간이었다. 토드 역시 내 눈을 보고는 자기도 같은 생각이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를 살피던 괴물의 눈이 뒤로 물러나나 싶더니 별안간 마른 손이 문으로 쑥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나와 토드는 양쪽에 있던 통로로 각자 흩어져 뛰어 들어갔다.

깊이 들어가진 않고 일단 멈춘 난 괴물의 팔이 꺾여 더는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 생각해 뒤를 돌아보았다.

“으악!”

저, 저게 뭐야!

으드득으드득 기괴하게 꺾인 손목은 토드가 들어간 출입구 쪽을 향했다. 팔과 손가락 모두 자신이 원하는 대로 꺾을 수 있는 모양이었다. 꺾어짐과 동시에 늘어나기도 하는 것 같았다.

다행인지 내 쪽으로는 오지 않았지만, 공포로 얼어붙어 숨만 가까스로 죽이고 있자니 곧 토드를 잡아서 나오는 손을 볼 수 있었다.

“토드…!”

토드는 그것의 손아귀에서 얼굴만 겨우 빼꼼 내밀고 있었다. 어쩔 새도 없이 손은 빠르게 그를 데리고 사라져 버렸다.

내 존재는 잊기라도 한 건지. 그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도 아무 일이 벌어지지 않자, 나는 다시 조심스레 발을 떼었다. 그것이 어디로 사라진 건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들어온 통로를 막 벗어나려던 참이었다. 내 뒤쪽에서 누군가가 저벅저벅 걸어왔다.

“리사, 그 이상 가는 건 그만둬.”

“악!”

극도로 긴장한 와중, 갑자기 뒤에서 노엘이 나타나 말을 거니 정말 놀랐다. 목소리의 주인이 노엘이라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소용돌이 속에 놓여 있던 심장은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저 녀석은 리프터야. 여기서 10층으로 올려 주는 역할을 하지.”

“리프터…? 10층으로 올려 준다고?”

“응. 토드는 저대로 10층으로 올라갈 거야. 문제는 곧장 갇혀 버린다는 거겠지만.”

“이런!”

“리프터는 눈에 걸리는 족족 위로 올려 버리거든. 그러니까 올라갈 게 아니라면 그 탑승구 근처는 얼씬도 하지 말아야 해.”

아까 그 거대 괴물이 엘리베이터 같은 일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런 식으로 타는 엘리베이터라니. 정말 끔찍한데.

에디가 10층으로 한 번에 올라갈 수 있는 게 있다고 했는데 바로 이건가 보다.

“근데 왜 토드만 잡아간 거지? 분명 나도 리프터 눈에 걸렸었는데.”

“네가 너무 예뻐서 봐줬나 보네.”

하아. 정말…….

노엘의 사근사근한 목소리에 서서히 얼굴에 홍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노, 농담이 지금 나와?!”

“미안. 그렇게 헤어진 채로 얼마나 괴로웠는지 몰라. 정말 미치는 줄 알았거든. 그런데 이렇게 보니 역시 예뻐 죽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

누가 들으면 서로 몇 달은 못 본 줄 알겠다.

“…….”

“리프터는 한 번에 하나만 쥐어 잡아 올리는 습성이 있어. 기억력이 나빠서 다시 보기 전까진 널 기억해내지 못할 거야.”

토드는 붙잡혀 갔지만, 다행인 것은 이제 10층으로 한 번에 올라갈 길을 찾았다는 것이었다.

드디어 코앞까지 오긴 했구나. 생각해 보니 목적지에 다다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드디어 친구들을 구할 수 있겠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노엘과 함께라면 두려울 게 없었다.

“그럼 얼른 우리도 10층으로 가자! 저 리프터를 타고.”

나는 노엘의 팔을 잡아당기며 탑승구로 가자고 채근했다. 하지만 노엘은 꿈쩍도 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굳건히 버텼다.

“리사, 저 위에 애들이 갇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긴 했지만, 시드도 저곳에 있다는 보장은 없는 거잖아.”

“음… 그건 그렇지. 뭔가 다른 계획이라도 있는 거야?”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까, 시드를 해치우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올라가자마자 붙잡힐 수도 있잖아.”

노엘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시드가 없어지면 그 아랫것들도 어느 정도 동력을 잃기 마련일 것이고, 우리가 어설프게 올라갔다가 같이 감금이라도 되면 끝장이었다.

“근데 우리 둘이서… 시드를 해치울 수 있는 거야?”

전투 인력은 많을수록 좋을 텐데. 하필 여기서 토드와 떨어지게 되다니. 주방장도 결국 다시 만나지 못했으니 조금 겁이 나고 말았다.

“우리 둘만 있으면 못 할 일은 그 어떤 것도 없어.”

그리 말하는 노엘의 곱상한 얼굴에 은밀한 웃음꽃이 하늘하늘 피어났다. 저 야무지게 다문 입술에 당장 입을 맞추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로 매혹적인 미소였다.

내가 이런 충동을 느끼다니. 의문의 패배감을 소리 소문 없이 혼자 쓰게 맛보는 중이었다. 간신히 또 승천하려는 입꼬리를 턱의 힘으로 끌어 내린 나는 애써 정색했다.

“그런 의미심장한 말은 하지 말라니까….”

“시드는 아마 이 층의 어딘가에 있을 거야. 같이 찾으러 가자.”

“잠깐만,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나도 열심히 알아보고 있었으니까… 겠지?”

친구들 구하는 데엔 눈곱만큼도 관심 없는 줄 알았더니. 알아서 제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있긴 했나 보다. 어쩐지 오래간만에 안심이 되었다.

내가 화를 냈던 게 효과가 있긴 했던 걸까? 친구들을 구해내고 날 웃으면서 보내 주기로 결심이라도 한 걸까. 여러 의문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러는 사이 노엘이 내 손을 잡아 깍지를 끼며 훅 들어왔다.

“응…?”

“우리 손 못 잡은 지 좀 오래된 거 같아서… 만나면 꼭 이렇게 잡고 싶었어. 그럼 가 볼까?”

새삼스레 그저 손잡는 행위가 뭐 이리 가슴 뛰게 하는 건지. 꽉 맞붙은 단단한 손의 틈새가 무척이나 따사롭다. 어디선가 마음을 간지럽게 하는 소리라도 들려오는 듯했다.

온몸이 녹아드는 그의 향기에 기분이 좋아 저절로 긴장도 풀리는 중이었다.

끼익.

여러 출입구를 지나 문을 마주하게 되었고, 노엘이 거침없이 문을 여니 작은 침실이 나왔다. 침실 자체는 아늑한 크기였지만 침대는 3인용처럼 웅장했다.

누군가가 방금 막 청소라도 해 둔 것처럼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한 게 인상적이었다. 아니, 인상적이라기보다도… 급격히 수상쩍은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설마 노엘이 또 여기서 시간을 지체하진 않겠지. 하며 마음속으로 의심하고 있었는데 그 ‘설마’는 역시였다.

“리사, 이런 말 하면 네가 또 싫어할 줄 알긴 하지만.”

“…….”

어쩐지 노엘을 만날 때마다 게임이 초기화되는 느낌이다. 이 녀석만 만나면 게임 진행이 안 된다. 반드시 막히고 만다.

“오늘은 여기서 쉬고 내일 다시 출발하자.”

들어줄 때까진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듯 그는 아프지 않을 정도의 힘만 실어 내 손을 꽉 잡았다.

내 가늘게 뜬 눈꼬리와 눈썹 끝이 매섭게 올라갔다. 이게 또 무슨 수작이냐는 눈초리로 쏘아보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꼭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서 그래.”

웬일로 고분고분 내가 원하는 대로 해 주나 했다. 금세 또 이러는 걸 보니 아직도 서둘러 친구들을 구하러 갈 마음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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